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심장, 영하의 사투
도현의 차가운 체온이 가운 너머로 스며드는 순간, 지원은 제 목에 걸린 티타늄 반지를 쥔 채 절규하듯 소리쳤다.
"권도현! 정신 차려! 눈 떠, 권도현!"
어깨 위로 무너져 내린 그의 몸은 거대한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가슴의 터진 수술 상처에서 울컥 흘러나온 검붉은 피가 지원의 의사 가운과 초록색 수술복을 순식간에 축축하게 적셔갔다. 지하실을 가득 채우던 총성과 킬러들의 비명은 이미 잦아들었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정적이 지하 메디컬 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머리 위의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완전히 꺼져버렸다. 완벽한 암전이었다.
지원은 숨을 쉴 수 없었다. 사방을 집어삼킨 어둠 속에서, 오직 도현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나던 지직거리는 기이한 전자기적 소음만이 이명처럼 귓가에 남았다. 그의 심장이 멈췄다. 3년 전,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하얗게 식어가던 약혼자 한진우의 심장이 멈췄던 그 순간의 데자뷔가 그녀의 온 신경을 난도질했다.
"보스! 보스!"
정전과 함께 방 안으로 뛰어 들어온 사설 간호조무사 정동현의 목소리가 암흑 속에서 비명처럼 울렸다.
"전등이…… 비상 전력이 안 들어옵니다! 보스가 숨을 안 쉽니다!"
지원의 시야가 붉은 혈흔으로 번져갔다. 삐이이이— 머릿속에서 인공 심폐기의 경보음이 환청처럼 폭주하기 시작했다.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폐포가 쪼그라들어 공기가 들어오지 않는 듯한 극심한 공황이 그녀의 목을 죄어왔다. 수술실 공황 발작이었다. 과거의 유령이 그녀의 사지를 옭아매고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안 돼. 여기서 멈추면 이 사람은 죽어. 진우 씨의 심장이…… 또다시 내 앞에서 영원히 멈춘단 말이야.’
지원은 이빨을 악물었다. 공황을 깨뜨려야 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수술 도구 트레이 위에 널브러져 있던 18게이지 주사 바늘을 더듬어 쥐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왼쪽 손바닥 중앙을 깊숙이 찔렀다.
"아윽……!"
날카로운 통증이 척수를 타고 뇌리를 강타했다. 손바닥에서 뜨거운 피가 울컥 솟구쳤고, 그 선명한 고통의 감각이 그녀의 마비되던 이성을 강제로 현실로 끌어내렸다. 심박수가 분당 60회로 강제 조정되며 차가운 평정심이 돌아왔다. 강철 멘탈 심박 제어력과 수술실 공황 자가 제어술의 각성이었다.
"동현 씨, 정신 차려요."
지원의 목소리는 언제 공황을 겪었냐는 듯 얼음처럼 차갑고 단호하게 지하실의 어둠을 가르고 나갔다.
"비상 발전기 수동 가동 시키라고 김영호 집사장님께 무전해요. 그리고 스마트폰 플래시 켜요. 당장!"
"네, 네!"
정동현이 사시나무 떨듯 떨며 폰 플래시를 켜자, 붉은 피로 물든 메디컬 룸의 참상이 하얗게 드러났다. 바닥에 쓰러진 도현의 얼굴은 이미 청색증으로 푸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심정지 후 골든타임은 단 4분. 그 안에 혈류를 공급하지 못하면 뇌사 상태에 빠진다.
지원은 도현의 거구를 바닥에 똑바로 눕히고 그의 상의를 찢어발겼다. 터진 Y자형 수술 흉터 사이로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고여 있었다.
"ECLS(휴대용 인공 심폐기) 가져와요!"
"하지만 교수님, 비상 발전 전력이 안정되지 않아서 기계가 오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대로 보스를 죽일 건가요?"
지원의 매서운 일갈에 정동현은 입을 다물고 구석에 있던 ECLS 장비를 휠체어 밀듯 다급히 밀고 왔다.
정전된 지하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지원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그녀의 특기인 '미세 혈관 절대 촉각'이 발휘될 순간이었다. 플래시 불빛이 흔들려 시야가 극도로 불량했지만, 그녀의 검지는 이미 도현의 오른쪽 서혜부(사타구니)를 짚고 있었다.
피부 아래 깊숙이 숨은 대퇴동맥과 대퇴정맥의 위치를 손끝의 미세한 온도 차와 압박감만으로 찾아냈다.
"메스."
정동현이 건넨 메스로 서혜부를 과감하게 절개했다. 피가 솟구쳤으나 지원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두꺼운 ECLS 캐뉼라(도관)를 동맥과 정맥에 각각 밀어 넣었다. 혈관 벽을 타고 플라스틱 관이 미끄러져 들어가는 둔탁한 감각이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
"라인 연결해요!"
도현의 몸에서 나온 검붉은 정맥혈이 투명한 튜브를 타고 ECLS 기계 내부의 인공 폐로 빨려 들어갔다. 기계가 지직거리며 산소를 주입하자, 피는 다시 선홍빛 동맥혈이 되어 그의 몸속으로 주입되기 시작했다. 외부 순환이 가동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ECLS가 산소를 공급해 뇌사는 막아주지만, 멈춰버린 심장 자체를 다시 뛰게 하려면 강한 전기적 충격과 물리적 자극이 필요했다.
"제세동기 충전해요! 200줄(Joule)!"
정동현이 제세동기 패들을 꺼내 지원에게 건넸다.
"교수님, 자동 제세동 모드가 전압 불안정으로 에러가 뜹니다! 발전기 전압이 요동치고 있어요!"
모니터 화면에 'Voltage Unstable - Error'라는 붉은 글씨가 깜빡였다. 자동 분석 기능이 막힌 것이었다.
"수동 모드로 전환해요! 내가 직접 충전 수치 입력할 테니까 지시하는 대로 버튼 눌러요!"
지원은 제세동기 본체의 수동 다이얼을 직접 돌려 출력을 최대치인 360줄까지 올렸다. 전압이 부족하다면 충전량을 극대화해 한 번에 심장을 때려 깨워야 했다. 기계 내부에서 커패시터가 전기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고주파의 날카로운 기계음이 지하실에 울렸다.
지직, 지지직—
발전기의 전력이 깜빡일 때마다 제세동기의 충전음도 위태롭게 흔들렸다.
"충전 완료되었습니다!"
지원은 젤을 바른 두 개의 패들을 도현의 젖은 가슴 위, Y자 흉터의 위아래에 강력하게 밀착시켰다. 차가운 금속 패들이 피 묻은 살결에 닿는 순간, 그녀의 목걸이에 걸려 있던 티타늄 약혼반지가 도현의 쇄골에 가볍게 부딪히며 미세한 공명을 일으켰다.
"모두 물러서요!"
지원이 소리침과 동시에 정동현이 방전 버튼을 눌렀다.
쾅—!
강한 전류가 도현의 거구를 관통했다. 그의 상체가 바닥에서 한 뼘 이상 튀어 올랐다가 쿵 하고 떨어졌다. 하지만 모니터의 심전도 파형은 여전히 잔인하리만치 평탄한 직선(Flatline)만을 그리고 있었다.
"안 돼…… 제발……."
지원은 패들을 내려놓고 즉각 도현의 가슴 위로 올라탔다. 깍지 낀 손을 그의 흉골 중앙에 얹고 온 체중을 실어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에피네프린 1앰플 정맥 주사해요! 3분 간격으로 계속!"
지원의 거친 숨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굳어버린 도현의 가슴뼈가 그녀의 손끝 아래서 무겁게 가라앉았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그의 터진 수술 상처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지원의 뺨과 이마에 사정없이 튀었다. 하지만 그녀는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는 3년 전 수술실의 환청이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었다.
'지원아, 미안해…….'
진우의 마지막 목소리가 도현의 심장 박동 소리와 겹쳐 들리는 듯했다.
"죽지 마…… 권도현! 진우 씨 심장 가지고 이대로 죽지 마!"
지원은 눈물을 흘리며 미친 듯이 가슴을 압박했다. 땀과 피가 뒤섞여 시야를 가렸지만, 그녀의 손끝은 도현의 심장 위치를 정확히 사수하고 있었다.
그때, 지하실 문이 열리며 마강식과 박철우가 피투성이가 된 검은 가죽 코트 차림으로 들이닥쳤.
"보스!"
마강식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강식 씨! 제세동기 수동 충전 한 번 더! 360줄!"
지원은 가슴 압박을 멈추지 않은 채 소리쳤다. 마강식은 군말 없이 제세동기 다이얼을 돌렸다. 기계가 다시 한번 위태로운 고음을 내며 충전을 시작했다.
"충전 완료!"
지원은 다시 패들을 잡고 도현의 가슴에 내리눌렀.
"물러서요! 슛!"
두 번째 전기 충격이 그의 신체를 관통했다. 강한 전류의 스파크가 튀며 도현의 살갗 타는 냄새가 좁은 메디컬 룸에 퍼졌다. 그의 가슴팍에 새로운 붉은 전기 화상 흉터가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지직, 지직…….
평탄하던 녹색 선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이내, 둔탁하고 묵직한 고동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지하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쿵……!
그것은 시작이었다. 쿵, 쿵, 쿵쿠쿵.
지원이 그토록 그리워하고, 동시에 증오했던 약혼자 한진우의 독특한 삼차성 판막 마찰음이 섞인 고동이 다시 차가운 지하실 안을 울리기 시작했다. 자발 순환이 기적적으로 회복된 것이었다.
"하아…… 하아……."
지원은 제세동기 패들을 떨어뜨리며 도현의 침대 옆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손바닥의 주사 바늘 자창에서 흐른 피가 바닥의 도현의 피와 섞여 붉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살았습니다…… 보스가 살았습니다!"
정동현이 울먹이며 소리쳤고, 마강식은 벽을 짚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원은 떨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들어 EKG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도현의 심박수가 분당 70회로 안정적으로 안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지원의 눈이 모니터 화면의 하단에 고정되었다.
정상적인 QRS 심전도 파형의 곡선 아래로, 일반적인 이식 환자에게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미세하고 규칙적인 고주파 디지털 신호가 째깍거리는 그리드 패턴으로 간헐적으로 겹쳐서 출력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암호화된 전송 신호 같았다. 인간의 심장 근육이 내는 생체 신호가 아닌,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기계적 장치가 외부와 끊임없이 데이터를 송수신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붉은색 비밀 파형이었다.
지원은 차갑게 식어가는 제 손목의 스마트 워치를 꽉 쥐며, 도현의 가슴속 깊은 곳에 박힌 바이오 칩의 실체적 위협을 온몸으로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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