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회의 그림자와 꺾인 나침반
교실 창문을 넘어 복도로, 그리고 운동장 너머 급식실까지 퍼져나간 파열음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성고등학교라는 견고한 기득권의 성벽에 균열을 내는 첫 번째 폭탄이었다.
전교생의 스마트폰에서 동시에 울려 퍼진 서강우의 가혹행위 자백 음성은 순식간에 학내를 마비시켰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액정 화면을 바라보며 경악과 수군거림을 멈추지 못했고, 교사들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교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 누구도 감히 목소리를 높여 상황을 통제하려 하지 못했다. 폭로의 파괴력이 그만큼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도서관 5층 멀티미디어실의 좁은 창틀 너머로 이 광경을 묵묵히 내려다보는 최신우의 시선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윽…….”
신우는 반사적으로 오른쪽 어깨를 감싸 쥐었다. 별관 3층 난간에서 2층 발코니로 낙하할 때 가해진 충격 탓에, 하얗게 감싸인 석고 깁스 안쪽에서 뼈를 깎는 듯한 통증이 다시금 치솟았다. 왼쪽 발목 역시 가벼운 염좌로 인해 디딜 때마다 욱신거렸고, 서강우 패거리에게 얻어맞은 갈비뼈 부근은 숨을 크게 들이쉴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뿜어냈다.
하지만 신우는 신체적 고통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경 너머로 빛나는 그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명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 ‘인과 관계 맵’은 이미 다음 단계를 향해 빠르게 톱니바퀴를 굴리는 중이었다. 서강우의 폭로 음성이 터졌으니, 이사회와 학부모회는 자신들의 치부를 덮기 위해 상상 이상의 무자비한 역공을 가해올 것이 분명했다.
그 예측은 단 15분도 지나지 않아 현실로 드러났다.
우성고등학교 정문 너머로 육중한 검은색 세단 두 대가 미끄러지듯 진입했다. 최고급 제네시스 G90과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차 문이 열리며 내린 인물들은 교사들이나 일반 방문객이 아니었다. 한강건설의 대표이자 서강우의 부친인 서종식, 그리고 우성고 학부모회 부회장이자 정아름의 어머니인 이미옥이었다.
완벽하게 세팅된 단발머리에 화려한 명품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한 이미옥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싸늘한 살기를 품은 채 본관 교무실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오만한 미소 뒤에 감춰진 위선적인 눈빛은 우성고 전체를 자신들의 사유지처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같은 시각, 정아름은 교내 중앙 현관 복도 한구석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에 뜬 우성대숲의 음성 파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신우와 함께 목숨을 걸고 탈환한 도현의 유서 스마트폰 속 녹취록. 그것이 세상에 빛을 보았다는 해방감도 잠시, 아름의 등 뒤로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정아름.”
낮고 품위 있는 척하지만, 뼛속까지 시린 분노가 서린 목소리. 아름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어머니 이미옥이 서 있었다.
“엄마……? 이 시간에 어떻게……”
“입 닥치고 따라 나와.”
이미옥은 대답 대신 아름의 손목을 가차 없이 움켜잡았다. 명품 가죽 장갑을 낀 이미옥의 악력은 가냘픈 아름의 손목 뼈를 으스러뜨릴 듯 강하게 압박했다. 주변을 지나던 학생들이 경악하며 시선을 던졌지만, 이미옥은 개의치 않았다. 그녀에게 우성고의 일반 학생들은 자신들의 발밑을 구르는 먼지에 불과했으니까.
“이거 놓으세요, 엄마! 사람들이 보잖아요!”
아름이 버둥거렸지만 이미옥은 차가운 침묵을 유지한 채 그녀를 정문에 대기 중이던 벤츠 S클래스 뒷좌석으로 밀어 넣었다. 아름이 몸을 돌려 차 문을 열고 탈출하려 했으나, 둔탁한 금속음과 함께 ‘차일드 락(Child Lock)’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사방이 가죽과 방음벽으로 차단된 밀실. 엔진의 미세한 진동 소리만이 흐르는 기괴한 정적 속에서 이미옥이 조수석에서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찰개액!
밀폐된 차 안을 찢는 듯한 마찰음과 함께 아름의 고개가 왼쪽으로 꺾였다. 이미옥의 가죽 장갑이 아름의 하얀 뺨을 사정없이 후려친 것이었다. 아름의 입술 끝이 터지며 붉은 피가 흘러내렸고, 뺨은 순식간에 벌겋게 부어올랐다.
“더러운 년. 감히 네가 누구 돈으로 공부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데, 이딴 짓을 벌여?”
이미옥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지만, 눈빛은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했다. 그것이 강남 상류층이 지닌 특유의 냉혈한 위선이었다.
“엄마가…… 어떻게 알아?”
아름이 떨리는 손으로 뺨을 감싸 쥐며 물었다. 눈물이 고인 눈망울로 어머니를 응시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우성학원 이사회가 바보인 줄 아니? 우성대숲의 트래픽 우회 경로를 박형준 팀장이 역추적했어. 비록 가상 서버 IP는 소거되었지만, 도서관 멀티미디어실 근처에서 네 스마트 기기가 최종 동기화된 흔적이 포착됐다더구나. 그리고 서강우의 비밀 서랍을 건드릴 수 있는 인물이 교내에 너와 그 가난뱅이 전교 1등 최신우 놈 말고 또 누가 있겠어?”
이미옥은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아름의 무릎 위로 툭 던졌다. 단정하게 인쇄된 그 서류의 제목은 ‘지방 외국어고등학교 강제 전학 동의서’였다.
“네 아버지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야. 가문의 명예와 네 아버지의 차기 검사장 승진 가도에 흠집을 내는 짓은 그 누구도 용납 못 해. 더군다나 이사장의 조카인 서강우를 공격해? 네가 법조인이 되겠다는 그 거창한 위선 때문에 우리 집안 전체를 파멸로 밀어 넣을 작정이었니?”
“위선이 아니에요!”
아름이 소리쳤다. 그녀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검사 지망생으로서의 도덕적 정의관이 끓어올랐다.
“서강우는 도현이를 협박해서 죽음으로 몰고 간 범죄자예요! 그리고 학교 이사회는 그걸 은폐하기 위해 성적을 조작하고 가난한 아이들의 생기부를 갈취해 왔고요! 법률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걸 보고도 침묵하라는 건가요?”
“닥쳐!”
이미옥이 다시 한번 아름의 어깨를 거칠게 밀쳤다.
“정의? 법률? 그딴 건 힘없는 서민들이나 믿는 환상이야! 진짜 법은 기득권의 자산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방패막이에 불과해. 네가 누리는 그 품위 있는 방, 대치동의 고액 컨설팅, 매달 수백만 원씩 들어가는 과외비가 다 어디서 나오는 줄 알아? 바로 그 카르텔의 비호 아래서 나오는 돈이야!”
이미옥은 차창 밖 우성고 교정을 싸늘하게 응시했다.
“최신우라는 그 가난뱅이 쥐새끼와 어울려 다니며 정의 코스프레를 하더니 정신이 나갔구나. 그 녀석 어머니가 도곡 성모병원에서 만성 신부전증으로 하루하루 투석 받으며 연명하는 기초생활수급자라지? 이사회가 손 한 번만 쓰면 그 녀석 엄마는 당장 내일 아침 투석 순번에서 밀려나 길바닥에서 피를 토하며 죽게 돼. 그게 세상의 진짜 규칙이야, 아름아.”
그 말은 아름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다. 신우가 그토록 숨기려 했던 아킬레스건, ‘어머니 한혜숙의 성모병원 퇴원 압박’이라는 잔인한 현실적 무기가 이미 이사회의 손에 쥐여져 있었던 것이다. 아름은 자신이 정의라고 믿었던 투쟁이, 결국 신우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위험한 칼날이었음을 깨닫고 극심한 정서적 좌절감에 휩싸였다.
“서명해.”
이미옥이 펜을 아름의 손에 쥐여주며 강제 전학 서류를 가리켰다.
“지방 외고로 내려가서 조용히 자숙해라. 네 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뒀으니 학업 기록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을 거야. 만약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네가 그토록 지키려던 최신우 그 녀석과 녀석의 어머니를 내가 직접 이 바닥에서 매장해 버리겠다.”
아름의 손가락 마디가 떨렸다. 펜 끝이 종이 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어머니의 위선적이고 압도적인 가문의 권력 앞에, 그녀가 지녀왔던 지적 자존심과 법률적 정의라는 나침반이 완전히 꺾여버리는 순간이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붉게 부어오른 뺨의 상처를 적셨다.
***
몇 시간 후,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도곡동의 한적한 대로변.
벤츠 S클래스의 문이 열리고 아름이 힘없이 내렸다. 이미옥은 그녀를 집안 방안에 감금하기 위해 강제로 귀가 조치 시킨 상태였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인도에 선 아름은, 자신의 주머니 속에 숨겨두었던 예약 전송용 세컨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손끝이 미친 듯이 떨려왔다. 눈물로 인해 액정 화면이 흐릿하게 번졌다. 그녀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단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최신우였다.
- 아름아. 무사해? 지금 어디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신우의 차분하면서도 다급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참았던 아름의 오열이 터져 나왔다.
“미안해…… 신우야…….”
아름은 터진 입술을 깨물며 신음하듯 울먹였다.
“나…… 나 때문에 엄마가 다 알아버렸어. 이사회가 내일 아침 네 어머니 병원비를 끊고 퇴원시키겠다고 협박해……. 그리고 나, 지방 외고로 강제 전학 가게 될 것 같아……. 우리 계획이…… 전부 나 때문에 망가졌어…….”
수화기 너머로 정막이 흘렀다. 신우의 가쁜 숨소리만이 차가운 기류를 타고 전해졌다. 아름은 가문이라는 거대한 감옥에 갇혀 더는 신우를 도울 수 없다는 정서적 절망감에 휩싸인 채, 차가운 보도블록 위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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