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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추적자와의 검은 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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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의 우성고등학교 도서관 5층 멀티미디어실은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창밖으로 비치는 노을빛이 책장 사이로 길고 왜곡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낡은 컴퓨터 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세한 팬 소음만이 정적을 깨뜨릴 뿐이었다.


신우는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했다. 어제 뒷골목에서 서강우 패거리에게 얻어맞은 흔적이 교복 셔츠 아래에서 붉고 푸르게 타오르고 있었다. 다행히 오른팔은 멀쩡했지만,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갈비뼈 부근이 찌르는 듯이 아팠다. 모니터 화면에는 서강우의 학생부 조작을 위한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 대리 작성 파일이 띄워져 있었다.


강우가 던져준 데이터는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남의 탐구 보고서를 대충 짜깁기한 주제에 서울대 의대를 지망하겠다는 오만함이 행간마다 묻어났다. 신우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자판을 두드렸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강우의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면서, 기말고사 시험지에 정교한 오타를 심어 그 패거리를 한 번에 폭사시킬 ‘이중 유출의 함정’이 실시간으로 설계되고 있었다.


그때, 멀티미디어실의 낡은 목제 문이 열렸다. 가볍고, 날카로우며, 규칙적인 구두 굽 소리가 정막을 깨뜨렸다.


또각, 또각.


신우는 자판을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문을 닫고 들어와 안쪽에서 걸쇠를 걸어 잠그는 인물. 단정하게 묶은 포니테일 머리칼, 흐트러짐 없이 칼같이 다려 입은 우성고 교복 재킷, 그리고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지적이고 차가운 눈빛. 전교 3등이자 검사 지망생, 정아름이었다.


아름은 아무런 말도 없이 신우의 맞은편 책상으로 걸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두꺼운 황색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그 봉투를 신우의 키보드 바로 위에 툭 던졌다.


"전교 1등이 방과 후마다 여기서 열심히 하는 짓이 고작 일진 땜빵 셔틀이었어?"


아름의 목소리는 서늘했다. 조롱하는 듯한 어조였지만, 그 밑바닥에는 상대를 완전히 꿰뚫어 보고 있다는 확신이 깔려 있었다.


신우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완벽한 포커페이스 유지력’이 즉각 가동되었다. 뇌내 감정 스위치가 완전히 꺼지며, 요동치려던 심박수가 순식간에 분당 65회로 가라앉았다. 신우는 차분하게 안경을 치켜올리며 아름을 응시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난 담임 선생님이 부탁하신 교내 컴퓨터 정리 작업을 돕고 있을 뿐이야."


"거짓말은 서강우 앞에서나 해. 최신우."


아름은 서류 봉투의 지퍼를 열고 내부의 서류들을 신우의 코앞에 펼쳐 보였다. 맨 위에 놓인 것은 신우의 이름이 선명하게 찍힌 개인 은행 계좌 거래 내역서 사본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도현이 자살하기 직전까지 기록했던 비밀 일기장의 복사본들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대치동 아크로 독서실의 최강민 실장. 한 권당 수백만 원씩 받고 시험지 소스를 가공한 '예상 문제집'을 팔았더군. 서강우가 널 협박할 때 쓴 카드지?"


신우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으나, 그의 안면 근육은 여전히 대리석처럼 굳어 있었다. 그는 서류의 내용들을 뇌내 데이터베이스에 실시간으로 입력하며 아름의 다음 패를 분석했다.


"정아름. 네가 무슨 권리로 타인의 금융 정보와 사적인 일기장을 수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법적으로 이건 아무런 효력이 없어. 영장 없이 취득한 사적 증거는 위법수집증거배제원칙에 따라 법정에서 증거 능력을 상실하니까. 검사 지망생이라면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 정도는 알고 있겠지."


신우의 날카로운 반격에 아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흔들림 없는 미소였다.


"역시 전교 1등답네. 위기 상황에서도 법리부터 계산하는 태도, 아주 마음에 들어. 맞아. 이건 내가 사적으로 훔쳐낸 거라 공식 재판에서는 증거로 못 써. 하지만…… 학교 선도위원회나 교육청 신문고에 익명으로 투서하는 건 법적인 증거 능력이 필요 없지. 전교 1등 최신우가 시험지 유출범이라는 소문이 도는 순간, 네가 그토록 지키려던 전교 1등의 평판과 대학 진학 자격은 끝장이야."


아름은 상체를 신우 쪽으로 기울이며 속삭였다.


"무엇보다, 네 엄마가 입원해 있는 성모병원 인공신장실에도 소문이 나겠지. 자식이 시험지 도둑질해서 투석비를 대고 있었다고."


어머니 한혜숙의 이름이 나오자, 신우의 내면에서 억눌려 있던 이성이 폭발하듯 요동쳤다. 주먹을 쥔 손톱이 손바닥 살을 파고들어 붉은 핏방울이 맺힐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눈빛의 차가움을 유지했다. 여기서 흥분하는 것은 아름이 파놓은 심리적 함정에 완전히 빠지는 꼴이었다.


"……원하는 게 뭐야. 징계위원회에 고발해서 날 매장하는 거?"


"아니."


아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서류 더미 중에서 도현의 일기장 마지막 페이지 복사본을 신우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곳에는 신우가 그토록 외면하고 싶었던, 하지만 매일 밤 심장을 찢어발기던 도현의 진짜 고백이 적혀 있었다.


[신우의 가난을 안다. 신우가 어머니의 투석비 때문에 매일 밤 피눈물을 흘리며 문제집을 만드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그 문제집을 비싼 돈을 주고 샀다. 신우는 나쁜 애가 아니다. 진짜 나쁜 놈들은 내 노력을 짓밟고 나를 협박하는 서강우와 학교 어른들이다…….]


글자 하나하나가 신우의 안구에 박혀 들어왔다. 도현은 자신을 원망하며 죽은 것이 아니었다.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동정했고,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일부러 돈을 지불했던 것이었다. 신우의 숨통이 턱 막혔다. 포커페이스의 가면 아래로 뜨거운 자책감이 흘러넘치려 했다.


"도현이는 널 원망하지 않았어. 오히려 널 지키고 싶어 했지."


아름의 눈빛이 누그러지며 깊은 슬픔과 분노로 변했다.


"내가 화나는 건 바로 그거야. 진짜 가해자인 서강우와 그 배후의 어른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피해자인 도현이는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는데, 왜 너 같은 천재가 그 쓰레기들의 족쇄에 묶여 대리 작성이나 해주고 있어야 하지?"


신우는 안경을 벗고 마른세수를 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서강우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아? 우성학원 재단 이사회야. 학교 전체가 썩어 있어. 나 혼자 힘으로는 그 장벽을 넘을 수 없어."


"그래서 내가 왔잖아."


아름이 서류철을 덮으며 단호하게 선언했다.


"우리 아버지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야. 지금 검찰 내부에서 우성고 이사회와 연계된 대치동의 거대 입시 카르텔, '알파반'을 비밀리에 내사 중이셔. 하지만 기득권의 사법 로비 때문에 결정적인 내부 물증을 잡지 못해 수사가 막혀 있는 상태지."


아름은 신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흔들림 없는 법조인의 정의관과 차가운 추적자의 살기가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최신우. 넌 서강우의 세특을 대리 작성해 주는 척하면서, 학교 행정실과 이사회가 성적을 조작하는 내부 디지털 시스템의 구체적인 물증과 경로를 확보해. 난 법리적인 방패가 되어 이사회의 압박으로부터 너와 네 어머니를 지키고, 네가 가져온 증거들을 사법적으로 완벽한 무기로 가공하겠어."


그것은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서로의 가장 치명적인 비밀과 무기를 교환하는, 피할 수 없는 검은 공조의 제안이었다. 신우는 아름의 지적이고 냉철한 두뇌가 자신을 보호해 줄 가장 확실한 사법적 방패이자, 카르텔을 칠 수 있는 단 하나의 칼날임을 직감했다.


아름은 천천히 오른손을 내밀었다. 창밖의 붉은 노을빛이 그녀의 하얀 손등 위로 길게 내려앉았다.


"서강우 배후에 우리 아버지가 쫓는 대치동 알파반이 있어. 넌 덫이 되고, 난 사냥꾼이 되는 거야."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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