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공범과 붉은 낙인
도곡동의 밤은 차갑고도 인위적인 불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성고등학교 본관 5층, 불이 꺼진 도서관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강남의 빌딩 숲은 거대한 콘크리트 무덤처럼 보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단지들의 그림자 아래, 아이들은 매일 밤 소리 없는 학업적 학살을 치르고 있었다.
최신우는 어둠이 짙게 깔린 도서관 멀티미디어실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네이비색 우성고 교복 재킷 소매 끝은 닳아 실밥이 터져 있었고, 안경 너머의 눈은 며칠째 이어진 밤샘으로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전교 1등이었다. 과외 한 번,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오직 독학으로 이 괴물 같은 명문고의 정점을 지켜낸 천재. 그러나 그 찬란한 타이틀 뒤에 숨겨진 현실은 구차하고 비참했다.
신우가 책상 위에 올려둔 낡은 스마트폰 화면이 깜빡였다. 성모병원 행정처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도곡 성모병원: 한혜숙 님 당월 투석 치료비 및 병실료 미납액 2,450,000원. 기한 내 미납 시 대기 순번 조정 및 퇴원 조치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신우는 마른세수를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만성 신부전증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 한혜숙. 그녀가 일주일에 세 번씩 차가운 투석기에 몸을 맡기며 연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우가 벌어오는 ‘검은 돈’ 덕분이었다. 신우는 자신의 수학적 천재성을 이용해 우성고 교사들의 기출 성향과 부교재 인용 패턴을 완벽히 분석한 ‘내신 고득점 예상 문제집’을 만들었다. 실제로는 교무실 내부에서 유출된 출제 소스를 은밀히 가공한, 사실상의 불법 유출 문제집이었다. 그것을 사설 독서실 실장 최강민을 통해 대치동 VIP 학부모들에게 권당 수백만 원에 판매하는 것. 그것이 신우가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어머니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도덕적 타협이었다.
“어쩔 수 없었어. 살기 위해서였으니까.”
신우는 매일 밤 스스로에게 그렇게 속삭이며 양심의 가책을 지워왔다. 하지만 그 합리화는 오늘 아침,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오늘 오전 8시, 1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직전. 우성고 본관 뒤편 낡은 체육관 방향에서 둔탁한 파열음이 교정을 뒤흔들었다. 쿵, 하고 지면을 때린 그 기괴한 소리의 정체는 신우의 학업적 라이벌이자 부동의 전교 2등이었던 임도현의 육체였다. 도현은 별관 옥상 난간에서 차가운 시멘트 바닥으로 스스로 뛰어내렸다.
경찰이 들이닥치고, 교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교사들은 창문을 닫고 아이들의 입단속을 시켰지만, 소문은 단톡방을 타고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성적 비관’, ‘우울증’, ‘과도한 집안의 압박’. 모두가 도현의 죽음을 뻔한 입시 비극으로 치부했다. 신우 역시 처음에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충격을 느꼈으나, 이내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도현의 자살은 비극적이지만,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야만 당장 다음 주에 있을 기말고사를 준비하고, 어머니의 병원비를 벌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방과 후, 신우가 자신의 필통을 열었을 때 그의 이성적인 뇌는 완벽하게 정지했다.
필통 가장 깊숙한 곳, 평소 쓰지 않던 지퍼 주머니 안쪽에 조그맣게 접힌 종이쪽지와 낡은 구리 열쇠 하나가 들어있었다. 도현의 단정한 글씨체였다.
[신우야, 고마웠어. 네가 준 답이 내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미안해.]
손끝이 미친 듯이 떨려왔다. 신우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도현이 죽기 전날 아침, 신우의 필통을 만지작거리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도현은 신우가 판매한 그 ‘예상 문제집’의 최종 구매자 중 한 명이었다.
“왜…… 왜 이게 네 마지막 희망이라는 거야?”
신우의 머릿속 톱니바퀴가 거칠게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도현이 단순히 성적 압박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판매한 시험지가 도현의 죽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극단적인 불안감과 죄책감이 신우의 심장을 짓눌렀다.
그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신우는 도서관 멀티미디어실의 구형 PC를 켜고, 교내 익명 커뮤니티와 경찰 조사 상황을 공유하는 단톡방을 뒤졌다. 그리고 한 학생이 도현의 책상 위에 남겨져 있던 유서 원본을 경찰이 수거하기 직전에 고화질로 촬영해 둔 사진을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화면에 띄워진 도현의 유서 사진은 평범해 보였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말, 더는 숨을 쉴 수 없다는 절망적인 문장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신우의 날카로운 눈은 유서 종이의 질감과 하단부의 미세한 굴곡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볼펜으로 글씨를 쓸 때 뒷면에 강하게 눌려 남은 압인(壓印) 흔적이었다.
신우는 가방에서 휴대용 자외선(UV) 램프를 꺼냈다. 그리고 프린터로 출력한 유서 사본의 뒷면에 파란 빛을 비추었다. 빛의 각도를 미세하게 조절하자, 어둠 속에서 눌린 종이 표면의 그림자가 정렬되며 숨겨진 글자들이 붉은 낙인처럼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도현이 자살 직전, 차마 유서 앞면에는 쓰지 못하고 꾹꾹 눌러 썼던 피 맺힌 진실이 새겨져 있었다.
[전교 1등의 시험지 때문에 내가…… 서강우가 그걸로 나를……]
숨이 턱 막혔다. 신우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전교 1등의 시험지’.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가난을 핑계로 유통했던 바로 그 예상 문제집이었다. 자신이 판 시험지가 도현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잔인한 불씨였던 것이다. 자신이 침묵하는 동안, 도현은 서강우 일당에게 그 시험지를 빌미로 가혹한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내가…… 내가 도현이를 죽인 거야.”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합리화했던 자신의 행동이, 결국 가장 친한 라이벌의 목을 죄어 죽인 밧줄이 되었음을 깨달은 순간, 신우의 내면은 완벽하게 붕괴했다. 고고한 전교 1등의 가면 뒤에 숨겨진 추악한 공범의 민낯. 신우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도서관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죗값은 피할 수 없었다. 스스로 지은 이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는, 도현을 죽음으로 몬 교내의 거대한 협박 카르텔의 배후를 제 손으로 밝혀내고 스스로 파멸하는 길뿐이었다.
바로 그 순간, 정막이 흐르던 도서관 멀티미디어실의 낡은 목재 문이 끼익 하며 미세하게 열렸다. 복도의 차가운 공기가 흘러들어오며, 신우의 책상 위로 길고 어두운 그림자가 천천히 드리워졌다. 신우는 젖은 눈을 들어 어둠 속을 응시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서늘한 발자국 소리에 그의 심장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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