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의 전조, 대나무 숲의 사투
남만의 잎사귀들을 사정없이 흔들던 폭우는 멎었으나, 대나무 숲 은거지(대나무 숲 은거지)를 감싼 공기는 여전히 축축하고 차가웠다. 울창한 대나무 장벽에 가려져 달빛조차 흐릿하게 내려앉는 오두막 안쪽. 바닥에 쓰러진 위천무의 몸은 겉보기와 달리 용광로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 으으윽!”
천무의 얇은 삼베 장포 아래로 기괴한 이변이 일어났다. 심장 부근에서 시작된 보랏빛 혈선들이 거미줄처럼 뻗어 나와 기경팔맥을 타고 목덜미와 뺨까지 부풀어 올랐다. 피부 아래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벌레의 형상들이 살갗을 찢고 나올 듯 요동쳤다. 독무 계곡에서 흡수한 치명적인 독기와 무영보법을 전개하며 뒤틀린 내기가 단전에서 충돌한 결과였다.
천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인간의 이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흰자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탁하고 흉포한 보랏빛 광기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시야가 붉고 보랏빛 환각으로 물들었다. 그의 눈앞에 서 있는 거구의 사나이, 사도광(사도광)의 모습이 가문을 멸문시키고 사부 사옹의 목을 베었던 적양표국의 살수, 뇌풍의 형상으로 일그러져 보였다.
“원수…… 죽인다…… 놈들을 전부 죽인다!”
천무가 피울음 섞인 짐승의 포효를 내질렀다. 그의 오른손이 움켜쥔 것은 독무 계곡의 진흙 바닥에서 주워 들었던 부러진 강철검 파편이었다. 날카롭게 깨진 쇳조각 끝에서 보랏빛 사기와 검붉은 혈광이 번뜩였다.
스스스슥!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속도였다. 천무의 신형이 무영보법의 잔상을 남기며 사도광의 목덜미를 향해 미끄러지듯 쇄도했다. 칼날이 공기를 찢는 매서운 파공음이 좁은 오두막 내부를 뒤흔들었다.
“천무야! 정신 차려라! 나다, 사도광이다!”
사도광은 경악했다. 천무의 눈에 서린 보랏빛 안광이 단순한 살기가 아닌, 자아를 완전히 상실한 괴물의 광기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사도광의 거구 뒤편에 놓인 참마도는 이미 백리웅과의 대결로 날이 완전히 조각난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무기도 없고 가슴의 내상으로 몸조차 성치 않은 상황.
사도광은 주저 없이 손에 쥐고 있던 부러진 참마도의 자루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맨몸으로 천무의 칼날을 향해 전진했다.
쉭! 콰드득!
천무가 휘두른 강철검 파편이 사도광의 왼쪽 어깨 가죽을 깊숙이 찢어발겼다. 붉은 선혈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오두막의 대나무 바닥을 적셨다. 하지만 사도광은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고, 오히려 피가 뿜어져 나오는 어깨를 들이밀며 천무의 손목을 움켜쥐려 했다.
그러나 이성을 잃은 천무의 도세는 변칙적이고 잔혹했다. 천무는 축경공의 압축된 괴력을 발목에 실어 사도광의 사각지대로 파고들며, 오른손의 쇳조각을 비틀어 사도광의 가슴팍을 사선으로 거칠게 베어 갈랐다.
쩍!
사도광의 가죽 옷이 찢어지며 가슴뼈가 드러날 정도의 깊은 도창이 새겨졌다. 선혈이 폭포처럼 쏟아졌고, 사도광의 거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럼에도 사도광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굳건한 두 팔을 뻗어, 광기에 미쳐 날뛰는 천무의 목덜미와 허리를 억세게 끌어안았다.
“으아아아! 놔라! 죽여버리겠다!”
천무가 사도광의 품속에서 발버둥 치며 강철검 파편으로 그의 등덜미를 찔러 들어갔다. 쇳조각이 살을 파고들 때마다 사도광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오두막 안은 이내 두 사내의 피비린내와 거친 숨소리로 가득 찼다. 사도광은 전신이 찢겨 나가는 극통 속에서도 천무를 놓아주지 않고, 오히려 뼈가 으스러지도록 그를 더 강하게 껴안았다.
“천무야…… 정신 차려라! 사부님이 남기신 유언을 잊은 게냐!”
사도광이 피를 토하며 포효했다. 그의 목소리가 천무의 귓가를 울렸다.
“‘심장에 괴물을 품었을지언정, 인간으로서의 의협의 마음을 결코 잃지 말거라!’ 사옹 사부님이 목숨을 바치며 네게 남긴 마지막 자존심이 이것이란 말이냐!”
사옹(謝翁).
그 이름이 차가운 빗소리를 뚫고 천무의 뇌리에 박히는 순간, 천무의 몸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광기로 타오르던 보랏빛 안광 속에서 사부의 참수된 머리와 피 묻은 유골함의 형상이 환영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 부님……?”
천무의 칼날이 허공에서 주춤했다. 그 찰나의 공백을 깨고, 오두막의 거적 문이 거칠게 열리며 맹인 소년 아철(아철)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아철의 두 눈은 깊게 함몰되어 안대로 가려져 있었지만, 그의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청각 신경이 숲의 이상 진동을 감지하고 있었다.
“사형! 사도 형님! 멈추십시오! 대나무 숲 외곽 오십 보 밖에서 기묘한 숨소리가 들립니다! 인간의 발소리가 아닙니다…… 들개 무리와 함께 다가오는 피비린내 나는 살기입니다!”
혈랑(혈랑).
제갈경이 파견한 사냥개이자, 천무의 피 냄새를 추적해 온 현철위의 살수가 은거지 턱밑까지 육박한 것이다. 아철의 다급한 전음이 좁은 방 안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윽…… 아아악!”
환각이 깨지기 시작하자, 천무는 머리를 감싸 안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심장 속 혈고가 이종 내공의 충돌과 독기의 반발을 견디지 못하고 미친 듯이 쥐어짜 지고 있었다. 심장 고동이 멈출 듯 급격히 느려지며 입안으로 검은 피가 솟구쳤다. 이대로 자아가 붕괴해 죽거나, 아니면 괴물이 되어 아군을 도륙할 생사일로의 순간이었다.
‘안 된다.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다. 사부님의 원수를 갚고, 소희를 지키기 전에는 결코……!’
천무는 떨리는 손으로 품속을 뒤져 사옹이 남겨준 은침통(은침통)을 꺼냈다. 뚜껑을 열자 달빛 아래 삼릉 은침들이 차가운 안광을 발했다. 천무는 망설이지 않고 은침 세 개를 손끝에 쥐었다.
자궁고(子宮蠱).
심장 옆 기경팔맥에 숨겨진 예비 고독이 천무의 생명이 꺼져감을 감지하고 요동치기 시작했다. 천무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가슴팍, 심장 주변의 거궐, 신문, 극천 대혈을 향해 은침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혈고 발작 억제(血蠱 抑制)의 비기였다.
푸욱! 푸욱! 푸욱!
“으…… 윽!”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극통이 전신을 관통했다. 은침이 요혈을 찌르는 순간, 요동치던 심장의 보랏빛 혈선들이 일시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듯 동결되었다. 혈고의 광포한 고동이 뚝 멈췄다. 그 대가로 찾아온 것은 전신이 마비되어 숨조차 쉴 수 없는 30초간의 절대적인 암흑과 빈혈이었다.
천무는 차가운 대나무 바닥에 엎드린 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극심한 마비 속에서 서서히 이성을 되찾았다. 보랏빛 광기가 걷힌 그의 맑은 눈동자에 피투성이가 된 채 자신을 지켜보며 숨을 헐떡이는 의형제 사도광의 모습이 들어왔.
지독한 죄책감과 슬픔이 가슴을 짓눌렀지만, 천무는 입술을 깨물며 피비린내를 삼켰. 동굴 밖 대나무 숲에서는 사냥개 혈랑의 음산한 발소리가 낙엽을 밟으며 좁혀오고 있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도, 물러설 은신처도 없었다.
천무는 굳어가는 손가락을 움직여 가슴에 박힌 은침을 천천히 뽑아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부러진 강철검 파편을 다시 꽉 움켜쥐었다. 그의 눈동자에 서린 살기는 더 이상 미친 괴물의 그것이 아니었다. 원수를 향한 극단의 이성과 한 서린 복수심으로 가득 찬 차가운 칼날이었다.
천무가 자신의 심장에 깊숙이 은침을 다시 찔러 고통을 마비시킨 뒤, 붉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사도광과 아철을 향해 단호하게 속삭였다.
“원수의 목을 베어 이 벌레를 잠재우겠다. 오늘 밤, 표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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