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대숲의 익명 폭로전
손가락 끝이 3층 콘크리트 난간의 거친 모서리를 긁으며 미끄러졌다. 쇠 지렛대로 문을 뜯는 듯한 둔탁한 소음이 머리 위에서 울리는 순간, 최신우는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기우는 것을 느꼈다. 우측 어깨를 꽁꽁 싸맨 하얀 깁스가 벽면에 쓸리며 끔찍한 마찰열을 일으켰다. 탈구된 관절이 다시 한번 비틀어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신경을 타고 뇌리를 관통했다. 비명을 지르면 끝장이었다. 신우는 피가 배어 나오는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온몸의 하중을 왼쪽 손가락 마디에 실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열린 건가…….”
머리 바로 위, 열린 창틀 너머로 최현태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의 거구의 그림자가 난간 아래로 길게 드리워졌다가, 이내 창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자물쇠가 잠기는 금속성 마찰음이 들린 후에야 신우는 참았던 가쁜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왼손 하나로 매달려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0초였다.
신우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2층 도서관 비상구 발코니의 좁은 난간이 보였다. 높이는 약 3미터. 오른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 낙하 각도가 조금만 어긋나도 다리가 부러지거나 깁스한 어깨가 완전히 파괴될 터였다. 신우는 ‘위기 상황 속 초고속 수리적 연산력’을 가동했다. 바람의 풍속 초속 4미터, 낙하 시 가속도, 그리고 왼쪽 발끝이 먼저 닿아야 어깨로 가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물리적 궤적이 머릿속에 순식간에 그려졌다.
‘지금이다.’
신우는 난간을 움켜쥐었던 왼손을 놓았다.
스스스슥, 툭!
신우의 몸이 허공을 갈라 2층 비상구 난간 바닥에 떨어졌다. 왼쪽 발목이 꺾이며 둔탁한 충격음이 울렸고, 몸이 옆으로 쓰러지면서 벽면에 어깨를 세차게 부딪혔다. 깁스 안쪽에서 뼈가 삐걱거리는 고통에 신우는 바닥을 구르며 신음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왼손으로 교복 주머니를 더듬었다. 도현의 유서 스마트폰과 이사장 가문의 성적 조작 청탁 메모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신우는, 미리 박지훈이 살짝 열어두었던 도서관 비상구 철문을 밀고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
오후 12시 15분.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교정에 울려 퍼진 지 15분이 지난 시점, 도서관 5층 구석의 멀티미디어실 내부.
컴퓨터 모니터의 파란 불빛만이 어두컴컴한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서강우의 비밀 서랍에서 탈환한 도현의 유서 스마트폰 원본과 이사장 가문의 붉은 직인이 찍힌 성적 조작 청탁 메모가 올려져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후드티 모자를 깊게 눌러쓴 소년이 노트북 자판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우성고의 아웃사이더이자 익명 커뮤니티 ‘우성대숲’의 개발자, 강동현이었다.
“이거…… 진짜냐?”
동현이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나직하게 물었다. 평소의 냉소적인 미소는 간데없고,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신우가 가져온 도현의 스마트폰 속 삭제된 카카오톡 복원 데이터와 이사장의 청탁 메모 실물은, 단순한 학교 폭력을 넘어 우성고 전체를 지배하는 거대 카르텔의 추악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도현이는 자살한 게 아니야. 이사장 조카인 서강우와 재단이 자신들의 성적 조작을 은폐하기 위해 도현이의 목을 죄어 사법적으로 협박해 죽인 거다.”
신우는 깁스한 우측 어깨를 지탱하며 차갑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 없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강동현. 넌 우성대숲의 운영자로서 학교 측의 위선적인 검열에 늘 반감을 품고 있었지. 이제 그 방화벽을 깨부술 기회다. 이 음성 파일을 오늘 점심시간에 전교생에게 동시에 송출해라.”
신우는 화면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이윤석이 포렌식으로 복구해 낸 ‘서강우의 폭력 자백 녹취 파일’이 재생 대기 상태로 떠 있었다. 자살 당일 아침, 서강우가 도현에게 ‘최신우가 만든 시험지를 베끼지 않으면 너와 신우 둘 다 감옥에 처넣겠다’고 가혹하게 협박하던 악마의 육성이었다.
동현은 마른침을 삼켰다.
“학교 보안팀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외주 보안 업체 엔지니어인 박형준이 실시간으로 트래픽을 감시하고 있어. 업로드하는 순간 내 IP를 역추적해서 대숲 서버 자체를 강제로 폐쇄하고 우릴 퇴학시키려 들걸?”
“그럴 줄 알고 대비책을 세웠어.”
신우는 ‘군중 심리 유도술’을 발동하여 동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우리가 겁먹고 침묵하면, 도현이의 죽음은 영원히 우울증으로 덮이고 다음 타깃은 네가 될 거다. 박형준의 추적은 원격에 있는 이윤석이 프록시 우회 공격으로 교란할 거야. 넌 학교 측의 서버 폐쇄 압박에 대비한 다중 우회 미러 서버만 구축해 주면 돼. 학생들이 가장 밀집하는 점심시간 12시 30분, 급식실 주변의 트래픽 통제가 불가능한 그 찰나의 순간이 우리의 타이밍이다.”
신우의 치밀한 인과 관계 설계와 도현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분노가 동현의 반골 기질을 자극했다. 동현은 입술을 짓씹더니, 후드티 소매를 걷어 올렸다.
“좋아. 학교 놈들이 내 서버를 내리는 속도보다, 내가 우회 경로를 생성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걸 보여주지.”
***
오후 12시 25분. 점심시간이 절정에 달한 시간.
우성고 급식실과 교실 복도는 수백 명의 학생들로 붐비며 왁자지껄한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서강우는 교실 한구석에서 패거리들과 함께 낄낄거리며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있었고, 교무실 안쪽에서는 보안 엔지니어 박형준이 모니터 3대를 켜둔 채 교내 네트워크 트래픽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업로드 시작한다.”
도서관 멀티미디어실에서 강동현의 손가락이 엔터 키를 내리쳤다. 우성대숲 메인 서버로 서강우의 자백 녹취 파일이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교무실의 박형준의 모니터에 붉은색 경고등이 켜졌다.
“트래픽 급증 감지. 업로드 소스 IP 추적 개시.”
박형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광속으로 달렸다. 패킷 감청 시스템이 작동하며 업로드 중인 대숲 서버의 물리적 위치를 특정하기 시작했다.
“IP 우회 노드 감지. 스위스 프록시 서버인가? 잔머리를 굴렸군.”
박형준이 차갑게 미소 지으며 강제 포트 차단 명령어를 입력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모니터 화면이 기괴하게 흔들리며 수백 개의 가짜 접속 로그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원격 PC방에서 대기 중이던 이윤석이 프록시 우회 공격을 감행해 박형준의 추적 경로를 완벽히 교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뭐야? DDoS 공격인가?”
박형준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그는 급히 방화벽 설정을 변경하려 했으나, 동현이 구축한 다중 우회 미러 서버들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분산 전송하며 차단망을 무력화하고 있었다.
“와이파이망을 강제로 차단해!”
박형준이 행정실에 소리쳤다. 교내 와이파이 공유기들의 전원이 일제히 내려갔다. 하지만 동현은 이미 이를 예측하고 있었다. 신우의 지시에 따라 업로드 경로는 사전에 세팅해 둔 외부 LTE 백업 망으로 즉각 전환되어 전송을 이어가고 있었다.
12시 29분 50초.
[업로드 완료 100%. 전교생 대상 푸시 알림 발송.]
***
오후 12시 30분 정각.
웅성거리던 급식실과 각 교실에서 기괴한 진동음이 동시에 울리기 시작했다.
징- 징- 징- 징-
수백 명의 학생들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익명 커뮤니티 ‘우성대숲’의 마크와 함께 [임도현 자살 사건의 진짜 배후, 서강우의 폭력 자백 녹취록]이라는 제목의 알림이 전교생의 화면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학생들이 홀린 듯 액정을 터치하자, 교내 전체 스피커와 각자의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노이즈 섞인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최신우가 시험지 판 증거 내 손에 있어. 네가 오늘 기말고사 수학 대리 마킹 안 해놓으면 너랑 신우 둘 다 유출 공범으로 깜빵에 처넣을 줄 알아.]
서강우의 잔인하고 오만한 목소리가 교실 천장과 급식실 복도 벽면에 반사되며 웅웅거렸다.
- [이사장님이 이미 경찰서장에게 다 말해뒀으니까 깝치지 마, 임도현. 넌 그냥 내 성적 세탁기야.]
순식간에 우성고 전체가 얼어붙은 듯한 정적에 휩싸였다. 밥숟가락을 들고 있던 아이들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고, 복도를 지나던 교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리고 1초 뒤, 폭탄이 터진 듯한 비명과 경악의 함성이 전 교실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미친 거 아냐? 서강우가 진짜 도현이를 협박해서 죽인 거였어?”
“이사장님이 경찰서장한테 말해뒀다고? 학교가 조직적으로 덮은 거네!”
급식실 한구석에서 식판을 들고 서 있던 서강우는 사색이 되었다.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목소리가 귀를 찢는 환청처럼 녀석의 목을 죄어왔다. 패거리들조차 강우를 경멸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서강우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화면 가득 [숙부 (상임이사 서태진)]라는 세 글자가 붉게 깜빡였다. 강우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전화를 받자마자, 스피커 너머로 수화기가 터져 나갈 듯한 서태진의 분노에 찬 포효가 급식실의 소음 뚫고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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