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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2차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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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의 얇은 철판 벽 너머로 가쁜 숨소리 같은 엔진음이 좁혀오는 순간, 영철이 다친 어깨를 감싸 쥔 채 총을 쥐고 비상구 문을 가로막아섰다.


바닷바람이 갯벌의 짠내를 품고 컨테이너의 틈새를 사정없이 후벼팠다. 희미한 촛불 하나에 의지해 삼척 해안도로 도면을 들여다보던 민지안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의 뇌리에서 ‘순간 기억 복기력’이 기민하게 작동했다. 엔진 소리는 총 세 개. 디젤 엔진 특유의 묵직한 마찰음과 비포장 갯벌 도로를 짓밟는 거친 타이어 소리로 보아 마성태가 이끄는 골드더블의 사설 용역 차량들이 분명했다.


“판사님, 뒤편 갯벌로 이어지는 보트 선착장 방향에 제 보조 차량이 있습니다. 움직이셔야 합니다.”


영철이 낮게 으르렁거리며 붕대 사이로 붉게 배어 나오는 피를 무시한 채 지안을 재촉했다. 지안은 품에 안은 황색 작업 일지, 즉 하진혁이 건넨 사설 교통사고 감정서를 품에 단단히 안았다. 진우가 자신을 위해 남겨둔 스위스 비밀 계좌의 OTP 카드 역시 가죽 가방 깊숙이 밀어 넣었다.


“영철 씨, 어깨 부상이 심각해요. 무리하게 교전하지 말고 연막탄을 쓰세요. 안개가 짙은 지금이 기회입니다.”


지안의 차가운 지시에 영철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술용 연막탄을 컨테이너 정문 쪽으로 투척했다. 쉭 소리와 함께 자욱한 백색 연기가 서해안의 해무와 뒤섞이며 컨테이너 주변을 완벽한 백색 장막으로 뒤덮었다. 적들이 연기 속에서 당황해 고함을 지르는 사이, 영철은 지안을 엄호하며 컨테이너 비상구를 통해 갯벌의 차가운 진흙 바닥으로 내려섰다.


질척이는 진흙을 밟으며 두 사람은 안개 속으로 소리 없이 녹아들었다. 영철이 미리 대기시켜 둔 구형 소형 SUV에 탑승하자마자, 영철은 헤드라이트를 끈 채 엔진을 가동했다. 삼척 해안도로에서 터득한 ‘미행 차량 따돌리기 운전술’이 다시 한번 영철의 손끝에서 빛을 발했다. SUV는 갯벌의 사각지대를 따라 미끄러지듯 빠져나가 고속도로 진입로를 향해 질주했다. 백미러 너머로 영종도의 쓸쓸한 안개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지안은 비로소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 * *


오전 6시 15분, 서울 서초동의 한적한 24시간 스터디룸.


어둡고 건조한 개인실 안에서 지안은 얇은 은테 안경을 고쳐 쓰며 책상 위에 하진혁의 작업 일지를 펼쳤다. 밤샘 도주로 인한 피로와 만성적인 편두통이 관자놀이를 짓눌렀지만, 지안의 이성은 칼날처럼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다.


그녀는 ‘직관적 사건 재구성력’을 발휘해 10년 전 삼척 용화해변 도로의 사고 정황을 뇌리에서 3D 입체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하기 시작했다. 하진혁이 기록해 둔 휠 얼라인먼트 정밀 데이터와 변형 각도 수치들이 지안의 눈앞에서 물리학적 공식으로 치환되었다.


“운동에너지 공식, $E_k = \frac{1}{2}mv̂2$.”


지안이 볼펜을 쥔 채 백지에 수치를 적어 내려갔다.


10년 전 지안이 운전했던 은색 아반떼의 공차중량은 약 1.2톤. 당시 도로에 남겨진 스키드 마크와 가드레일 충격 흔적으로 역산한 지안의 차량 속도는 시속 30킬로미터 미만이었다. 피해자 서현수 검사를 1차로 스쳤을 때 가해진 충격 에너지는 약 41,000줄(J). 이 정도의 에너지는 인체에 가벼운 대퇴부 골절이나 타박상을 입힐 수는 있으나, 즉사에 이르게 할 정도의 치명적인 장기 파열을 일으키는 것은 물리학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하진혁의 정비 일지에 기록된 프레임 변형 각도와 하부 충격 흔적은 전혀 다른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차량 뒤 범퍼의 좌측 프레임이 안쪽으로 15도 이상 함몰된 흔적. 그것은 단독 사고가 아니었다. 지안의 차가 서현수를 치고 멈춰 선 직후, 후방에서 또 다른 거대한 질량의 차량이 지안의 차를 고의로 밀어붙였음을 증명하는 물리적 증거였다.


지안이 숫자를 다시 대입했다.


후방에서 돌진한 차량은 공차중량 2.5톤에 달하는 대형 세단. 한성그룹 부회장 한태성이 탑승했던 검은색 에쿠스 차량이었다. 그 차량이 시속 6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지안의 차를 뒤에서 추돌하며 가한 2차 충격 에너지는 무려 270,000줄에 달했다. 이 거대한 충격 에너지가 지안의 차를 앞으로 밀어냈고, 쓰러져 있던 서현수 검사의 chest cavity(흉강)와 간을 완전히 짓밟고 지나간 것이었다.


“내가 아니었어…….”


지안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평생 자신을 살인자라고 믿게 만들며 영혼을 옥죄었던 10년 전의 죄책감이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지안의 아반떼는 서현수를 가볍게 충격했을 뿐이었고, 그를 즉사시킨 ‘진짜 사인’은 뒤이어 고의로 돌진해 2차 충격을 가한 한태성의 차량이었다.


이것이 바로 사법 카르텔과 한성그룹이 철저히 지우려 했던 ‘지워진 2차 충격’의 물리학적 실체였다.


진우는 이 진실을 알고 있었기에, 지안이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가짜 기억 속에서 파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섰던 것이다. 지안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황색 정비 일지 위로 번졌다.


“진우야, 네가 지키려 했던 게 이런 거였구나. 나를 위해서…….”


지안은 심장을 죄어오는 애틋함과 죄책감을 억누르며 볼펜을 굳게 쥐었다. 이제 슬퍼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 사설 감정서를 법정의 공식 재판 기록으로 영구히 등록해야만 했다. 부장판사 강인호와 공판 검사 백승현이 손을 쓰기 전에, 사법부의 공식 시스템 내부에 이 증거의 대못을 박아야 했다.


* * *


오전 8시 15분,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 우배석 판사 집무실.


법원의 아침 공기는 차갑고 정적에 잠겨 있었다. 지안은 단정한 네이비색 슬랙스 슈트 차림으로 집무실 책상 앞에 앉아 정밀 의견서를 대필하기 시작했다. 하진혁의 휠 얼라인먼트 데이터와 물리학적 에너지 계산법을 형사소송법상 직권 증거 조사 의견서 형식으로 완벽하게 정리해 나가는 지안의 손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날카로운 지성과 법률적 전술이 결합된 완벽한 서류가 완성되었다.


지안은 인터폰을 들어 참여관 박 주임을 비밀리에 호출했다.


잠시 후,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칼에 인자한 인상을 한 참여관 박 주임이 서류철을 든 채 조심스럽게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박 주임은 법원 내부의 행정 절차를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는 25년 경력의 베테랑 실무자였다.


“민 판사님, 부르셨습니까?”


“박 주임님, 보안을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지안은 책상 위의 사설 교통사고 감정서와 자신이 작성한 정밀 의견서를 박 주임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


“이 감정서와 의견서를 하진우 피고인 사건의 공식 재판 기록 증거물로 지금 즉시 전산망에 등록해 주십시오.”


박 주임이 서류를 훑어보더니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 내용이 가리키는 배후가 한성그룹과 사법부 최고위층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민 판사님, 이건…… 재판장님이신 강인호 부장님의 결재 라인을 거치지 않은 비공식 증거입니다. 검찰 측 백승현 검사가 알게 되면 당장 절차법 위반으로 문제를 삼을 텐데요. 게다가 윤리심의관실에서 판사님을 감찰 중인 상황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식 재판 기일에서 제출하려 하면 강인호 부장판사님이 직권으로 기각할 것이 확실합니다. 형사소송법상 재판 실무관의 마스터 ID를 통해 시스템에 먼저 ‘접수 완료’ 상태로 등록해 두면, 재판장이라 할지라도 합법적인 절차 없이 이 기록을 임의로 삭제하거나 폐기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증거는 공식 기록으로 영구히 남게 됩니다.”


지안의 단호하고 명징한 논리에 박 주임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강인호 부장판사의 부당한 외압과 사법부 내부의 썩은 라인 타기 문화에 오랫동안 환멸을 느껴온 인물이었다. 지안의 곧은 눈빛에서 사법 정의의 마지막 불씨를 본 박 주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부장님이 출근하시기 전에 제 참여관 전용 마스터 ID로 행정 결재 라인을 우회하여 즉시 전산망에 등록하겠습니다. 하지만 흔적이 남을 겁니다. 향후 감찰 조사에서 판사님께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 대가는 제가 치릅니다. 부탁드립니다, 박 주임님.”


박 주임은 서류를 품에 안고 신속히 집무실을 나섰다. 지안은 책상에 기대어 모니터의 법원 행정 시스템 화면을 응시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진우야, 조금만 기다려. 법의 장벽 뒤에 숨겨진 진짜 살인범의 가면을 내가 반드시 벗겨낼 테니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모니터 화면의 하진우 사건 전산 기록 우측 상단에 붉은색 알림이 깜빡였다.


[증거물 번호 14호: 사설 교통사고 감정서 및 물리학적 의견서 - 접수 완료]


지안의 입가에 미세한 안도의 미소가 번지는 순간이었다.


쿵!


집무실의 육중한 나무 문이 거칠게 열리며 벽에 부딪혔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날카로운 기운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문턱에 서 있는 인물은 포마드로 정교하게 머리를 넘긴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의 백승현 검사였다. 그의 날카롭고 집요한 눈빛이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백승현은 손에 쥔 빳빳한 대검찰청 공식 송달 서류철을 지안의 책상 위에 거칠게 내던지며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민지안 판사, 지금 제정신입니까?”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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