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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의 요새와 비밀 서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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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딱. 똑, 딱.


교실 정면에 걸린 원형 벽시계의 초침이 톱니바퀴를 깎아내는 소리가 유난히 고막을 찔렀다. 오후 12시 15분. 우성고등학교의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 지 정확히 15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학생들로 북적거려야 할 교실은 기묘할 정도로 정적에 잠겨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급식실이나 매점으로 몰려간 사이, 최신우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왼쪽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우측 어깨를 단단히 고정하고 있는 하얀 깁스 붕대가 교복 재킷 소매 아래로 무겁게 삐져나와 있었다. 강태풍 일당과의 골목길 사투에서 탈구된 관절은 정형외과에서 겨우 맞춰 넣었지만, 인대가 늘어난 탓에 미세한 움직임에도 뼈를 깎는 듯한 통증이 신경을 타고 뇌로 직행했다. 숨을 크게 쉴 때마다 갈비뼈 부근의 미세 균열이 욱신거리며 식은땀을 자아냈다.


하지만 신우에게는 쉴 시간이 없었다. 배종식 교장이 선언한 특별 선도위원회까지 남은 시간은 단 6일. 그 전에 자신을 해킹 주범으로 몰아가려는 이사회의 프레임을 깨부수고, 서강우가 숨겨둔 임도현의 유서 스마트폰 원본을 손에 넣어야만 했다.


‘강우는 소시오패스다. 자신에게 방해되는 도현의 유품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고 아지트에 보관해 둔 건, 그것이 자신의 힘을 증명하는 전리품이자 약점 방어용 카드라고 믿기 때문이지.’


신우는 왼손으로 교복 안주머니에 들어 있는 도서관 마스터키를 만지작거렸다. 도서부장 박지훈에게서 겨우 대여한 그 열쇠는 본관과 별관의 거의 모든 통제 구역을 열 수 있는 만능 열쇠였다. 목적지는 별관 3층에 위치한 ‘학생부 비공개 회의실’. 서강우 패거리와 이사진 자제들이 사조직처럼 사용하는 그들의 요새이자 아지트였다.


문제는 그곳을 지키는 물리적 감시망이었다. 서강우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도 그의 오른팔 오동석과 배움터지킴이 박만길이 별관 주변을 철저히 순찰하고 있었다. 특히 전직 부패 경찰 출신인 박만길은 서강우의 부친에게 뇌물을 받고 움직이는 사냥개와 다름없었다. 그들의 눈을 돌리지 않고서는 침투 자체가 불가능했다.


신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미리 대기하고 있던 김민재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이다. 시작해.]


같은 시각, 본관 옆 조립식 매점 건물 뒤편.


매점 앞치마를 두른 김민재는 침을 꿀꺽 삼켰다. 헝클어진 머리칼 아래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단단했다. 민재는 빵 상자가 쌓여 있는 매점 창고 뒤편 공터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곳에는 오동석과 그의 일진 패거리들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침을 뱉고 있었다.


“야, 오동석.”


민재가 짐짓 거친 목소리로 부르며 오동석의 어깨를 툭 쳤다. 오동석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뭐냐, 이 6등급 매점 셔틀 새끼는?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너희들이 매점 뒤편 비밀 창고 자물쇠 건드렸지? 사장님이 CCTV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하신단다. 안 그래도 도현이 일 때문에 학교 시끄러운데, 너희들 또 경찰서 가고 싶어?”


민재는 신우가 미리 설계해 준 대사를 거침없이 뱉었다. ‘CCTV’와 ‘경찰 신고’라는 단어가 나오자 오동석의 눈빛이 흔들렸다. 안 그래도 도현의 자살 사건으로 경찰들이 학교 주변을 맴돌고 있어 예민해진 상태였다.


“이 새끼가 진짜 입을 확 찢어버릴라…….”


오동석이 민재의 교복 깃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민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쳐 봐. 치는 순간 매점 앞 CCTV에 네 얼굴 그대로 박제되니까. 박만길 지킴이 아저씨도 이번엔 못 덮어줄걸?”


소란이 커지자 매점 뒤편을 순찰하던 배움터지킴이 박만길이 다급한 군화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너희들 거기서 뭐 해!”


“아저씨! 이 오동석 패거리가 절 협박하고 매점 창고 털려고 해요!”


민재가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박만길의 시선을 완전히 붙잡아 두었다. 오동석과 일진들이 민재를 구석으로 몰아세우며 거친 폭언과 멱살잡이를 시작했고, 박만길이 이를 말리려 개입하면서 매점 뒤편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신우가 계산한 완벽한 ‘성동격서’의 타이밍이었다.


‘동선이 열렸다.’


본관 2층 창문 너머로 매점 뒤편의 소란을 지켜보던 신우는 즉각 몸을 움직였다. 오른손을 전혀 쓸 수 없는 상태였기에, 그는 왼쪽 어깨로 문을 밀치며 복도로 나섰다. 복도에는 감시의 눈길이 없었다. 신우는 '미행 회피 및 지리 지형 활용술'을 발동하여, 본관과 별관을 연결하는 구름다리의 CCTV 사각지대를 정확히 짚으며 별관 3층으로 향했다.


터벅, 터벅, 터벅.


자신의 발소리조차 심장 박동 소리에 묻히는 듯했다. 마침내 별관 3층 구석, 두꺼운 암막 커튼으로 안이 보이지 않게 가려진 ‘학생부 비공개 회의실’ 철문 앞에 도달했다. 문고리 위에는 굳게 잠긴 아날로그 실린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신우는 왼손으로 주머니에서 도서관 마스터키를 꺼냈다. 손끝에 금속의 차가운 감촉이 닿았다. 키를 구멍에 밀어 넣고 천천히 돌렸다.


철컥.


경쾌하면서도 서늘한 파열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신우는 신속하게 안으로 침투한 뒤 문을 닫아걸었다.


회의실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창문마다 드리워진 짙은 감청색 암막 커튼이 외부의 태양광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일진들이 피워댄 담배 찌든 내와 값비싼 방향제 냄새가 기괴하게 뒤섞여 감돌았다. 신우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방 한구석에 위치한 서강우의 개인 책상으로 걸어갔다. 최고급 목재로 짜인 책상 위에는 금장 라이터와 서강우의 이름이 새겨진 학생부 명패가 놓여 있었다.


신우는 책상 아래를 살폈다. 비밀 서랍이 보였다. 4자리의 다이얼 잠금장치가 굳게 채워진 철제 서랍이었다.


처음에 신우는 주머니에서 클립을 꺼내 자물쇠 구멍을 쑤셔보려 했다. 하지만 왼손 하나만으로는 정교한 핀셋 작업을 수행할 수 없었을 뿐더러, 서랍의 잠금장치는 미세한 압력 왜곡을 감지하는 특수 기계식 락이었다. 서투르게 건드렸다간 다이얼이 영구 잠금 상태로 고정될 터였다.


‘물리적인 해킹은 불가능해. 그렇다면 서강우의 심리를 푼다.’


신우는 뇌 속의 ‘행동 심리학 기반 대면 심문’ 아카이브를 가동했다. 서강우는 극단적인 소시오패스이자 가학적인 지배욕을 지닌 인물이다. 녀석은 자신이 무릎 꿇린 피해자들의 아픔을 전리품처럼 수집하길 좋아했다. 도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비극적인 날짜. 녀석에게는 승리의 훈장과도 같은 그 날.


‘4월 15일.’


신우는 왼손 손가락 끝으로 차가운 다이얼을 하나씩 돌리기 시작했다.


드르륵, 0.

드르륵, 4.

드르륵, 1.

드르륵, 5.


마지막 다이얼이 고정되는 순간, 무거운 철제 서랍 내부에서 탁, 하는 둔탁한 기계음이 울렸다. 잠금장치가 해제된 것이다. 신우는 서랍을 천천히 잡아당겼다.


서랍 깊숙한 곳, 붉은색 벨벳 천 위에 올려진 낡은 구형 보급형 스마트폰이 모습을 드러냈다. 임도현의 유서 스마트폰 원본이었다. 화면 액정에는 도현이 마지막으로 남긴 지문 자국과 빗물 얼룩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신우는 스마트폰을 왼손으로 꽉 쥐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부채감과 오열이 목구멍을 턱 막아섰다.


‘찾았어…… 도현아.’


하지만 서랍 속에는 스마트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마트폰 밑바닥, 두 번 접힌 낡은 미색 모조지 한 장이 깔려 있었다. 신우는 반사적으로 그 종이를 꺼내 펼쳤다.


종이 상단에는 우성학원 재단 이사장의 가문 직인이 붉게 날인되어 있었다. 신우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것은 서강우의 숙부이자 상임이사인 서태진이 교무부장 김철수에게 보낸 ‘우성고 내신 성적 조작 청탁 메모’ 원본이었다. 특정 이사진 자제들의 등급을 맞추기 위해 시험지 반출 시간과 수행평가 만점 기준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라는 추악한 지시가 격자무늬 워터마크 종이 위에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이사장 가문의 직접적인 성적 조작 개입을 증명하는 초대형 물증이었다. 특별 선도위원회 단상 위에서 카르텔 전체를 폭사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무기가 신우의 손에 쥐어진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복도 저편 계단 아래에서 둔탁하고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고요한 별관을 깨우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체격이 거구인 자 특유의 무거운 걸음걸이. 유도부 주장이자 선도부장인 최현태였다.


신우의 이성적인 뇌세포가 초고속으로 경고음을 울렸다. 매점 뒤편의 소란이 생각보다 빨리 정리되었거나, 최현태가 별도로 비공개 회의실을 순찰하러 온 것이 틀림없었다. 발자국 소리는 이미 3층 복도 중앙을 지나 회의실 문앞으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탈출할 문은 하나뿐이다. 하지만 오른손 깁스 때문에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녀석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물리적 충돌은 무조건 패배다.’


신우는 신속하게 스마트폰과 청탁 메모를 교복 안주머니 깊숙한 곳에 찔러 넣었다. 발자국 소리가 문앞에서 멈추어 섰다. 문고리가 철컥이며 돌아가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신우는 왼손으로 책상 옆 창문의 잠금장치를 풀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창밖으로 가을의 차가운 바람이 회의실 내부로 세차게 들이쳤다. 신우는 주저 없이 창틀 위로 몸을 날렸다.


도어락이 열리고 회의실 문이 활짝 열리는 찰나의 순간, 신우는 별관 3층 창문 난간 밖으로 몸을 던졌다.


탁!


신우의 왼손 손가락들이 3층 외벽의 좁은 콘크리트 난간 모서리를 간신히 움켜쥐었다. 동시에 회의실 천장의 형광등 스위치가 켜지며 눈 부신 백색광이 창문 틈새로 새어 나왔다.


최현태가 회의실 불을 켜고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어? 창문이 왜 열려 있어?”


최현태의 의아한 목소리가 창문 바로 아래에 매달린 신우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신우는 난간에 대고 있는 왼손 손가락 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탈구되어 겨우 맞춰놓은 우측 어깨가 매달린 신체의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깁스 안쪽에서 비명을 지르며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뿜어냈다. 갈비뼈의 미세 균열이 뼈끼리 부딪히며 극단적인 쇼크가 뇌리를 강타했다. 이빨을 악물어 비명을 삼켰지만,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빗물처럼 난간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터벅, 터벅.


최현태의 거구의 그림자가 열린 창문 근처로 천천히 다가왔다. 녀석의 구두 끝이 창틀 바로 앞에 멈추어 서는 것이 보였다. 신우가 매달린 손가락 끝과 최현태의 시선 사이의 거리는 불과 30센티미터도 되지 않았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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