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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과 한빙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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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가문의 대연회장은 붕괴된 천장 너머로 스며드는 밤바람에 기괴한 정적을 품고 있었다. 가주 한태오와 조대인의 탐욕이 장미빛 신성 불꽃에 휩쓸려 완전히 소멸한 자리에는 오직 재와 그을음만이 흩날릴 뿐이었다.


“오라버니…… 정신이 드세요? 제발 절 봐주세요…….”


한채원의 가녀린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녀는 등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 쓰러진 신태경을 품에 안은 채,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각성된 ‘신성적화(神聖赤火)’의 따뜻한 온기가 태경의 전신으로 흘러들었지만, 등 뒤에서 치솟는 극심한 화상의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태경은 신음을 삼키며 천천히 눈을 떴다.


“채, 채원아…….”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야는 처참할 정도로 왜곡되어 있었다. 정화의 대가로 우측 시력이 영구히 저하된 것에 더해, 방금 전 기록관 병의 소멸 공격을 막아내느라 왼쪽 눈앞마저 미세한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고 뿌옇게 변해 있었다. 양안의 시력이 모두 저하되어 온 누리가 이그러진 형상으로 보였다. 오른손 검지는 기맥이 파열되어 부목에 고정된 채 굳어 있었고, 왼손 손등 역시 마기 역류로 인한 화상 자국이 선명했다. 소매 안의 침통은 텅 비어 있었다. 마력 동조 은침은 이미 한 개도 남아있지 않았다.


“주군, 몸을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가문의 사설 무사들은 모두 전의를 상실하고 흩어졌으나, 대지의 기맥이 심상치 않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부러진 검 대신 무거운 현철 장검을 쥔 정찬우가 단상 아래에서 주위를 경계하며 엄숙하게 보고했다.


찬우의 말대로였다. 하늘의 찢어진 균열은 아물었으나, 인과율 왜곡 수치가 120%를 돌파한 여파는 지상에 혹독한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대연회장 바닥의 갈라진 틈새 너머로 계절을 잊은 차가운 기류가 끊임없이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단순한 겨울의 추위가 아니었다. 뼛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절대 영도(絕對零度)의 서리 한기였다.


툭. 투둑.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이 태경의 뺨에 닿았다. 그 빗방울을 흐릿한 왼쪽 눈으로 바라보던 태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빗방울의 색이 붉었다. 대지 전체를 피빛으로 물들이는 ‘붉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붉은 비가 땅에 닿는 순간, 하얀 서리발이 그 위를 덮치며 붉은 얼음 꽃을 피워냈다.


[경고: 뒤틀린 인과율의 나비효과가 발생합니다!]

[아카데미 북쪽 외곽에 절대 영도의 서리를 내뿜는 '한빙 절벽'이 솟아올랐습니다!]

[원시 한기가 지맥을 타고 침투하며, 주인공의 '빙정 동사 위험도'가 감지되기 시작합니다!]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의 반투명한 경고창이 흐릿한 양안 시야 속에서 붉게 깜빡였다. 태경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조대인의 화경 살기에 반응했던 심장 주변의 파란색 서리 흉터가, 이제는 대지에서 밀려오는 혹한의 기운에 공명하듯 찌릿하고 예리한 통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인과의 반동이…… 결국 시작된 건가.’


태경은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채원이 다급히 그의 어깨를 부축했다.


“오라버니, 움직이시면 안 돼요! 등 뒤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어요. 제 불꽃으로도 이 추위가 다 막아지지 않아요…….”


채원의 목소리에는 태경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죄책감과 함께, 그를 자신의 품안에만 가두고 지키고 싶다는 집착 서린 독점욕이 짙게 묻어나고 있었다. 태경은 그녀의 머리를 붕대 감긴 왼손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괜찮다, 채원아. 가야만 해. 저 한빙 절벽의 근원을 확인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이 추위에 잠식될 것이다.”


태경의 단호한 태도에 채원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태경의 유일한 수호천사가 되기로 맹세했기에, 그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찬우가 앞장서며 길을 열었고, 태경은 채원의 부축을 받으며 붉은 비와 서리가 몰아치는 아카데미 북쪽 외곽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


아카데미 북쪽 외곽의 단풍나무 숲은 이미 흔적도 없이 얼어붙어 있었다. 붉은 낙엽들은 피빛 얼음 속에 갇혀 기괴한 비주얼을 뽐냈고, 그 중심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얼음 절벽인 ‘한빙 절벽’이 웅장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절벽 표면에는 고대의 푸른 안개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는데, 그것은 단순한 냉기가 아니었다. 태경이 ‘영혼의 안’을 개방하여 흐릿한 왼쪽 눈으로 투시하자, 절벽 깊은 곳에서 거대한 존재의 사념인 ‘서리 거인의 의지’가 푸른 쐐기의 형상으로 꿈틀거리는 궤적이 보였다.


“이런, 이런. 기어코 천명을 거스르고 운명의 실타래를 끊어놓은 대가가 참으로 빠르게 도달했구만.”


차가운 안개 속에서 낮고 초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태경과 채원, 찬우의 시선이 동시에 그곳을 향했다. 흐릿한 안개를 헤치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한 사내가 있었다. 머리에 깊게 눌러쓴 삿갓 아래로 날카로운 눈빛이 번뜩였고, 몸에는 낡고 빛바랜 황토색 도포를 걸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묵직한 대나무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세상을 떠돌며 우주의 인과를 방관한다는 정체불명의 도인, ‘묵객(묵객)’이었다.


“누구냐! 주군의 앞을 가로막는 자는 베겠다!”


정찬우가 즉각 현철 장검을 뽑아 들며 현무강기공의 푸른 빛을 발산했다. 채원 역시 태경의 앞을 가로막으며 손끝에서 장미빛 신성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러나 묵객은 그들의 적대적인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들고 있던 대나무 지팡이로 한빙 절벽의 바닥을 가볍게 탁, 하고 짚었다.


스으으으—!


순간, 그들의 발밑에서 투명한 얼음 꽃들이 폭발적으로 피어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채원이 내뿜던 신성 불꽃이 그 압도적인 한기의 기세에 눌려 한순간에 사그라들었다. 일류 초입의 찬우조차 묵객이 내뿜는 현경(玄境) 극성의 무형의 영압에 가로막혀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화경과 일류의 힘으로 이 늙은이의 인과를 깨뜨릴 수는 없다. 나는 그저 경고를 전하러 온 방랑자에 불과하니까.”


묵객이 삿갓을 슬며시 들어 올리며 태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냉철하고 무거웠.


“신태경. 너는 한림가문의 서녀를 정화하여 마왕의 궤도에서 이탈시켰다. 정파의 썩은 질서를 부수고 그녀를 구원한 지략은 칭찬할 만하나…… 우주의 법칙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지. 등가교환의 법칙은 절대 깨지지 않는다.”


태경은 가슴을 움켜쥔 채 묵객의 말을 경청했다. 심장 주변의 파란 서리 흉터가 비명을 지르듯 뜨겁고 차갑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태경의 물음에 묵객은 대나무 지팡이로 한빙 절벽의 푸른 안개를 가리켰다.


“붉은 마왕이 될 운명이었던 아가씨가 정화되면서, 우주 전체의 마력 균형이 급격히 붕괴했다. 그 결과로 북해의 깊은 심연에 박혀 있던 천계의 봉인 쐐기가 뒤틀려 버렸지. 그 나비효과로 인해…… 북해빙궁의 저주받은 빙정을 품고 태어난 두 번째 악녀, 백설아의 저주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태경의 왼쪽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백설아…….”


“그래. 원래대로라면 5년 뒤에 발작해야 할 그녀의 빙정이, 네가 일으킨 균열로 인해 지금 이 순간 실시간으로 그녀의 영혼을 얼려 죽이고 있다. 그녀가 죽으면 북해의 봉인은 영구히 깨지고 대륙 북쪽 전체가 영원의 겨울 속으로 침몰할 것이다.”


묵객은 태경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목소리에 서늘한 현실의 무게가 실렸다.


“그리고 그 반동은 너에게도 미친다. 너는 과거에 그녀들의 영혼과 결속되었던 자. 게다가 고통 분담의 대가로 네 심장 주변에 서리 흉터를 새겨넣지 않았더냐. 백설아의 빙정이 얼어붙을수록, 네 심장 역시 실시간으로 동사해 갈 것이다.”


태경은 즉각 ‘영혼의 안’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투시했다.


그의 흐릿한 시야 속에서, 심장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 파란색 서리 흉터가 마치 살아있는 기생충처럼 줄기를 뻗으며 심장 근육 속으로 파고들고 있는 끔찍한 궤적이 보였다.


[위험: '빙정 동사 위험도' 수치가 실시간으로 상승합니다!]

[현재 동사 위험도: 15%... 16%... 17%...]

[경고: 위험도가 100%에 도달하면 심장이 완전히 동결되어 존재가 소멸합니다!]


머릿속에서 시스템의 붉은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뼛속까지 시려오는 극심한 한기 통증이 단전을 타고 올라와 그의 호흡을 강제로 막아섰.


“윽……! 으아악!”


태경은 단상 바닥을 짚듯 얼어붙은 대지 위에 무릎을 꿇으며 가슴을 쥐어짜듯 웅크렸다. 입가에서 각혈이 터져 나왔으나, 그 피마저 대지에 닿기도 전에 붉은 얼음 조각이 되어 바스락거리며 부서졌다.


“오라버니! 안 돼요! 제발 제 불꽃을 받아들이세요!”


채원이 경악하며 태경을 껴안고 자신의 신성 불꽃 온기를 그의 가슴팍에 주입하려 했다. 그러나 장미빛 불꽃이 태경의 가슴에 닿는 순간, 심장 속의 원시 한기가 거세게 반발하며 오히려 태경의 전신 기맥을 찢어발기는 극심한 반동 통증만을 가중시켰다.


“아악! 채, 채원아…… 멈춰라…… 불꽃이 닿으면…… 오히려 기맥이 꼬인다……!”


태경의 처절한 비명에 채원은 겁에 질려 신성적화를 급히 거두어들였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자신의 온기가 태경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거대한 절망감과 슬픔이 서려 있었다.


묵객은 그 처절한 광경을 묵묵히 내려다보며 마지막 경고를 던졌다.


“천계의 쐐기에서 비롯된 원시 한기는 지상의 어설픈 불꽃으로 녹일 수 없다. 오직 한 가지 방법뿐. 서둘러 대륙 북쪽의 서리 요새 관문을 넘어, 북해빙궁의 백설아를 찾아가거라. 그녀와 영혼을 동조하여 빙정을 정화하지 못한다면…….”


묵객의 신형이 서서히 안개 속으로 흐려지기 시작했다.


“한 달이다. 한 달 안에 그녀를 구원하지 못한다면, 백설아도, 그리고 네놈의 심장도 완전히 얼어붙어 산산조각 나 소멸할 것이다.”


스으으으—.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며 묵객의 형체가 안개와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혹한의 절벽 아래. 태경은 얼어붙어 가는 대지 위에서 가슴을 움켜쥔 채, 심장 주변을 파랗게 잠식해 들어오는 ‘빙정 동사 위험도’ 수치가 끊임없이 상승하는 것을 흐릿한 두 눈으로 바라보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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