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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가운의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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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육중한 위병소의 철문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북한산 자락의 정적이 산산조각 났다. 빗물과 진눈깨비가 뒤섞인 진흙 바닥을 거칠게 짓밟으며 들이닥친 것은 요란한 적색 경광등을 번쩍이는 순찰차들이었다.


“경찰이다! 강력계 장만철이다! 권도현 살인 교사 혐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한다! 저항하는 놈들은 전원 공무집행방해로 현장 체포하겠다!”


확성기를 타고 흐르는 장만철 형사의 비열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폭우를 뚫고 저택 본관까지 흘러들었다. 수십 명의 무장 경찰들이 순찰차에서 내려 저택의 현관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2층 도현의 침실 앞 복도.


“의사 선생, 지하실로 대피하십시오.”


수석 경호원 박철우가 검은 정장 안쪽에서 권총을 꺼내 들며 서늘하게 말했다. 그의 손끝은 이미 방아쇠에 가볍게 얹혀 있었다. 복도 양끝에는 마강식의 행동대원 십여 명이 단도와 가스총을 쥔 채 사냥개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경찰과 조직폭력배 간의 피비린내 나는 무력 충돌이 단 1초 뒤면 폭발할 것 같은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흘렀.


‘안 돼. 여기서 총격전이 벌어지면 모든 게 끝이야.’


지원은 침실 안쪽에서 들려오는 휴대용 인공 심폐기(ECLS)의 낮고 무거운 기계음에 귀를 기울였다. 도현은 아직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만약 경찰들이 들이닥쳐 그의 서혜부에 꽂힌 도관을 강제로 뽑아내거나 병원으로 강제 압송하려 든다면,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그의 심장은 그 자리에서 멈출 것이 분명했다. 진우의 심장이, 그녀가 지켜내야 할 마지막 유산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지원은 차가운 숨을 들이쉬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공황을 깨뜨리기 위해 스스로 찌른 왼쪽 손바닥의 자창에서 붉은 피가 여전히 미세하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통증이 뇌리를 찌를 때마다 이성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일어섰다.


지원은 피 묻은 라텍스 장갑을 벗어던지고, 세면대에서 손을 빠르게 씻어냈다. 그리고 옷걸이에 걸려 있던,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고 단정한 세인트 한강 병원의 의사 가운을 집어 들었다. 단추를 깃 끝까지 채우고, 목걸이 체인에 걸린 티타늄 약혼반지를 가운 안쪽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목에는 디지털 청진기를 걸쳤다.


“박철우 씨, 총 내려요. 마 대장님 부하들도 전원 무기 숨기세요.”


지원의 목소리는 얼음 호수처럼 차갑고 흔들림이 없었다.


“선생님, 저놈들은 권태성에게 매수된 개들입니다! 문을 열어주면 보스의 목숨이……”


“의사의 지시입니다.”


지원은 철우의 말을 단호하게 가로막았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경찰을 이길 수 없어요. 하지만 내 영역 안에서는 가능합니다. 저들을 막는 건 총이 아니라, 이 하얀 가운이 될 겁니다. 나를 믿고 비켜서세요.”


지원의 눈빛에 서린 압도적인 외과의의 카리스마에 박철우는 자신도 모르게 권총을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지원은 침대 옆 EKG 모니터로 다가갔다. 그녀는 전산실장 강두식과 사전에 구축해 둔 가상 연동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모니터의 설정을 빠르게 조작하자, 정상적인 QRS 파형 아래로 흐르던 미세한 바이오 칩의 디지털 신호가 사라지고, 대신 치명적인 다발성 장기 부전과 Septic Shock(패혈성 쇼크)를 가리키는 불규칙하고 가파른 파형이 화면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쾅!


침실 문이 거칠게 부서지며 열렸다. 비에 젖은 가죽 점퍼를 걸친 장만철 형사가 권총을 치켜든 채 안으로 난입했다. 그의 뒤로 무장한 강력계 형사 대여섯 명이 들이닥쳤다.


“움직이지 마! 권도현, 살인 교사 및 뇌물 공여 혐의로 체포한…….”


“조용히 하세요!”


지원의 서늘한 일갈이 장만철의 목소리를 사정없이 꺾어버렸다. 장만철은 뜻밖의 방해자에 멈칫하며 지원을 바라보았다. 하얀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목에 건 여의사. 그녀의 창백하지만 오만한 눈빛이 형사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무장한 채 들이닥치는 겁니까? 당장 총 내리세요. 환자의 심장 박동 소리가 안 들립니다.”


“뭐? 서지원 의사, 당신 지금 범인 은닉죄로 같이 처넣기 전에 비켜서! 우린 정당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러 온 경찰이야!”


장만철이 영장 서류를 흔들며 침대로 다가서려 했다. 그의 눈빛에는 돈맛에 찌든 비열함과 기어이 실적을 올리겠다는 탐욕이 가득했다.


“한 걸음만 더 오면, 당신과 당신 부하들 전원 법적 격리 조치 및 형사 고발하겠습니다.”


지원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장만철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는 도현의 이마에 젖은 수건을 얹으며, 차가운 냉소를 지어 보였다.


“격리? 무슨 개소리야?”


“환자는 현재 다제내성 아시네토바크터 바우마니균(MRAB)에 의한 급성 패혈증 쇼크 상태입니다. 공기 및 접촉을 통해 극도로 빠르게 전파되는 초고위험군 법정 감염병 의심 환자란 말입니다.”


지원은 손가락으로 조작된 EKG 모니터를 가리켰다.


“보이십니까? 체온 39.8도, 혈압 60에 40, 산소포화도는 이미 80% 이하로 떨어져 다발성 장기 부전이 진행 중입니다. 이 방 안의 공기는 이미 오염되었고, 환자의 신체와 접촉하는 즉시 감염되어 패혈증으로 급사할 수 있습니다. 장 형사님, 목숨이 두 개쯤 되시나 보죠?”


형사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그들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치며 소매로 입과 코를 막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세균의 위협은 조폭의 칼날보다 훨씬 더 본능적인 공포를 유발했다.


“거짓말 마! 연기 피우지 말란 말이야!”


장만철이 윽박질렀지만, 그의 목소리 역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직접 도현의 맥박을 짚기 위해 손을 뻗으려 했다.


“짚어보세요.”


지원은 차갑게 웃으며 자신의 손에 끼고 있던, 도현의 피가 묻은 라텍스 장갑을 장만철의 얼굴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대신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1조 및 제42조에 의거, 이 방에 진입한 경찰 병력 전원은 즉시 보건소로 압송되어 14일간 강제 격리 조치될 겁니다. 물론 관할 경찰서 전체도 폐쇄 조치되겠죠. 공무집행방해요? 응급 의료 기기를 가동 중인 격리 환자를 무단으로 이동시켜 사망에 이르게 할 경우, 당신들이 지게 될 법적 책임은 과실치사가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될 겁니다.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지원의 칼날 같은 논리와 의학적 카리스마가 장만철의 숨통을 완벽히 조여왔다. 감염병 법조항을 조목조목 읊는 여의사의 당당함 앞에 사법권이라는 무기는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반장님…… 진짜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는데요? 모니터 수치도 장난 아닙니다. 일단 후퇴하는 게……”


뒤에 서 있던 젊은 형사가 장만철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장만철은 이빨을 가죽 씹듯 갈며 도현의 침대와 지원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지원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쯧. 철수한다. 병원 전산망을 통해 정식 격리 환자 등록 여부 확인하고 다시 오지. 가자!”


장만철은 침을 뱉듯 뱉어내며 형사들을 이끌고 침실을 빠져나갔다. 복도에 대기하던 무장 경찰들이 썰물처럼 밀려 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순찰차들이 저택 마당을 빠져나가는 굉음이 들려오자, 지원은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며 도현의 침대 모서리를 짚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러나 긴장이 풀리기도 전, 지원은 침대 발치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서두르며 장갑을 벗고 처치하는 과정에서, 세인트 한강 병원의 VIP 전용 고가 약품 바코드 라벨 하나가 쓰레기통 옆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


지원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장만철 형사가 퇴각하는 마지막 순간, 바닥에 떨어진 붉은색 라벨지를 매서운 눈빛으로 포착하고 슬쩍 주머니에 넣는 모습이 지원의 뇌리에 스쳤다. 그것은 도현의 생명선인 미승인 면역조절제 'HL-9'의 원내 반출 바코드였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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