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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한 영정 앞의 위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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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멀티미디어실에서 느꼈던 그 서늘한 그림자는 다행히 순찰을 돌던 야간 경비원 박만길의 랜턴 불빛이었다. 신우는 유서 사본과 자외선 램프를 가방 깊숙이 쑤셔 넣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공포를 억누르며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겨 학교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신우의 무거운 발걸음이 닿은 곳은 도곡동 성모병원 지하 장례식장이었다.


지하 2층, 공기마저 차갑게 얼어붙은 듯한 그곳. 화려한 화환들이 복도 양옆으로 끝없이 늘어선 다른 빈소들과 달리, 복도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한 임도현의 빈소는 기괴할 정도로 정막했다. 입구에 놓인 조화는 학교 측에서 형식적으로 보낸 것 단 두 개뿐이었다. 조문객의 발길이 완전히 끊긴 상가 내부에는 타는 향 냄새와 나직한 흐느낌만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신우는 닳아 헤진 교복 소매를 매만지며 빈소 안으로 들어섰다. 영정 사진 속 도현이는 평소처럼 동그란 안경을 쓴 채 맑게 웃고 있었다. 그 영민한 눈동자가 마치 신우를 똑바로 응시하며 ‘왜 그랬어?’라고 묻는 것만 같아, 신우는 가슴이 턱 막혀 숨을 쉴 수 없었다.


“도현아…….”


빈소 한구석에서 상복을 입은 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앉아 있는 도현의 어머니 송지원과, 피로와 슬픔으로 충혈된 눈을 한 아버지 임진우가 보였다. 임진우의 투박하고 갈라진 손은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영정 사진의 모서리만 쉴 새 없이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 비통한 광경을 마주한 순간, 신우의 머릿속에는 도현의 유서 뒷면에 새겨져 있던 붉은 압인 문장이 다시금 선명하게 떠올랐다.


‘전교 1등의 시험지 때문에 내가…… 서강우가 그걸로 나를…….’


자신이 가난을 핑계로, 어머니 한혜숙의 투석 치료비를 벌겠다는 비겁한 합리화로 팔아치웠던 그 예상 문제집. 그것이 도현을 죽음의 벼랑 끝으로 밀어 넣은 잔인한 올가미였다는 사실이 신우의 심장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신우는 영정 앞에 국화꽃을 바치며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이마를 대고 절을 올리는 동안, 눈물이 시멘트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참회는 소리 없는 오열 속에서만 허락되었다. 신우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맹세했다. 자신이 저지른 도덕적 죄악을 씻기 위해서라도, 도현을 죽음으로 몬 교내의 추악한 카르텔을 제 손으로 완전히 무너뜨리겠노라고.


그때, 빈소 입구에서 구두 굽 소리와 함께 위선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이를 어째…… 그 영리하던 녀석이 대체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단 말입니까.”


우성고등학교 교장 배종식이었다. 말끔하게 빗어 넘긴 백발에 고급 양복을 차려입은 그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며 빈소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교무부장 김철수를 비롯한 학교 행정실 간부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뒤따르고 있었다.


배종식은 영정 앞에 가식적인 분향을 마친 뒤, 임진우의 거친 손을 맞잡았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뱀처럼 차갑고 계산적이었다.


“아버님,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하지만 도현이가 평소 심각한 학업 스트레스와 개인적인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보건실 기록이 있더군요. 경찰 조사도 단순 자살로 종결되는 분위기이니, 학교 측에서도 도현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 조용히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우울증이라니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임진우가 억장이 무너지는 듯 소리쳤다.


“우리 도현이는 매일 밤새워 공부하던 성실한 아이였습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요! 서랍 속 일기장도, 휴대폰도 경찰이 대충 훑고 가버렸는데…… 학교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아닙니까!”


“허허, 아버님. 진정하십시오.”


배종식은 부드러운 미소 뒤로 싸늘한 살기를 띠며 슬며시 하얀 봉투를 임진우의 손에 쥐여주려 했다.


“도현이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남은 가족들의 삶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살아남은 아이들입니다. 단순 일탈로 종결짓는 것이 모두에게 가장 평화로운 길입니다.”


그것은 명백한 회유이자 협박이었다. 신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올 것 같았지만, 전교 1등의 차가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교장의 위선을 머릿속 ‘인과 관계 맵’에 정밀하게 기록했다. 교장은 도현의 죽음 뒤에 숨겨진 학폭과 성적 조작 카르텔의 실체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장례식장 입구의 닫힌 철문이 거칠게 걷어차이며 열렸다.


“아, 존나 칙칙하네. 도현이 새끼, 갈 때도 참 초라하게 가네.”


교복 셔츠 단추를 풀어헤치고 포마드로 머리를 올린 서강우가 오동석, 최현태를 거느리고 빈소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의 몸에서는 짙은 담배 냄새와 술 냄새가 풍겼다. 강우는 영정 사진을 힐끗 보더니 껌을 씹으며 비열하게 웃었다.


“서강우…… 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임진우가 분노로 몸을 떨며 일어서려 했으나, 슬픔에 지쳐 다시 바닥으로 쓰러졌다. 강우는 눈 하나 깜짝 않고 임진우를 내려다보며 혀를 쯧쯧 찼다.


“아저씨, 자식 교육 똑바로 시키지 그랬어요. 멘탈이 그렇게 개복치 같아서 사회 어떻게 살려고 뛰어내린대요? 아, 맞다. 도현이 새끼가 쓰던 세컨드 폰 어디 있어요? 경찰이 안 가져갔으면 내가 좀 찾아야겠는데.”


“이 악마 같은 놈들…… 당장 나가!”


송지원이 오열하며 강우의 다리를 붙잡으려 하자, 오동석이 거칠게 그녀를 밀쳐냈다. 빈소 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했다. 배종식 교장과 교사들은 이 참혹한 광경을 보면서도, 이사장의 조카인 서강우의 폭력을 묵인한 채 방관하고 있었다.


신우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서서 서강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더러운 입 닥치고, 당장 여기서 나가라. 서강우.”


신우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지만, 빈소 안의 공기를 일격에 얼려버릴 만큼 날카로웠다. 강우는 전교 1등인 신우가 자신에게 정면으로 반항하는 것을 보고 기가 찬 듯 실소를 터뜨렸다.


“어라? 전교 1등 최신우잖아? 공부만 하던 범생이 새끼가 갑자기 정의로운 척은 존나게 하네. 야, 너 나랑 얘기 좀 하자.”


강우의 눈빛에 잔인한 살기가 감돌았다. 그가 턱짓을 하자, 거구의 최현태와 오동석이 신우의 양팔을 뒤에서 강력하게 꺾어 잡았다. 신우는 신체적인 무력 면에서는 평범한 고등학생에 불과했기에, 그들의 압도적인 완력 앞에 저항할 수 없었다.


“이거 놓아!”


“닥치고 따라와, 새끼야.”


그들은 신우를 질질 끌고 빈소 밖 복도를 지나, 장례식장 가장 안쪽의 외진 지하 화장실로 강제로 인계했다. 화장실 문이 닫히고, 안쪽에서 자물쇠가 걸리는 금속성 마찰음이 무겁게 울려 퍼졌다.


퍽!


문이 잠기자마자 서강우의 무자비한 발차기가 신우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신우는 둔탁한 비명과 함께 차가운 타일 바닥 위로 쓰러졌다. 늑골 부근에서 뼈가 삐걱거리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신우가 신음하며 숨을 고르기도 전에, 오동석이 신우의 교복 깃을 잡아채 세면대 거울 앞으로 강제로 끌어올렸다.


“야, 최신우. 전교 1등 대가리가 그렇게 좋으면 상황 파악을 빨리 해야지.”


서강우가 다가와 신우의 안면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가격했다. 고개가 돌아가며 입술이 터져 붉은 피가 세면대의 하얀 도기 위로 튀었다. 머릿속이 핑 도는 아찔한 고통 속에서도, 신우는 이를 악물고 눈동자의 초점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는 ‘완벽한 포커페이스 유지력’을 가동했다. 겉으로는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었지만, 그의 뇌세포는 폭력의 고통을 배제한 채 차갑고 기계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서강우가 왜 이 시점에 도현이의 장례식장까지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가? 왜 교장마저 그의 폭력을 방조하는가? 그리고 왜 도현이의 세컨드 폰의 행방에 집착하는가?’


답은 하나였다. 서강우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도현이 자신들의 협박과 가혹행위, 그리고 성적 조작 청탁의 직접적인 대화 기록을 그 휴대폰에 남겨두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 폰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이사장 조카라는 철옹성 같은 방패막이도 한순간에 깨질 것임을 강우는 직감하고 있었다.


강우는 신우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거울에 이마를 짓눌렀다.


“도현이 새끼 사물함 열쇠, 네가 가져갔지? 그 새끼가 죽기 전에 너한테 무슨 말을 남겼어? 폰 어디 있냐고, 이 새끼야!”


신우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피투성이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공포는 없었다. 오직 차가운 이성과 뼈아픈 죄책감이 분노의 불꽃으로 타오를 뿐이었다. 신우는 일부러 호흡을 늦추며, 행동 심리학적으로 강우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을 포착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이 새끼가 끝까지 오리발을 내미네? 도현이 새끼가 뛰어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통화한 기록을 우리가 확인했어.”


강우가 신우의 귓가로 얼굴을 바짝 밀착시켰다.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열한 숨결과 함께,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신우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도현이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전교 1등 너더라, 최신우? 너희 둘이 무슨 개수작을 부렸는지 다 불어라. 안 그러면 네 엄마가 누워 있는 병실 산소호흡기 전원선이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니까.”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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