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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호의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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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에서의 폭우가 휩쓸고 간 뒤, 서울의 밤은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세인트 한강 병원 VIP 병동 1201호. 창밖으로 한강의 차가운 야경이 유령처럼 일렁였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희미한 도시의 불빛들은 마치 죽은 자의 영혼이 보내는 신호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서지원은 가운 주머니 속에서 리트만 디지털 청진기를 꼭 쥐었다.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만이 그녀의 요동치는 심장을 겨우 붙잡아주고 있었다. 그녀의 숨소리는 1201호의 백색 소음 속으로 조용히 묻혔다.


1201호는 병동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복도 입구에는 태성파 조직원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고, 지정된 특별 보안 카드키가 없으면 의사조차 접근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가평에서 보스를 살려낸 ‘신의 손’ 서지원에게는 예외적으로 출입이 허용되었다.


지원은 침묵이 지배하는 병실 안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침대 위에는 가명으로 극비 입원한 권도현이 누워 있었다. 총상과 긴장성 기흉 치료 직후였기에 그의 안색은 창백했고, 감은 눈꺼풀 위로 짙은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지원은 슬며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도현의 환자복 상의는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가평의 어두운 처치실에서 지원이 커터칼로 흉벽을 뚫었던 자리는 하얀 거즈로 덮여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을 강탈한 것은 그 옆을 가로지르는 거칠고 선명한 Y자형 수술 흉터였다.


3년 전, 도현이 불법 장기 이식 수술을 받았을 때 가슴 정중앙에 새겨진 피의 낙인.


지원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흉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비극적 애증이 솟구쳤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마음속에 차가운 방어벽을 세웠다. ‘심리 장벽 1단계: 상실과 냉소’가 그녀의 영혼을 단단한 얼음으로 감쌌다. 그녀는 이제 감정을 지운 수술 기계여야 했다.


지원은 떨리는 손을 뻗어 리트만 디지털 청진기의 헤드를 도현의 왼쪽 가슴 위, Y자 흉터 바로 옆에 밀착시켰다. 청진기 측면의 디지털 녹음 버튼을 누르자, 이어폰을 통해 도현의 심장 소리가 그녀의 귓전을 때렸다.


쿵... 쿵... 쿵쿠쿵...


규칙적인 박동 사이에 기이하게 끼어드는 세 박자짜리 미세한 마찰음.


지원의 척추를 타고 극심한 오한이 흘러내렸다. 오진일 리가 없었다. 이것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녀가 직접 설계했던 특이 유전자 심장 판막의 삼차성 판막 마찰음 고동 패턴이었다.


3년 전 실종되어 차가운 시신조차 찾지 못했던 그녀의 약혼자, 한진우의 심장 소리가 지금 눈앞의 살인마이자 조직폭력배 보스의 가슴속에서 세차게 박동하고 있었다.


“진우 씨...”


지원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도현의 덮인 이불 위로 떨어졌다. 죽은 약혼자에 대한 죄책감과 눈앞의 남자를 제 손으로 살려냈다는 도덕적 자기혐오가 그녀의 내면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왜 진우의 심장이 이 괴물의 가슴속에 박혀 있는 것일까. 그녀는 이 기적 같은 비극의 배후를 반드시 밝혀내야 했다.


그녀는 블루투스로 연결된 개인 태블릿을 조작해 도현의 심음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추출하기 시작했다. 화면 위로 붉은색 심전도(EKG) 그래프가 불규칙하게 요동치며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스윽.


갑자기 차갑고 강한 악력이 지원의 손목을 낚아챘다.


지원은 비명을 지를 뻔한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들었다. 깊고 어두운 심연 같은 권도현의 흑색 눈동자가 번쩍 뜨여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총상을 입은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인하고 서늘한 압박감이 병실을 가득 채웠다.


“왜 내 심장 소리에 그렇게 집착하는 거지, 서지원 의사?”


도현의 목소리는 낮고 갈라져 있었지만, 거부할 수 없는 지배자의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지원의 손목뼈를 강하게 압박했다. 지원은 가운 속에 숨겨진 티타늄 약혼반지 목걸이가 도현의 가슴에 닿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환자의 활력징후를 체크하는 것은 주치의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손 놓으세요, 권도현 씨.”


지원은 애써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이성적으로 응수했다. 그녀의 눈빛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의무라...”


도현은 지원의 단호하고 냉정한 태도를 흥미로운 듯 응시했다. 그의 심장 세포가 지원을 향해 기이한 감정적 마취 효과를 일으키며, 가슴의 극심한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도현은 지원의 손목을 천천히 놓아주었지만, 그녀를 향한 소유욕 어린 시선은 거두지 않았다.


“내 심장이 너를 볼 때마다 미친 듯이 뛰는 이유가... 정말 단순한 부정맥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도현의 나직한 질문에 지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묵묵히 청진기를 거두고 태블릿에 저장된 데이터의 전송 완료 표시를 확인했다. 공식적인 수술 기록 조회는 기조실의 권한 제한으로 실패했지만, 이 독점적인 심음 데이터야말로 진실을 밝힐 첫 번째 단서였다.


똑, 똑.


그때, 1201호의 무거운 목제 문이 거칠게 열렸다. 삼엄한 조직원들의 제지를 뚫고 들어선 인물은 세인트 한강 병원 기획조정실장 서한길의 심복이자, 지원의 라이벌 외과의인 장준혁 펠로우였다.


장준혁은 차가운 금테 안경을 추켜올리며 위압적인 걸음으로 병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눈빛에는 호시탐탐 지원을 끌어내리려는 탐욕이 가득했다.


“서지원 조교수. 비공식 총상 환자를 병원 허가도 없이 VIP 병동에 무단 입원시키고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서한길 실장님께서 이 환자의 모든 진료 기록과 차트를 즉각 기조실로 인계하라고 명령하셨다.”


준혁은 고압적인 태도로 지원의 태블릿을 빼앗으려 손을 뻗었다. 지원은 본능적으로 태블릿을 뒤로 숨기며 입술을 깨물었다. 서 실장의 감시망이 벌써 1201호까지 좁혀온 것이다. 무단 수술과 약품 반출 정황이 발각된다면 그녀의 의사 면허는 정지될 위기였다.


“이 환자는 아직 안정이 필요합니다. 주치의의 허가 없이 차트 유출은 불가합니다, 장준혁 선생.”


지원이 냉정하게 가로막았지만, 준혁은 코웃음을 쳤다.


“조폭 보스 주치의 노릇을 하더니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군. 보안 요원들을 부르기 전에 비켜라.”


“누가 내 방실에서 개처럼 짖어대라고 허락했지?”


침대 위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현이 상체를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가슴의 수술 부위가 벌어지는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의 얼굴에는 단 한 장의 흔들림도 없는 포커페이스가 유지되었다. 도현의 눈빛에 서린 잔혹무도한 살기가 장준혁을 정면으로 쏘아보았다.


준혁은 도현의 압도적인 위압감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서한길에게 전해라.”


도현은 천천히 침대 옆 탁자에 놓인 물컵을 집어 들었다. 그의 마른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자, 유리가 삐걱거리는 기괴한 소리가 났다.


“내 가슴에 메스를 댈 수 있는 의사는 오직 서지원뿐이다. 한 번만 더 내 허락 없이 이 방에 발을 들이거나 그녀를 위협한다면, 네 놈의 그 가벼운 혀를 잘라 세인트 한강 병원 로비에 걸어두마.”


도현의 낮고 차가운 경고는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수많은 시체를 넘어온 암흑가 보스 특유의 피비린내 나는 기운이 준혁의 숨통을 조였다.


“...윽.”


장준혁은 사색이 되어 침을 삼켰다. 그는 도현의 살기에 완전히 기가 죽은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서둘러 1201호의 문을 열고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복도에 그의 다급한 구두굽 소리가 멀어졌다.


병실 안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도현이 보여준 위험한 카리스마와 지배력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이 남자는 환자이기 전에 가문의 어두운 피를 이어받은 괴물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는 생략하겠어요. 환자의 안정을 해치는 요인을 제거한 것뿐이니까요.”


지원은 차갑게 말하며 태블릿을 가방에 넣었다.


“상관없어. 네가 내 곁에 머물기만 한다면.”


도현은 가슴을 움켜쥐며 다시 침대에 누웠지만, 그의 시선은 방을 나서는 지원의 등 뒤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지원은 서둘러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왔다. 사방이 어두운 연구실 안, 오직 컴퓨터 모니터의 푸른 불빛만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지원은 디지털 청진기를 컴퓨터에 연결하고, 녹음된 도현의 심음 분석 데이터를 백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 전 진우가 남겨두었던 생전 심전도 기록 파일을 조심스럽게 불러왔다. 두 그래프를 겹쳐 대조하려는 순간이었다.


삐비빅!


갑자기 연구실 컴퓨터 화면에 붉은색 경고등이 요란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스피커를 통해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경고: 네트워크 가로채기 및 극비 포트 도청 감지됨]


지원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누군가 1201호와 연결된 병원 VIP 병동의 네트워크망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도청하고 있었다. 서한길 실장의 음모가 이미 그녀의 턱밑까지 들이닥친 것이었다. 지원은 마우스 위에 올려진 손가락을 굳힌 채, 어둠 속에서 숨을 죽였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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