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의 정화와 종언
조대인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마기가 흡기 구슬의 광포한 진동과 함께 대연회장 전체를 붉은 마성의 장막으로 덮어씌우는 순간, 대인의 날카로운 손톱이 태경의 목덜미 턱밑까지 육박해 들어왔다.
“주군, 물러서십시오!”
정찬우가 포효하며 전방으로 신형을 날렸다. 일류 초입의 기력을 극한으로 쥐어짜 낸 현무강기공의 푸른 빛이 그의 현철 장검을 감싸 안았다. 찬우는 부러진 장검의 잔해를 딛고 일어서 조대인의 검붉은 손톱을 향해 정면으로 검을 내뻗었다.
콰아앙—!
화경(化境) 고수의 내력과 정면으로 충돌한 찬우의 현철 장검이 비정상적인 진동을 일으켰다. 대인의 흡기 구슬이 뿜어내는 사악한 흡수력이 찬우의 검기를 실타래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찬우는 입구멍으로 한 움큼의 피를 토해내며 뒤로 강하게 튕겨 나갔다. 바닥을 구르면서도 그는 태경의 앞을 가로막으려 버지만, 이미 장검의 날은 허무하게 부러져 나간 상태였다.
“크하하핫! 한낱 벌레 같은 놈들이 감히 누구 앞을 가로막느냐!”
조대인이 광소했다. 그의 검은 검버섯이 가득한 얼굴이 탐욕스러운 살기로 일그러졌다. 대인은 손끝의 검붉은 흡기 구슬을 허공으로 던져 올렸다. 구슬이 회전하며 대연회장에 남아 있던 온갖 기맥과 마력을 강제로 흡수해 거대한 검붉은 폭풍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 표적은 단상 뒤편에 쇠약하게 서 있는 한채원이었다.
“아아아악!”
채원의 단전에서 흘러나오던 붉은 마력이 흡기 구슬의 강제 인력에 끌려가며 그녀의 전신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가문 집행 채찍에 맞아 피고름이 맺혀 있던 하얀 살결 위로 다시금 기맥이 찢어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가해졌다. 채원의 비명 소리가 대연회장의 쩍쩍 갈라진 천장을 흔들었다.
“채원아!”
태경은 흐릿하게 죽어버린 오른쪽 시야를 억지로 뜨며 비틀거렸다. 화경 고수의 살인적인 영압이 그의 연약한 1성 입문경의 기맥을 사정없이 짓눌렀다. 목덜미에 새겨진 피멍 자국과 가슴팍의 검은 그을림 화상 흉터가 영압에 공명하듯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다. 태경은 입가로 흘러내리는 붉은 피를 왼손 붕대로 닦아내며 이를 악물었다.
‘조대인의 음양흡기공은 구슬을 매개로 채원이의 마성을 빨아들이고 있다. 채원이의 영혼이 완전히 뽑혀 나가기 전에 마성의 근원을 정화해야만 해.’
태경은 즉각 ‘영혼의 안’을 개방했다. 왼쪽 눈의 초점이 붉게 타오르며 세계의 기류가 시각화되었다. 채원의 단전 중심에 기생하고 있는 고대 파멸의 마성 결정이 조대인의 흡수력에 반응하여 사납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 반동으로 채원의 몸 주변에 통제 불능의 ‘붉은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연회장의 거대한 황금 기둥들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며 무너져 내렸다.
“태경아! 위험하다, 어서 피해라!”
한태오 가주가 무너지는 기둥 뒤에서 소리쳤지만,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자식의 목숨보다 가문의 성물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탐욕만이 서려 있었다.
태경은 한태오를 차갑게 외면한 채, 왼손가락 사이에 남은 3개의 ‘마력 동조 은침’을 단단히 끼워 넣었다. 오른손 검지는 부목으로 고정되어 쓸 수 없었기에, 오직 왼손의 감각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영혼 정화 대법(靈魂淨化大法).’
태경은 영혼 깊은 곳에 깃든 고대 정화의 한 장의 에너지를 전신으로 끌어올렸다. 순백의 성스러운 광휘가 그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는 채원을 향해 휘몰아치는 붉은 폭풍 속으로 망설임 없이 걸어 들어갔.
화아아악—!
살을 에는 듯한 붉은 폭풍의 마도적 열기가 태경의 온몸을 덮쳤다. 그의 하급 사서 제복이 순식간에 타들어 가며 등에 지워지지 않을 처절한 화상 흉터를 새겼다. 가죽이 타들어 가는 극심한 고통에 태경의 전신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의 왼쪽 눈은 오직 채원의 슬픈 눈동자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채원아, 잡으렴.”
태경이 폭풍을 뚫고 채원의 가녀린 몸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전신이 불타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그의 품은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했다. 채원은 자신을 감싸 안은 태경의 피비린내와 가슴팍의 흉터를 느끼며, 핏빛으로 물들어가던 눈동자에서 눈물을 흘렸다.
“오라버니…… 왜 저 같은 괴물 때문에 자꾸 아파하시는 건가요…….”
“네가 괴물이 아니니까. 넌 내게 가장 다정한 아이란다.”
태경이 미소를 지으며 왼손에 쥔 3개의 은침을 채원의 인당혈과 기해혈, 그리고 단전의 중심 축에 정확히 찔러 넣었다. 부러진 손가락의 통증과 손등의 화상 자국이 욱신거렸지만, 침술의 정밀함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태경은 ‘영혼의 한 장 펼치기’ 권능을 가동했다. 그의 영혼을 매개로 흘러든 성스러운 정화의 영력이 은침을 타고 채원의 단전 속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갔다.
치이이익—!
채원의 단전 속에 기생하던 불길하고 어두운 보랏빛 마성 결정이 정화의 빛에 닿자마자 눈 녹듯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고대 마왕의 잔재가 내뿜던 사악한 탁기가 씻겨 나가고, 그 자리에 순수하고 성스러운 crimson 빛의 신성한 기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세상을 파멸시킬 불길한 불꽃이 아니었다.
가장 깊은 심연의 상처 속에서 피어난, 찬란하고 아름다운 붉은 장미빛의 신성한 불꽃(神聖赤火)이었다. 채원의 등에 새겨진 채찍 흉터들이 정화의 불꽃에 감싸이며 황홀한 광휘를 내뿜었다.
[한채원의 운명 정화도 100% 도달!]
[붉은 마왕의 숙명이 파괴되고, 신성한 수호의 천사로 각성합니다!]
머릿속에서 시스템의 찬란한 황금빛 문구가 점멸했다. 채원의 마왕 각성도는 완전히 지워졌고, 그녀는 오직 태경만을 수호하기 위한 절대적인 존재로 개조되었다.
“이, 이게 무슨……! 내 흡기 구슬이 기운을 빨아들이지 못하고 역류하고 있다!”
조대인이 비명을 질렀다. 그가 기동한 흡기 구슬이 채원의 정화된 붉은 신성 불꽃을 흡수하려 하자, 사악한 법보 자체가 정화의 빛을 감당하지 못하고 격렬하게 진동했다.
쩌적! 쩌저적—!
검붉은 구슬 표면에 수많은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대연회장 전체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커헉!”
법보와 영혼이 연결되어 있던 조대인이 가슴을 움켜쥐며 자리에서 피를 토했다. 그의 검은 검버섯 얼굴이 순식간에 늙어 들어가며 수명이 다해가는 임종의 빛을 띠었다.
“살려다오! 가주! 무사들은 무엇을 하느냐! 저 괴물들을 당장 죽여라!”
대인이 비참하게 바닥을 기며 한태오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한태오 역시 지하 제단이 파괴되고 가문의 비리가 폭로되어 하객들에게 버림받은 현실 앞에 넋이 나간 상태였다.
채원이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앉았다. 그녀의 등 뒤로 찬란한 장미빛 불꽃 날개가 은은하게 형상화되었다. 채원은 태경을 품에 안은 채, 자신들을 해치려 했던 조대인과 한태오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오직 태경만을 해치려는 자들을 향한 잔혹하고 굳건한 살의만이 남아 있었다.
“내 오라버니를 아프게 한 대가는, 너희의 존재 자체를 지우는 것이다.”
채원이 왼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시작된 붉은 신성 불꽃이 장막처럼 펼쳐지며 조대인과 한태오의 전신을 감싸 안았다.
“아아악! 뜨겁다! 이 불꽃은 대체—!”
“내 가문이…… 내 영광이 어찌 이리 허무하게……!”
비명은 길지 않았다. 사악한 마기와 탐욕으로 가득 찼던 두 화경 고수의 육체는, 채원의 정화된 불꽃 속에서 단 한 줌의 재조차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타올라 소멸했다. 가문의 원수들과 늙은 마두가 천하에서 영원히 지워진 순간이었다.
연회장 바닥에는 오직 그들이 차고 있던 적혈염령반지와 부러진 검의 잔해만이 뎅그러니 굴러다녔다.
태경은 채원의 품에 안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첫 번째 비극의 고리를 완벽하게 끊어낸 것이다. 채원의 얼굴에 깃든 어둠은 완전히 사라졌고, 그녀는 태경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속삭였다.
“오라버니, 이제 끝났어요. 평생 오라버니의 밥을 해주겠다는 약속…… 지킬 수 있게 되었어요.”
채원의 눈동자에는 태경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사랑의 광휘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태경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그 순간이었다.
대연회장 내부의 모든 불꽃이 일순간에 꺼지며, 기이할 정도로 차갑고 무거운 침묵이 사방을 뒤덮었다. 하객 무림인들은 물론이고 바람 소리조차 완벽하게 정지했다.
우구구구궁—!
대연회장의 부서진 천장 너머, 밤하늘의 구름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그리며 찢어지기 시작했다. 인과율 왜곡 수치가 임계점을 돌파하며 발생한 우주의 균열이었다. 찢어진 하늘의 틈새 너머로, 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하고 차가운 황금빛의 기하학적 문양이 지상을 향해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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