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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의 사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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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안개는 밤새 서초동 법조타운의 육중한 석조 건물들을 집어삼킨 채 쉽사리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민지안은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와 법원으로 향하는 짧은 길목에서, 평소보다 유난히 붉게 타오르는 신호등의 정지 신호를 바라보았다. 만성적인 불면증으로 인해 관자놀이가 지그시 조여왔지만, 그녀는 안경 너머의 눈빛을 더욱 차갑게 가다듬었다.


그 침묵을 깨뜨린 것은 조수석 시트에 놓인 스마트폰의 요란한 진동이었다. 액정 화면에는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현재 유일하게 법원 내부에서 신뢰할 수 있는 동료인 임도현 판사의 이름이 떠 있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다급하고 긴장된 음성이 쏟아져 나왔다.


“민 판사님! 지금 인터넷 켜지 마시고 바로 법원 후문 지하 통로로 들어오세요. 지금 정문 로비는 완전히 난리가 났습니다!”


지안은 핸들을 쥔 손가락 끝에 힘을 주며 차분히 물었다.


“임 판사님, 무슨 일입니까? 차분히 말씀하세요.”


“‘팩트나우’라는 인터넷 찌라시 매체에서 기사가 터졌습니다. 홍은경이라는 여자 아시죠? 그 여자가 민 판사님과 피고인 하진우가 고등학교 시절 연인 관계였다는 내용의 단독 보도를 내보냈어요. 고교 시절 삼척 용화해변에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까지 그대로 첨부해서요! 지금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온통 민 판사님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사적 감정으로 재판을 고의 지연시키는 편파 판사’라는 프레임으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불타고 있어요!”


심장이 가볍게 덜컹 내려앉았지만, 지안의 표정은 오히려 얼음처럼 굳어졌다. 하진우가 구치소 특별 접견실에서 그토록 자신을 밀어내며 경고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음을 직감했다. 한성그룹의 후계자 한태성과 그의 수하들은 법정 안에서의 법리 싸움에서 밀리자, 법정 밖의 가장 비열한 무기인 ‘여론의 낙인’을 꺼내 든 것이었다.


“정보 감사합니다, 임 판사님. 예정대로 출근하겠습니다.”


“지안 씨! 지금 법원행정처 윤리심의관실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강인호 부장판사가 심의관실에 직접 민 판사님에 대한 감찰을 공식 요청했다고 합니다. 직무 정지 처분까지 검토 중이라는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법관의 직무는 여론의 소음이나 내부의 압박에 의해 정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법률과 양심에 의해서만 움직이죠. 법원에서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지안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오피스텔 거실 플로어 스탠드 밑바닥에 설치되어 있던 초소형 도청 장치를 통해 자신이 흘렸던 ‘가짜 USB 정보’가 적들의 발등을 제대로 불태운 모양이었다. 적들은 지안이 법원 집무실에 보관하고 있다고 믿는 가짜 비자금 USB를 빼앗기 전에, 그녀의 사회적 신분과 도덕성을 완전히 매장하여 재판관 자격을 박탈하려는 기습적인 제척 카드를 던진 것이다.


중앙지방법원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동안, 지안은 가방을 가슴에 꼭 안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법원행정처 복도로 들어서자, 평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던 법원 실무관들과 동료 배석 판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시선을 피하며 수군거렸다. 싸늘하게 얼어붙은 공기가 그녀의 온몸을 짓눌렀다.


우배석 판사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지안의 방 전담 실무관인 손은주가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서 서류 봉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지안의 예리한 ‘수사 기록 행간 분석안’은 손 실무관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초조하게 땀을 쥐는 손끝을 단박에 포착했다. 손 실무관은 강인호 부장판사의 회유와 압박에 넘어가 지안의 야간 서류 검토 목록을 유출했던 내부의 나약한 쥐새끼였다.


“민 판사님…… 그, 방금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 정재욱 심의관님이 다녀가셨습니다. 판사님 출근하시는 대로 즉시 심의관실로 출석하라는 명령서를 남기셨어요.”


손 실무관이 건넨 빳빳한 공문 서류를 받아 든 지안은 차갑게 미소 지었다. 정재욱. 사법연수원 시절 동기이자 촉망받던 엘리트였으나, 현재는 사법 카르텔 ‘청조회’의 충실한 프락치가 되어 내부 감찰이라는 합법적인 칼날을 휘두르는 인물이었다.


지안이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는 순간,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정재욱 심의관이 경비 요원 두 명을 거느리고 걸어 들어왔다. 단정한 수트 차림에 무테안경을 쓴 그는 차갑고 위선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민지안 판사. 아니, 이제 피감찰자 신분이라고 불러야 하나?”


정재욱은 지안의 책상 맞은편에 거만하게 걸터앉으며 서류 가방을 열었다.


“‘팩트나우’ 기사 봤겠지? 살인 피고인 하진우와 고교 시절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재판을 진행한 것도 모자라, 사적 감정으로 검찰의 정당한 기소 사실을 흔들며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의혹. 이건 법관 윤리강령 제5조 ‘공정성 유지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한 심각한 사안이야.”


지안은 정재욱의 고압적인 태도에도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안경을 치켜썼다.


“정재욱 심의관. 법관 윤리강령을 운운하기 전에, 대한민국 형사소송법 제24조에 따른 법관의 기피 및 제척 사유를 다시 복기해 보시죠. 피고인과 고교 시절 동창이었다는 사소한 인연이 법관의 법적 제척 사유에 해당합니까? 그리고 ‘팩트나우’라는 사설 찌라시 매체의 악의적인 편집 보도가 사법부의 공식 감찰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정재욱의 눈매가 날카롭게 일그러졌다.


“여론이 불타고 있어, 민지안! 사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단 말이다! 대중은 지금 네가 첫사랑을 구하기 위해 판사 법복을 입고 사법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고 믿고 있어. 법원행정처장님과 대법원장님의 우려가 아주 깊으시다. 윤리심의관실은 오늘부로 네게 제33부 우배석 판사직 직무 정지 처분을 내리고 공식 감찰 절차에 착수할 예정이다. 그러니 구설이 더 커지기 전에 스스로 재판부 기피 신청을 수용하고 사퇴서에 서명해. 그게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야.”


정재욱이 사퇴서 양식 문서를 지안의 앞으로 거칠게 밀어 넣었다.


지안은 그 종이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문의 명예라뇨. 이 사생활 폭로 보도의 배후에 한성그룹 홍보실과 법무법인 태양의 대규모 광고 계약이 얽혀 있음을 제가 모를 것 같습니까? 한태성 부회장이 위증자 곽정욱을 매수하고 가죽 장갑의 혈흔을 조작한 정황이 드러나려 하자, 재판장인 강인호 부장판사와 공모해 나를 재판에서 배제하려는 얄팍한 수작일 뿐입니다. 난 서명하지 않습니다.”


“민지안 판사!”


정재욱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소리쳤다.


“네가 아무리 버텨봤자 소용없어. 검찰에서도 너를 공무상 비밀누설 및 사적 감찰 혐의로 피의자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니까. 법정 밖의 여론이라는 덫은 네가 가진 하찮은 법률 지식 따위로 빠져나갈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렇다면 법정 밖에서 증명해 드리지요.”


지안은 단호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법복을 정돈했다. 오늘 오후로 예정된 제33부의 공식 행정 보고 회의를 참석하기 위해 집무실 문을 열었다.


하지만 복도로 나선 지안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혹했다. 법원 본관 정문 로비와 중앙 홀은 이미 수십 명의 카메라 기자들과 황색 언론의 기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섬광 같은 카메라 플래시가 어두운 법원 로비를 사정없이 난도질하며 터져 나왔다.


“민지안 판사님! 피고인 하진우와 고교 시절 연인이었다는 보도가 사실입니까?”


“사적 감정 때문에 현장 검증 직권 명령을 내리며 재판을 고의로 연기한 것 아닙니까?”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법원 내부 정보를 외부로 유출했다는 의혹에 대해 해명해 주십시오!”


사방에서 날카롭고 악의적인 질문들이 화살처럼 날아와 지안의 가슴에 꽂혔다. 경비 요원들이 뒤늦게 저지선인 바리케이드를 치려 했으나, 몰려드는 기자들의 몸싸움에 밀려 로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안은 수많은 마이크와 카메라 렌즈들에 둘러싸인 채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서 고립당했다. 숨이 막힐 듯한 밀폐감과 플래시 불빛이 그녀의 만성적인 두통을 기습적으로 자극해 시야가 흐려졌다.


그녀를 매장하려는 거대한 여론의 덫이 서서히 목을 죄어오는 절체절명의 순간.


법원 로비 정문의 회전문을 밀어젖히며, 빳빳하게 다려진 카키색 야상 점퍼 차림의 남자가 단호하고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카메라 기자들의 숲을 헤치고 들어왔다. SBC 방송국 탐사보도부 기자이자 지안의 유일한 언론계 우군인 정서준이었다.


서준은 밤샘 취재로 인해 붉게 충혈된 눈이었지만, 진실을 좇는 언론인 특유의 날카롭고 형형한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거칠게 마이크를 밀어내는 기자들의 어깨를 밀치며, 고립된 지안의 앞을 온몸으로 가로막아 섰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서준과 지안을 향해 쏟아졌다. 서준은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들어 올리며, 로비를 가득 메운 기자들을 향해 청천벽력 같은 목소리로 선언했다.


“SBC 탐사보도부 정서준 기자입니다! 지금 질문 방향이 틀렸습니다, 여러분! 진짜 질문해야 할 대상은 민지안 판사님이 아니라, 오늘 새벽 ‘팩트나우’에 거액의 불법 차명 주식과 현금 광고 계약을 송금한 한성그룹 홍보실과 오성만 상가 번영회장입니다! 기지국 팩트 체크 결과, 폭로 기사가 배포되기 3시간 전 한성그룹 법무팀의 대포폰 신호가 ‘팩트나우’ 편집국 내부에서 수십 차례 잡힌 물증을 제가 확보했습니다!”


로비를 가득 메우던 기자들의 웅성거림이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서준은 지안을 향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지안은 서준이 만들어준 찰나의 침묵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흐려지던 시야를 바로잡고, 안경 너머로 카메라 렌즈들을 똑바로 응시했다. 차갑고 단호하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엘리트 법조인의 아우라가 가득 찬 목소리가 아수라장이 된 법원 로비 전체를 명징하게 울렸다.


“법관의 양심은 찌라시의 거짓 선동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법부의 중립성을 훼손하려는 거대 자본의 사법 방해 공작에 대해, 저는 법정에서 오직 대한민국 형사소송법과 명백한 물증으로 대답하겠습니다. 재판은 예정대로 진행됩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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