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화의 소멸, 검은 도광의 일격
화염의 장막이 연무장의 대리석 바닥을 집어삼키며 붉은 아지랑이를 피워 올렸다. 밤안개는 순식간에 뜨거운 증기로 변해 흩어졌고, 연무장 전체가 마치 지옥의 가마솥처럼 붉은 열기로 들끓었다. 붉은 도포를 휘날리는 염화도인의 눈가에 광기 어린 살기가 번뜩였다. 그의 손에 들린 거대한 철제 쇠부채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대지를 녹일 듯한 극양의 화염 파동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위천무는 오른손에 쥔 부러진 강철검 파편을 꽉 쥐었다. 날끝이 뭉툭하게 깨진 검붉은 쇳조각은 사부 사옹의 복수를 다짐하는 그의 처절한 의지처럼 위태롭고 날카로웠다. 가슴팍의 은침 세 개가 기맥을 억누르고 있어 전신에 지독한 빈혈과 마비감이 몰려왔지만, 천무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심장 속 혈고가 적들의 화양성 진기를 감지하고 굶주림에 미쳐 날뛰며 가슴뼈 안쪽을 갉아먹는 극통을 선사했으나, 그는 오히려 그 통증을 차가운 투지로 승화시켰다.
“사도 형님, 아철을 데리고 더 물러서시오. 이 자의 화공은 단순한 불길이 아니오.”
천무의 나직한 전음이 사도광의 귀에 꽂혔다. 연무장 외곽의 무너진 석주 뒤편, 가슴에 깊은 도창을 입고 참마도마저 잃은 사도광은 피를 토하면서도 천무의 등 뒤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아철은 안대 너머 함몰된 눈가를 찌푸린 채, 귀를 허공으로 기울여 불길이 대기를 찢는 소리를 감지하고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나으리! 불길의 기류가 사방으로 회전하며 퇴로를 막아서고 있습니다!”
아철의 외침과 동시에 염화도인이 비열하게 웃으며 철제 쇠부채를 가볍게 흔들었다.
“흐흐흐, 무경교의 잔당 놈들이 감히 적양표국의 연무장까지 기어들어 오다니. 사옹 늙은이의 목을 벤 대도가 아직 식지도 않았다. 너희 놈들의 뼈를 이 연무장의 잿더미로 만들어 주마!”
염화도인의 쇠부채가 허공을 크게 가르자, 바닥의 대리석이 용암처럼 붉게 달아오르며 천무의 발밑을 덮쳤다. 열풍이 대기를 뒤흔들며 숨을 쉴 때마다 폐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천무는 무영보법(無影步法)을 전개했다.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하며 그림자처럼 신속하게 움직여 불길의 궤적을 회피하려 했으나, 사방을 가득 채운 극양의 열기로 인해 신법이 미세하게 무뎌졌다. 공기가 너무 무거워 발목 경맥에 가해지는 압박이 평소의 배에 달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염화도인이 도검을 치켜들며 적양참(赤陽斬)의 검붉은 도광을 연사했다.
쿠르릉! 슈아아악!
검붉은 불꽃 도광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천무의 검은 사파 장포를 그을렸다. 장포 안쪽에 덧대어진 미세 현철판갑(細玄鐵板甲)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살을 지져왔지만, 천무의 신체에 잠재된 화독 면역(火毒 免疫)이 수동적으로 작동했다. 붉은 불길이 몸에 닿는 순간, 심장 속 혈고가 그 열기를 탐욕스럽게 먹어 치우며 체온의 급격한 상승을 억제했다.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르고 옷자락이 타들어 갔지만, 뼈와 오장육부는 타지 않았다.
하지만 흡수된 화독이 단전에 쌓여 기경팔맥을 압박하자 가슴이 찢어질 듯한 통증이 다시 한번 천무의 전신을 덮쳤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내공의 균형이 깨져 전신 폭사할 것이 분명했다. 염화도인의 열풍이 너무 강해 품속의 독낭을 터뜨리는 독무 분사(毒霧 噴射)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독안개를 뿌려봐야 뜨거운 바람에 순식간에 흩어져 아군에게 역류할 뿐이었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끝내야 한다.’
천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혈맥탐지술(血脈探知術)을 전개했다. 귀와 머리 신경에 기공을 고도로 집중하자, 연무장의 시끄러운 화염 소리 너머로 염화도인의 미세한 기맥 흐름이 붉은 선으로 뇌리에 그려졌다.
쿵. 쿵. 쿵.
염화도인의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그가 쇠부채를 접고 숨을 크게 들이쉬며 화양성 진기를 단전으로 회수하는 찰나의 순간이 포착되었다. 불길을 뿜어낸 뒤 기류가 정체되는 단 일 일각의 틈.
천무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눈동자가 차가운 보랏빛 살기로 물들었다.
그는 축경공(蓄勁功)을 발동했다. 전신의 근육을 순간적으로 극한까지 수축시켜 힘을 압축했다. 깡마른 그의 체구가 순간적으로 바위처럼 단단해지며 폭발적인 근력을 내뿜었다. 발목 경맥에 압축된 내력을 폭발시키며, 천무는 불길이 소용돌이치는 화염의 중심부를 향해 정면으로 신형을 날렸다.
“미친놈이 불속으로 자살을 하는구나!”
염화도인이 비웃으며 쇠부채를 다시 펼치려 했다. 그러나 천무의 속도는 그의 예측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불길 속을 뚫고 들어오는 천무의 왼손 가죽 장갑이 열기에 타들어 가며 살가죽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지만, 통각이 마비된 천무는 그 고통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천무는 오른손에 쥔 부러진 강철검 파편에 무경교의 비전 초식인 묵혈참(墨血斬)의 기운을 실었다. 검붉은 사기(사기)가 날이 깨진 쇳조각 끝에 서리며 기이하고 불길한 광기를 뿜어냈다.
스화아악!
검은 사기의 도광이 염화도인의 화염 장막을 정면으로 찢어발겼다. 염화도인이 경악하며 거대한 철제 쇠부채로 앞을 막아섰지만, 축경공의 괴력과 묵혈참의 사기가 실린 부러진 강철검 파편은 무자비하게 쇠부채의 중앙을 강타했다.
콰아앙!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염화도인이 자랑하던 특제 철제 쇠부채가 단숨에 반으로 갈라져 허공으로 날아갔다. 부러진 검풍의 궤적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염화도인의 가슴팍을 사선으로 꿰뚫고 들어가 그의 단전에 박혔다.
푹!
“크, 크흑……!”
염화도인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그의 단전에서 요동치던 화양 진기가 천무의 부러진 강철검 파편을 타고 폭포처럼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심장 속 혈고 유충이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그 뜨거운 진기를 남김없이 들이켰다. 부러진 강철검 파편의 도신이 흡수한 열기로 인해 검붉은 불꽃을 머금으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염화도인의 육체는 순식간에 내공과 생명력을 빼앗겨 파리하게 말라갔다. 그의 입술이 바르르 떨리며 마지막 비명이 새어 나왔다.
“교, 교주님…… 독고진 단주가…… 너희를……”
염화도인의 collapsing한 몸이 뒤로 넘어지며, 연무장 정면에 세워져 있던 거대한 청동 종과 기둥을 덮쳤다. 그 기둥 안쪽에는 침입자를 대비해 설치된 적양표국의 마지막 비상 기관 경보 장치가 숨겨져 있었다.
두우우웅! 두우우웅! 두우우웅!
염화도인의 시신이 장치를 누르는 순간, 연무장 전체와 요새 사방으로 고막을 찢을 듯한 거대한 청동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밤하늘을 흔드는 굉음은 표국 전체의 비상사태를 알리는 경보였다.
천무는 달아오른 부러진 강철검 파편을 거두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전신의 경맥이 급격히 유입된 화양 진기로 인해 타들어 가는 듯한 내상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때, 연무장 지하 깊은 곳, 이글거리는 용암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적양로(적양로)의 철문 틈새로 불길한 붉은 안광이 번뜩이며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사부 사옹을 참수한 원흉이자 분타주인 독고진의 거대하고 잔혹한 기세가 지하에서부터 연무장 바닥을 뒤흔들며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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