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거래와 족쇄
반지하 방의 낡은 합판 문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거칠게 흔들렸다. 쿵, 쿵, 쿵! 어둠이 짙게 깔린 골목길의 냉기가 문틈을 타고 반지하 방 안으로 사정없이 밀려들었다. 쇳소리가 섞인 걸걸하고 거친 목소리가 유리를 흔들었다.
"야! 최진만 사위든 아들이든 안에 누구 없어? 이자 밀린 지가 언젠데 문을 걸어 잠그고 지랄이야! 당장 안 열어?"
사채업자 마두식이 보낸 하수인이 분명했다. 좁은 방 안에서 컴퓨터 모니터의 파란 불빛을 받고 있던 신우와 윤석은 서로를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윤석의 얼굴은 핏기가 완전히 가신 채 하얗게 질려 있었다. 신우는 재빨리 윤석의 노트북 전원을 강제로 내리고, 해독된 도현의 USB를 자신의 교복 안주머니 깊숙한 곳에 찔러 넣었다. 손끝에 닿는 금속의 차가운 감촉이 심장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윤석아, 뒤쪽 창문으로 나가. 내가 어떻게든 시간 끌 테니까."
신우의 낮고 단호한 속삭임에 윤석은 떨리는 손으로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지하 특유의 작은 환기창 틈새로 윤석이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신우는 낡은 문걸쇠를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들이닥친 거친 욕설과 멱살을 쥐어짜는 위협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신우는 겨우 그들을 돌려보냈다. 빚독촉꾼들이 떠난 자리에는 차가운 곰팡이 냄새와 가난의 비참함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어머니 한혜숙의 성모병원 투석비 미납금 2,450,000원. 그 숫자가 신우의 목을 죄는 밧줄처럼 느껴졌다.
***
다음 날 하굣길. 도곡동 학원가 사거리는 밤 10시가 넘어가자 학원 버스들과 학부모들이 몰고 온 외제 차들로 숨이 막힐 듯 혼잡했다. 도로 위를 가득 채운 붉은색 테일램프의 불빛이 아스팔트 위의 매연과 섞여 기괴하고 음산한 붉은 안개를 만들어냈다. 거대한 타워팰리스의 실루엣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고, 그 화려한 불빛은 신우가 걷고 있는 어두운 골목길을 잔인하게 분할하고 있었다.
신우는 가방끈을 꽉 쥔 채 인파 속을 걸었다. 장례식장에서 서강우 패거리에게 얻어맞은 옆구리가 걸을 때마다 찌르는 듯한 통증을 뿜어냈다. 진통제 기운마저 떨어져 가고 있어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덩치 큰 그림자 하나가 신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피어싱을 한 귀와 삐딱하게 올린 입매, 서강우의 오른팔이자 교내 폭력 행동대장인 오동석이었다.
"어이, 전교 1등. 어디 바쁘게 가냐? 공부하러 가냐?"
오동석의 거친 손이 신우의 어깨를 툭 밀쳤다. 신우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찰나, 가로등이 깨져 어두컴컴한 도곡동 학원가 뒷골목 안쪽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단추를 서너 개 풀어헤친 명품 교복 셔츠, 포마드로 말끔하게 넘겨 올린 머리칼, 그리고 상대를 벌레 보듯 내려다보는 오만한 눈빛. 서강우였다.
"최신우. 너 요즘 쥐새끼처럼 도현이 사물함 주변을 뽈뽈거리고 돌아다니더라?"
강우의 손가락 사이에서 금장 라이터가 규칙적인 금속음을 내며 열리고 닫혔다. 챙, 챙. 그 서늘한 소리가 가뜩이나 예민해진 신우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내렸다.
신우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으나, 오동석이 이미 골목 입구를 완벽히 차단한 상태였다. 벽면을 타고 흐르는 눅눅한 물비린내와 쓰레기 썩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완전히 고립된 공간이었다.
"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해, 서강우."
신우는 심호흡을 하며 '완벽한 포커페이스 유지력'을 가동했다. 요동치려던 심박수가 순식간에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안경 너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하지만 강우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쯧 차더니, 순식간에 신우의 교복 깃을 움켜잡고 붉은 벽돌벽으로 거칠게 밀쳐버렸다.
쿵!
등뒤에서 전해지는 둔탁한 충격과 함께 옆구리의 통증이 비명을 질렀다. 신우는 신음을 삼키기 위해 어금니를 악물었다.
"할 말? 야, 전교 1등 대가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서 어쩌냐? 내가 지금 한가하게 노가리나 까자고 너를 여기로 불렀겠어?"
강우는 주머니에서 종이 뭉치 몇 장을 꺼내 신우의 뺨을 슬슬 문질렀다. 거친 종이의 질감이 피부를 자극했다. 강우가 내민 종이를 보는 순간, 신우의 이성적인 뇌가 일순간 정지했다. 그것은 최신우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적힌 개인 은행 계좌 거래 내역서였다.
"최신우 제작, 내신 고득점 예상 문제집. 최강민 실장 통해서 한 권당 수백만 원씩 받고 팔았더라?"
강우가 종이 한 장을 신우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그곳에는 신우가 가난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교사들의 출제 성향을 가공해 만들었던 비밀 문제집의 유통 경로와 이체 내역이 붉은색 펜으로 선명하게 동그라미 쳐져 있었다.
"이거 말이 좋아 예상 문제집이지, 실제 시험지 유출 소스를 가공해서 세탁한 거잖아. 전교 1등 최신우가 알고 보니 추악한 시험지 도둑이었다니. 이거 교육청이랑 경찰에 넘어가면 네 인생은 어떻게 될까?"
오동석이 옆에서 키득거리며 신우의 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가방이 열리며 도현의 일기장 모서리가 살짝 드러났지만, 신우는 발끝으로 가방을 슬며시 가리며 강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머릿속의 톱니바퀴들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경우의 수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서강우는 지금 나를 당장 무너뜨리려는 게 아니다. 내 약점을 쥐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이용하려는 거다. 여기서 부인하거나 저항하는 것은 자멸이다.'
"원하는 게 뭐야."
신우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표정은 미라처럼 고요했다. 강우는 신우의 빠른 상황 판단이 마음에 든다는 듯 뺨을 가볍게 툭툭 쳤다.
"간단해. 이번 기말고사에서 나와 내 패거리들의 학생부 종합전형 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기록을 대리 작성해라. 네 그 비상한 대가리로 서울대 입학사정관들이 보면 까무러칠 만한 완벽한 스펙을 만들어내란 말이야. 그리고…… 수학이랑 화학 시험지 정답도 시험 전날 유출해서 나한테 넘겨."
"시험지 유출은 학교 보안 시스템 때문에 불가능해."
"그건 네 사정이고, 유출범 새끼야."
강우의 눈빛이 잔혹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신우의 귓가로 얼굴을 밀착시키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네 엄마 성모병원에서 장기 투석 대기 중이라며? 병원비 미납금 때문에 당장 다음 주면 투석 순번에서 밀려난다던데, 네가 퇴학당하거나 감옥에 가면 네 엄마는 차가운 병실 바닥에서 어떻게 될까? 응? 내가 이사장 삼촌한테 말 한마디만 하면 네 엄마 투석 대기권 따위는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시킬 수 있어."
어머니 한혜숙. 신우의 유일한 도덕적 한계선이자 정신적 지주가 언급되는 순간, 신우의 포커페이스 아래로 거대한 균열이 일어났다. 주먹을 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이 고통과 굴욕을 차갑게 억눌렀다. 이 족쇄를 받아들이는 척해야만, 강우의 배후에 있는 우성학원 이사회의 성적 조작 시스템 내부로 침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터였다.
"……알았어. 세특 초안부터 작성해서 보낼 테니까, 엄마는 건드리지 마."
신우가 고개를 낮추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강우는 만족스러운 듯 껄껄 웃으며 신우의 어깨를 툭툭 치고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오동석 역시 침을 뱉으며 그 뒤를 따랐다.
어둠과 침묵만이 남은 골목길. 신우는 바닥에 내팽개쳐진 책가방을 주워 올렸다. 흙먼지를 털어내는 그의 손끝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그의 눈빛은 기괴할 정도로 차갑고 날카로웠다.
'서강우, 네가 나한테 직접 유출을 요구했지.'
신우의 머릿속 가상 칠판 위에 거대한 역공 시나리오가 실시간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강우에게 넘겨줄 시험지에 미세한 수학적 오타와 오류를 의도적으로 심어두어, 강우 패거리가 부정행위를 저질렀음을 스스로 완벽하게 증명하게 만드는 '이중 유출의 함정'.
신우는 부러진 연필을 손에 쥔 채, 어둠 속에서 차갑게 독백했다.
"네가 채운 그 족쇄가, 결국 네 목을 자르는 단두대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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