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무 계곡의 삼중 포위망
남만의 밤은 언제나 피비린내와 습한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세차게 몰아치던 폭우는 어느새 가느다란 빗줄기로 변해 대지를 차갑게 적시고 있었지만, 협곡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살을 에는 듯 매서웠다.
위천무는 가슴을 움켜쥔 채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적양표국의 분타 수호자 백리웅과의 사투는 승리로 끝났고, 수송 마차에서 탈취한 지열진액(地熱眞液) 덕분에 심장을 찢어발길 듯 타오르던 화독은 겨우 가라앉았다. 그러나 백리웅의 무쇠 주먹에 직격당한 흉부의 타박상과 오른팔 경맥의 미세한 파열상은 단전이 흔들릴 때마다 지독한 통증을 뿜어냈다. 게다가 축경공의 압축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버린 일반 철검의 잔해만이 그의 품속에서 쓸쓸하게 부딪치고 있었다. 주무기를 잃은 외팔이 사냥꾼. 그것이 지금 위천무의 처참한 몰골이었다.
“천무야, 쉴 틈이 없다. 놈들이 냄새를 맡았어.”
옆에서 천무를 부축하던 사도광이 핏기가 가신 얼굴로 나직하게 경고했다. 그의 거구 역시 백리웅과의 완력 대결 여파로 가벼운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그의 등에 매여 있어야 할 거대한 참마도(斬馬刀)는 이미 날이 완전히 조각나 이 빠진 쇳덩어리에 불과했다. 두 사내 모두 무기를 잃고 만신창이가 된 채, 남만 변방의 험준한 바위 절벽 사이로 도망치고 있었다.
사도광의 손에는 백리웅의 시신에서 수습한 현철위(玄鐵衛)의 비밀 서신이 쥐여 있었다. 붉은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그 종이는 가문을 멸문시킨 배후에 황실 비밀 조직이 도사리고 있다는 추악한 진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분노가 가슴을 채웠지만,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먼저였다. 백리웅의 호위 무사 중 생존자들이 분타로 도망쳐 야습 소식을 알렸으니, 적양표국의 정예 추격대가 그들의 목을 노리고 들이닥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이 앞은 독무 계곡(독무 계곡)이다. 사도 형님, 서둘러야 합니다.”
천무의 갈라진 목소리가 빗소리에 묻혔다.
두 사람은 짙은 보랏빛 독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계곡 깊숙이 몸을 던졌다. 독무 계곡은 항상 사람의 폐부를 녹여버릴 듯한 독기가 흐르는 사지(死地)였지만, 심장에 혈고를 품은 천무에게는 오히려 천연의 은신처였다. 하지만 무공을 전혀 모르는 평범한 이들이라면 해독제 없이는 단 몇 보도 걷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질 터였다.
스스스스.
음산한 바람 소리와 함께 계곡을 메우고 있던 보랏빛 안개가 기이하게 흔들렸다.
“찾았다, 무경교의 쥐새끼 놈들!”
절벽 위에서 벼락같은 포효가 울려 퍼졌다. 적양표국 흑호대의 대장이자 살수 출신의 표사, 뇌풍(뇌풍)이었다. 그의 잔인한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이목구비가 횃불의 불빛 아래 일그러지며 모습을 드러냈다. 뇌풍의 뒤편으로 검은 가죽 무복을 입은 흑호대 무사 수십 명이 절벽의 바위 틈새를 메우며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피융! 피융! 피융!
살을 에는 듯한 파공음과 함께 독화살 비가 쏟아졌다. 화살 끝에는 푸르스름한 음독이 칠해져 있었다.
“천무야, 내 뒤로 물러서라!”
사도광이 부러진 참마도를 치켜들며 전방을 가로막았다. 날이 조각난 칼날을 휘두르며 쏟아지는 화살을 처절하게 튕겨냈지만, 이미 부상당한 가슴의 통증 때문에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크윽……!”
사도광이 짧은 신음을 토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화살의 충격이 부러진 도신을 타고 그의 손목 경맥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숲속 어둠 속에서 들개 같은 기괴한 으르렁거림이 들려왔다. 인간의 후각을 초월한 특이 체질을 지닌 현철위의 사냥개, 혈랑(혈랑)이었다. 코가 비정상적으로 크고 기괴하게 굽은 그는 천무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피 냄새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혈랑의 손끝에서 검은 사기가 일렁이더니, 세 자루의 단창(단창)이 천무의 심장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슈우우웅!
천무는 이를 악물고 몸을 던졌다. 단창은 그의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 뒤편의 바위벽에 깊숙이 박혔다. 단창에 실린 묵철의 기운이 폭발하며 돌가루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냄새를 쫓고 있군.’
천무는 냉철하게 판단했다. 혈랑은 그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냄새를 맡고 어둠 속에서도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주무기도 없고 몸도 성치 않은 상황에서 냄새마저 차단하지 못하면 이 협곡은 그들의 무덤이 될 터였다.
천무는 주저하지 않고 계곡 바닥으로 몸을 굽혔다. 바닥에는 강한 산성을 띠고 썩어가는 사신연못의 붉은 진흙, 사신흙이 가득 고여 있었다. 천무는 그 차갑고 악취 나는 진흙을 한 움큼 쥐어 자신의 가슴팍 상처와 전신에 사정없이 발랐다. 썩은 내가 진동하며 그의 피 냄새를 완벽히 덮어버렸다.
“르르르…… 캬악!”
피 냄새를 잃어버린 혈랑이 당황한 듯 머리를 흔들며 괴성을 질렀다. 단창의 조준이 흐트러진 찰나의 공백.
하지만 뇌풍이 이끄는 흑호대의 삼중 포위망은 더욱 촘촘하게 그들을 조여오고 있었다. 절벽 위는 활을 든 사수들이, 후방은 혈랑의 살수들이, 정면은 뇌풍의 본대가 화양성공(火陽功)의 이글거리는 열기를 뿜어내며 다가왔다. 진퇴양난의 사지였다.
‘무기가 없다. 사도 형님의 도는 부러졌고, 내 철검은 잿더미가 되었다. 이 포위망을 뚫으려면…….’
천무의 안광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신비로운 방랑자 화무영이 던져주고 갔던 낡은 무영보 서책(無影步 書冊)의 구결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 비록 일부 페이지가 유실되어 완벽하지 않았지만,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며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는다는 신법의 본질은 그의 핏줄 속에 새겨져 있었다.
‘바람을 가르지 마라. 바람의 흐름에 육신을 녹여라. 발목 경맥의 요혈을 극단으로 비틀어 기의 흐름을 폭발시켜라.’
천무는 단전에 남아 있는 음양의 내기를 발목 경맥으로 강제로 밀어 넣었다. 파열 직전의 경맥이 비명을 지르며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통을 내뿜었다. 미각성 상태의 혈고가 전신의 통각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켜 주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을 고통이었다. 천무는 이를 악물고 첫 걸음을 내딛었다.
스스스슥!
빗소리조차 나지 않는 침묵의 움직임이었다. 위천무의 신형이 허공에서 기이하게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세 개의 잔상으로 분리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무영보법(無影步法)의 발현이었다.
“무엇이냐! 어느 것이 진짜냐!”
절벽 위의 사수들이 경악하며 화살을 난사했지만, 화살들은 모두 허공의 잔상을 관통할 뿐이었다. 혈랑 역시 허공을 짚으며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으나 그의 손에 걸린 것은 차가운 독무뿐이었다.
“사도 형님, 지금입니다!”
잔상 속에서 천무의 전음이 사도광의 귀에 꽂혔다. 사도광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거구의 몸을 일으키며 이 빠진 참마도를 양손으로 쥐고 광풍참마도법의 패도를 전개했다.
“으아아아! 비켜라!”
콰아앙! 콰드득!
사도광이 참마도를 대지에 내리찍자, 매서운 도기가 뿜어져 나와 협곡 좌우에 자라나 있던 거대한 검은 대나무들을 단숨에 베어 넘겼다. 수십 그루의 대나무가 쓰러지며 혈랑과 흑호대 무사들의 전진 경로를 완벽하게 가로막는 거대한 나무 장벽이 형성되었다. 적들의 시야와 도주로가 일시적으로 차단된 순간이었다.
그 혼란의 와중에, 진짜 위천무의 신형은 이미 바람을 타고 포위망의 중심이자 적장 뇌풍의 등 뒤로 파고들고 있었다.
천무에게는 검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죽은 표사 한 명이 바닥에 떨어뜨린 차가운 표준 강철검을 정확히 포착했다. 발끝으로 검자루를 차올려 오른손으로 낚아챈 천무는, 축경공의 괴력을 발목과 오른팔에 집중시켰.
“뇌풍!”
천무의 서늘한 외침과 함께, 강철검의 날 끝이 뇌풍의 척추 요혈을 향해 번개처럼 짓쳐 들어갔. 묵혈참의 기괴한 사기가 검신에 실리며 불길한 검은 광풍을 일으켰다.
“이 쥐새끼가!”
뇌풍은 일류 절정의 고수답게 등 뒤를 엄습하는 살기를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그는 신형을 180도 회전시키며, 화양성공의 붉은 불길을 두른 무쇠 방패를 들어 천무의 기습을 정면으로 막아섰다.
콰아아앙!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라,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굉음이 독무 계곡을 흔들었다. 천무가 휘두른 강철검과 뇌풍의 화염 방패가 맞닿는 순간, 화양성공의 극양의 열기가 강철검의 도신을 순식간에 붉게 달구며 녹여버리기 시작했다. 천무의 검 끝이 방패에 막혀 뒤로 밀려났지만, 축경공의 묵직한 파괴력은 뇌풍을 그대로 밀어붙였다.
“크윽!”
뇌풍은 방패를 쥔 팔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충격에 신음을 토하며 포위망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그의 얼굴에 경악과 분노가 교차했다. 외팔이에 무기도 없는 애송이의 일격이 자신의 화양 진기를 뒤흔들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도망쳐라! 사도 형님!”
천무는 녹아내린 강철검을 뇌풍의 얼굴을 향해 던져버리고, 무영보법의 잔상을 남기며 사도광과 함께 대나무 장벽 너머의 어두운 협곡 틈새로 신속하게 몸을 날렸다. 뇌풍이 방패를 휘둘러 날아오는 검 조각을 쳐내는 사이, 두 사내의 신형은 이미 자욱한 보랏빛 독무 속으로 완벽하게 모습을 감춘 뒤였다.
“추격해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뒤편에서 뇌풍의 광기 어린 포효가 협곡을 흔들었지만, 천무와 사도광은 이미 삼중 포위망의 가장 취약한 고리를 찢어발기고 탈출한 상태였다.
얼마나 달렸을까.
물소리가 들리는 가파른 암벽 동굴 안쪽까지 도망쳐 들어온 두 사람은 그제야 바위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사도광은 부러진 참마도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천무야, 해냈다. 그 촘촘한 포위망을 뚫어내다니…… 너의 그 신법은 대체…….”
사도광이 천무의 어깨를 짚으며 말을 건네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위천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몸이 기이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리하게 발목 경맥을 비틀어 무영보법을 전개한 대가와, 도망치는 과정에서 계곡의 치명적인 보랏빛 독무를 강제로 들이마신 부작용이 마침내 폭발한 것이었다.
지열진액이 억누르고 있던 심장 속 혈고가 차가운 독기와 극양의 진기 충돌에 반응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고동치며 천무의 전신 피부 위로 검붉은 보랏빛 혈선들이 거미줄처럼 부풀어 올랐다.
“으, 윽…… 아아아악!”
천무가 머리를 쥐어짜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동자에서 흰자위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탁하고 기괴한 보랏빛 광기가 빠르게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자아를 상실해가는 폭주의 전조였다.
“천무야? 정신 차려라! 천무야!”
사도광이 놀라 천무의 어깨를 붙잡았지만, 천무의 시야는 이미 온통 보랏빛 환각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의 눈에 비친 사도광의 거구는 자신을 죽이러 다가오는 적양표국의 괴물, 혹은 사부의 목을 벤 뇌풍의 형상으로 왜곡되어 보였다.
“죽인다…… 놈들을 전부 죽인다……”
천무가 짐승 같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빗속에서 주워 들었던 부러진 강철검의 뾰족한 파편 조각을 움켜쥐었다.
스스스.
천무의 신형이 기괴한 속도로 움직이더니, 이내 차가운 쇳조각의 끝날이 옆에 서 있던 사도광의 목덜미 요혈을 정확히 겨누며 짓쳐 들어갔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인간의 이성을 잃어버린 괴물의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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