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속의 고백
지직, 지지직.
차가운 스테인리스 벽면을 타고 미세한 기계음이 흘렀다. 정전이 복구된 북한산 저택 지하 메디컬 룸 내 음압 격리실은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공기를 빨아들이는 흡기구의 일정한 진동음만이 정적을 메우고 있을 뿐이었다. 사방이 투명한 강화유리로 둘러싸인 격리실 한가운데, 권도현이 누워 있었다.
그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왔으나 여전히 깊은 혼수상태였다. 그의 허벅지 서혜부로 연결된 휴대용 인공 심폐기(ECLS)의 투명한 관 속으로 선홍빛 혈액이 규칙적으로 돌고 있었다. 기계의 도움 없이는 단 1분도 스스로 숨을 쉴 수 없는 기형적인 생명 유지 상태.
서지원은 격리실 간이 의자에 앉아 멍하니 도현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녀의 왼쪽 손바닥에는 흰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공황 발작을 깨뜨리기 위해 스스로 찔렀던 주사 바늘 자창이 욱신거릴 때마다, 차가운 이성이 현실의 감각을 깨워냈다.
지원은 가운 주머니에서 붉은 피와 소독약이 얼룩진 리트만 디지털 청진기를 꺼냈다. 그리고 도현의 침상 곁으로 다가갔다.
도현의 상의는 완전히 찢겨 나가 있었다. 그의 단단하고 넓은 가슴 정중앙에는 3년 전 불법 장기 이식 수술이 남긴 거칠고 선명한 Y자형 수술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조금 전 제세동기의 강력한 전류가 남기고 간 붉은 전기 화상 자국이 끔찍하게 덧그려져 있었다.
지원은 떨리는 손으로 멸균 거즈에 빨간 포비돈 소독약을 적셨다. 의사로서 수없이 해온 드레싱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메스를 잡은 것처럼 손끝이 무거웠다.
‘나는 지금 무엇을 살린 걸까.’
거즈가 도현의 가슴 피부에 닿았다. 흉터 언저리를 조심스럽게 닦아내는 지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현의 살결은 기계의 온기 탓인지 기이할 정도로 뜨거웠다.
그 순간, 침묵하던 EKG 모니터의 심전도 그래프가 불규칙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분당 70회를 유지하던 초록색 파형이 지원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미세하게 솟구치며 맥박음을 빠르게 뱉어냈다.
삐, 삐, 삐, 삐—.
도현은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으면서도, 지원의 물리적 접촉에 반응하고 있었다. 고통의 감정적 마취 효과. 그의 뇌 신경은 닫혀 있을지언정, 가슴속의 심장은 지원의 미세한 생체 주파수를 기억하고 안정감을 갈구하듯 요동치는 것이었다.
지원은 입술을 깨물며 청진기 헤드를 그의 왼쪽 가슴, Y자 흉터 바로 옆에 밀착시켰다.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둔탁한 심음.
쿵…… 쿵…… 쿵쿠쿵…….
세 박자마다 어김없이 끼어드는 미세한 판막 마찰음. 그것은 3년 전 실종된 약혼자 한진우의 심장 소리였다.
“진우 씨…….”
지원의 눈에서 기어이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려 도현의 피 묻은 흉골 위로 떨어졌다. 죽은 약혼자에 대한 죄책감과, 눈앞의 살인마를 제 손으로 살려내고 그의 생명 신호에 매달리고 있다는 비참한 모순이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심리 장벽 2단계: 본능적 혼란이 그녀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녀가 흐느끼며 고개를 숙였을 때, 가운 안쪽에서 은색 체인에 걸린 티타늄 약혼반지가 흘러나와 도현의 쇄골 피부에 닿았다.
지직—!
그 찰나, 도현의 가슴 깊은 곳에서 정전기 같은 기이한 진동이 일어나는 듯하더니, EKG 모니터가 날카로운 경고음을 울렸다.
그리고 순간이었다.
스윽, 툭.
바닥에 툭 떨어져 있던 도현의 거칠고 커다란 손이 번개처럼 솟구쳐 올랐다. 그의 강박적인 악력이 지원의 스마트 워치가 채워진 왼쪽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아윽……!”
지원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도현의 힘은 혼수상태의 환자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억척스러웠다. 마치 절벽 끝에서 유일한 구명줄을 붙잡은 조난자처럼,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지원의 살을 파고들 듯 조여왔다.
“권도현 씨! 이거 놓으세요! 권도현 씨!”
지원이 다른 손으로 그의 손목을 떼어내려 버둥거렸지만 소용없었다. 도현의 감긴 눈꺼풀 아래로 눈동자가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는 깊은 무의식의 수렁 속에서 끔찍한 악몽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달싹였다.
지원은 본능적으로 도현의 입가로 귀를 가져갔다.
도현의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온 음성은 낮고 거친 조직 보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이할 정도로 맑고, 부드러우며, 지적인 억양을 지닌 청년의 음성이었다.
“지우지…… 마…….”
지원의 전신이 번개를 맞은 듯 굳어버렸다.
“내 심장 속의…… 너를…….”
그 말투, 그 나직한 비음, 단어 끝을 미세하게 올리는 독특한 습관까지. 그것은 한진우의 목소리였다. 한진우의 심장 기억 무의식 발현이 도현의 성대를 빌려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우…… 씨? 정말 진우 씨야?”
지원은 흐느끼며 도현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지만 도현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알 수 없는 단어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뇌 신경망이 이식된 심장의 세포 기억과 비정상적으로 동조되어 엉킨 파편들을 쏟아내는 것 같았다.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 자살한 어머니 강유선의 하얀 원피스, 그리고 붉은 수술실 조명 아래에서 비명을 지르던 진우의 마지막 순간이 혼재되어 폭발하고 있었다.
도현은 신음하며 지원의 손목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의 손톱이 지원의 살갗을 파고들어 붉은 생채기를 냈다.
“공…… 삼…… 이…… 일…….”
도현이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나직하게 읊조렸다.
“공삼…… 이일…….”
그 기이한 네 자리 숫자를 뱉어낸 직후, 도현은 끈이 끊어진 인형처럼 지원의 손목을 스르륵 놓아버렸다. 그의 거구는 침상 위로 무겁게 무너져 내렸고, EKG 모니터는 다시 분당 70회의 기계적인 리듬으로 돌아갔다. 격리실 안에는 다시 차가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지원은 자신의 붉게 멍든 손목을 감싸 안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전신에 소름이 돋아 살갗이 떨렸다.
‘공삼이일…… 0321.’
그것은 진우의 생일도, 가문의 기념일도 아니었다.
지원의 머릿속에 번쩍이는 기억이 스쳤다. 3년 전 진우가 실종되기 전날 밤, 비밀 연구소의 메인 서버에 접속할 수 있는 마스터 우회 패스워드라며 지원에게만 장난스럽게 귀띔해 주었던 바로 그 기밀 보안 코드였다.
혼수 상태인 살인마의 입에서 흘러나온 약혼자의 마스터 암호.
지원은 공포와 전율이 뒤섞인 눈빛으로 침대 위의 도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가슴팍에 새겨진 Y자 흉터가 달빛을 받아 한층 더 기괴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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