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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국의 감시자, 베일 뒤의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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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두꺼운 가죽 장막이 매서운 칼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렸다.


신태경은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동굴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오른손 검지는 단단한 부목으로 고정되어 있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고, 왼손 바닥에는 흑림에서 가시넝쿨을 움켜쥐다 찢어진 상처를 한지민 의선이 정성스레 감싸준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등 뒤에는 채원의 폭주를 온몸으로 막아내다 새겨진 대형 화상 흉터가 걸을 때마다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다.


하지만 가장 끔찍한 것은 시야였다. 정화의 한 장을 흡수한 대가로 우측 시력은 이미 하얗고 흐릿하게 죽어버린 상태였고, 방금 전 서리 거인의 사념과 영적 대적을 치른 여파로 좌측 시야마저 미세한 왜곡과 흐릿함이 추가되어 세상이 온통 일그러진 물감처럼 보였다.


“오라버니, 무리하지 마세요. 아직 단전의 내력도 온전히 회복되지 않으셨잖아요.”


채원이 태경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으며 걱정스레 속삭였다. 그녀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장미빛 신성 불꽃의 온기가 태경의 동사 위험도를 겨우 22% 선에서 붙잡아두고 있었다. 채원의 핏빛 눈동자에는 자신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태경을 향한 미칠 듯한 죄책감과 함께, 그를 해치려는 모든 존재를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겠다는 사납고 달콤한 독점욕이 가득 차 있었다.


“괜찮다, 채원아. 밖의 손님이 우리를 꽤 오래 기다린 모양이구나.”


태경은 희미하게 웃으며 동굴 밖 설원으로 완전히 나섰다.


눈보라가 사납게 몰아치는 백색의 대지 위. 그곳에는 아카데미 수습생의 평범한 도포를 걸치고 있으나, 그 아래로 은빛으로 빛나는 성기사의 갑옷을 숨겨둔 한 사내가 굳건하게 서 있었다. 사내의 목걸이에 걸린 십자가 문양의 ‘성광의 펜던트’가 채원의 붉은 불꽃 기운에 반응하듯 검붉은 빛을 내뿜으며 격렬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천황교단 아카데미 지부 소속이자, 교황 요한 3세의 밀명을 받고 잠입한 감시자. 성기사 론이었다.


론의 뒤로는 은빛 갑옷을 입고 차가운 철제 검을 쥔 성국 광신도 단원 십여 명이 삼엄한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단 마도의 흔적을 쫓아 이곳까지 왔거늘, 결국 쥐새끼들이 꼬리를 드러냈군.”


론이 허리춤에서 거대한 은빛 대검을 뽑아 들었다. 그가 검 끝을 눈밭에 꽂자, 웅장한 신성 마력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이들의 퇴로를 차단하는 거대한 ‘성광의 장벽’을 형성했다. 일류 극성에 달하는 성기사의 압도적인 영압이 태경의 기맥을 가차 없이 짓눌렀다. 태경은 밀려오는 영압에 가슴이 턱 막히며 심장 주변의 파란 서리 흉터가 찌르르하게 울리는 통증을 느꼈다. 입가로 차가운 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오라버니!”


채원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광포한 살기로 물들었다. 그녀의 단전에서 정화된 신성 불꽃이 폭발하듯 솟구치며, 손끝에서 붉은 가시 채찍이 실체화되었다. 당장이라도 성기사들의 목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기세였다. 하지만 태경은 붕대 감긴 왼손으로 채원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아 저지했다.


‘안 된다, 채원아. 내 침통은 완전히 비어 있어 은침을 단 한 개도 쓸 수 없다. 정면 무력 대결로는 저 일류 극성의 성기사와 광신도들을 이길 수 없어. 게다가 성국과의 성급한 무력 충돌은 향후 연지우를 구원할 때 최악의 걸림돌이 된다. 이 대결은…… 힘이 아닌 율법과 지략으로 깨부수어야 한다.’


태경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론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흐릿하고 왜곡된 왼쪽 눈 너머로 론의 영혼에 깃든 올곧지만 맹목적인 신앙의 궤적이 보였다. 론은 단순한 악당이 아니었다. 성국의 교리를 진심으로 믿고 정의를 집행하려는 강직한 무인이었다.


그렇기에 파고들 틈이 있었다.


“한림가문의 서녀 한채원, 그리고 아카데미의 하급 사서 신태경.”


론이 대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차갑게 선언했다.


“너희가 부리는 붉은 불꽃은 성국의 신성한 교리에 어긋나는 사악한 이단 마도이자, 고대 파멸의 마왕이 남긴 오물이다. 교황 요한 3세 어르신의 이름으로 너희를 체포하여 아카데미 내부의 비밀 기도실로 압송하겠다. 순순히 사슬을 받아라.”


성기사들이 쇠사슬을 흔들며 다가오는 일촉즉발의 순간, 태경은 왜곡된 시야 속에서도 침착하게 품속에서 낡은 ‘만물 기록첩’을 꺼내 들었다. 비록 오른손가락은 부목에 묶여 쓸 수 없었지만, 왼손 끝으로 기록첩의 책장을 천천히 넘겼다. 기록첩의 빈 페이지 위로 성국의 초대 신녀가 남긴 고대 교리의 원본 구절들이 푸른 빛으로 떠올랐다.


태경은 나지막하지만 연회장 전체를 울릴 듯한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성국 교리서 제3장 12절, ‘태초의 빛은 백색으로 시작하여 지상의 모든 슬픔을 불태울 때 장미빛 붉은 불꽃으로 화하나니, 이는 영혼을 정화하는 신성한 온기니라.’ 성기사 론, 그대가 매일 아침 외우는 기도문의 한 구절이 아닙니까?”


론의 굳건하던 미간이 일순간 움찔했다. 대검을 쥔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구절을…… 평민 사서인 네놈이 어찌 아는 것이냐.”


“아카데미 도서관의 사서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지키는 자입니다. 론 경, 그대가 믿는 성국은 언제부터 신성한 정화의 불꽃을 이단 마도로 규정했습니까? 혹시, 교황청이 지상의 강력한 마도적 재능들을 독점하고 ‘신의 그릇’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소모품 제물로 삼기 위해 교리를 왜곡한 것 아닙니까?”


“무슨 망발을! 성국은 오직 천명을 수호하며 세상의 안녕을 위해 헌신할 뿐이다!”


론이 사납게 외쳤으나, 그의 영혼 궤적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태경의 왼쪽 눈에 포착되었다. 태경은 멈추지 않고 마지막 치명타를 날렸다. 그는 품속에서 학장 남궁민의 비리가 적힌 ‘뇌물 장부 복사본’을 꺼내 들어 론의 발밑 눈밭 위로 툭 던졌다.


“그렇다면 이것도 확인해 보시지요. 그대가 그토록 존경하는 학장 남궁민과 천황교단 아카데미 지부의 사제들이 뒤에서 맺은 검은 거래의 증거입니다. 한림가문으로부터 막대한 뇌물을 받는 대가로, 한채원 아가씨의 영혼을 강제로 추출하려던 제단 음모를 묵인한 것도 모자라…… 아카데미 내부의 평민 학생들을 비밀 기도실로 납치해 불법적인 기맥 실험체로 삼아온 기록이 상세히 적혀 있습니다.”


론은 의심과 경악이 뒤섞인 눈빛으로 눈밭에 떨어진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결국 검 끝을 거두고 왼손으로 장부를 집어 들어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장부에 적힌 아카데미 지부 사제의 친필 서명과 위선적인 거래 내역들을 마주한 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이…… 이럴 리가 없다. 신성한 지부에서 이런 추악한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론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은빛 성광의 장벽이 그의 정신적 붕괴와 함께 급격히 약화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자신이 평생 믿어온 성국의 정의가 추악한 뇌물 사슬과 평민 인체 실험으로 더럽혀졌다는 진실은, 맹목적이던 성기사의 신앙심에 거대한 균열을 내기에 충분했다.


채원은 태경의 곁에서 그의 붕대 감긴 손을 더욱 꼭 쥐며, 지략 하나로 일류 극성의 성기사를 정신적으로 완벽히 굴복시키는 태경의 비범한 풍모에 온몸이 저릿해지는 경외감을 느꼈다.


론이 고뇌에 찬 침묵 속에서 대검을 쥔 손을 덜덜 떨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쿠구구구구—!


갑자기 그들이 서 있는 대설원 깊은 지하에서부터 귀를 찢는 듯한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발밑의 대지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쩍쩍 갈라졌고, 눈보라 속에서 붉은 인과의 안개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인과율 왜곡 수치의 폭발로 인한 거대한 이변, ‘대지의 상처’ 균열이 그들의 발밑을 삼키려 입을 벌리기 시작한 것이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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