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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구원자와 부러진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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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멀게 만드는 강렬한 전조등 빛 속에서, 굉음을 울리는 오토바이가 강태풍의 쇠파이프를 향해 돌진했다.


“뭐야, 이 미친 새끼는!”


강태풍이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날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빗길을 미끄러지듯 꺾어 들어온 육중한 할리 데이비드슨의 차체가 골목길 한가운데를 가로막아 서며 날카로운 타이어 마찰음을 토해냈다. 전조등의 강렬한 상향등 불빛이 일진들의 시야를 마비시켰다. 사방에서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리는 일진들 사이로, 오토바이에서 내린 거구의 사내가 헬멧을 벗어 던졌다.


얼굴에 깊은 칼자국 흉터가 새겨진 투박한 얼굴,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칼 아래로 날카로운 형사의 눈빛을 감춘 노인. 신우의 이웃집에 사는 퇴직 강력계 경감, 홍경표였다.


“어린놈의 새끼들이 밤늦게 떼거지로 모여서 뭐 하는 짓거리냐.”


홍경표의 목소리는 빗소리를 뚫고 묵직하게 골목길을 울렸다. 그의 손에는 경찰 현역 시절 쓰던 가죽 삼단봉이 차갑게 쥐어져 있었다.


“틀딱 새끼가 뒤지려고 환장했나. 야, 쳐라!”


강태풍의 악에 받친 명령과 함께 일진 두 명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홍경표는 수십 년간 거리의 강력 범죄자들을 제압해 온 베테랑이었다. 그는 상체를 미세하게 비틀어 날아오는 쇠파이프를 가볍게 피하더니, 삼단봉으로 사내의 손목 관절을 정확히 가격했다.


탁! 아악!


뼈가 울리는 타격음과 함께 쇠파이프가 빗물 고인 바닥으로 떨어졌다. 경표는 멈추지 않고 다른 사내의 오금을 걷어차 그대로 진흙 바닥에 처박아버렸다. 단 두 번의 움직임으로 상황을 정리한 경표의 매서운 눈빛이 강태풍을 향했다.


“강태풍이라고 했냐? 도곡지구대 신동엽 경사한테 뒷돈 받고 애들 뒤 봐주던 버릇, 아직 못 고쳤구나. 내가 퇴직했다고 네놈들 인적 사항 하나 검찰에 못 넘길 것 같아?”


전직 강력계 팀장의 입에서 자신의 배후와 이름이 흘러나오자, 강태풍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경표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경보 음을 울리며 경찰 무전을 모방한 다이얼을 누르자, 태풍은 이빨을 갈며 뒤로 물러섰다.


“쳇, 재수 없는 늙은이가…… 야, 철수해!”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다시 요란하게 울리며 일진 패거리가 빗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골목길에 다시 차가운 적막이 찾아왔다.


“이봐, 학생. 정신 차려!”


홍경표가 바닥에 쓰러진 신우를 향해 다급히 다가왔다. 신우는 왼손으로 찢어진 가방을 품에 안은 채,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우측 어깨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관절이 완전히 어긋나 어깨뼈가 기괴한 각도로 튀어나와 있었고, 손가락 끝은 감각이 마비되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깨가 빠졌군. 이대로 병원에 가자.”


“안 됩니다…….”


신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경표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의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병원에 가면…… 기록이 남습니다. 학교에서 기말고사 전에 절 강제로 격리하려 할 겁니다. 제발…… 집으로 데려다주세요.”


경표는 신우의 안경 너머로 번뜩이는 지독한 독기와 결연함을 보았다. 단순한 고등학생의 눈빛이 아니었다. 경표는 혀를 차며 신우를 부축해 오토바이 뒷좌석에 태웠다.


***


빗물이 들이치는 신우의 반지하 방.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차가운 정적 속에서 피어올랐다.


신우는 낡은 목재 의자에 앉아 이빨을 악물었다. 그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턱끝으로 뚝뚝 떨어졌다. 홍경표는 방구석에서 굴러다니는 낡은 수건을 가져와 신우의 입에 물리려 했다.


“이빨 깨지기 싫으면 이거 물어라. 마취 없이 탈구된 어깨를 맞추는 건 성인 장정들도 기절할 고통이니까.”


신우는 수건을 거부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냥 하세요. 소리 안 냅니다. 이웃들이 깨면 곤란합니다.”


“독한 놈…….”


경표가 신우의 우측 팔꿈치와 어깨 관절을 동시에 붙잡았다. 신우는 뇌내 감정 스위치를 완전히 꺼버리는 ‘완벽한 포커페이스 유지력’을 가동하려 애썼다. 하지만 육체적 통증의 한계는 이성의 영역을 비웃듯 온몸의 신경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습, 후…… 하세요.”


“들어간다. 하나, 둘, 셋!”


우득-! 쩍!


뼈와 뼈가 마찰하며 관절 내부로 강제로 맞춰 들어가는 끔찍한 파열음이 방 안을 채웠다. 신우의 척추가 활처럼 팽팽하게 꺾였다. 눈앞이 하얗게 번쩍이며 순간적으로 의식이 끊어질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신우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이빨이 깨질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붉은 선혈이 턱을 타고 흘러내려 교복 셔츠를 적셨다.


“하아…… 하아…….”


어깨뼈가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지만, 찢어진 인대와 근육의 통증은 가라앉지 않고 심장을 쥐어짜듯 요동쳤다. 경표는 신우의 어깨를 붕대로 단단히 고정해 주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뼈는 맞춰졌지만 인대가 크게 늘어났다. 오른손은 당분간 펜 쥐는 것조차 힘들 거야. 내일 시험은 어떻게 치르려고 그러냐?”


신우는 왼손으로 찢어진 가방을 열어 안쪽을 확인했다. 다행히 빗물에 젖지 않은 깊숙한 슬롯에 숨겨두었던 ‘임도현의 유서 스마트폰’은 무사했다. 화면을 켜자 도현의 슬픈 눈망울이 담긴 잠금 화면이 정상적으로 들어왔다. 신우는 안도감에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치러야 합니다. 제가 설계한 덫이…… 내일 아침 작동하니까요.”


경표는 더는 말리지 못하고 방을 나섰다. 신우는 책상 서랍에서 어머니의 비상 약품 상자를 열어 가장 강한 소염 진통제 세 알을 꺼내 물 없이 삼켰다. 씁쓸한 약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신경을 마비시키기 시작했다.


신우는 침대에 누워 천장의 곰팡이 자국을 바라보았다. 우측 어깨의 통증이 심장이 뛸 때마다 박동하듯 밀려왔지만, 그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명징했다.


‘서강우. 네가 보낸 사냥개들이 내 뼈를 부러뜨렸지만, 덕분에 네가 얼마나 도현이의 유서 스마트폰을 두려워하는지 확증했다. 그리고 내일 아침, 넌 내가 사물함에 남겨둔 그 가짜 문제집을 만점으로 믿고 완벽하게 베끼겠지.’


그것이 신우가 설계한 ‘이중 유출의 함정’이었다. 서강우는 신우가 다쳐서 시험지 유출을 포기했다고 믿고 기고만장해져서, 미리 훔쳐둔 가짜 문제집의 답안을 그대로 베낄 것이다. 그리고 그 답안지에는 오직 신우만이 증명할 수 있는 미세한 수식 오타와 통계적 오류 코드가 박혀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우성고등학교 본관.


밤새 내리던 비는 멈추었지만, 교정에는 축축하고 무거운 안개가 낮게 깔려 있었다. 기말고사 당일의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학생들이 하나둘 교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본관 2학년 3반 교실.


신우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소란스럽던 교실이 일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신우의 몰골은 처참했다. 우측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두꺼운 깁스와 붕대로 단단히 고정되어 교복 재킷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어깨에 걸치고 있었고, 얼굴 곳곳에는 강태풍 패거리에게 긁히고 터진 붉은 열상과 피딱지가 가득했다.


“야, 최신우 왜 저래?”


“어제 하굣길에 일진들한테 린치당했다는 소문이 진짜였나 봐…….”


학생들의 수근거림이 사방에서 웅성거렸지만, 신우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자신의 자리를 향해 묵묵히 걸어갔다. 왼손으로 가방을 움켜쥔 채,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옆구리의 갈비뼈 통증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대리석처럼 차갑고 고요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서강우가 턱을 괴고 신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우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말려 올라갔다. 녀석의 눈빛에는 승리자의 오만함과 조롱이 가득했다. 강우는 신우의 처참한 부상을 보며, 자신의 사주를 받은 강태풍이 신우를 완벽히 짓밟아 놓았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비록 스마트폰을 완전히 회수했다는 보고는 받지 못했지만, 이 정도로 망가뜨려 놓았으니 신우가 더는 자신에게 대항할 의지를 잃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강우가 신우가 지나갈 때 넌지시 다리를 뻗어 걸림돌을 만들려 했다. 신우는 ‘미행 회피 및 지리 지형 활용술’의 감각을 발동해 미세한 동선 변화로 강우의 발끝을 가볍게 피했다. 강우는 쳇, 하며 라이터를 만지작거렸다.


“어이, 전교 1등. 시험 공부는 많이 하셨나? 오른팔이 그 모양이라 마킹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


강우의 낮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신우의 귓가를 스쳤다. 신우는 자리에 앉아 왼손으로 가방에서 필기구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강우를 돌아보지 않은 채, 차갑게 대꾸했다.


“걱정 마라. 내 시험 걱정할 시간에 네 OMR 카드나 신경 쓰는 게 좋을 거다.”


“하, 건방진 새끼가 끝까지…….”


강우가 이빨을 갈았지만, 마침 앞문으로 감독 교사인 교무부장 김철수가 시험지 뭉치를 들고 들어서자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김철수는 교단에 서서 예민한 눈빛으로 교실 전체를 훑었다. 그의 시선이 신우의 깁스 붕대와 상처투성이 얼굴에 닿자 미세하게 흔들렸다. 김철수는 신우가 서버실 침입의 주범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지만, 당장 시험을 치르러 들어온 전교 1등을 아무런 물증 없이 쫓아낼 명분은 없었다.


“기말고사 1교시 수학 시험을 시작한다. 책상 위 소지품은 모두 가방에 넣고, 필기구와 신분증만 남겨라. 부정행위 적발 시 그 즉시 0점 처리 및 퇴학 조치된다.”


김철수의 엄숙한 목소리와 함께 시험지와 OMR 카드가 뒤에서부터 앞으로 배부되기 시작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가 교실 안의 정적을 깨뜨렸다. 신우는 왼손으로 시험지를 받아 책상 위에 펼쳤다. 우측 어깨에서 밀려오는 타는 듯한 극통을 억누르기 위해 아침에 삼킨 진통제의 화학적 기운이 뇌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신우는 강제로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수학 시험지의 7번 기하 문제.


문제를 확인한 신우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적분 상수 C의 왜곡 표기…….’


신우가 서강우를 낚기 위해 사물함 가짜 문제집에 고의로 심어두었던 미세한 부호 오타와 분모 계산 오류 공식이, 실제 교무부장이 출제한 기말고사 수학 7번 문제와 소수점 자간까지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이것은 교무부장 김철수가 신우의 문제집을 사전에 훔쳐보고 문제를 출제했거나, 혹은 서강우가 훔친 문제집의 소스가 그대로 교무실 출제 라인에 전달되어 세탁되었음을 보여주는 빼도 박도 못하는 내부 유착의 증거였다.


신우는 속으로 전율을 느꼈다. 덫은 완벽하게 깔렸다. 이제 남은 것은 서강우가 이 가짜 정답 코드를 OMR 카드에 그대로 마킹하는 순간을 확증하는 것뿐이었다.


딩- 동- 댕- 동-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교정을 무겁게 때렸다. 학생들이 일제히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우는 떨리는 오른손으로 샤프를 쥐려 했다. 하지만 손가락에 힘을 주자마자 우측 어깨 인대가 찢어지는 듯한 극통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버렸다. 손이 미친 듯이 떨리며 샤프가 책상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안 돼……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신우는 왼손으로 샤프를 다시 주워 올렸다. 그리고 왼손 손가락 끝에 온 힘을 집중하여 시험지에 수식을 한 획 한 획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속도가 훨씬 느렸고, 필체는 비틀거렸지만 신우의 수학적 추론 능력은 통증 속에서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답을 도출해 내고 있었다.


그때, 앞자리에 앉은 서강우가 펜을 놀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우는 문제를 풀지 않고 있었다. 녀석의 머릿속에는 오직 신우의 사물함에서 훔쳐낸 가짜 문제집의 정답 배열만이 들어있었다. 강우는 OMR 카드를 꺼내어 거침없이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마킹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7번 문제의 정답 란에 녀석이 마킹한 번호는, 신우가 고의로 오타를 내어 도출되도록 설계한 ‘존재할 수 없는 가짜 답안’인 3번이었다.


신우는 왼손으로 펜을 쥔 채, 땀에 젖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앞자리 서강우의 마킹 동태를 주시했다. 녀석의 OMR 카드에 채워지는 검은색 점들이, 신우가 설계한 단두대의 날카로운 칼날처럼 서서히 강우의 목덜미를 향해 내려앉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서강우가 기묘한 위화감을 느낀 듯 마킹을 멈추고 펜을 쥔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신우를 바라보았다.


두 소년의 시선이 공중에서 격렬하게 부딪혔다.


강우의 눈동자 속에 비열한 살기가 소름 끼치게 차올랐다. 녀석은 신우의 상처 입은 얼굴과 고정된 오른팔을 조롱하듯 바라보더니, 자신의 손가락 사이에 쥐고 있던 검은색 플라스틱 펜을 신우가 보는 앞에서 천천히, 그리고 힘주어 움켜쥐었다.


지직, 쩍-!


교실의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플라스틱이 비틀어지며 쪼개지는 기괴한 파열음이 신우의 귀에 꽂혔다. 강우의 손끝에서 부러진 펜의 날카로운 단면이 신우의 목을 겨누듯 허공을 가리켰다. 녀석은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신우를 향해 나직하게 경고를 보냈다.


‘똑바로 마킹해라, 전교 1등. 안 그러면 네 엄마 병실 전원선이 부러질 테니까.’


그것은 빗속의 폭력보다 더 잔인하고 차가운, 기득권의 비열한 협박이었다. 신우는 부러진 펜의 파편을 응시하며, 심장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속죄의 분노를 차갑게 벼려내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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