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생검, 붉은 세포의 진실
창밖의 빗소리는 기어이 저택의 두꺼운 유리를 뚫고 들어와 서지원의 귓가를 가혹하게 때렸다. 아침 8시가 넘었음에도 북한산 자락을 집어삼킨 먹구름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지하실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는 눅눅한 습기가 뱀처럼 기어 다녔다.
지원은 주치의 방 침대 머리맡에 앉아 대포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조달호 소장이 청평 폐의원 지하 콘크리트 벽면에서 촬영해 보낸 사진. 그곳에는 3년의 세월 동안 까맣게 말라붙은 핏자국으로 새겨진 자신의 이름 세 글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 처절한 낙서 옆에 선명하게 찍힌 메디팜(Medipharm)의 푸른색 로고.
“진우 씨…….”
지원의 입술 사이로 갈라진 신음이 흘러나왔다. 목덜미 안쪽에서 흘러내린 은색 체인 끝, 티타늄 약혼반지가 그녀의 떨리는 손가락 사이에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약혼자의 마지막 유언을 살인마의 입을 통해 들어야 했던 참혹한 슬픔은 이내 칼날 같은 복수심으로 화해 그녀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 박혔다.
이식 수술은 사고사로 위장된 사냥이었다. 권도현을 살리기 위해, 메디팜과 권태성이 공모하여 한진우라는 살아있는 인간을 제물로 삼은 것이다.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옆방인 지하 메디컬 룸으로 향했다. 육중한 방화문을 열자, 인공 심폐기(ECLS)의 낮고 규칙적인 기계음이 고요한 방 안을 채웠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권도현은 여전히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프로포폴 마취 하에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쉬는 그의 얼굴은 기이할 정도로 평온했다. 가슴팍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거친 Y자형 수술 흉터만이 그가 짊어진 피의 역사이자 죄악의 낙인을 웅변하고 있었다.
“이 심장 안에 대체 무슨 짓을 해놓은 거야, 최용환…….”
지원은 도현의 머리맡으로 다가갔다. EKG 모니터 하단에는 어김없이 정상적인 심전도 파형 아래로 지직거리는 미세한 붉은색 기계 신호 파형이 겹쳐 출력되고 있었다. 지난 밤, 제세동 충격을 가할 때 들렸던 기이한 전자기적 소음의 실체였다. 일반적인 이식 심장의 거부 반응이라면 병원 내부에서 유출한 특수 면역조절제 HL-9으로 진정되어야 했다. 하지만 도현의 심장은 약물에 저항하며 계속해서 이질적인 신호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심근염이나 거부 반응이 아니었다. 심장 내부에 무언가 다른 물리적 장치가 박혀 있음이 분명했다.
지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의사로서의 이성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환자의 신체 내부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병원도 아닌 사설 저택의 지하 메디컬 룸에서, 환자의 동의도 없이 무단으로 심장 세포를 채취하는 것은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자 의사 윤리의 전면적 부정이었다. 실패할 경우 살인 미수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위험천만한 도박.
그러나 지원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의사 가운을 입은 복수자였다. 약혼자의 심장을 지키고 그를 사지로 몰고 간 메디팜의 음모를 밝히기 위해서라면, 지옥의 규율이라도 기꺼이 어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정 조무사님, 메디컬 룸의 모든 문을 걸어 잠그세요.”
지원의 차갑고 단호한 명령에 대기하던 정동현 조무사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예? 하지만 마강식 대장님이 밖에서 지키고 계시는데…….”
“지금부터 극비 시술을 시작할 겁니다. 그 누구의 출입도 허용해서는 안 돼요. 마 대장에게는 보스의 활력징후 안정을 위한 특수 처치 중이라고 무전하세요.”
지원은 가운을 벗어던지고 무균 수술복으로 갈아입었다. 손가락 끝의 미세한 감각을 살리기 위해 가장 얇은 수술용 장갑을 덧꼈다. 그녀가 준비한 것은 ‘심근 조직 비밀 생검법’이었다.
수술대 옆에는 의료기기 기술자 최기태가 비밀리에 전달해 준 특수 미세 생검용 카테터(Bioptome)와 질소 냉동 캐리어가 놓여 있었다. 기태는 과거 지원의 부친에게 목숨을 빚진 인연으로, 병원 전산망에 등록되지 않은 특수 사설 장비들을 흔쾌히 조달해 주었다.
지원은 수면 마취 중인 도현의 우측 서혜부(사타구니) 피부를 소독했다. 그녀의 손끝이 맥박이 뛰는 대퇴정맥 부위를 부드럽게 짚었다. 미세 혈관 절대 촉각. 눈으로 보이지 않는 피부 아래 깊은 곳의 혈관 벽이 지닌 미세한 압력과 탄성이 그녀의 손가락 끝으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바늘 들어갑니다.”
지원은 망설임 없이 대퇴정맥을 찔렀다. 얇은 가이드 와이어가 혈관을 타고 미끄러지듯 진입했다. 하대정맥을 지나 우심방, 그리고 삼차판막을 거쳐 우심실 중격으로 향하는 길. 방사선 투시 장비(Fluoroscopy)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오직 손끝의 저항감과 감각만으로 바늘의 위치를 파악하는 초고난도 집도였다.
가이드 와이어가 도현의 심장 내벽에 닿는 순간, EKG 모니터가 날카로운 경보음을 뿜어냈다.
삐, 삐, 삐, 삐—!
“심실조기수축(PVC) 발생했습니다! 맥박이 요동칩니다!”
정동현이 비명을 지르듯 보고했다. 카테터 끝이 심실 벽을 자극하자 도현의 심장이 거칠게 반발하는 것이었다. 시술 도중 심벽이 천공(Puncture)되거나 치명적인 심실세동이 발생하면 도현은 수술대 위에서 즉사할 터였다.
지원의 왼쪽 손바닥 자창 부위가 찌르르하게 아파왔다. 그녀는 주먹을 쥐어 통증으로 공황을 억누르며, 손가락 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차갑고 단단한 기계적 저항 뒤로 느껴지는 미세한 심근의 수축력.
‘조금만 더…….’
그녀는 절대 촉각으로 심벽 천공의 위험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며, 생검용 카테터의 미세한 조(Jaw)를 열었다. 그리고 우심실 중격의 조직을 정확히 0.5mm 크기로 부드럽게 떼어냈다.
툭.
손끝에 아주 가벼운 낙차감이 전해졌다. 지원은 조심스럽게 카테터를 역으로 인출했다. 카테터 끝에 묻어 나온 좁쌀만 한 크기의 붉은 심근 조직.
“ECLS 유량 유지하고, 대퇴정맥 삽입 부위 압박 지혈하세요.”
지원은 채취한 붉은 세포 조각을 최기태가 제공한 특수 질소 보관함에 안전하게 격리했다. 심장이 다시 규칙적인 인공 고동을 찾은 것을 확인한 뒤에야 지원은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첫 번째 도박은 성공이었다. 이제 이 세포의 진실을 밝혀내야 했다.
***
폭우를 뚫고 도심 외곽의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선 최기태의 의료 장비 보수 탑차는 삼청동 뒷길의 낡은 벽돌 건물 앞에 멈춰 섰. 지원은 비에 젖은 코트 깃을 올린 채 질소 캐리어를 품에 안고 탑차에서 내렸다. 장만철 형사의 저택 포위망을 뚫기 위해 기태의 장비 납품 상자들 사이에 숨어 탈출하는 모험을 감행한 끝에 도착한 곳이었다.
건물 2층, 낡은 아크릴 현판에는 ‘세인트 한강 병원 병리학교실 명예교수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퀴퀴한 포르말린 냄새와 오래된 커피 향이 코를 찔렀. 헝클어진 흰머리에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친 노신사가 현미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퉁명스럽게 뱉었다.
“서재현의 딸이 이 새벽에 웬 행차냐? 병원에서 해임 위기라더니 갈 곳이 없어 은퇴한 늙은이 놀이터까지 기어 들어왔어?”
세인트 한강 병원의 은퇴한 병리학 거두, 오세창 교수였다. 그는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했으나 지원의 부친인 서재현 과장과는 막역한 동료였다.
“교수님, 사적인 인사를 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이 조직 슬라이드를 봐주십시오.”
지원이 질소 캐리어를 탁자 위에 올려놓자, 오 교수는 돋보기 너머로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뭐냐?”
“심근 생검 조직입니다. 일반적인 이식 거부 반응 치료제가 전혀 듣지 않고, 특이한 전자기 주파수 소음을 내뿜는 환자의 세포입니다.”
오 교수는 지원의 진지한 눈빛을 읽고 군말 없이 장갑을 꼈다. 그는 숙련된 손길로 조직을 얇게 저며 슬라이드를 만들고, 특수 은 염색(Silver Staining) 처리를 감행했다. 염색약이 스며드는 몇 분 동안 연구실 안에는 시계 초침 소리만이 무겁게 울렸다.
“현미경 가동한다.”
오 교수가 자체 개조한 초고해상도 전자현미경의 렌즈에 눈을 밀착시켰다. 이내 그의 몸이 굳어졌다. 돋보기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커졌다.
“이건…… 말도 안 돼.”
“무엇이 보입니까, 교수님?”
지원이 다급히 다가섰다. 오 교수는 현미경과 연결된 흑백 모니터의 전원을 켰다. 화면 위로 고배율로 확대된 도현의 심근 세포 조직이 드러났다.
붉게 염색되었어야 할 방추형의 미세한 심근 세포들 사이로, 기괴한 형상이 포착되었다. 세포막과 세포막 사이를 촘촘하게 얽어매고 있는 정교한 기하학적 격자무늬. 그것은 자연적인 생체 조직이 아니었다. 아주 미세한 나노 단위의 금속 그리드(Grid) 패턴이 마치 기생 식물의 덩굴처럼 심장 근육 세포 전체를 옭아매고 증식해 있었다.
“이것은 의학이 아니야…….”
오 교수가 마른 침을 삼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인공적으로 조작된 유전자 수용체와 미세 바이오 칩이 세포막에 직접 융합되어 있어. 세포가 자라면서 기계 장치와 완벽히 일체화되도록 설계된 거란 말이다. 이건……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 가슴속에 새겨 넣은 기계적 낙인(Mechanical Brand)이야.”
지원의 등 뒤로 차가운 전율이 흘러내렸다. 진우의 심장은 도현의 몸 안에서 단순한 장기로 기능하는 것이 아니었다. 메디팜의 극비 바이오 테크 기술이 집약된, 살아있는 기계적 통제 장치 그 자체였다.
“지원아, 더 끔찍한 게 뭔지 아느냐?”
오 교수가 현미경 화면의 특정 수용체 부위를 가리키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늙은 얼굴에는 깊은 공포가 서려 있었다.
“이 기계적 수용체들은 특정 전자기 주파수 신호에 공명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외부에서 송신기를 통해 특정 전파를 쏘면 이 심장의 박동수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뜻이야. 최악의 경우…… 원격으로 판막을 강제 정지시켜 완벽한 자연사로 위장된 급사를 유발할 수도 있는 메디팜의 극비 특허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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