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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법과 방패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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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이 그 특수 보안 시험지를 인쇄실에서 직접 반출한 날짜와 시간의 디지털 로그를 제가 전부 확보하고 있다면…… 그래도 제가 주범이 되는 겁니까?”


신우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교무부장실의 무거운 공기를 갈랐다.


순간, 교무부장 김철수의 안면 근육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흙빛으로 변해갔다. 주머니 속에서 가늘게 떨리던 열쇠 뭉치가 비정상적인 속도로 짤랑거리며 그의 극단적인 심리적 붕괴를 대변했다. 신우가 제시한 ‘인쇄실 직접 반출 날짜’와 ‘행정실장 직인 데이터’는 김철수가 결코 예상치 못한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었다.


“너, 너…… 그 말을 지금……!”


김철수가 말을 잇지 못하고 부르르 떨고 있을 때, 교무부장실의 묵직한 목재 문이 다시 한번 거칠게 열렸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등장한 인물은 우성고등학교의 정점, 교장 배종식이었다. 말끔하게 빗어 넘긴 백발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고급 양복 차림. 하지만 그의 인자해 보이는 미소 뒤에 숨겨진 눈빛은 독사처럼 차갑고 매서웠다.


“교무실에서 무슨 소란인가, 김 부장.”


배종식의 묵직한 저음이 방 안의 소란을 단숨에 잠재웠다. 김철수는 구원자라도 만난 듯 허겁지겁 고개를 숙였다.


“교, 교장 선생님…… 이 녀석이 지금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로 교사를 협박하고 있습니다! 행정실 서버를 해킹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인쇄실 유출까지 우리에게 덮어씌우려……!”


배종식은 김철수의 다급한 보고를 손짓 하나로 제지했다. 그의 시선이 신우의 우측 어깨를 감싸고 있는 하얀 깁스 붕대와, 왼손에 꽉 쥐어진 초소형 보이스 레코더 볼펜으로 향했다. 배종식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상황이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음을 직감한 것이다.


“최신우 군. 그리고 정아름 양도 마찬가지고. 교무실은 학생이 소란을 피울 장소가 아니네. 나를 따라 교장실로 가지.”


배종식은 위압적인 태도로 등을 돌려 걸어갔다. 신우는 아픈 갈비뼈를 움켜쥐며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옆에 선 아름이 신우를 향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박성태 변호사에게 실시간 연락이 닿았다는 신호였다.


***


우성고등학교 본관 5층, 교장실 안쪽에 숨겨진 책장 문을 열자 드러나는 ‘비밀 접견실’.


고급 가죽 소파와 값비싼 양주 진열장, 그리고 두꺼운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그 공간은 학교가 아닌 강남 정계 거물들의 사적 아지트 같았다. 배종식은 거대한 마호가니 책상 뒤에 걸터앉아 신우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태도에는 사학 재단의 무소불위 권력을 믿는 초법적인 오만함이 가득 차 있었다.


“최신우 군.”


배종식이 서랍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툭 던졌다. 단정한 고딕체로 ‘자퇴서’라고 적힌 종이였다.


“여기에 서명하게. 그러면 학교 측에서도 자네의 과거 불법 문제집 판매 이력과 이번 행정망 해킹 혐의를 더는 묻지 않고 덮어주겠네.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을 지키며 조용히 다른 학교로 전학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신우는 깁스에 묶인 오른손의 통증을 견디며 왼손으로 자퇴서 서류를 가만히 응시했다.


“제가 서명하지 않는다면요?”


“그렇다면 오늘 오후 즉각 특별 선도위원회를 소집할 걸세.”


배종식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자네 가방 속에서 나온 해킹 툴과 불법 유출 문제집 원안을 증거로 즉각 강제 퇴학 처분을 내리겠네. 그렇게 되면 자네의 생활기록부는 영구히 빨간 줄이 그어질 것이고, 대한민국 그 어떤 대학도 자네를 받아주지 않을 거야. 기초생활수급자 가문에, 만성 신부전증으로 성모병원에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어머니를 둔 자네가…… 과연 그 파멸을 감당할 수 있겠나?”


가난과 어머니의 병원비를 무기로 신우의 내면을 무참히 난도질하려는 잔인한 가스라이팅이었다. 보통의 고등학생이라면 어머니의 목숨과 자신의 미래라는 거대한 압박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을 터였다.


하지만 신우의 뇌 속에서는 즉각 ‘상대적 가스라이팅 방어술’이 가동되었다.


배종식의 위협적인 음성과 폭언들이 신우의 뇌리에 닿는 순간, 감정 필터에 의해 아무런 타격감 없는 건조한 ‘텍스트 데이터’로 치환되어 바닥으로 흩어졌다. 신우의 심박수는 분당 65회를 유지했다. 안경 너머의 눈빛은 오히려 더 차갑고 맑게 빛났다.


‘교장은 지금 조급해하고 있어. 내가 김철수에게 던진 반출 날짜와 행정실장 직인 데이터가 이사장 송민혁의 귀에 들어갈까 봐 두려운 거다. 그래서 선도위원회라는 행정적 무력으로 나를 즉각 격리하려 드는군.’


신우는 안경을 천천히 밀어 올리며 차갑게 대꾸했다.


“사립학교법과 교육부 선도 규정에 따르면, 징계 대상자에게는 최소 일주일 전 소명 기회와 징계 사유서가 공식 발부되어야 합니다. 오늘 오후 즉각 선도위를 열어 절 퇴학시키겠다는 조치는 명백한 절차적 위법입니다, 교장 선생님.”


“위법?”


배종식이 콧방귀를 뀌며 책상을 내리쳤다.


“여기는 우성고등학교다! 이사회의 결정을 거스르는 법 따위는 교문 밖에서나 찾게! 내 선언 한마디면 자네 같은 가난뱅이 쥐새끼 하나쯤은 소리소문없이 영구히 매장할 수 있어!”


그 오만한 사효(私效)의 권력이 단상 위를 덮치려던 바로 그 순간, 비밀 접견실의 두꺼운 방음문이 거칠게 열렸다.


“사학 재단의 권력이 대한민국 헌법과 사립학교법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믿으시는 모양이군요, 배종식 교장 선생님.”


낮고 강직한 목소리와 함께, 소매 끝이 살짝 닳은 정장 재킷을 입은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낡았지만 묵직한 가죽 서류 가방이 꽉 쥐어져 있었다. 도현의 유가족을 대리하는 국선 변호사이자, 신우의 새로운 법률 대리인인 박성태 변호사였다.


“누, 누구십니까? 외부인은 이 공간에 함부로 들어올 수…….”


배종식이 당황하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법무법인 평온의 대표 변호사이자, 최신우 학생의 공식 법률 대리인 박성태입니다.”


박성태 변호사는 품 안에서 대리인 선임계와 공식 법적 공문을 꺼내 배종식의 책상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그의 피곤해 보이는 얼굴 속에서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이 교장의 위선을 정면으로 꿰뚫었다.


“방금 교장실 내부에서 자행된 미성년자 학생에 대한 자퇴 강요 및 협박 행위는 형법 제324조 강요죄에 해당하며, 이는 아름 양의 실시간 채증 장비에 의해 고스란히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사립학교법 제2장 학생 선도 절차를 무시하고 즉각 퇴학 처분을 강행할 경우…….”


박성태 변호사가 서류 가방에서 두꺼운 법조문 서류를 꺼내 단상 위에 펼쳐 보였다.


“저희는 즉각 법원에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출할 것입니다. 가처분이 인용되는 순간 우성고의 모든 행정 권한은 일시 정지될 것이며, 교육청 특별 감사팀과 언론사 사회부 기자들이 이 교장실 비밀 접견실 내부의 뇌물 장부와 성적 조작 로그를 조사하기 위해 들이닥치게 될 겁니다. 교장 선생님의 교육감 출마 가도에 아주 훌륭한 이정표가 되겠군요.”


박성태 변호사의 강직하고 날카로운 법률적 카리스마가 교장실 내부의 공기를 압도했다. 배종식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갔다. 사학 재단의 힘을 믿고 초법적으로 날뛰던 그의 권위가, 철저히 계산된 법조문 방패막이 앞에 가로막혀 행정적으로 고립된 것이다.


“이, 이깟 가처분 신청 따위가…… 이사장님이 손을 쓰면 법원 단계에서 즉각 기각될…….”


배종식이 말을 더듬으며 발악하려 했다.


“해보시지요.”


신우가 옆에서 차갑게 거들었다. 그는 주머니 속 보이스 레코더 볼펜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 볼펜 안에는 방금 교무부장님이 ‘서강우의 부정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저에게 주범 누명을 씌우려 했던 자백 음성과, 교장 선생님이 자퇴를 강요한 협박 내용이 고스란히 녹음되어 있습니다. 가처분 신청과 동시에 이 파일이 인터넷 클라우드를 통해 언론사 메인 데스크로 자동 송출되도록 세팅되어 있습니다. 이사장님이 법원을 막는 속도가 빠를까요, 여론이 우성고를 폭사시키는 속도가 빠를까요?”


‘사립학교법 기반 묵비권 행사 요령’과 ‘정밀한 법리 방어막’의 완벽한 결합이었다.


배종식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변호사를 대동한 전교 1등의 천재적인 두뇌 플레이 앞에, 그는 더는 초법적인 즉각 퇴학을 강행할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법의 테두리를 이용한 방어막 덕분에, 신우는 자신을 향한 징계 공세를 일차적으로 저지하고 일주일이라는 소명 준비 시간을 합법적으로 확보해 냈다.


하지만 배종식은 이대로 순순히 물러설 위인이 아니었다. 그의 눈빛에 독기와 위선이 뒤섞인 광기가 서렸다.


배종식은 천천히 손을 뻗어 박성태 변호사가 제출한 법적 경고장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신우와 변호사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가차 없이 그 종이를 반으로 찢어 발겼다.


쩍, 하고 종이가 찢어지는 파열음이 밀실 내부에 무겁게 울려 퍼졌다.


“좋아…… 일주일의 시간을 주지, 최신우.”


배종식이 찢어진 종이 파편들을 신우의 얼굴을 향해 던지며 소름 끼치게 선언했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일주일 뒤 선도위에서 네 가방 속 해킹 툴과 문제집을 전교생 앞에 공개해 주마. 그때는 네 그 잘난 변호사나 법조문 따위가 널 구해주지 못할 것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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