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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의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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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록의 번호판을 더듬는 서늘한 금속 마찰음이 고요한 방안을 찢고 들어왔다.


*띠리릭, 띠리릭.*


어둠이 짙게 깔린 거실 침대 머리맡에서 민지안은 온몸의 피가 일시에 얼어붙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것처럼 요동쳤고, 가쁜 숨을 몰아쉴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목구멍을 찔렀다. 현관문 너머에 서 있는 자가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성그룹 부회장 한태성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그림자, 혹은 그의 잔혹한 사설 해결사 최달수일 것이 틀림없었다.


지안은 소리 없이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 구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시선이 플로어 스탠드 밑바닥에 고정되었다. 그 아래에는 불과 몇 시간 전 발견한 초소형 불법 도청 장치가 미세한 LED 불빛을 흘리며 작동하고 있었다. 적들은 지금 이 방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실시간으로 받아 적고 있을 터였다.


‘경찰에 신고하는 건 자폭 행위야. 서초동 경찰서 수뇌부는 이미 청조회의 손아귀에 있어. 신고하는 순간 김태영의 수첩을 압수당하고 내 입만 막히겠지.’


지안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방 속 김태영 변호사의 업무 수첩을 꼭 쥐었다. 그리고 차가운 이성을 끌어올려 도청 장치를 향해 몸을 숙였다. 적들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면, 역으로 그들의 귀를 이용해 판을 흔들어야 했다. 지안은 목소리에 일부러 피곤함과 긴장감을 섞어, 하지만 도청기에 가장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는 톤으로 전화를 거는 시늉을 하며 소리쳤다.


"여보세요? 서준아. 나 지안이야. 응, 방금 김태영 변호사 사무실에서 가져온 한태성 비자금 장부 원본 파일이 든 USB 말이야…… 분석 끝났어. 아주 결정적인 물증이라 내일 오전 중에 내 법원 집무실 우측 서랍 안쪽 캐비닛에 보관해 둘 생각이야. 아주 결정적인 물증이라 내일 오후 선고 전까지는 아무도 내 집무실에 접근하지 못하게 보안 요원들에게 특별히 신경 써달라고 정희 씨한테도 말해뒀어. 만약 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자동으로 방송국이랑 특별검사팀에 전송되게 백업 폴더도 설정해 놨으니까 걱정 마. 그리고 방금 오피스텔 경비실에도 연락했어. 복도 CCTV 실시간으로 확인해 달라고 했으니까 곧 보안 요원들 올라올 거야."


지안의 목소리가 어두운 거실 안을 울렸다.


그 순간, 현관문 도어록을 집요하게 건드리던 서늘한 금속 마찰음이 뚝 끊겼다.


고요한 복도 너머로 묵직한 구두굽 소리가 급히 멀어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지안은 현관문에 등을 기대고 주르륵 주저앉았다. 손바닥은 이미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도청기를 파괴하지 않고 역정보를 흘리는 기만전술이 먹힌 것이다. 적들은 지안이 흘린 가짜 USB 정보를 진짜로 믿고, 그녀의 오피스텔이 아닌 법원 집무실로 타깃을 변경할 터였다. 하지만 이 안전지대 없는 고독한 싸움이 언제까지 버텨줄 수 있을지, 지안의 마음속에는 지독한 불안감과 만성적인 불면증의 그늘이 더욱 깊게 내려앉았다.


* * *


다음 날 아침,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공기는 평소보다 더욱 차갑고 엄숙했다.


지안이 우배석 판사로 소속된 형사합의제33부의 복도는 숨 막히는 침묵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진우의 재판을 직권으로 연기시키고 추가 증거 조사를 요구한 지안의 돌발 행동은 법원 내부에서 거대한 스캔들이 되어 있었다. 동료 판사들은 복도에서 지안과 마주칠 때마다 약속이나 한 듯 시선을 피하며 싸늘하게 지나쳐 갔고, 직속상관인 강인호 부장판사의 집무실 문은 굳게 닫힌 채 싸늘한 위압감을 풍겼다.


지안이 자신의 집무실 책상에 앉아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고 있을 때,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들어선 이는 법정의 베테랑 속기사 조만수였다. 30년 동안 법정의 모든 소리를 텍스트로 기록해 온 그는 희끗희끗한 머리칼에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친 고지식한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민 판사님, 어제 공판 속기록의 최종 검토본을 가져왔습니다.”


조만수는 정중하게 서류철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의 손은 서류철 아래에 숨겨둔 낡고 작은 가죽 비망록 하나를 지안의 책상 위로 슬그머니 밀어 넣고 있었다. 지안이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조만수는 목소리를 낮추며 주위를 살폈다.


“공식 속기록은 오직 법정에서 발설된 공식적인 법의 언어만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제 개인 비망록은…… 공식 기록관의 눈을 피해 법정의 공기와 숨소리까지 담아두지요.”


지안은 조심스럽게 조만수의 속기록 비망록을 펼쳤다. 그곳에는 속기 자판의 약어로 가득한 메모와 함께 조만수의 정갈한 자필 글씨가 적혀 있었다.


[피고인 하진우 신문 당시 정황 기록]

- 피고인 하진우, 자백 진술 도중 우측 허벅지 위에서 오른손 손가락 끝을 규칙적으로 타격함.

- 타격 박자 분석: 톡, 톡, 톡, 톡톡, 톡. (단음과 장음의 명확한 구분. 단순한 긴장성 틱 장애 아님. 모스 부호 체계와 일치함.)

- 모스 부호 해독 결과: ‘나를 믿고 앞으로’

- 우배석 판사 민지안, 피고인의 손가락을 응시하며 3.2초간 무음 상태 유지. 호흡이 불규칙해지고 동공의 미세한 흔들림 포착. 두 사람 사이에 비공식적인 정서적 교감 및 수신호 소통 정황 강하게 의심됨.


지안의 손끝이 가볍게 떨렸다.


“조 속기사님, 이건…….”


“민 판사님.”


조만수가 안경을 치켜쓰며 나직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그녀의 말을 막았다.


“저는 평생 이 법정에서 수많은 피고인을 보았습니다. 진짜 살인범의 자백은 탐욕스럽거나 비겁하지만, 하진우 피고인의 자백은…… 오직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제단에 올라서는 순교자의 그것과 닮아 있더군요. 그리고 민 판사님이 어제 보여주신 그 망설임과 슬픔 역시, 법전 뒤에 숨길 수 없는 인간의 양심이었습니다. 이 비망록은 제 방 캐비닛 깊숙이 묻어둘 테니 걱정 마십시오. 다만, 판사님께서 쫓으시는 그 진실이 부디 판사님 자신을 파괴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조만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집무실을 나섰다.


홀로 남은 지안은 비망록을 가슴에 안았다. 진우가 보낸 수신호 ‘나를 믿고 앞으로 가라’는 메시지의 실체가 타인의 눈을 통해 증명된 순간이었다. 가슴 저릿한 애틋함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이 밀려왔다. 진우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키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 역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지안은 가방에서 김태영 변호사의 업무 수첩을 꺼내 들었다. 수첩에 적힌 한태성의 뇌물 수수 거래 날짜들과 10년 전 삼척 사건의 타임라인을 대조해 보았지만, 법원 내부의 숨 막히는 감시망 속에서는 더 이상의 정밀한 분석이 불가능했다. 사법부 내부 사조직 청조회의 마수가 이미 자신을 향해 뻗어오고 있는 지금, 그녀에게는 이 거대한 사법 장벽에 맞설 수 있는 법률적 무기와 정신적 지주가 절실했다.


지안은 외투를 챙겨 입고 법원을 나섰다. 그녀가 향한 곳은 서울 성북동의 호젓한 주택가 깊숙이 자리 잡은 고풍스러운 한옥이었다.


* * *


성북동 언덕길을 따라 빗물이 고인 돌계단을 오르자, 짙은 안개 속에 고요히 웅크린 한옥이 나타났다. 대문 옆에 걸린 ‘우석재(愚石齋)’라는 작은 현판이 이곳의 주인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안의 사법연수원 시절 은사이자, 사법부 내에서 유일하게 청렴함을 유지하며 후배들의 존경을 받던 원로 법조인 송우석 교수의 서재였다.


*기익, 끄응-.*


오래된 목조 대문이 열리며 은은한 묵향과 마른 종이 냄새가 비 냄새 섞인 공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마당의 낙수받이 돌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규칙적인 소리가 마음의 소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지안이로구나.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냐.”


개량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송우석 교수가 인자한 미소로 지안을 맞이했다. 품위 있는 백발과 깊이 있는 안광을 지닌 노학자는 제자의 창백한 안색을 단번에 읽어내고는, 묵묵히 따뜻한 국화차를 우려 서재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서재 벽면은 천장 닿을 듯 수만 권의 법률 서적과 낡은 판례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은 대한민국 법의 역사와 인간의 양심이 공존하는 은밀한 성역과도 같았다.


“교수님.”


지안은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쌌지만, 손끝의 떨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법관은 자신의 법정에 선 피고인이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일 때, 사법적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법과 양심만을 따르라 배웠지만, 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송우석은 찻잔을 내려놓고 지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깊은 눈빛에 애틋함과 우려가 교차했다.


“헌법 제103조를 기억하느냐.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한다.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단순한 사적 감정이 아니다. 법관으로서 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도덕적 의무이자, 권력의 압박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단단한 나침반이지. 네 법정에 선 그 청년이 네 첫사랑이라 해서 객관성을 잃을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사적인 연대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기소장의 거대한 거짓을 꿰뚫어 보게 만드는 현미경이 되어줄 수도 있으니까.”


송우석의 목소리는 지안의 혼란스러운 마음에 이정표를 제시하듯 명징했다. 지안은 심호흡을 하며 김태영 변호사의 수첩 복사본을 꺼내 놓았다.


“하진우 피고인은 가짜 자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 배후에 한성그룹의 한태성이 있고, 우리 법원 내부의 사조직인 ‘청조회’가 결탁하여 재판을 졸속 선고로 끝내려 압박하고 있습니다. 부장판사님마저 저를 찍어 누르려 합니다. 이 거대한 장벽 앞에서 판사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청조회’라는 단어가 나오자, 송우석의 온화하던 얼굴이 서늘하게 굳어졌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담배 파이프를 만지작거렸다.


“청조회라…… 사법부의 독립성을 팔아넘겨 대기업과 판결을 거래하는 법조계의 거대한 암종이지. 그들의 뿌리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잔혹하단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밀을 건드리는 자는 법복을 벗기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해 버리지.”


송우석은 잠시 말을 멈추고 지안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지안아. 네 부친인 민창식 전 대법관 역시 평생 청렴의 상징으로 추앙받았으나, 그 그늘을 완전히 벗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10년 전, 네 아버지가 대법관 임용을 앞두고 있을 무렵…… 삼척에서 일어났던 그 안개 낀 해안도로의 사고를 기억하느냐.”


“삼척…… 용화해변 국도 말씀이십니까?”


그 지명이 송우석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지안의 관자놀이에 벼락이 치는 듯한 격렬한 통증이 일었다. 머릿속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던 차갑고 축축한 안개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래. 당시 사망한 서현수 검사 사건 말이다. 네 아버지는 그 사건이 단순 뺑소니로 신속히 종결되던 시기에 대법관으로 임용되셨지. 사법부 최고의 권력자였던 임대형 대법원장과 네 아버지 사이에 비공식적인 거래가 있었다는 소문이 법조계 원로들 사이에서는 파다했단다. 네 아버지가 침묵하는 대가로 가문의 안위와 대법관 자리를 약속받았다는…… 추악한 거래의 소문이었지.”


“그럴 리 없습니다! 제 아버지는 평생 법과 원칙만을 지키며 살아가라고 저를 가르치신 분입니다!”


지안은 강하게 부정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폭발하듯 번지는 이명과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책상 모서리를 짚었다.


*삐------.*


지독한 기계음 같은 이명 너머로,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교차하기 시작했다.

짙은 백색 안개.

와이퍼가 거칠게 유리를 긁는 소리.

그리고 쿵, 하는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안개 속을 찢고 번뜩이던 정체불명의 붉은 헤드라이트 불빛.

뒤이어 들려오던 아버지 민창식의 차갑고 Stern한 목소리가 뇌파를 흔들었다.


*‘지안아, 너는 아무것도 치지 않았다. 네 안경은 부러진 게 아니야. 다 잊어라. 전부 잊어버려라.’*


지안은 숨이 막혀 가슴을 쥐어짜며 주저앉았다. 단순한 사고의 충격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정신과 의사를 동원해 자신에게 강제로 주입했던 억압성 약물 최면 치료의 암시 장벽이, 진실을 향해 뻗어가는 지안의 의식과 충돌하며 극심한 두통을 유발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딸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대법관 승진과 청조회와의 은밀한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딸의 기억을 인위적으로 지웠던 것일까.


“지안아! 괜찮으냐?”


송우석이 놀라 그녀를 부축하려 일어섰다. 지안은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잠시 편두통이 도져서 그렇습니다. 따뜻한 물을 좀 마실 수 있을까요.”


“내 얼른 탕실에서 따뜻한 차를 새로 우려오마. 잠시 쉬고 있거라.”


송우석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재를 나섰다.


혼자 남은 지안은 책상 위의 국화차 김을 바라보며 가쁜 숨을 진정시켰다. 손끝이 여전히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녀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일어서서 서재 벽면에 꽂힌 송우석 교수의 방대한 스크랩북과 비망록 파일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평생 사법부의 부패와 판결 거래를 연구해 온 노학자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녀의 시선이 책장 한구석, 먼지가 얇게 앉은 낡은 가죽 폴더 하나에 머물렀다. 폴더의 옆면에는 10년 전 연도가 투박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지안은 자석에 이끌리듯 손을 뻗어 그 폴더를 꺼내 들었다.


폴더를 펼치자, 빛바랜 10년 전 신문 스크랩과 사법부 인사 기록 카드들이 쏟아져 나왔.


지안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서류들을 한 장씩 넘겼다. 그리고 마침내 한 장의 누렇게 바랜 신문 기사 스크랩 앞에서 그녀의 모든 사고 회로가 완전히 정지했다.


기사의 헤드라인이 지안의 눈동자에 박혀왔다.


[민창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차기 대법관 최종 후보 임명]


기사에는 10년 전, 엄격하고 기품 있는 미소를 지으며 대법관 임용 소감을 발표하던 아버지 민창식의 젊은 시절 사진이 크게 실려 있었다.


하지만 지안의 시선을 강탈한 것은 그 기사 바로 옆면에 나란히 실려 있던 아주 작은 지방 뉴스 단신이었다.


[삼척 용화해변 도로 검사 뺑소니 사건, 용의자 특정 불가로 ‘내사 종결’ 결정]


두 기사의 날짜는 소름 끼치도록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민창식이 대법관으로 공식 임명 제청되던 바로 그날 아침, 삼척 경찰서는 서현수 검사 사망 사건을 단순 뺑소니로 규정하고 수사를 완전히 종결지었다.


지안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낡은 신문지 위로 툭, 떨어졌다.


아버지는 딸을 구원하기 위해 침묵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도덕적 가면과 사법 기득권의 정점에 서기 위해, 딸의 죄책감과 기억을 지우고 거대한 사법 카르텔의 손을 잡았던 것이다. 지안의 온 세상이, 평생을 지탱해 온 도덕적 지주가 한순간에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서재 문틈 사이로 가을비 섞인 안개가 다시 음산하게 밀려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려던 송우석 교수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지만, 지안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가 서명했던 10년 전 은폐의 흔적을 움켜쥔 채, 지안은 안개 속에서 비로소 마주한 거대한 위선의 실체 앞에 처절한 정서적 파멸을 느끼며 주먹을 쥐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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