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소리의 독점자
저택 지하 3층, 육중한 강철 방음문을 열고 내려가자 백색의 인공광이 지원의 시야를 찔렀다. 사방이 차가운 스테인리스와 대리석으로 마감된 공간. 그 중심에는 세인트 한강 병원의 제1하이브리드 수술실을 그대로 오려 붙인 듯한 최첨단 메디컬 룸이 자리하고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무균 모니터들과 정밀 EKG 모니터, 그리고 최신형 제세동기와 마취 기기들이 차가운 기계음을 내며 숨을 쉬고 있었다.
지원은 왼손목을 조여오는 검은색 스마트 워치를 내려다보았다. 가죽을 파고드는 차가운 금속 족쇄. 마강식이 채워둔 그 ‘목줄’은 그녀가 이 거대한 새장에 갇힌 포로임을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지원은 숨을 깊게 들이쉬며 의사 가방에서 리트만 디지털 청진기를 꺼냈다. 아버지가 사용하던 낡은 메스 자루와 함께 그녀가 의사로서 지닌 유일한 무기이자, 죽은 약혼자 진우의 흔적을 찾을 유일한 도구였다.
“들어가십시오, 서 교수님. 보스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가에 버티고 선 경호원 박철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문을 열어주었다. 지원은 가운 깃을 단정히 정리하며 방 안으로 발을 디뎠다.
메디컬 룸 중앙의 검진대 위에 권도현이 앉아 있었다. 상의 단추를 반쯤 풀어헤친 채, 짙은 네이비 색의 실크 셔츠 너머로 굳건한 가슴 근육이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정중앙에는 3년 전 자행된 불법 장기 이식 수술이 남긴 잔인한 Y자형 흉터가 붉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지원의 시선이 그 흉터에 닿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억눌린 비명이 치솟았다.
‘의사는 환자의 개인적인 사정에 동조하지 않는다. 오직 질병의 치료에만 전념한다.’
지원은 머릿속으로 ‘의사-환자 사적 감정 개입 금지 서약’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차가운 이성의 가면을 쓰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메스를 들어 저 남자의 가슴을 찢고 약혼자의 심장을 꺼내고 싶어질 것 같았으니까.
“맥박과 심전도 상태를 체크하겠습니다. 셔츠를 완전히 풀어주십시오.”
지원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도현은 대답 대신 느리게 눈을 들어 그녀를 응시했다. 칠흑처럼 어두운 그의 눈동자 속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소유욕과 기이한 열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도현은 군말 없이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렸다. 단단한 흉판이 드러나자, 그의 심장이 뛰는 물리적인 움직임이 눈으로도 보였다.
지원은 떨리는 손을 뻗어 디지털 청진기의 헤드를 그의 왼쪽 가슴 위, 흉터 바로 옆에 밀착시켰다.
차가운 금속 헤드가 그의 뜨거운 피부에 닿는 순간, 도현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청진기 이어폰을 통해 지원의 귀로 거대한 해일 같은 고동 소리가 밀려 들어왔.
쿵... 쿵... 쿵쿠쿵...
지원의 전신이 굳어버렸다. 오진일 수가 없었다. 규칙적인 거대한 박동 사이에 기이하게 끼어드는 세 박자짜리 미세한 마찰음. 그것은 3년 전 실종된 그녀의 약혼자, 한진우가 가진 세계 유일의 특이 유전자 심장 판막이 내는 고유의 삼차성 판막 마찰음 고동 패턴이었다.
‘진우 씨... 정말 당신이 여기에 있는 거야?’
눈앞이 흐려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그녀의 목을 조여왔다. 청진기를 쥔 지원의 마른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지원이 고개를 숙이자 가운 안쪽에서 은색 체인에 걸린 티타늄 약혼반지가 흘러나왔다. 달빛을 받아 차갑게 빛나는 반지가 도현의 쇄골 부근에 가볍게 닿았다.
스윽.
갑자기 도현의 거칠고 강한 손길이 지원의 왼쪽 손목을 낚아챘다. 스마트 워치가 채워진 바로 그 부위였다. 도현의 아귀힘에 밀려 지원의 몸이 그의 가슴팍 쪽으로 거칠게 끌려갔다. 두 사람의 숨결이 닿을 정도로 밀착된 거리. 도현의 뜨거운 체온이 지원의 차가운 피부를 덮어버렸다.
“왜 내 심장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런 눈을 하는 거지, 서지원 의사?”
도현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지원의 목에 걸린 티타늄 반지를 집요하게 응시했다. 그의 가슴속 심장이 마치 비명을 지르듯 더욱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분당 110회를 돌파하는 이식 심장의 거친 고동이 청진기를 타고 지원의 고막을 찢을 듯 울렸다.
“이 반지... 누구 거지? 내 가슴에 이 반지가 닿을 때마다, 내 안에서 내가 모르는 유령이 울부짖는 느낌이 들어.”
도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눈빛에는 억제할 수 없는 질투와 열등감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지원이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속에 든 ‘심장’만을 바라보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있었다.
“환자분, 손을 놓아주십시오. 심박수가 비정상적으로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이식 환자에게 정서적 흥분은 치명적인 부정맥을 유발합니다.”
지원은 필사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며 차갑게 경고했다. 그녀는 청진기 주파수를 미세하게 조절하며, 도현의 시선을 피하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도현은 거친 악력으로 그녀의 턱을 잡아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대답해. 너는 내 심장을 보는 건가, 아니면... 나를 보는 건가?”
도현의 집착 어린 질문이 밀폐된 메디컬 룸의 정적을 깨뜨렸다. 지원은 그의 뜨거운 가슴 위에 얹어진 자신의 손끝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도덕적 빗장을 걸었다. 이 남자는 살인마이자 가문의 꼭두각시일 뿐이다. 결코 진우 씨가 아니다.
“전 의사입니다. 제 눈앞에 있는 건 오직 치료해야 할 환자의 장기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지원의 얼음 같은 대답에 도현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어 내렸다. 그는 천천히 지원의 손목을 놓아주며, 비참한 미소를 지었다.
“껍데기라... 기분 더럽군.”
지원은 서둘러 뒤로 물러서며 EKG 모니터 태블릿을 쥐었다. 도현의 실시간 심전도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청진 분석 직감력을 가동해 그의 심음 주파수를 정밀 필터링하던 지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연스러운 유기적 박동 소리 너머로, 아주 미세한 고주파의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섞여 들렸다.
째깍... 째깍...
시계 태엽이 돌아가는 듯한, 혹은 초소형 송신기가 신호를 보내는 듯한 기이한 전자기적 잡음. 그것은 일반적인 이식 심장의 판막음이 아니었다. 지원은 황급히 태블릿의 주파수 분석 그래프를 확대했다.
정상적인 심전도 파형의 끝부분마다,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미세한 디지털 펄스 스파이크가 주기적으로 튀어 오르고 있었다. 심장 근육 내부에서 정체불명의 전자기 신호가 외부의 어떤 서버를 향해 무선으로 송출되고 있는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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