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개의 그림자
어두컴컴한 영등포의 가쁜 숨결이 골목길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던 새벽녘. 낡은 상가 건물 3층의 비좁은 원룸 안은 오직 세 대의 모니터가 뿜어내는 푸르스름한 전자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금만 더, 제발 조금만 더…….”
두꺼운 안경테 너머로 충혈된 눈을 치켜뜬 배동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피아노 건반보다 빠르게 활강하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에는 질병관리청 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의 내부 망을 우회하여 들어간 백도어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복구하려는 것은 3년 전, 지원의 약혼자 한진우의 심장이 조직 보스 권도현에게 강제 매칭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전산 조작의 원본 로그 기록이었다.
[다운로드 진행률: 91%... 92%...]
에너지 드링크 캔들이 굴러다니는 책상 위에서, 동수의 손끝이 긴장으로 미세하게 떨렸다. 지원에게 의뢰를 받았을 때만 해도 단순한 장기 이식 비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파헤칠수록 드러나는 것은 거대 제약사 메디팜의 초법적인 인체 실험과 장기 복제 카르텔이라는 심연이었다. 동수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은 상태였다.
바로 그때, 모니터 전체가 붉은색으로 점멸하기 시작했다.
지직, 지지직!
[WARNING: 역추적 감지됨. 외부 침입 차단 프로토콜 가동.]
“미친, 벌써 알아챘다고? 이 타이밍에?”
동수의 안경알에 붉은 경고등이 번뜩였다. 메디팜의 수석 연구원 한상우가 직접 구축해 둔 최첨단 침입 탐지 시스템이 동수의 우회 IP를 역추적해 들어온 것이었다. 화면 위로 쏟아지는 영문 방화벽 코드들이 동수의 서버를 무자비하게 옥죄기 시작했다.
“젠장, 자폭 코드 가동해!”
동수가 황급히 자사 개발 보안 자폭 프로그램을 실행하려 키보드를 내리쳤다. 하지만 그 순간, 방 안의 모든 전자 기기가 웅- 하는 기분 나쁜 소음과 함께 일시에 먹통이 되었다. 메디팜의 해킹 팀이 저택 인근 기지국을 장악하고 고출력 전자기 펄스(EMP) 차단기를 작동시킨 것이었다. 모니터는 검은 화면으로 가라앉았고, 방 안은 순식간에 차가운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깨뜨린 것은,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무겁고 규칙적인 군화 소리였다.
스윽, 스윽.
동수는 본능적으로 척추를 타고 내려오는 지독한 살기를 느꼈다. 그는 책상 아래로 몸을 웅크리며 복구된 데이터가 담긴 외장하드를 품에 꽉 껴안았다.
콰앙—!
고막을 찢는 폭음과 함께 강철 도어락이 통째로 뜯겨 나가며 현관문이 부서졌다. 눈이 멀 것 같은 백색의 섬광탄 빛이 좁은 원룸 안을 가득 채웠다. 동수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화약 냄새와 매캐한 연기 속에서, 방탄 전술 조끼를 입은 거구의 사내들이 일제히 침투했다. 그들의 선두에는 소음기가 장착된 특수 전술 권총을 쥔 사설 용병 대장, 고영수가 서 있었다.
“쥐새끼를 잡았군.”
고영수의 크루컷 헤어 아래로 서늘한 살기가 번뜩였다. 용병 한 명이 바닥에 쓰러진 동수의 옆구리를 군화 발로 사정없이 걷어찼다.
“끄아악!”
갈비뼈가 부러지는 비명과 함께 동수의 품에서 외장하드가 튕겨 나갔다. 용병이 그 하드를 주워 고영수에게 건넸고, 다른 용병은 동수의 머리에 차가운 총구를 밀착시켰다.
“자폭 프로그램이 가동되기 전에 차단해서 다행이군. 쥐새끼치고는 제법 훌륭한 솜씨였어.”
고영수가 외장하드를 주머니에 넣으며 동수를 내려다보았다.
“누구 의뢰를 받고 KONOS 서버를 건드렸지? 입을 열면 고통 없이 보내주지.”
동수는 공포에 질려 눈물과 침을 흘리면서도, 차마 서지원의 이름을 뱉지 못했다. 그가 입을 다물자 고영수의 손가락이 권총 방아쇠를 천천히 당겼다. 죽음의 그림자가 동수의 이마 위로 드리워진 절체절명의 순간.
쨍그랑—!
베란다의 대형 통유리창이 비명횡사하듯 박살 나며 날카로운 파편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사방으로 튀는 유리 조각들 사이로, 검은색 방탄 가죽 코트를 휘날리는 거구의 실루엣이 번개처럼 난입했다. 도현의 절대적인 충신이자 태성파의 행동대장, 마강식이었다.
“어떤 새끼들이 우리 보스 손님한테 손을 대?”
옥상에서 밧줄을 타고 하강한 마강식의 거구는 날뛰는 맹수와 같았다. 마강식은 착지와 동시에 품에서 군용 단도를 꺼내 동수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던 용병의 손목을 사정없이 그어버렸다.
“크아악!”
용병의 손목에서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오며 권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뒤를 이어 창문 너머로 태성파 정예 대원 세 명이 일제히 침투하며 좁은 방 안은 순식간에 피비린내 나는 전장으로 변했다.
“태성파의 사냥개로군.”
고영수가 낮게 읊조리며 권총을 들어 마강식의 가슴을 조준했다.
탕! 탕!
소음기가 달린 총성이 어둠 속에서 날카롭게 울렸으나, 마강식은 이미 굴러다니는 철제 책상을 방패 삼아 몸을 날린 후였다. 마강식은 책상을 밀쳐 고영수의 하체를 타격했고, 두 거구는 좁은 방 한가운데서 정면으로 충돌했다.
챙-! 챙-!
고영수의 특수 단도와 마강식의 군용 단도가 허공에서 맞부딪히며 서늘한 불꽃을 튀겼다. 고영수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는 외국 특수부대식 살상 무술이었고, 마강식의 움직임은 수많은 칼부림 속에서 살아남은 뒷골목 실전 격투의 극의였다. 고영수가 단도로 마강식의 목덜미를 베어 가자, 마강식은 가죽 코트자락으로 칼날을 감싸 안으며 역으로 고영수의 복부에 묵직한 주먹을 꽂아 넣었다.
“커헉!”
고영수가 신음하며 뒤로 물러서자, 마강식은 틈을 놓치지 않고 품 안에서 연막탄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치이이익—!
순식간에 좁은 원룸 안이 짙은 회색 연기로 가득 찼다. 시야가 완벽히 차단된 안개 속에서 태성파 대원들과 메디팜 용병들의 비명과 신음이 뒤섞였다. 마강식은 연기 속에서도 오직 촉각과 방향 감각만으로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던 배동수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정신 차려, 꼬맹이! 외장하드는?”
“저, 저기…… 고영수가 주머니에…….”
동수가 부러진 갈비뼈를 움켜쥐고 피를 흘리며 가리켰다. 마강식은 이 상황에서 외장하드를 되찾기 위해 지체하다가는 동수의 목숨을 구하지 못할 것임을 직감했다. 보스 권도현의 명령은 단 하나였다. ‘서지원 의사의 정보원을 무조건 살려서 데려와라.’
“쳇, 일단 튄다!”
마강식은 동수를 한 팔로 들쳐업고, 다른 손으로 권총을 난사하며 부서진 현관문을 향해 돌진했다. 뒤에서 고영수의 추격 조준 사격이 연막을 뚫고 빗발쳤으나, 마강식은 몸을 던져 비상계단으로 빠져나갔다.
상가 건물 뒤편 어두운 골목길에는 현철민이 운전하는 사설 구급차가 시동을 걸어둔 채 대기하고 있었다. 마강식은 피투성이가 된 동수를 구급차 뒷좌석에 거칠게 밀어 넣고 자신도 몸을 실었다.
“출발해! 밟아!”
끼이이익—!
구급차는 요란한 타이어 마찰음을 내며 어두운 영등포의 골목길을 빠져나가 북한산 저택을 향해 초고속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
연막이 서서히 걷힌 텅 빈 원룸 안.
바닥에는 부서진 컴퓨터 부품들과 붉은 핏자국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고영수는 칼에 베인 어깨의 통증을 무시한 채, 바닥에 떨어진 마강식 대원들의 소지품을 발로 차며 주위를 수색했다. 비록 쥐새끼는 놓쳤지만, 놈들이 남긴 데이터를 확보했으니 절반의 성공이었다.
그때, 책상 아래 구석진 틈새에서 기이하게 반짝이는 아주 작은 기계 장치 하나가 고영수의 매서운 눈에 포착되었다.
“이건 뭐지?”
고영수가 몸을 숙여 그것을 집어 올렸다. 그것은 배동수의 서버 본체 보조 포트에 비밀리에 연결되어 있던, 정교한 은색 금속 재질의 무선 수신 포트였다. 일반적인 IT 장비가 아니었다. 의료기기 특유의 무균 처리된 티타늄 질감과 미세한 주파수 다이얼이 부착된 초소형 장치.
고영수는 장치의 표면을 손톱으로 긁어냈다. 그 안쪽에는 세인트 한강 병원의 자산 관리 태그와 함께, 아주 작은 글씨로 사용자의 이름이 정교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 세인트 한강 병원 흉부외과 조교수 서지원 ]
고영수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것은 지원이 도현의 심장 박동 데이터를 독점적으로 채집하기 위해 최기태에게 특별 제작 의뢰했던 리트만 디지털 청진기의 전용 무선 수신 포트였다. 동수가 데이터 분석을 위해 자신의 컴퓨터에 꽂아두었다가 비상 상황에서 미처 회수하지 못한 치명적인 흔적이었다.
고영수는 품에서 위성 전화를 꺼내 다이얼을 눌렀다. 신호음이 단 한 번 울린 뒤, 메디팜의 회장 최용환의 차갑고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
—상황은 어떻게 되었나, 고 대장.
“정보원은 태성파 직계 놈들이 개입해 놓쳤습니다만, 놈들이 캐내려던 원본 하드디스크는 회수했습니다. 그리고……”
고영수는 손가락 사이에서 은색 수신 포트를 굴리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우리 비밀을 캐던 진짜 쥐새끼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권도현의 전담 주치의이자 세인트 한강 병원의 서지원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최용환 회장의 낮고 서늘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서지원이라는 가냘픈 의사의 목줄을 완전히 쥐었다는 포식자의 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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