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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의 덫과 흔들리는 교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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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가득 채운 침묵은 무겁고 축축했다. 기말고사 수학 시험장의 공기는 OMR 카드 전용 사인펜의 독한 화학적 잉크 냄새와 학생들의 거친 숨소리로 짓눌려 있었다. 사각, 사각. 연필끝이 시험지를 긁는 소리만이 교실의 정적을 깨뜨리는 유일한 노이즈였다.


최신우는 왼손으로 샤프를 쥔 채 이빨을 악물었다. 우측 어깨에서 시작된 타는 듯한 극통이 척추를 타고 내려와 갈비뼈 부근의 미세 균열을 사정없이 자극했다. 어제 밤, 강태풍 일당의 쇠파이프 무력 앞에 어깨가 탈구되었던 자리가 진통제 기운 속에서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두껍게 감긴 깁스 붕대 때문에 우측 상체는 완전히 고정되어 미동조차 할 수 없었고, 손가락 끝은 차갑게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버텨야 한다. 여기서 무너지면 도현이의 죽음은 단순한 자살로 묻힌다.’


신우는 뇌내 감정 스위치를 완전히 차단하는 ‘완벽한 포커페이스 유지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눈앞에 고통의 불꽃이 튈 때마다 이성적인 두뇌는 오히려 더 차갑고 명징해졌다.


그는 왼손에 쥔 샤프에 힘을 주며 수학 시험지 제1면을 넘겼다. 그리고 7번 기하 문제에 시선이 닿는 순간, 신우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예리하게 번뜩였다.


[문제 7. 함수 $f(x) = \int (3x̂2 - 2x) dx$의 한 부정적분 $F(x)$에 대하여, 곡선 $y=F(x)$ 위의 임의의 점에서의 접선의 기울기가……]


수식의 가장 구석진 자리, 적분 상수 $C$의 표기.


일반적인 인쇄 폰트라면 정자로 인쇄되어야 할 대문자 $C$가, 미세하게 우측으로 3도 가량 기울어진 이탤릭체 스타일의 왜곡 표기로 인쇄되어 있었다. 게다가 풀이 과정 중간에 제시된 분모의 조건식 역시 신우가 도용 방지를 위해 일부러 심어두었던 미세한 부호 오타와 분모 왜곡 설계 공식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적용되어 있었다.


‘최초 유출 시험지의 오류 코드 일치…….’


신우의 입꼬리가 보이지 않게 미세하게 뒤틀렸다. 예상이 완벽히 적중했다.


교무부장 김철수는 출제 기간 동안 교무실 보안실 안에서 신우가 사물함에 흘려두었던 그 ‘가짜 문제집’을 훔쳐보았거나, 혹은 서강우가 훔쳐낸 소스를 그대로 넘겨받아 실제 시험 문제로 가공해 출제한 것이다. 교사로서의 나태함과 사학 카르텔의 안일함이 만들어낸 치명적인 흔적이었다. 이 오타 수식은 단순한 인쇄 실수가 아니었다. 오직 신우만이 증명할 수 있는, 우성고등학교 교무실 내부에서 시험지가 유출되었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물리적 낙인이었다.


신우는 앞자리에 앉은 서강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강우는 문제를 풀지 않고 있었다. 녀석은 시험지를 읽지도 않은 채, 기고만장한 태도로 OMR 카드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컴퓨터용 사인펜을 굴리고 있었다. 녀석의 머릿속에는 어제 신우의 사물함에서 훔쳐내 완벽하게 암기한 가짜 문제집의 정답 배열만이 존재했다.


서강우는 망설임 없이 OMR 카드 7번 문항의 정답 란에 ‘3번’을 마킹했다.


3번. 그것은 신우가 고의로 심어둔 분모 계산 오류 공식에 대입해야만 도출되는, 수학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가짜 정답’이었다. 강우는 자신이 만점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고 확신하며, 입가에 승리자의 오만한 미소를 지었다. 녀석은 신우가 어깨 부상으로 마킹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전교 1등 자리에서 추락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신우는 차분하게 왼손을 놀려 자신의 시험지 위에 진짜 풀이 과정을 적어 내려갔다. 오른손을 쓸 수 없어 필체는 비틀거렸고 시간은 두 배로 소요되었지만, 그의 머릿속 ‘출제 패턴 인지력’은 교무부장의 의도를 완전히 해체하고 있었다. 그는 오타를 바로잡아 실제 정답인 ‘5번’을 도출해 내고, 자신의 OMR 카드에 차분하게 마킹했다.


그때, 교실 뒤편에서부터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짤랑, 짤랑.


주머니 속 열쇠 뭉치가 부딪히는 불길하고 날카로운 금속성 소음. 이번 교실의 시험 감독관이자 우성고 시험지 출제를 총괄하는 교무부장 김철수였다. 김철수는 날카롭고 예민한 눈빛으로 학생들의 책상 사이를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그의 어깨는 무거운 비밀을 짊어진 듯 미세하게 짓눌려 있었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김철수는 서강우의 책상 뒤편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녀석이 풀이 과정도 적지 않은 채 OMR 카드에 거침없이 답안을 마킹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이사장의 조카가 만점을 받아 대학 진학 스펙을 채우는 모습을 방관하려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김철수의 시선이 서강우의 시험지 여백에 적힌 몇 개의 공식 낙서에 닿는 순간, 그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서강우의 연습장 구석에는 7번 문제의 적분 상수 $C$의 왜곡된 표기와, 분모의 부호 오타가 그대로 적혀 있었다. 김철수는 자신이 인쇄실에서 출제 원안을 다듬을 때 참고했던 신우의 가짜 문제집 공식이 서강우의 손끝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음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것이다.


‘이건…… 최신우의 그 공식인데? 서강우 이 녀석이 왜 이걸 적고 있는 거지?’


김철수의 머릿속에 거대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만약 이 시험이 끝나고 교육청 감사나 외부 유출 의혹이 제기된다면, 시험지 출제 문항과 일치하는 이 특이한 오타 공식은 김철수 자신이 시험지를 사전 반출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될 터였다. 서강우가 부정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 부정행위의 방식이 너무나도 노골적이고 허술하여, 자신들의 유출 카르텔 전체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가 되었음을 직감한 것이다.


김철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의 이마에서 차가운 식은땀이 흘러내려 눈가를 적셨다. 그는 서강우의 어깨를 쳐서 마킹을 제지하거나 풀이 과정을 지우라고 신호를 주고 싶었지만, 교실 뒤편에 상주하는 사설 보안 요원들과 다른 학생들의 시선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주먹을 꽉 쥐었다. 열쇠 뭉치가 주머니 속에서 가늘게 떨렸다. 김철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맨 뒷자리의 최신우를 바라보았다.


신우는 완벽한 포커페이스로 고개를 숙인 채, 왼손으로 차분하게 OMR 카드의 마지막 문항을 마킹하고 있었다. 상처투성이 얼굴과 고정된 우측 어깨의 비장함 너머로, 찰나의 순간 신우가 고개를 들어 김철수의 흔들리는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신우의 눈빛은 고요하다 못해 잔인할 정도로 차가웠다. 마치 모든 것을 내다보고 덫을 놓은 사냥꾼의 눈빛이었다.


김철수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이 모든 상황이 최신우가 설계한 거대한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의 뇌리를 스쳤다.


리링- 리링- 리링-


시험 종료를 알리는 날카로운 종소리가 교실 스피커를 찢고 흘러나왔다.


“시험 종료. 모두 펜 놓고 손 머리 위로 올려.”


김철수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서강우의 책상으로 다가가 녀석의 시험지와 OMR 카드를 강탈하듯 낚아챘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움켜쥔 채, 맨 뒷자리의 최신우를 향해 매섭고도 두려움에 찬 눈빛을 쏘아보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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