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경계선, 빙궁의 추격대
“오라버니, 제발 몸을 더 웅크리세요. 제 불꽃이…… 오라버니를 다 녹여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하지만 조금만 참으시면 돼요. 제가 오라버니를 해치려는 자들은 전부 불태워버릴 테니까요.”
한채원의 가녀린 목소리가 지독한 눈보라 소리를 뚫고 신태경의 귓가를 맴돌았다. 장미빛으로 은은하게 타오르는 그녀의 신성 불꽃이 태경의 전신을 감싸 안고 있었지만, 태경의 몸은 여전히 덜덜 떨리고 있었다.
단전의 내력이 완전히 고갈된 탓에 외부에서 주입되는 온기가 기맥 내부로 스며들지 못하고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천당가의 당소혜가 남긴 신경독의 여파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끈적한 피가 울컥 솟구쳤다.
“쿨럭……! 콜록!”
태경이 검붉은 피를 다시 한번 마차 바닥에 쏟아내자, 채원의 핏빛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는 죄책감과 광기 어린 걱정으로 일렁였다. 그녀는 붕대가 칭칭 감긴 태경의 왼손을 제 뺨에 비벼대며 애타게 울부짖었다.
“안 돼요, 오라버니! 피를 흘리지 마세요…… 제발 아프지 마세요. 제가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채원의 집착은 이제 태경의 존재 자체를 구속하려는 어둠의 형태로 변모해 있었다. 태경은 흐릿한 양안의 시야 너머로 그녀의 눈물을 바라보며, 겨우 살아 움직이는 왼손 끝으로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괜찮다, 채원아. 내 심장이 얼어붙는 것은…… 백설아를 구원하면 해결될 일이다.”
태경의 가슴팍에 새겨진 파란색 서리 흉터가 대지의 매서운 한기와 공명하며 찌르르한 극통을 유발했다. 시스템의 경고창이 하얗게 왜곡된 시야 속에서 붉게 점멸했다.
[경고: ‘빙정 동사 위험도’가 상승 중입니다! 현재 수치: 35%]
[경고: 체내 기맥의 동결이 누적되고 있습니다. 온기 수급이 시급합니다.]
마차의 맞은편 좌석에 앉아 비단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 있던 제갈린이 안경테를 가볍게 밀어 올리며 차가운 어조로 끼어들었다.
“태경 씨, 당신의 정신력과 지략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지금 상태는 말 그대로 바람 앞의 등불입니다. 제 팔진도의 장막이 눈보라를 막아주고는 있지만, 곧 도달할 국경 검문소는 제 결계만으로 통과할 수 없습니다.”
린이 비단 부채를 가볍게 접어 창밖을 가리켰다.
“저 앞이 바로 중원과 북해의 경계선인 ‘서리 요새 관문’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대장로 백무진의 직속 명령을 받은 ‘북해빙궁 무역 사절단’의 정예 무사들이 삼엄한 결계를 치고 대기하고 있지요. 그들은 외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덜컹거리는 마차가 멈춰 섰다. 마차를 몰던 정찬우의 굳건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주군, 전방에 빙궁의 무사들이 장벽을 세우고 길을 막아섰습니다. 더 이상 마차로 전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태경은 채원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뺨을 때렸고, 대기 중의 수증기가 날카로운 얼음 칼날로 변해 허공에서 서슬 퍼렇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하얗게 질린 대지 너머로 거대한 얼음 장벽이 솟아 있었고, 그 앞에는 은빛 갑옷을 입고 온몸에서 푸른 냉기를 뿜어내는 빙궁의 정예 무사 수십 명이 검을 뽑아 든 채 대기하고 있었다.
“멈춰라! 이곳은 북해빙궁의 영토다. 대장로님의 봉쇄령에 따라, 허가받지 않은 외인은 단 한 걸음도 들여놓을 수 없다!”
사절단의 단장이 차가운 안광을 번뜩이며 노호성을 질렀. 그들의 기세가 하나로 얽히며 대지를 얼려버릴 듯한 압도적인 영압으로 밀려왔다.
스으으으—!
그 순간, 무사들이 일제히 기맥을 연결하며 단전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설원 한가운데에 거대한 푸른빛의 반투명한 장벽이 솟구쳐 올랐다.
북해의 절대 영도를 구현한 방어막, ‘삼한 서리막’이었다.
서리막이 전개되는 순간,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하락하며 영하 백 도에 육박하는 혹한이 결사대를 덮쳤. 태경은 숨을 들이쉬는 순간 폐부가 얼어붙는 듯한 고통에 무릎을 꿇으며 차가운 피를 눈밭 위에 쏟아냈다.
“윽……! 쿨럭!”
[위험! ‘빙정 동사 위험도’가 급상승합니다! 현재 수치: 48%]
[단전 기맥의 마비가 시작됩니다. 행동 제약이 발생합니다.]
오른손 검지는 부목에 묶여 쓸 수 없고, 은침마저 단 한 개도 남아있지 않은 최악의 상황. 태경의 전신이 파랗게 얼어붙어 가자, 채원의 이성이 마침내 완전히 끊어졌다.
“오라버니를 아프게 하는 놈들은…… 전부 죽여버리겠어!”
채원이 포효하며 전방으로 도약했다. 그녀의 단전에서 정화된 신성 불꽃이 장미빛 광휘를 뿜어내며 폭발했고, 손끝에서 뻗어 나온 붉은 가시 채찍이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삼한 서리막의 중심부를 사납게 후려쳤다.
콰아아앙—!
하지만 서리막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절대 영도의 냉기가 채찍이 닿는 순간 그 흐름을 타고 역류했다. 채원의 강력한 신성 불꽃조차 빙궁 무사 수십 명의 합동 내력 장벽에 막혀 상쇄당했고, 사나운 한기의 반동이 그녀의 전신을 덮쳤다.
“아악!”
채원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밀려났다. 그녀가 쥐고 있던 붉은 가시 채찍의 끝자락이 파랗게 얼어붙더니, 이내 유리 조각처럼 처참하게 바스락거리며 산산조각 나 부서져 내렸다.
“채원아!”
태경이 각혈을 삼키며 소리쳤다. 채원은 부서진 채찍을 쥔 채, 태경을 지키지 못했다는 절망감과 내상으로 인해 입가에 피를 흘리며 눈물 어린 눈으로 태경을 바라보았다. 정면의 힘 대 힘 대결로는 저 거대한 결계를 결코 뚫을 수 없다는 명백한 한계였다.
‘정면 돌파는 불가능해. 저 장벽은 빙궁 무사들의 기맥이 기하학적으로 연결되어 유지되는 법칙의 성벽이다. 그렇다면…….’
태경은 이를 악물며 왼쪽 눈의 ‘영혼의 안’을 극한으로 개방했다.
우웅—.
왜곡되고 흐릿한 시야 너머로, 세계의 색이 변하며 서리막 결계의 숨겨진 기맥 흐름이 붉고 푸른 실타래가 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태경은 흐릿한 시야 속에서도 결계를 유지하는 핵심 연결점을 찾아내기 위해 온 정신력을 집중했다. 관자놀이의 혈관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고, 전신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려 눈밭에 얼어붙었다.
‘찾았다. 7시, 11시, 그리고 3시 방향. 저 세 군데의 무사들이 내뿜는 빙공의 기류가 삼각 구도를 이루며 서리막의 닻 역할을 하고 있어. 저 연결고리만 끊어낼 수 있다면 결계는 무너진다!’
태경은 소리치려 했으나 목구멍이 얼어붙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왼손으로 제갈린의 소매 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붕대 틈새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와 린의 청색 도포를 적셨다.
“제갈린…… 씨…… 7시, 11시, 3시 방향…… 지맥의 흐름을 비틀어라……!”
제갈린의 눈동자가 안경 너머로 크게 흔들렸다. 무공조차 쓰지 못하는 나약한 사서가, 자신조차 파악하는 데 한참이 걸릴 빙궁의 고대 기학적 결계 약점을 단숨에 짚어냈기 때문이다. 그녀의 심장 속에 그를 향한 지적 경외감과 소유욕이 한층 더 굳건하게 소용돌이쳤다.
“정말…… 괴물 같은 통찰력이군요, 신태경 씨.”
린이 기문둔갑 부채를 장엄하게 펼치며 설원 위로 한 걸음 나섰다. 그녀가 부채를 휘두르며 제갈심경의 내력을 극성으로 끌어올리자, 그녀의 발밑에서부터 청색의 기하학적 수식들이 마법진처럼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팔진도(八陣圖), 건곤(乾坤)의 궤도를 역전시켜라!”
웅—!
청색의 광휘가 설원의 눈바람을 뚫고 태경이 가리킨 세 군데의 삼각 기맥 연결점을 정확히 타격했다. 기문둔갑의 진법이 가동되자, 결계를 유지하던 대지의 기맥 흐름이 일시적으로 왜곡되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서리막의 한구석이 눈에 띄게 얇아지며, 푸른 장벽 표면에 미세한 균열의 틈새가 열리기 시작했다. 돌파의 실마리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얇아진 결계의 틈새 사이로 채원의 잔존하는 장미빛 신성 불꽃과 빙궁 무사들의 절대 영도 한기가 비정상적인 경로로 뒤엉키기 시작했다. 서로 상극인 극단적인 두 에너지가 좁은 균열 속에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며 대지를 뒤흔드는 진동을 일으켰다.
쿠구구구구—!
하늘의 붉은 비가 그 진동에 반응하듯 더욱 거세게 쏟아졌고, 경계선 주변의 불안정한 기맥들이 미친 듯이 얽혀 들어가며 사방으로 파란색과 장미빛의 스파크를 튀겼다.
그것은 대지 전체를 날려버릴 거대한 한기 마력 폭발의 전조였다.
태경의 가슴팍 서리 흉터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며, 시스템의 경고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위험! 상극의 마력 충돌로 인한 대규모 한기 마력 폭발 임박!]
[남은 시간: 10초. 동사 위험도가 임계점인 60%에 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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