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의 장벽과 드러나는 조작
또각, 또각.
차가운 정적을 깨부수며 다가오는 구두 굽 소리는 기괴할 정도로 규칙적이었다. 2학년 3반 교실 뒷문 바로 앞,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린 최신우의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요동쳤다. 장례식장에서 서강우 패거리에게 얻어맞은 옆구리가 비명을 질렀지만, 신우는 터져 나온 신음을 이빨로 짓눌렀다. 지금 들키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도현의 사물함에서 빼낸 일기장과 USB가 가방 안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발자국 소리가 마침내 2학년 3반 문고리 앞에서 딱 멈춰 섰다. 신우는 ‘초고속 수리적 연산력’을 머릿속으로 쥐어짜며 탈출 경로를 계산했다. 뒷문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복도의 초록색 비상구 불빛, 그 광원의 각도와 그림자의 길이를 대조했다. 문이 열리는 각도는 안쪽으로 90도. 문이 열리는 찰나의 1.2초 동안 저 날카로운 구두 소리의 주인공이 시선을 거둘 사각지대는 오직 교실 창문 밖 배수관 뒤편뿐이었다.
철컥.
문고리가 돌아가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정적을 찢었다. 신우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멍든 옆구리에서 불길 같은 통증이 치솟았지만, 이빨을 악물고 창틀을 넘어 밖으로 몸을 던졌다. 어둠이 짙게 깔린 우성고 본관 외벽, 녹슨 철제 배수관을 왼팔로 감싸 쥐며 하반신을 허공에 띄웠다.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복도의 미세한 불빛이 창문을 타고 흘러나왔다. 신우는 배수관 뒤편의 좁은 틈새에 등판을 밀착시킨 채 숨을 죽였다. 창문 너머로 희미한 실루엣이 보였다. 단정하게 묶은 포니테일 머리칼, 우성고 교복 재킷을 칼같이 다려 입은 뒷모습. 전교 3등, 정아름이었다.
그녀는 손에 든 소형 플래시로 도현의 사물함 주변을 비추었다. 사물함 앞을 가로막은 노란색 경찰 통제 테이프를 가만히 응시하던 아름은, 이내 무언가를 찾는 듯 바닥을 훑었다. 신우는 긴장으로 침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침투 흔적 은폐술로 테이프의 접착면을 완벽히 복원해 두었기에 아름은 이상을 감지하지 못한 듯했다. 그녀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교실 문을 닫고 나갔다.
또각, 또각.
날카로운 구두 소리가 멀어지자마자 신우는 배수관을 타고 미끄러지듯 화단으로 내려앉았다. 젖은 흙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그는 가슴을 움켜쥐고 거친 숨을 토해냈다. 정아름이 왜 이 심야에 도현의 사물함을 뒤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학교 내부에서 도현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자는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신우는 가방을 단단히 고쳐 메고 우성고의 어두운 담벼락을 넘어 도망쳤다.
***
다음 날 밤, 도곡동 타워팰리스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 노후 빌라촌. 신우의 반지하 방은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차가운 정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낮게 깔린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바닥과 흙먼지가 보였고, 저 멀리 솟아오른 기득권의 상징인 초고층 아파트의 화려한 네온사인이 반지하의 어둠을 기괴하게 분할하고 있었다.
방 한구석, 낡은 책상 위에 올려진 구형 컴퓨터 모니터의 파란 불빛이 두 소년의 얼굴을 비추었다. 신우의 옆에 앉은 소년은 우성고 컴퓨터 동아리의 숨은 천재, 이윤석이었다. 굽은 어깨에 두꺼운 안경을 치켜올린 윤석은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성능 커스텀 노트북의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 노트북 옆에는 도현의 사물함 이중 바닥에서 회수한 cold한 금속 재질의 16GB USB 메모리가 꽂혀 있었다.
“신우야, 이거 장난이 아니야.”
윤석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안경 렌즈에 복잡한 소스 코드의 폭포가 파랗게 반사되었다.
“보통 보안이 아니야. 군사용 암호화 프로토콜인 AES-256이 걸려 있어. 게다가 락을 강제로 풀려고 무차별 대입 공격을 시도하면 내부 데이터를 스스로 포맷해 버리는 자체 소멸 킬스위치가 작동하게 설계되어 있어. 이미 잘못된 패스워드 입력 시도가 2회 누적되어 있어. 앞으로 기회는 단 세 번뿐이야. 세 번 틀리면 이 USB는 그냥 깡통이 돼.”
식은땀이 윤석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신우는 책상 위에 놓인 도현의 비밀 일기장을 펼쳤다. ‘완전 기억 능력’을 발동하여 도현이 남긴 필적들을 머릿속 가상 칠판에 펼쳐놓고 대조하기 시작했다.
‘도현이는 지독할 정도로 꼼꼼하고 규칙적인 애였어. 그런 애가 아무런 힌트도 없이 암호를 걸지는 않았을 거다.’
신우는 일기장의 4월 12일 자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도현이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고 좌절했던 날의 기록이었다.
[나를 밀어낸 0.1%의 수식. 그 차가운 숫자가 내 숨을 조인다. 신우 너의 그 완벽한 답안지가 원망스러우면서도, 나를 옥죄는 이 가짜 성적표를 찢어발기고 싶다.]
“나를 밀어낸 0.1%의 수식……”
신우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머릿속의 톱니바퀴가 폭발적인 속도로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성고등학교의 상대평가 내신 시스템, 그리고 상위 0.1%를 결정짓는 통계학적 공식.
“윤석아, 우성고 내신 성적 산출 프로그램의 표준편차 알고리즘 기억나?”
“어? 어, 기억하지. 교육청 나이스 시스템이랑 연동된 표준정규분포 곡선 Z-값 공식이잖아.”
“도현이는 전교 1등인 나를 밀어내고 0.1%의 벽을 넘고 싶어 했어. 하지만 이사회가 설계한 가짜 성적표 때문에 2등으로 밀려났지. 도현이가 말한 ‘나를 밀어낸 0.1%의 수식’은 단순한 감상적 표현이 아니야. 우성고 2학년 중간고사 수학 시험의 상위 0.1%에 해당하는 정규분포 Z-값 상수 수식이야.”
신우는 연필을 쥐고 낡은 이면지 위에 수식을 써 내려갔다.
$Z = (X - \mu) / \sigma$
중간고사 수학 과목의 평균점수, 표준편차, 그리고 전교 1등인 자신의 점수 100점을 대입한 Z-값의 최종 소수점 8자리 숫자. 신우의 머릿속에서 방대한 통계 데이터가 고속으로 연산되었다.
“3.09023281. 이 숫자를 입력해 봐.”
“정말이야? 틀리면 자체 소멸 킬스위치가……”
“도현이는 자신의 수학적 자존심을 암호로 걸어둔 거야. 나 외에는 아무도 풀 수 없도록. 입력해.”
신우의 단호한 목소리에 윤석이 마른침을 삼키며 키보드의 엔터키를 눌렀다.
*띠링.*
모니터 화면의 붉은색 잠금 표시가 일순간 녹색으로 변하며, 폴더 트리 구조가 아래로 길게 펼쳐졌다. 해독 성공이었다. 윤석은 입을 벌린 채 신우를 바라보았고, 신우는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쥐었다.
“성공했어…… 신우 너 진짜 미친놈이구나.”
윤석이 경탄했지만, 신우는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즉각 ‘디지털 포렌식 데이터 마이닝’ 툴을 가동하여 USB 내부의 엑셀 시트와 메타데이터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폴더 안에는 우성고등학교의 공식 내신 성적 관리 시스템인 나이스(NEIS)의 백업 원본 로그 파일들이 들어있었다. 신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데이터 시트를 스크롤했다. 학생들의 이름, 학번, 그리고 중간고사 최종 점수들이 소수점 단위까지 정렬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현의 이름이 적힌 행을 찾아냈다.
[학번: 20415, 이름: 임도현, 과목: 수학Ⅰ, 원점수: 100, 수정 점수: 92]
“이게…… 뭐야?”
윤석이 모니터 화면으로 상체를 바짝 밀착시켰다.
“수정 전 원점수가 100점인데, 수정 후 점수가 92점으로 되어 있어. 비고란에 수정 시간은…… 중간고사 성적 마감일 당일 오후 6시 23분.”
신우의 심장이 차갑게 식어내렸다. 도현이는 시험을 못 봐서 2등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원래 만점이었다. 전교 1등인 신우와 동률이어야 했다. 하지만 성적 마감 직전, 누군가 시스템에 인위적으로 침투해 도현의 점수를 8점이나 깎아내려 강제로 2등으로 밀어버린 것이었다.
“조작이야.”
신우의 목소리에서 핏기가 가셨다.
“도현이는 자기가 만점을 받은 줄 알고 있었어. 그런데 성적표에는 92점이 찍혀 나왔으니 미칠 노릇이었겠지.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을 거고, 서강우 패거리는 이걸 빌미로 도현이가 내가 만든 문제집을 사서 부정행위를 하려다 걸려 점수가 깎인 거라고 협박했을 거야. 도현이의 자살은…… 단순한 우울증이 아니라 완벽하게 기획된 타살이었어.”
신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저질렀던 시험지 판매 행위가, 이 추악한 성적 조작 카르텔이 도현을 옭아매고 파멸시키는 완벽한 사법적 족쇄로 사용되었다는 뼈아픈 진실이 그의 영혼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신우야, 이것 좀 봐.”
윤석이 마우스 포인터로 수정 로그의 메타데이터 세부를 가리켰다.
“성적을 수정한 계정의 IP 주소가 나와 있어. `192.168.10.5`…… 이거 외부 해킹 IP가 아니야. 우성고등학교 행정실 내부망, 그것도 행정실장의 메인 서버 컴퓨터 주소야.”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쿵, 쿵, 쿵.
반지하 방의 얇은 나무문이 부서질 듯한 거친 노크 소리가 정막한 방 안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문 너머 어둠 속에서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