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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의 동맹, 제갈가문의 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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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구구—!


북해의 하늘은 자비가 없었다. 대지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 몰아치는 백색의 눈보라는 단순한 눈보라가 아니었다. 기맥을 얼려 굳게 만들고, 숨을 쉴 때마다 폐부를 칼날로 찌르는 듯한 절대 영도의 한기였다.


덜컹, 덜컹!


특급 신마들이 이끄는 마차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마차를 모는 정찬우의 다급한 고함소리가 몰아치는 바람 소리 사이로 가늘게 찢겨 들려왔다.


“주군! 눈보라가 너무 거셉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마차가 통째로 설산 아래로 굴러떨어집니다!”


마차 내부의 공기 역시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쿨럭! 콜록……!”


신태경은 가슴을 움켜쥔 채 검붉은 피를 한 움큼 쏟아냈다. 사천당가의 미치광이 천재 당소혜가 남기고 간 비전 신경독의 여파는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다. 독기를 강제로 동결시켜 억눌렀으나, 1성 입문경에 불과한 그의 연약한 기맥은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가슴뼈 안쪽이 타들어 가듯 아팠고, 온몸의 감각이 마비되어 굳어가는 통증이 밀려왔다.


오른손 검지는 단단한 나무 부목에 묶여 있어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었고, 등에 새겨진 대형 화상 흉터는 혹한의 냉기와 반응해 욱신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우측 시야는 하얗게 흐려져 있었고, 좌측 시야마저 미세하게 흔들려 왜곡되는 최악의 만신창이 상태.


“오라버니……! 제발 무리하지 마세요. 제 불꽃으로…… 제 불꽃으로 따뜻하게 해드릴게요!”


한채원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태경을 품에 꼭 안았다. 그녀의 단전에서 피어오른 장미빛 신성 불꽃이 온기를 뿜어내며 태경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하지만 태경의 단전이 완전히 비어 있는 탓에, 외부에서 주입되는 불꽃의 온기는 그의 얼어붙은 기맥을 녹이지 못하고 거부 반응만을 일으켰다.


“윽……!”


태경이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뒤틀자, 채원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거두었다. 그녀의 핏빛 눈동자에는 자신 때문에 태경이 이토록 처참하게 다치고 죽어가고 있다는 극도의 죄책감과 슬픔, 그리고 그를 절대 잃지 않겠다는 살벌한 독점욕이 뒤섞여 일렁이고 있었다.


‘동사 위험도가 벌써 30%를 넘어섰어…….’


태경은 흐릿한 왼쪽 눈앞에 깜빡이는 시스템의 붉은 경고창을 응시했다. 은침마저 지난 결전에서 완전히 고갈되어 기맥을 스스로 조율할 방법도 없었다. 품속의 ‘빙황의 화로’는 그의 내력이 바닥나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 백색 아수라장 속에서 고립된다면, 대피소도 찾지 못한 채 그대로 동사할 터였다.


콰르릉—!


그때, 마차 천장을 뚫어버릴 듯한 거대한 눈사태의 굉음이 설산 전체를 흔들었다. 찬우가 고함을 지르며 급하게 고삐를 잡아당겼고, 마차가 거칠게 기울어지며 멈춰 섰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휘몰아치는 백색의 장막을 뚫고, 은은하고 신비로운 청색의 영광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기문둔갑(奇門遁甲), 팔진(八陣)의 장막을 전개하라.”


나지막하면서도 지적인 여인의 목소리가 눈보라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웅—!


대지 위에 거대한 청색의 기하학적 수식들이 마법진처럼 펼쳐지더니, 마차를 감싸 안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살인적인 칼바람과 눈보라가 마차 주변에서 비껴나가기 시작했다. 절대 영도의 폭풍 속에서, 오직 반경 수십 미터 구역만이 봄날의 온기처럼 따뜻하고 고요한 성역으로 변모한 것이다.


덜컹거리며 다가오는 또 다른 거대한 목조 마차. 그 마차의 옆면에는 제갈가문(諸葛家門)의 청색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아카데미 내에서 기맥의 변동과 인과율의 균열을 학문적으로 추적하던 단체, ‘제갈가문 학술단’의 마차였다.


청색 마차의 문이 열리며, 단아한 도포를 걸친 한 영애가 설원 위로 가볍게 내려섰다.


비단 부채로 입가를 가린 채, 지적인 안경 너머로 예리한 광채를 빛내는 소녀. 제갈가문의 천재 지략가, 제갈린(諸葛린)이었다.


“도서관의 낡은 서고 구석에서 먼지만 쓸던 하급 사서인 줄 알았더니, 기어코 이 멀고 험한 북녘의 설원까지 걸어오셨군요. 신태경 씨.”


제갈린이 비단 부채를 살짝 내리며 나지막이 미소 지었다. 하지만 안경 너머로 드러난 그녀의 눈동자는, 태경의 아주 미세한 움직임 하나까지 전부 해부해 보겠다는 듯 소름 끼치도록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비켜라! 내 오라버니에게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오면 그 주둥이부터 갈기갈기 찢어발겨 주마!”


채원이 붉은 가시 채찍을 실체화하며 전방으로 솟구쳤다. 정찬우 역시 부러진 검을 쥐고 태경의 사각지대를 철저히 엄호했다. 하지만 태경은 붕대 감긴 왼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했다.


“멈춰라, 채원아. 찬우도 무기를 거두게.”


태경은 채원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천천히 내렸다. 차가운 설원의 바람이 뺨을 스쳤지만, 제갈린이 전개한 팔진도의 결계 덕분에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태경은 왼쪽 눈의 ‘영혼의 안’을 개방했다.


어지럽게 왜곡되는 시야 너머로, 제갈린의 영혼 기맥이 도식화되어 보였다. 그녀의 영혼은 살의나 적대감이 아닌, 거대한 지적 호기심과 탐구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갈가문의 영애가 어째서 이 추운 북방까지 걸음을 하셨습니까? 아카데미 학술단의 감시 임무는 중원에서 끝난 것으로 압니다만.”


태경이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태연하게 대꾸하자, 제갈린은 부채로 다시 입가를 가리며 가볍게 웃었다.


“감시라뇨, 섭섭한 말씀이십니다. 저는 그저 학자로서 ‘진실’을 쫓아왔을 뿐이지요. 한림가문의 추악한 몰락, 학장 남궁민의 실각, 그리고 오만하던 남궁현의 파멸까지……. 그 모든 거대한 역사적 격변의 중심에, 무공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하급 사서 한 명이 서 있었다는 진실 말입니다.”


린이 안경테를 가볍게 밀어 올렸다.


“당신이 움직일 때마다 대지의 기맥이 뒤틀리고, 인과율에 거대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어요. 제갈가문의 학술단은 그 균열의 파동을 추적해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사천당가의 신경독에 중독되어 은침조차 쓰지 못하는 만신창이 상태지요. 제 도움이 없다면 이 폭풍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 죽을 텐데, 제 제안을 거절하실 건가요?”


팽팽한 심리적 수 싸움이 설원 위에 내려앉았다. 린은 태경의 흐릿한 두 눈과 떨리는 손끝을 보며 그의 심리적 한계를 읽어내려 했다.


하지만 태경은 10년 후의 미래 정보를 기억하는 회귀자였다. 그는 제갈가문이 왜 대지의 기맥 변동을 그토록 집요하게 연구하는지, 그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제갈린 씨. 당신들이 쫓는 것은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이 아닐 텐데요. 미래에 대지를 사막화시킬 성국의 ‘신성한 정화’ 재앙…… 그것을 막기 위한 기맥 제어 수식을 완성하려는 것이 제갈가문의 진짜 목적 아닙니까?”


제갈린의 눈동자가 한순간 크게 흔들렸다. 부채를 쥔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가문의 극비 중의 극비인 미래 예측 정보를, 한낱 아카데미 사서가 정확히 읊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떻게 그것을…….”


“동맹을 맺읍시다. 제갈가문이 우리에게 이 폭풍을 뚫고 갈 안전한 결계와 방어벽을 제공해 준다면, 내가 성국의 위선적인 음모를 깨부수고 대지의 기맥을 안정시킬 결정적인 수식의 실마리를 당신들에게 제공하겠습니다.”


태경은 만신창이의 몸을 이끌고도, 추호의 흔들림 없는 태도로 협상의 주도권을 완전히 틀어쥐었다. 린은 비단 부채를 천천히 내리며 태경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약하고 부러진 육체 뒤편에 숨겨진 거대하고 신비로운 지략의 심연에, 그녀는 학자로서 완벽하게 매료당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기꺼이 동맹을 맺지요. 이 폭풍이 끝날 때까지, 제 팔진도의 장막은 당신들의 방패가 될 것입니다.”


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결계를 유지하는 부채를 흔들자, 따뜻한 온기가 마차 내부로 스며들었다. 태경은 가쁜 숨을 내쉬며 마차 벽에 기대앉았다. 동사 위험도가 서서히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제갈린은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으며 극도로 무거운 표정으로 태경을 돌아보았다.


“그나저나, 신태경 씨. 당신이 한채원 씨를 구원하며 인과율을 비틀어버린 대가가 어디로 향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태경의 미간이 좁혀졌다. 심장 주변의 파란색 서리 흉터가 불길하게 찌르르 울렸다.


“……북해빙궁입니까?”


“예. 당신이 바꾼 역사의 나비효과로 인해, 북해빙궁의 대장로 백무진(白武鎭)이 예정보다 5년이나 빠르게 빙궁 전체를 완전히 폐쇄했습니다. 그리고…….”


린이 안경을 다시 쓰며 태경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들이 ‘빙정의 저주’라 부르는 천계의 쐐기를 영구히 봉인하기 위해, 백설아(白雪兒) 아가씨를 제물로 바쳐 얼어붙은 심연에 영원히 가두는 의식을 이미 시작했습니다. 지금 당장 빙궁으로 향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영혼은 사흘 안에 완전히 소멸할 것입니다.”


쿵!


태경의 가슴팍에서 지독한 한기의 통증이 폭발하듯 솟구쳤다. 흐릿한 왼쪽 눈 너머로, 얼어붙은 제단 위에서 슬프게 눈을 감고 있는 은발 소녀의 실루엣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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