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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물든 혈고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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쐐애액!


동굴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덩굴막이 단숨에 찢겨 나갔다. 매캐한 유황 냄새와 함께, 밤바람을 가르는 사나운 대도의 파공음이 혈고굴의 정적을 산산조각 냈다.


“찾았다, 무경교의 쥐새끼들!”


어둠을 뚫고 난입한 자는 적양표국의 추격대장, 뇌풍(뇌풍)이었다. 그의 손에 들린 거대한 대도에는 이글거리는 화양성 진기가 붉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열기로 인해 습기로 가득했던 동굴 내부의 공기가 순식간에 메마르며 턱 막혀왔다. 뇌풍의 뒤로 가죽 장포를 걸친 적양표국의 정예 무사 십여 명이 횃불을 치켜든 채 동굴 안을 가득 메웠다.


위천무는 돌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전신이 돌처럼 무거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가슴팍의 거궐, 신문, 극천 대혈에 깊숙이 박힌 사옹의 은침 세 개가 그의 기맥을 강제로 묶어놓은 탓이었다. 심장의 혈고 발작은 멈췄지만, 지금의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무방비한 상태에 불과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열두 살의 여동생 위소희가 공포에 질려 천무의 낡은 삼베옷 소매를 붙잡고 오열했다. 깡마르고 창백한 소희의 몸이 낙엽처럼 사정없이 떨렸다.


늙은 약사 사옹이 절뚝이는 다리로 천무 남매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의 깊게 패인 주름진 얼굴에 비장한 결의가 서렸다. 사옹은 천무를 돌아보지 않은 채 목소리를 낮추어 전음(傳音)을 보냈다.


‘천무야, 소희를 데리고 지하 퇴로로 가거라. 내가 놈들을 막아서마.’


‘사부님! 안 됩니다! 지금 몸 상태로는……!’


천무는 마음속으로 울부짖었으나, 마비된 성대에서는 허망한 바람 소리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


“늙은 약사 놈이 아직도 목숨을 구걸하는구나. 교주의 핏줄은 어디 있느냐?”


뇌풍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대도를 비스듬히 겨눴다. 도신에 서린 화양 진기가 동굴 벽의 이끼들을 순식간에 검게 태워버렸다.


“무경교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이 관청의 사냥개 놈들아!”


사옹이 포효하며 품속에서 기이한 보랏빛 약독 가루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훅 끼쳐오는 독무가 순식간에 동굴 내부의 시야를 차단했다. 수색대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눈을 움켜쥐고 뒤로 물러섰다.


그 짧은 혼란의 틈을 타, 사옹은 천무의 가슴에 박혀 있던 은침 세 개를 번개처럼 뽑아냈다. 기맥이 풀림과 동시에 천무의 전신에 피가 돌며 감각이 돌아왔다. 사옹은 천무의 손을 억세게 잡아끌어 돌침대 뒤편, 이끼 낀 바위 벽의 비밀 틈새로 그와 소희를 밀쳐 넣었다. 그곳은 지하 깊은 곳의 협곡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퇴로였다.


“사부님!”


겨우 목소리를 되찾은 천무가 사옹의 장포 자락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사옹은 단호하게 천무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바위 벽 안쪽에 설치된 무거운 현철 빗장을 강제로 내려 지하 통로의 쇠창살 문을 잠가버렸다. 철컥하는 굉음과 함께 천무 남매와 사옹의 사이가 차가운 쇠창살 장벽으로 가로막혔다.


“사부님! 문을 여십시오! 같이 가셔야 합니다!”


천무가 쇠창살을 붙잡고 흔들었으나, 현철로 제련된 장벽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사옹은 쇠창살 너머로 천무를 바라보며 인자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손에는 대대로 내려온 무경교의 은침통(은침통)이 들려 있었다. 사옹은 쇠창살 틈새로 은침통을 천무의 품속으로 던져넣었다.


“천무야, 이 은침통을 받아라. 그리고 기억하거라. 심장에 괴물을 품었을지언정, 인간으로서의 의협(俠)의 마음을 결코 잃지 말거라. 그것이 무경교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사부님……! 안 됩니다! 제발!”


소희 역시 쇠창살을 붙잡고 목을 놓아 울었다. 하지만 사옹은 이미 몸을 돌려 동굴 중앙으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쿠오오오!


독무를 강인한 화양성 진기로 걷어낸 뇌풍이 붉은 안광을 빛내며 사옹을 향해 쇄도했다. 그의 대도가 허공을 가르며 엄청난 열풍을 뿜어냈다.


“죽어라, 늙은이!”


사옹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내공을 단전에 끌어올려 양손 끝에 집중했다. 슈슈슉! 사옹의 손가락 끝에서 뿜어져 나온 미세한 침 기운이 뇌풍의 화양 진기 흐름을 일시적으로 봉쇄하려 요혈을 찔러 들어갔.


핏!


뇌풍의 오른쪽 어깨 기맥이 막히며 도세가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경지의 차이가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이류 중기에 불과한 늙은 약사의 내력으로는 일류 절정의 화양공을 완벽히 억누를 수 없었다.


“하찮은 침술 장난질이로구나!”


뇌풍이 폭포 같은 진기를 폭발시키며 사옹의 침 기운을 강제로 깨부섶다. 이어서 붉게 달아오른 대도가 사옹의 가슴을 대각선으로 거칠게 베어 갈랐.


쩍!


선혈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사옹의 노구가 뒤로 밀려났다. 가슴팍의 뼈가 드러날 정도의 치명상이었다. 그럼에도 사옹은 쇠창살 쪽을 돌아보지 않은 채, 뇌풍의 검신을 맨손으로 꽉 움켜쥐며 그의 전진을 몸으로 막아섰다. 오직 제자가 탈출할 시간 일 초를 벌기 위한 처절한 육탄전이었다.


“천무야…… 뛰어라……!”


사옹이 피를 토하며 마지막 전음을 보냈다.


“이 끈질긴 노인네가!”


뇌풍이 격노하여 대도를 크게 휘둘렀다. 붉은 도광이 반원을 그리며 사옹의 목덜미를 사납게 스치고 지나갔.


서걱.


서늘한 혈광과 함께, 사옹의 머리가 허공으로 높이 솟구쳤다. 쇠창살 너머에서 그 광경을 정면으로 목격한 위천무의 세상이 순간적으로 멈췄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천무의 목에서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심장 속 혈고가 사부의 죽음이 부른 극단의 분노와 슬픔에 반응하여 기괴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가슴팍의 보랏빛 혈선들이 붉은 열기를 머금고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쇠창살을 부수고 나가 놈들의 목을 찢어발기고 싶었다.


그러나 사도광도, 아철도 없는 지금의 천무에게는 뇌풍의 대군세를 대적할 힘이 없었다.


“오라버니…… 가야 해요…… 사부님이…… 흐윽, 오라버니 제발…….”


소희가 천무의 허리를 꼭 안고 바닥으로 무너지며 흐느꼈다. 누이동생의 눈물 어린 애원이 천무의 가슴속 분노를 간신히 억눌렀다. 지금 죽을 수는 없었다. 사부의 희생을 헛되이 할 수는 없었다.


천무는 피눈물을 흘리며 사옹의 은침통을 품속 깊이 밀어 넣었다. 그리고 주저앉은 소희를 한쪽 팔로 강하게 안아 들고, 칠흑 같은 지하 통로의 계곡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편 동굴에서 쇠창살을 두드리는 적양표국 무사들의 거친 함성과 대도의 쇠 소리가 멀어져 갔다.


차갑고 어두운 지하 통로를 얼마나 달렸을까. 머리 위 바위 틈새로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숲길 외곽의 출구로 빠져나온 천무의 전신을 남만의 가혹한 폭우가 사정없이 때렸다. 빗물이 눈물과 피로 뒤섞여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천무는 소희의 손을 꼭 쥔 채, 빗속을 헤치며 국경 인근의 석교촌(석교촌) 입구로 향했다. 사부의 시신을 수습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하지만 석교촌 어귀에 다다랐을 때, 천무는 제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마을 입구의 커다란 돌다리와 목조 아치 위에, 무언가가 밧줄에 묶인 채 대롱대롱 매달려 빗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방금 전 자신들을 탈출시키고 목숨을 잃은 사부, 사옹의 참수된 머리였다. 빗물에 씻겨 파리하게 질린 노인의 얼굴이 허공에서 천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뇌풍이 무경교의 잔당들을 유인하기 위해 마을 입구에 사옹의 머리를 효수해 놓은 참극이었다.


“아…… 사부님…….”


소희가 비명을 지르며 천무의 품에 얼굴을 묻고 쓰러지듯 오열했다.


천무의 깡마른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빗물 속에서 사부의 참수된 머리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서서히 짙은 보랏빛 광기로 물들어갔다. 가슴팍 삼베적삼 아래의 혈선들이 미친 듯이 팽창하며 심장을 사정없이 쥐어짜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사부의 참혹한 죽음이 부른 거대한 복수심과 분노의 열기가 단전의 사기와 결합했다. 심장 속 혈고가 그 분노의 열기를 먹어 치우며 붉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천무의 오른손 주먹이 뼈가 으스러질 듯 꽉 쥐어졌다. 빗속에서 번뜩이는 그의 보랏빛 안광에 서늘한 피의 복수극의 서막이 올랐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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