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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의 암호, 톡 톡 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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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대법정의 공기는 언제나 서늘했다. 높게 솟은 법대 아래로 검은 법복을 입은 판사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늘어섰고, 방청석을 가득 메운 기자들과 관계자들의 숨소리조차 차갑게 얼어붙는 공간. 10월 14일, 제2차 공판 기일이 열린 오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재판장석에 앉은 강인호 부장판사는 신경질적으로 의사봉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미간에 깊게 패인 주름은 이 재판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조급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 왼쪽에는 소심한 표정으로 서류를 뒤적이는 좌배석 판사 임도현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하얗고 냉철한 얼굴의 우배석 판사 민지안이 앉아 있었다.


지안은 얇은 은테 안경을 치켜쓰며 피고인석을 내려다보았다. 수의를 입은 채 꼿꼿이 서 있는 남자, 하진우. 구치소 생활로 인해 뺨은 조금 더 여위어 있었지만, 상대를 압도하는 특유의 포커페이스는 여전했다. 지안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거대한 심연처럼 어둡고 고요했다.


‘진우야. 네가 숨기려는 그 두 시간의 공백을, 내가 오늘 이 법정에서 끄집어내겠어.’


지안은 심장 깊은 곳에서 요동치는 정서적 파동을 억누르며 차갑게 마이크를 켰다. 그녀가 보유한 최고의 무기, ‘압박 피고인 신문 기술’이 가동될 차례였다.


“피고인 하진우. 형사소송법 제294조 및 재판부의 직권에 따라 피고인 신문을 진행하겠습니다.”


지안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대법정 내부에 명징하게 울려 퍼졌다. 공판 검사 백승현이 의아한 눈빛으로 지안을 쳐다보았고, 강인호 부장판사는 불쾌한 듯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지안은 개의치 않고 준비한 서류를 펼쳤다.


“피고인은 지난 기일에서 피해자 서현수 검사를 과도로 세 차례 찔러 살해했다고 자백했습니다.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진우의 목소리는 기계처럼 건조했다. 일체의 망설임도 없는 완벽한 시나리오의 낭독이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피고인은 오른손잡이입니까, 왼손잡이입니까?”


예상치 못한 사소한 질문에 법정 내부의 속기 자판 소리가 일시적으로 멈췄다. 법정 한구석에 앉은 30년 경력의 베테랑 속기사 조만수가 돋보기안경 너머로 지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진우는 미세하게 눈동자를 빛내며 대답했다.


“오른손잡이입니다.”


“그렇다면 이상하군요.”


지안이 빔프로젝터 화면을 향해 리모컨을 눌렀다. 서현수 검사의 사체 부검 사진과 자창의 궤적이 담긴 그래픽 도표가 대형 스크린에 떠올랐다.


“피해자의 복부에 남겨진 세 차례의 자창 각도를 물리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칼날이 진입한 방향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왼손잡이가 정면에서 공격했을 때 발생하는 궤적입니다. 오른손잡이가 피해자를 정면에서 찔렀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각도지요. 피고인은 오른손잡이라면서, 어떻게 왼손잡이의 정밀한 각도로 피해자를 찔렀다는 겁니까?”


지안의 날카로운 지적에 방청석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백승현 검사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장님! 피고인은 이미 범행 사실을 자백했습니다. 자창의 미세한 각도는 범행 당시의 격렬한 몸싸움과 피해자의 움직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판사님의 신문은 피고인의 자백을 무리하게 흔들려는 편파적인 유도 심문입니다!”


강인호 부장판사 역시 지안을 매섭게 노려보며 제지하려 했다.


“민 판사, 검사 측 주장이 타당해 보이는군. 피고인이 자백한 사건에서 지엽적인 신체 조건까지 걸고넘어지는 건——”


“아닙니다, 재판장님.”


피고인석의 하진우가 강 부장판사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평정심이 깃들어 있었다. 진우는 지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마치 미리 준비해 둔 방어벽을 치듯 차분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범행 당시 저는 왼손으로 피해자의 멱살을 잡고 제압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하자, 얼떨결에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과도를 집어 들어 찌른 것입니다. 흥분한 상태였기에 왼손으로도 충분한 물리적 힘이 가해졌을 뿐, 오른손잡이라는 사실이 범행을 부정할 근거는 되지 않습니다.”


완벽한 방어였다. 진우는 지안이 던진 날카로운 질문을 정교한 임기응변으로 받아치며, 자신이 진범이라는 가짜 각본을 끝까지 수호하려 했다. 지안을 법적 책임과 10년 전 삼척의 쇠사슬로부터 영원히 분리하기 위한 처세였다.


지안의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좌절감과 애틋함이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토록 완벽한 괴물이 되기를 자처하는 첫사랑의 모습을 바라보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법정 안은 다시 침묵으로 가라앉았고, 오직 조만수 속기사의 손가락이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타닥, 타다닥. 타닥.*


지안은 숨을 고르며 서류를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법대의 높고 차가운 벽 아래, 피고인석에 서 있는 진우의 오른손 움직임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진우는 수갑에 묶인 양손을 허벅지 위에 가만히 올려두고 있었다. 교도관들과 검사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좁은 사각지대. 그의 긴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허벅지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톡, 톡-톡, 톡.*


조만수 속기사의 타이핑 소리와는 전혀 다른, 아주 느리고 일정한 박자. 지안의 뇌리에 번개 같은 기시감이 스쳤다. 그녀가 가진 과잉 기억 증후군에 가까운 ‘순간 기억 복기력’이 10년 전 삼척 용화해변의 짙은 밤안개 속으로 그녀의 의식을 강제로 끌어내렸다.


학창 시절, 안개가 너무 짙어 서로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던 붉은 등대 아래에서, 진우는 지안의 손등 위에 손가락 끝으로 미세한 박자를 두드리며 장난을 치곤 했다. 그것은 두 사람만이 공유했던 비밀 모스 신호였다.


지안은 숨을 멈추고 진우의 손가락 끝을 응시했다. 안경 너머 그녀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톡, 톡-톡, 톡. (N-A-R-U-M-I-D-G-O)*

*톡, 톡, 톡. (A-P-E-U-R-O)*


지안의 머릿속에서 아날로그 신호가 명징한 문장으로 해독되었다.


‘나를 믿고 앞으로 가라.’


10년 전 그날 밤, 안개 낀 삼척 바다에서 진우가 자신에게 건넸던 마지막 약속의 암호였다. 입으로는 차가운 거짓을 말하면서도, 손가락 끝으로는 지안에게 포기하지 말고 진실을 향해 나아가라고 절박한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지안의 눈시울이 뜨거워졌으나, 그녀는 법관석의 엄숙함을 잃지 않기 위해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정서적 흔들림을 차가운 사법적 집념으로 승화시킨 지안은 마이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자백의 보강법칙(형소법 제310조)을 무기로 재판을 장기전으로 이끌 최후의 카드를 꺼낼 때였다.


“재판장님. 피고인의 방금 전 진술은 검찰이 제출한 현장 검증 조서의 기재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조서에는 피고인이 ‘오른손으로 과도를 쥐고 찔렀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피고인의 오늘 법정 진술과 조서의 불일치, 그리고 피해자의 위 내용물 소화 상태를 통한 사망 추정 시간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본 재판부는 자백의 보강법칙에 의거해 오늘 변론을 종결할 수 없습니다.”


지안은 강인호 부장의 제지 마이크를 눈빛으로 압박하며 단호하게 선언했다.


“추가적인 사실 확인과 현장 검증을 위해, 본 공판을 기습 연기할 것을 재판부에 강력히 건의합니다.”


지안의 시선이 피고인석의 진우와 허공에서 얽혔다. 안개는 아직 걷히지 않았지만, 두 사람만의 비밀 암호가 차가운 법정의 장벽을 깨뜨린 순간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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