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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장부와 규율부의 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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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릉.


무거운 무쇠 사슬이 제3 도서관 별관의 낡은 나무 바닥을 쓸며 기괴한 마찰음을 냈다. 칠흑처럼 어두운 규율부의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열린 문틈 사이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중심에 선 사내, 아카데미 규율부장 장도현은 얼굴의 반을 가린 차가운 철제 가면 너머로 서릿발 같은 안광을 내뿜고 있었다.


“아카데미 교칙 제12조, 금서 도용 및 무단 유출 혐의. 그리고 이단적 마력을 지닌 자를 은닉한 죄.”


장도현의 목소리는 쇠가 긁히는 듯이 무겁고 단호했다. 그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손목에 감겨 있던 ‘규율의 사슬’이 뱀처럼 요동치며 푸른 불꽃을 일구었다. 일류 극성(極盛)에 도달한 무인의 기세가 비좁은 별관 내부를 짓눌렀다. 1성 입문경에 불과한 태경의 숨통이 턱 막혀왔다.


심장 주변에 새겨진 파란색 서리 흉터가 급격한 압박에 반응하듯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다. 태경은 신음을 삼키며 가슴을 지그시 움켜쥐었다. 하얗고 흐릿한 우측 시야 때문에 장도현의 오른편에 선 무사들의 형체가 일그러져 보였지만, 왼쪽 눈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침상 뒤편의 어둠 속에는 한채원이 숨을 죽인 채 서 있었다. 심령안정초 환약 덕분에 마왕 각성도는 45%로 안정되어 있었으나, 태경이 위기에 처하자 그녀의 단전에서 미세한 붉은 마력이 불길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채원의 눈동자가 다시금 피빛으로 물들어가며, 당장이라도 장도현의 목을 찢어발기겠다는 독점욕과 살기가 별관의 공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태경은 왼손을 뒤로 뻗어 채원의 가녀린 손목을 꼭 잡았다. 하얀 붕대가 감긴 태경의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에, 채원은 흠칫 놀라며 폭주하려던 마력을 억눌렀다. 태경은 그녀를 안심시키듯 나지막이 속삭인 후, 장도현을 향해 한 걸음 걸어 나갔다.


“차 한 잔 들겠습니까, 장도현 부장?”


태경은 양손의 붕대를 만지작거리며 책상 위에 놓인 싸구려 찻잔에 미지근한 찻물을 따랐다. 1성의 나약한 사서가 보여주는 비정상적인 태연함에 장도현의 예리한 미간이 좁혀졌다.


“미천한 하급 사서 주제에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 네놈이 숨겨둔 한림가문의 서녀는 정파의 규율을 위협하는 마도의 오물이다. 학장 남궁민 어르신의 직속 체포령이 떨어졌다. 순순히 사슬을 받지 않는다면 무력 진압도 불사하겠다.”


장도현은 품속에서 붉은 직인이 찍힌 체포 영장을 꺼내 들었다. 법과 교칙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내다운 단호함이었다.


태경은 흐릿한 오른쪽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슬며시 품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최강현을 통해 입수했던 뇌물 장부의 복사본, 두꺼운 가죽 뭉치를 꺼내 탁자 위에 툭 내던졌다.


“규율을 집행하시기 전에, 이 장부의 수치들을 먼저 확인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딴 잡서로 시간을 끌 셈이냐?”


“잡서가 아닙니다. 장 부장님이 그토록 존경하는 학장 남궁민 어르신과 한림가문 간의 지하 거래 정황이 상세히 기록된 ‘뇌물 장부’의 복사본이니까요.”


장도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는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장부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이내 장부에 적힌 정교한 필체와 아카데미 학장의 사적 직인, 그리고 한림가문으로부터 매달 흘러들어온 수천 개의 하급 영석과 희귀 약재의 내역을 마주한 장도현의 전신이 굳어버렸다.


장부의 내용은 참혹했다. 학장 남궁민은 가문으로부터 막대한 뇌물을 받는 대가로, 한채원에게 가해진 잔혹한 학대와 지하 제단에서의 영혼 추출 계획을 묵인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번 금서 도용 누명 공작 역시 태경과 채원의 접촉을 차단하고 그녀를 가문으로 안전하게 송환하기 위해 학장이 직접 설계한 더러운 사법 음모였다.


“이…… 이게 무슨…….”


장부의 복사본을 쥔 장도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평생을 정파의 법과 정의를 위해 헌신해 왔다고 자부하던 사내였다. 자신이 수호하던 아카데미의 규율부와 법 집행이, 사실은 추악한 기득권의 뇌물 사슬을 지키기 위한 사냥개 짓에 불과했다는 진실은 그의 정신적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태경은 장도현의 고뇌를 놓치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장 부장님. 법이란 기득권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도구가 아닙니다. 만약 이 장부가 정파 연맹 본당과 저잣거리의 평민 학생들에게 폭로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부패한 학장의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무고한 학생들을 체포하려 했던 아카데미 규율부의 명예는 그날로 땅에 떨어질 겁니다.”


장도현은 이빨을 세차게 악물었다. 가면 너머로 비치는 그의 눈빛이 분노와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었다.


“네놈…… 나를 협박하는 것이냐? 이 장부를 여기서 빼앗고 너희를 이단으로 몰아 처단하면 그만이다!”


장도현이 살기를 뿜으며 규율의 사슬을 치켜들었다. 일류 무인의 강력한 기세에 별관 내부의 유리창들이 미세하게 금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경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해보십시오. 하지만 이 장부는 단순한 원본이 아닙니다. 이미 수십 장의 복사본이 정보 상인 최강현의 상단을 통해 정파 연맹의 주요 지부들로 발송 대기 중입니다. 제가 여기서 손가락 하나라도 다치거나 체포되는 순간, 그 봉인들이 일제히 풀려 천하에 공개될 것입니다.”


태경의 단호하고 냉철한 협박에 장도현은 검을 쥔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약한 하급 사서인 줄만 알았던 소년의 배후에 대륙 최대의 정보망이 엮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정적 속에서 오직 차가운 바람만이 깨진 문틈으로 불어왔다. 장도현은 장부의 추악한 거래 수치들과 태경의 굳건한 왼쪽 눈동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의 정의감과 현실의 규율이 머릿속에서 격렬하게 충돌하며 사투를 벌였다.


마침내, 장도현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치켜들었던 사슬을 거두었다. 그의 어깨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철수한다.”


“부장님! 하지만 학장님의 명령이……!”


뒤에 서 있던 규율부 무사가 당황하여 소리쳤지만, 장도현은 단호하게 영장을 찢어 발겼다.


“부정한 뇌물로 얼룩진 명령은 법이 아니다. 규율부는 부패한 학장의 사냥개가 아니다. 가자.”


장도현은 장부 복사본을 품에 찔러 넣은 채, 태경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신태경. 이번 체포령은 철회하겠다. 하지만 학장 남궁민은 결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공권력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는 가문과 연계하여 어둠 속의 사설 무력을 움직일 거다. 몸조심해라.”


그 경고를 끝으로 장도현과 규율부 무사들은 별관을 빠져나갔다. 삼엄했던 포위망이 풀리며 별관 내부에는 기이한 정적이 찾아왔다.


통쾌한 정치적 승리였지만, 태경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의 왼쪽 눈이 별관 창밖,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도서관 정원 구석의 짙은 어둠을 응시했다.


장도현의 경고대로였다. 법과 규율이라는 방패가 깨진 한림가문과 학장은 이제 아카데미의 교칙 따위는 무시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정원 너머, 붉은 안개와 함께 피비린내 나는 살기가 소리 없이 정원 풀잎을 적시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문이 보낸 사설 살수 집단, ‘혈영대’의 검은 그림자가 제3 도서관 별관을 향해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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