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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위한 마지막 의뢰, 그리고 잠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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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고 싶다. 진심으로.”


어두운 밤, 하북성 성수현의 낡은 객잔 지붕 위에 엎드린 강무혁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고, 낡은 회색 야행복 품속에는 암살용 와이어와 독침 주머니가 가득했다.


강호의 음지에서 ‘흑월루’ 소속의 일류 살수로 살아온 지 어느덧 10년. 피와 비명으로 얼룩진 삶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무혁의 꿈은 소박했다. 강호의 은원을 모두 내려놓고, 따뜻한 남쪽 시골 마을에 온돌방을 들여놓은 작은 만두 가게를 차리는 것. 아침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만두를 빚고, 밤에는 뜨끈한 이불을 덮고 귤이나 까먹으며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는 것이 그의 유일한 이상향이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퍼즐이 바로 ‘은퇴 자금 500냥’이었다.


“이번 의뢰만 성공하면 마침내 500냥이 채워진다. 살수 가문의 시조이신 강조포 어르신의 뜻을 이어받아, 나도 기필코 평화로운 만두 가게 주인이 되고 말리라.”


무혁은 품속에서 붉은 비단에 싸인 의뢰서를 꺼내 들었다. 목표물의 이름이 서슬 퍼런 글씨로 적혀 있었다.


[하북팽가 소교주, 팽지혁.]


악명 높은 하북팽가의 소교주이자 무림이 공인한 대망나니. 매일 밤 성수현의 기루를 드나들며 행패를 부리고, 가문의 위세를 믿고 무고한 이들을 괴롭히는 자. 그를 제거해 달라는 의뢰가 흑월루에 접수되었고, 무혁은 망설임 없이 이 임무를 수락했다.


하지만 명문 정파인 하북팽가의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소교주를 암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혁은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정면 돌파는 가문 전체와의 전면전으로 이어져 개죽음을 당할 뿐이었다. 살수로서 완벽한 은신을 유지하며 사고사로 위장해 타겟만을 완벽하게 처리해야 했다.


그리하여 무혁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위장 잠입’이었다.


***


“어이, 신참! 거기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이 화분이나 저쪽으로 옮겨!”


“예, 예!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하북팽가 본저의 드넓은 앞마당. 무혁은 가문에서 지급한 헐렁하고 촌스러운 초록색 호위복을 입고 있었다. 허리춤에는 살수들이 혐오하는 무겁고 조잡한 철검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신분을 숨기기 위해 ‘초보 호위무사’로 위장 취업한 지 사흘째였다.


가문 내부의 경비는 무혁의 예상보다 훨씬 더 조직적이고 철저했다. 팽가의 가솔들은 정문과 후문은 물론, 담벼락 아래의 작은 쥐구멍 하나까지 교대로 순찰을 돌았다. 이런 삼엄한 감시망 속에서 살수 본연의 은밀함을 유지하는 것은 극도로 까다로운 일이었다.


무혁은 화분을 옮기는 척하며 눈동자를 굴려 주변 지형지물을 머릿속에 그려 넣었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 팽지혁이었다. 하지만 살수계에는 엄격한 규율이 존재했다.


[살수계 제1철칙: 의뢰받은 타겟 이외의 인물을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


무고한 가솔들이나 다른 호위무사들을 건드렸다가는 일이 번거로워질 뿐만 아니라, 살수로서의 명예에도 치명적인 오점이 남는다. 무혁은 철저히 팽지혁만을 단독으로, 그것도 완벽한 ‘사고사’로 위장해 제거해야만 했다.


그때, 장원 안쪽에서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금박 부채를 나풀거리며 걸어 나오는 사내가 보였다. 팽지혁이었다. 수려한 외모를 가졌으나, 흐리멍덩한 눈빛과 거만한 걸음걸이가 전형적인 망나니의 풍모를 풍겼다.


“아으, 어제 마신 술이 아직도 안 깨는군. 얘들아! 마차 준비해라! 오늘 밤에도 청풍루에 가야겠다!”


지혁은 주변 호위무사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신경질적으로 부채질을 해댔다. 그의 안하무인 격인 성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무혁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살수 본연의 차가운 살의를 불태웠다.


‘저 목덜미를 와이어로 단숨에 낚아채면 1초도 안 걸릴 텐데.’


무혁은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품속의 흑랑와이어가 살기를 머금고 요동치는 듯했다. 하지만 주위에는 일류 호위무사들이 십여 명이나 포진해 있었다. 지금 움직이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무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존재감을 지우는 기척차단술을 전개했다.


그는 천천히 팽지혁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소교주의 평소 동선과 행동반경을 완벽하게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기척차단술을 극성으로 끌어올리자, 주변의 호위무사들은 물론 심지어 팽지혁조차 그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무혁은 한 자루의 그림자가 되어 지혁의 뒤를 밟았다.


그런데 그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앞서 걸어가던 팽지혁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기이한 육감을 느낀 듯 휙 뒤를 돌아본 것이다.


“음? 등 뒤가 왜 이렇게 서늘하지?”


무혁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기척을 지웠음에도 망나니 특유의 예민한 촉에 걸린 것인가? 찰나의 순간, 무혁은 뇌를 풀가동했다. 여기서 의심을 사면 잠입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무혁은 즉시 살수용 은신 자세를 취하려던 몸을 억지로 비틀어, 팽가 호위무사들의 교과서적인 자세인 ‘직립부동’ 상태로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그리고 팽지혁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사실 그의 눈빛은 팽지혁의 목을 당장이라도 베어버리고 싶은 지독하고 매서운 ‘진짜 살의’로 가득 차 있었다. 다크서클이 드리워진 눈동자에서 뿜어지는 안광은 서늘하다 못해 피비린내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팽지혁의 뇌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는 무혁의 그 무시무시한 살기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너…… 눈빛이 아주 살아있구나.”


지혁이 부채를 접으며 무혁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무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손가락 끝의 감각을 팽팽하게 유지했다. 만약 정체가 들통난다면 이 자리에서 소교주의 목을 치고 가문 전체를 상대로 탈출극을 벌여야 했다.


그러나 지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혁의 예상을 완전히 비껴갔다.


“요즘 내 목숨을 노리는 사파 놈들이 들끓는다고 해서 기분이 아주 잡쳤는데 말이지. 가문에 들어오는 신참 놈들은 전부 나약해 빠져서 불만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너는 다르구나. 그 강렬하고 매서운 눈빛…… 나를 지키기 위해 사방을 경계하는 그 충성심 어린 눈빛이 아주 마음에 들어! 늠름하기 짝이 없군!”


“……예?”


무혁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멍청한 소리를 내뱉을 뻔했다.


충성심? 늠름함?

나는 지금 네 목뼈를 몇 번째 마디에서 부러뜨릴지 진지하게 계산하고 있었는데?


지혁은 아주 흡족하다는 듯 무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좋아! 내 오늘 밤 청풍루에 갈 때 너도 동행하도록 해라. 그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리는 쥐새끼들을 전부 쫓아내 버리란 말이다. 하하하!”


지혁은 호탕하게 웃으며 가솔들을 이끌고 멀어졌다. 홀로 남겨진 무혁은 어깨에 닿았던 온기를 느끼며 극심한 인지부조화에 빠졌다.


‘방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동시에 밀려오는 묘한 자괴감을 지울 수 없었다. 일류 살수의 치명적인 살기가 망나니 소교주의 눈에는 ‘눈물겨운 충성심’으로 포장되다니. 무혁은 머리가 아파왔다. 호위무사 대기 조를 서느라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해 다크서클은 더욱 짙어지고 피로가 극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기회가 왔다.”


무혁은 눈을 빛냈다. 소교주의 밀착 호위를 맡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암살을 실행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정면 대결을 피하고 완벽한 사고사를 위장하기 위해, 그는 팽지혁의 사생활이 완벽히 보장되는 사적 공간을 조사하기로 결심했다.


그곳은 바로 팽지혁의 침실이었다.


***


밤이 깊어지자, 팽지혁은 약속대로 기루 청풍루로 향했고 장원은 고요에 휩싸였다. 무혁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초보 호위무사 신분증을 경비병들에게 제시하며 자연스럽게 소교주의 침소 구역으로 진입했다. “소교주님의 침실 주변에 수상한 기척이 없는지 특별 순찰을 돌겠다”는 핑계는 아주 완벽하게 통했다. 수석 호위대장조차 그의 헌신적인 태도에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열어주었다.


침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무혁은 즉시 문을 잠그고 기척차단술을 펼쳤. 어둠 속에서 그의 신형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무혁은 침실 내부의 가구 배치와 동선을 정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침대의 위치, 가구의 각도, 바닥재의 상태까지 일류 살수의 눈으로 꼼꼼히 살폈다.


‘침대 밑에 가시 덫을 깔아둘까? 아니야, 시녀들이 매일 청소를 하니 발각될 위험이 너무 커. 독침을 벽면에 심어두는 것은? 순찰 중인 무사들이 먼저 발견할 수도 있어. 살수계 제1철칙을 위반하게 된다.’


가장 완벽한 방법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자연재해, 혹은 건물의 ‘부실 공사’로 인한 사고사였다.


무혁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꼬리가 마침내 서늘하게 올라갔다.


“……찾았다.”


침실 천장의 거대한 대들보 주변, 낡은 석회 가루가 미세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보수하지 않아 천장의 목조 구조와 기와 장식이 매우 불안정하게 균열이 가 있는 상태였다.


여기에 약간의 물리적인 힘만 더해진다면, 팽지혁이 침대에 누워 잠드는 순간 거대한 낙석이나 대들보가 머리 위로 정확히 떨어지게 만들 수 있었다. 완벽한 구조적 결함으로 인한 사고사 위장.


무혁은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그의 눈동자가 차갑고 예리한 안광을 뿜어냈다.


“천장의 부실 구조가 아주 예술이군. 여기에 청강석 바위를 매달아 도르래 기어로 연결해 두면, 특정 와이어를 밟는 순간 머리가 박살 나겠지. 팽지혁, 너의 목숨값 500냥은 내가 잘 받아 가마.”


은퇴를 향한 짜릿한 기대감이 그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무혁은 천장의 균열 상태를 메모지에 정밀하게 그리기 시작하며, 구체적인 자재 수급과 설치 계획을 머릿속으로 구상했다. 마침내 그의 완벽한 암살 계획이 첫 단추를 꿰는 순간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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