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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림의 사투, 심령안정초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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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같은 밤바람이 아카데미의 외곽 장벽을 사정없이 때려눕히고 있었다.


태경은 흐릿하게 변해버린 오른쪽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정화의 한 장을 영혼에 받아들인 대가는 혹독했다. 오른쪽 시야의 절반 이상이 하얗게 바래 있어 사물의 거리감이 도무지 잡히지 않았다. 고개를 살짝 돌려 왼쪽 눈으로 초점을 맞추어야만 겨우 앞길의 윤곽이 드러났다.


왼팔의 화상 흉터가 욱신거렸고, 한채민에게 짓눌렸던 목덜미의 피멍 자국은 침을 삼킬 때마다 타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다. 하지만 태경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별관 간이침대에서 각성도 72%의 폭주 상태로 고통받고 있을 한채원을 생각하면, 단 한 순간도 지체할 수 없었다.


아카데미 동쪽 장벽 너머, 음산한 안개가 똬리를 틀고 있는 금역.


‘아카데미 흑림(黑林).’


태경이 숲의 입구에 도달했을 때, 짙은 수풀 사이에서 가냘픈 그림자 하나가 휙 튀어 나왔다. 머리를 질끈 묶고 흙먼지가 묻은 가벼운 가죽옷을 입은 소녀, 의선 한지민 약방의 전담 약초꾼인 명아였다.


“어라? 태경 오라버니? 이 깊은 밤중에 흑림에는 왜…… 설마 미쳤어요?”


명아는 동그란 눈을 크게 뜨며 태경을 바라보았다. 1성의 미약한 기운만을 풍기는 하급 사서가 무림의 고수들도 꺼리는 흑림에 들어가겠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채원이를 살려야 해, 명아 오라버니가 아니라 태경 오라버니로서 부탁할게. 흑림 내부의 심령안정초 자생지로 날 안내해 줘. 시간이 없어.”


태경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나약함 대신 단호하고도 절박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의 진지한 눈빛에 압도당한 명아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대신 제 발걸음에서 한 치도 벗어나면 안 돼요. 흑림의 마수들은 아주 작은 인기척도 귀신같이 알아채니까요.”


명아가 앞장서며 숲의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태경은 임노인에게 전수받은 보법인 ‘무형보(無影步)’를 전개했다. 발소리를 완전히 지우고 신체의 무게를 지맥의 흐름에 실어 보내는 은밀한 신법. 비록 오른쪽 눈의 시력 저하로 인해 나무뿌리를 밟을 때마다 중심이 흔들렸지만, 태경은 이빨을 악물며 명아의 뒤를 바짝 쫓았다.


안개가 자욱한 숲속을 한참 헤치고 들어갔을 때, 거대한 절벽 틈새가 나타났다. 그 음침한 석벽 사이에서, 은은한 푸른빛을 내뿜는 약초가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심령안정초(心靈安定草).’


“찾았다…….”


태경의 왼쪽 눈이 빛났다. 채원의 단전을 쥐어짜는 가문의 붉은 마수 제어결을 무력화할 유일한 구원의 약초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태경이 절벽을 기어오르기 위해 손을 뻗는 찰나였다.


크르르르—!


대기를 뒤흔드는 웅장한 포효가 숲 전체를 진동시켰다. 절벽 위쪽의 거대한 바위 그늘 속에서 푸른빛의 안광이 번쩍였다. 3성급 거대 마수이자 흑림의 지배자인 ‘청호(靑虎)’였다.


철컥!


청호가 바위를 박차고 태경을 향해 낙하 기습을 감행했다. 집채만 한 푸른 호랑이가 날카로운 앞발톱을 세우고 하늘을 뒤덮으며 쏟아져 내리는 광경은 숨이 막히는 압도적인 공포였다.


‘우측 시야가 안 보여……!’


태경은 오른쪽에서 덮쳐오는 마수의 궤적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찰나의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왼쪽으로 비틀며 무형보를 극성으로 가동했다. 기이한 각도로 신체를 꺾으며 바닥을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콰아아앙!


청호의 발톱이 태경이 방금 서 있던 자리를 내리찍으며 단단한 석판을 먼지로 만들어버렸다. 날카로운 바람이 태경의 뺨을 스치며 미세한 상처를 남겼다. 종이 한 장 차이의 회피였다.


태경은 굴러 일어나며 소매 속에서 ‘마력 동조 은침’을 꺼내 들었다. 무공은 약하지만 적의 급소를 정확히 찌르는 사서의 침술로 청호의 미간 기맥을 마비시키려 한 것이다. 그는 은침에 미약한 마력을 실어 청호의 미간을 향해 투척했다.


깡—!


그러나 청호의 가죽은 강철보다 단단했다. 은침은 마수의 이마에 닿는 순간 불꽃을 튀기며 무참히 부러져 나갔다. 마수의 방어력은 1성 무인의 침술 따위로 뚫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크르아아아!”


자신의 미간을 건드린 것에 분노한 청호가 거대한 꼬리를 강철 채찍처럼 휘둘렀다. 측면에서 날아오는 꼬리의 파괴적인 궤적에 태경은 뒤로 피할 공간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절벽 아래의 어두운 심연을 향해 몸을 던졌다.


허공으로 추락하는 순간, 태경의 왼손이 절벽 벽면에 자라난 거친 넝쿨을 움켜쥐었다.


좌르르륵—!


거친 가시넝쿨이 태경의 손바닥을 쓸고 지나가며 가차 없이 살을 찢어발겼다. 양손 바닥이 순식간에 붉은 피로 물들었고, 뼛속까지 시려오는 극통이 뇌리를 강타했다. 하지만 태경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은 채 이빨을 부러질 듯 사려 물고 넝쿨을 붙잡아 매달렸다.


“이 괴물 고양이 녀석아! 여기 좀 보시지!”


절벽 위에서 명아가 소리치며 주변의 바위를 강하게 내리쳐 큰 소음을 냈다. 돌멩이들이 사방으로 튀며 청호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청호가 으르렁거리며 명아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짧은 틈새.


태경은 피가 흐르는 양손으로 넝쿨을 타고 올라가 절벽 틈새에 자라난 심령안정초를 움켜쥐었다. 손바닥의 붉은 피가 푸른 약초의 잎사귀에 스며들며 기이한 공명을 일으켰다. 그는 힘껏 약초를 뿌리째 뽑아 품속에 밀어 넣었다.


“명아, 뛰어!”


목표를 달성한 태경이 절벽 위로 올라서며 명아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분노한 청호가 추격해오기 전에 숲의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어두운 안개 속으로 몸을 던졌다. 무형보의 은밀함과 명아의 노련한 지리 안내 덕분에, 그들은 청호를 처치하지는 못했으나 흑림의 위험 구역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차가운 새벽이슬을 맞으며 흑림 외곽의 도로로 빠져나온 태경과 명아. 피투성이가 된 손을 움켜쥔 태경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카데미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태경의 흐릿한 오른쪽 눈과 선명한 왼쪽 눈에 동시에 불길한 횃불 무리가 포착되었다.


아카데미로 통하는 유일한 외곽 도로.


그곳에는 가문의 집행 장로 한무진이 보낸 사설 경비 무사들이 촘촘하게 대열을 지어 도로 전체를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삼엄한 감시망의 중심에서 무사들이 칼자루를 쥔 채 사방을 매섭게 수색하는 모습이 보였다.


채원에게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마지막 장벽이자, 새로운 피 비린내 나는 위기가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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