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대연회장
지하 제단이 무너지며 터져 나온 자폭의 열풍은 지상의 화려한 대지 위까지 고스란히 솟구쳤다. 쿨럭, 하며 신태경은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피비린내를 삼켰다. 오른손 검지는 부목으로 단단히 고정되어 욱신거렸고, 곽 학자의 수식을 역류시키며 새로이 얻은 왼손 손등의 검은 화상 흉터가 불덩이를 얹은 듯 뜨거웠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흐릿하게 죽어버린 오른쪽 시야 너머로 흩날리는 흙먼지를 털어내며, 태경은 품에 안긴 한채원의 가녀린 어깨를 고쳐잡았다. 채원의 숨결은 안정을 찾았으나 가문 집행 채찍에 찢긴 등의 상처가 붕대 위로 붉게 번져가고 있었다.
“주군, 이쪽입니다! 지하의 진동 때문에 지상의 경비들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현철 장검을 꼬쳐쥔 정찬우가 푸른 현무강기공을 은은하게 뿜어내며 앞장섰다. 그 뒤를 삼월이가 채원의 찢어진 도포 자락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바짝 따랐다. 태경은 단전 깊은 곳에서 뿜어지는 미미한 1성의 내력을 쥐어짜 내어 ‘무형보’의 구결을 밟았다. 심장 주변에 새겨진 파란색 서리 흉터가 살기에 반응하듯 찌르르하게 울렸지만, 차가운 이성으로 통증을 억눌렀다.
지하 통로의 가파른 돌계단을 단숨에 치고 올라가자, 눈이 멀 것같이 화려한 빛이 이들의 얼굴을 비추었다.
쿠구구궁—!
지하 제단의 붕괴 여파로 지상의 대연회장 바닥이 쩍쩍 갈라지며 먼지가 솟구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대연회장은 기괴할 정도로 호사스러웠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기둥들, 옥으로 깎아 만든 연회 테이블 위에는 대륙 남부의 진귀한 산해진미와 자금빛 영석으로 장식된 술병들이 가득했다. 정파 무림의 고결함을 자처하는 명문 가문들의 가신들과 사절단들이 화려한 비단 도포를 걸친 채 그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연회장 단상 위, 화려한 붉은 촛불들이 넘실거리는 정략결혼식의 신단 앞에는 두 사내가 서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에 단정하게 정돈된 흑수염을 기른 중년 남성, 한림가문의 가주 한태오. 그리고 그 곁에서 검은 검버섯이 가득한 얼굴에 탐욕스러운 눈빛을 빛내고 있는 늙고 추악한 원로, 조대인이었다. 대인의 손끝에는 어린 영혼의 마력을 빨아들여 수명을 연장해 주는 사악한 법보, ‘흡기 구슬’이 검붉은 광채를 내뿜으며 불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무슨 진동이냐! 지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게냐!”
한태오가 사납게 포효하며 연회장 아래의 무사들을 다그쳤다. 그때, 붕괴된 바닥의 틈새를 뚫고 신태경 일행이 대연회장 한가운데로 당당히 난입했다.
갑작스러운 침입자의 등장에 연회장의 음악이 뚝 끊기며 사방에 거대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객 무림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쏠렸다. 피투성이가 된 채 시녀의 부축을 받고 있는 가문의 서녀 한채원, 그리고 그녀를 호위하듯 버티고 선 일류 무사 정찬우, 마지막으로 아카데미의 물 빠진 하급 사서 제복을 입은 연약한 소년 신태경.
한태오의 예리한 눈동자가 태경의 가슴팍을 향했다. 쇠사슬의 마력 억제 은사 반동으로 인해 제복이 타들어 가며 새겨진 영구적인 검은 그을림 화상 흉터가 한태오의 눈에 들어왔다. 가주는 단숨에 알아차렸다. 지하의 그 사악한 제단을 파괴하고 결계를 깨부순 자가 바로 저 나약해 보이는 사서 놈이라는 것을.
“네놈은…… 아카데미의 사서 놈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 것이냐! 감히 신성한 가문의 혼례식장에 난입하다니! 경비들은 무엇을 하느냐! 저 미친 평민 침입자 놈들을 당장 처단해라!”
한태오가 손가락 끝에 붉은 적양공의 내력을 실어 ‘적양적멸지’를 겨누며 무사들에게 명령했다. 가문의 사설 무사 수십 명이 병장기를 뽑아 들며 태경 일행을 겹겹이 에워쌌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하지만 태경은 검게 그을린 왼손을 들어 올려 슬며시 웃어 보였다.
“신성한 혼례식이라니요, 가주님. 이 추악한 영혼 추출 범죄 현장을 그리 포장하시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
“닥쳐라! 감히 가문을 모독하는구나!”
한태오가 내력을 방출하려 하자, 태경은 소매 속에서 최강현 상단이 극비리에 복사해 준 두꺼운 종이 뭉치들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학장 남궁민과 한림가문 간의 추악한 지하 거래 정황이 상세히 적힌 ‘뇌물 장부 복사본’이었다.
“장 부장님이 전해준 교훈이 있지요. 정파의 명예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위선의 껍데기를 천하에 폭로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태경이 왼손 끝을 튕겼다. 붕대 감긴 손가락 사이로 영혼 깊은 곳의 정화의 영력이 흘러나와 종이 뭉치들을 가볍게 타격했다.
스사사사삭—!
하늘로 날아오른 수십 장의 장부 복사본들이 마치 백색 나비떼처럼 대연회장 허공을 수놓으며 하객들의 테이블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 이게 무슨 장부지?”
“학장 남궁민의 개인 직인이 찍혀 있잖아? 한림가문으로부터 매달 하급 영석 수천 개를 받아 챙긴 내역……?”
“한채원의 영혼을 추출해 조대인에게 바치는 대가로 남부 상권을 넘겨받기로 합의했다는 서명까지 있군!”
하객들 사이에서 격렬한 수군거림과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번져나갔다. 정파 무림의 최고 교육 기관인 아카데미의 학장과, 건국 공신을 자처하던 한림가문이 뒤편에서 저지른 추악한 인체 실험과 뇌물 사슬의 민낯이 천하에 드러난 순간이었다.
“위조된 장부다! 저 미친놈의 헛소리를 믿지 마라!”
한태오가 다급히 손가락을 퉁겨 붉은 불꽃 기류를 쏘아 보내 떨어지는 장부들을 태워버리려 했다. 하지만 정찬우가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가주의 손가락 끝을 보지 마십시오!”
찬우가 현철 장검을 휘둘러 푸른 검기를 발산했다. 검기와 적양의 불꽃이 공중에서 격돌하며 콰아앙 하는 파공음과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장부들은 타지 않고 하객들의 손에 무사히 쥐어졌다.
하객 무림인들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정의와 규율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다던 정파의 거물들이, 사실은 어린 소녀의 영혼을 착취하기 위해 추악한 거래를 맺었다는 확실한 물증 앞에서는 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았다. 가문을 돕기 위해 칼을 쥐려던 하객들이 슬그머니 무기를 거두며 방관자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한림가문이 완벽하게 고립된 것이다.
“이…… 벌레 같은 사서 놈이 기어코 내 수명을 가로막는구나!”
단상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조대인의 얼굴이 극도로 일그러졌다. 평생을 정파의 원로로 군림하며 쌓아온 위선의 가면이 단 한순간에 찢겨 나가자, 그의 눈동자에는 오직 피에 굶주린 마두의 광기만이 남았다.
“내 혼례를 망친 대가는 네놈의 목숨으로 치러야 할 것이다!”
조대인이 마침내 위선을 완전히 내던졌다. 화경(化境) 초입의 압도적인 붉은 내력이 그의 전신에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연회장 전체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며 숨이 막히는 열독의 영압이 태경의 기맥을 억눌렀다. 1성의 나약한 신체로는 버티기 힘든 중압감에 태경은 가슴을 움켜쥐며 각혈하듯 숨을 몰아쉬었다.
대인이 품속에서 검붉은 ‘흡기 구슬’을 기동했다. 구슬이 회전하며 사방의 영력을 강제로 빨아들이기 시작하자, 연회장 주변의 촛불들이 검붉게 물들며 타올랐다.
“죽어라, 쥐새끼!”
조대인이 단상 밑으로 번개처럼 뛰어내렸다. 그의 손가락 끝이 붉은 마기로 물들며 태경의 목덜미를 조르고 뼈를 으스러뜨리기 위해 쇄도했다.
태경은 흐릿한 오른쪽 눈을 질끈 감으며, 소매 속에서 남은 3개의 ‘마력 동조 은침’을 왼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었다. 찬우가 장검을 비껴 세우며 태경의 전방을 가로막았지만, 화경 고수의 살인적인 내공 기류는 이미 대연회장 전체를 붉은 마성의 결계로 가둬버릴 듯 팽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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