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릴창 너머의 절제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무겁고 낮게 깔린 안개와 닮아 있었다.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의왕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회색빛 콘크리트 장벽들 사이로 웅크린 채, 세상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거대한 감옥의 입구로 지안을 인도했다.
민지안은 조용히 차창 밖을 응시했다. 차갑게 식어버린 앞유리 너머로 구치소의 거대한 감시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가방 속에는 사법부 내부의 온갖 감시와 견제를 뚫고 기습적으로 확보한 ‘구속 피고인 특별 접견 허가서’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교도관의 입석 없이, 오직 판사와 피고인 단둘만이 대면할 수 있는 법적 특권. 강인호 부장판사가 알았다면 길길이 날뛰며 즉각 감찰반을 호출했겠지만, 지금의 지안에게는 그런 행정적 징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정문 초소를 지나 차가 멈추자, 운전석에 앉아 있던 최영철 비서가 백미러로 지안을 바라보았다. 단단하게 각 잡힌 검은색 슈트 차림의 그는 낮고 과묵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민 판사님, 구치소 외곽 200미터 지점부터 번호판을 가린 한성그룹 측 세단 두 대가 미행을 붙었습니다. 접견을 마치고 나오실 때까지 제가 이곳에서 퇴로를 확보하고 대기하겠습니다.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즉시 가방 안의 비상 발신기를 누르십시오.”
“고마워요, 최 실장님. 진우를…… 지켜야 하니까요.”
지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차에서 내렸다. 차가운 새벽바람이 그녀의 단정한 단발머리를 흔들고 지나갔다. 얇은 은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냉철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가방 끈을 쥔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지안은 구치소 내부의 서늘한 복도로 걸어 들어갔다. 벽면을 가득 채운 회색 페인트 냄새와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그리고 쇠창살 너머로 들려오는 불길한 금속음들이 그녀의 숨통을 조여왔다. 마침내 도달한 특별 접견실. 일반 접견실보다 좁고 음산한 방 한가운데에는 두꺼운 투명 아크릴 유리창이 방을 양쪽으로 차갑게 분리하고 있었다.
지안은 자리에 앉아 허가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동행한 교도관은 허가서에 찍힌 법원 직인을 확인하고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 접견 규정에 따라 교도관 입석 없이 20분간 접견을 허용합니다. 다만, 시간 엄수해 주십시오.”
철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오직 지안의 가쁜 호흡 소리만이 남았다.
잠시 후, 반대편 철문이 무겁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짤랑이는 쇠사슬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청색 수의를 입은 하진우가 두 손에 수갑을 찬 채 걸어 들어왔다. 구치소 독방의 가혹한 환경 때문인지 그의 뺨은 눈에 띄게 여위어 있었고, 굳게 다문 입술은 창백했다. 하지만 넓은 어깨와 곧게 편 척추는 여전히 타협을 모르는 그의 성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진우는 지안을 발견하는 순간, 아주 미세하게 눈동자를 빛냈으나 이내 얼음처럼 차가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수갑이 철제 테이블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은 투명한 아크릴창. 물리적으로는 불과 수십 센티미터의 거리였지만, 법과 죄인이라는 신분적 장벽이 그들 사이에 거대한 심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왜 왔어.”
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건조했고, 칼날처럼 차가웠다. 지안을 지키기 위해 철저히 그녀를 밀어내려는 그의 ‘포커페이스 심리 방어술’이 가동된 것이다.
“현직 판사가 구속된 살인 피고인을 사적으로 만나러 오는 건 명백한 품위 유지 위반이자 징계 사유야. 머리가 있다면 당장 나가, 민지안 판사.”
지안은 그의 차가운 독설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안경을 살짝 고쳐 쓰며, 가방 안에서 작은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꺼내 아크릴창에 밀착시켰다. 10년 전, 안개 낀 삼척 용화해변에서 두 사람이 함께 찍었던 낡고 바랜 사진이었다.
“이거, 당신 영치품 보관소에서 가져온 거야. 구치소 보안 규정을 우회해서 겨우 확인했지.”
지안의 차분한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진우의 귀에 도달했다. 지안은 사진을 뒤집어 뒷면을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특수 펜으로 강하게 눌러써서, 불빛에 비스듬히 비추어야만 간신히 보이는 미세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안개는 걷힌다.’*
지안의 눈동자가 진우의 깊은 눈속을 꿰뚫듯 응시했다.
“진우야. 네가 진짜로 서현수 검사를 죽인 살인범이라면, 왜 너의 가장 소중한 영치품 속에 이 사진을 남겨둔 거지? 그리고 왜 이 뒷면에 나만을 향한 메시지를 적어둔 거야?”
진우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의 ‘인간 거짓말 탐지기’ 같은 직관이 지안의 눈빛 속에 담긴 깊은 슬픔과 확신을 읽어내고 있었다. 그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격정적인 고통을 억누르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의 붉어진 눈시울과 거칠어지는 호흡을 아크릴창은 완전히 감추지 못했다.
“그냥 오래된 사진일 뿐이야. 특별한 의미는 없어.”
진우는 시선을 피하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난 서현수를 내 손으로 찔러 죽였어. 가죽 장갑의 혈흔도, 내 자백도 모두 진짜야. 그러니까 판사로서 네가 해야 할 일은 내게 가장 무거운 형벌을 내리고 이 재판을 신속히 끝내는 것뿐이야. 더 이상 쓸데없는 의혹으로 네 커리어를 망치지 마.”
“거짓말.”
지안이 아크릴창에 바짝 다가섰다. 그녀의 숨결이 투명한 벽면에 하얗게 김을 서리게 만들었다.
“네가 지키려는 게 뭔지 알아. 10년 전 삼척에서 일어난 그 사고…… 내가 사람을 치어 죽였다고 믿고 있는 그 기억 때문이지? 그래서 네가 내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영원히 어둠 속에 갇히려는 거잖아!”
지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며 울컥 차올랐다. 평생을 지배해 온 살인자라는 죄책감과, 자신을 위해 목숨을 던진 첫사랑을 향한 미안함이 그녀의 이성을 뒤흔들고 있었다.
진우는 지안의 입에서 ‘삼척의 사고’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의 포커페이스가 완전히 무너지며 주먹을 쥔 두 손이 수갑 아래에서 파르르 떨렸다. 지안이 과거의 조작된 기억과 마주하고 파멸할까 봐 느끼는 극도의 공포가 그의 전신을 지배했다.
“지안아, 제발…….”
진우의 목소리에서 마침내 차가운 가면이 벗겨졌다. 절박함과 애틋함이 뒤섞인 목소리가 아크릴창의 미세한 음성 통기구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 안개 속으로 다시 들어가지 마. 넌 판사로서 곧고 밝은 길만 걸어가면 돼. 더러운 진흙탕은 내가 전부 짊어지고 갈 테니까…… 그러니까 나를 잊어.”
“아니, 난 포기 안 해.”
지안은 아크릴창 밑바닥에 위치한, 서류를 주고받을 수 있는 아주 좁고 미세한 틈새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며 진우의 수갑 찬 손을 향해 뻗어 나갔.
진우 역시 본능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싶어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의 손가락 끝이 아크릴창 너머의 좁은 틈새에서 서로를 향해 타오르듯 다가갔다. 비록 수갑과 아크릴 장벽에 가로막혀 온전히 맞닿을 수는 없었지만,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온기만으로도 10년의 그리움과 절제가 법정의 차가운 공기를 녹여버릴 듯 뜨겁게 교차했다.
두 사람의 손가락 끝이 마침내 아슬아슬하게 닿으려던 찰나.
*쾅!*
특별 접견실의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둔탁한 금속음이 방 안의 애틋한 정적을 산산조각 내었다.
“시간 초과입니다, 민 판사님!”
보안과장 배상우의 거칠고 고압적인 목소리가 좁은 접견실을 찢고 들어왔다. 그의 뒤로 무장한 교도관 서너 명이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진입했다. 배상우는 뱀처럼 비열한 눈빛으로 지안과 진우의 손끝을 번갈아 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특별 접견이라도 구치소 보안 규정은 예외가 없습니다. 피고인 하진우, 당장 대기실로 이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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