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감옥의 재회와 피눈물
귀를 찢는 듯한 경보음이 지하 석조 통로를 타고 울려 퍼질 때, 신태경은 부목을 댄 오른손을 움켜쥐며 어둠 깊은 곳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른쪽 시야는 하얗게 죽어 흐릿했지만, 왼쪽 눈의 ‘영혼의 안(魂之眼)’은 벽면을 타고 흐르는 붉은 마력의 진동을 똑똑히 포착하고 있었다.
두근. 두근.
심장 주변에 새겨진 파란색 서리 흉터가 지하 감옥 특유의 불길한 열기와 살기에 반응해 찌르르한 통증을 뿜어냈다. 태경은 신음을 삼키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입 안에서 비린 피맛이 맴돌았다.
“주군, 이 앞입니다! 기척이 느껴집니다!”
앞장서서 달리던 정찬우가 무겁고 단단한 현철 장검을 치켜들었다. 통로 끝에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흑철로 주조된 육중한 감옥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경보가 울린 이상, 열쇠를 찾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찬우 씨, 단숨에 부수어 주십시오.”
“예, 주군! 물러서십시오!”
정찬우가 포효하며 전신에 화경 일류의 내력인 ‘현무강기공’을 끌어올렸다. 그의 현철 장검이 반월의 궤적을 그리며 흑철 문을 강타했다.
콰아아앙—!
귀가 먹먹할 정도의 굉음과 함께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중심부부터 찌그러지며 안쪽으로 무참히 꺾여 날아갔다. 자욱한 흙먼지와 쇠비린내가 사방으로 흩날리는 와중에도, 태경은 먼지 구덩이 속으로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태경은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가장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다.
“아…… 아가씨…… 정신 차려보세요…… 제발…….”
먼지 더미 속에서 이리저리 찢긴 시녀복을 입은 한 소녀가 피투성이가 된 채 울부짖고 있었다. 채원의 충직한 몸종, 삼월이였다. 삼월이는 자신의 가녀린 전신으로 채원의 앞을 가로막은 채, 차가운 감옥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들의 뒤편, 벽면에 단단히 고정된 쇠사슬에 묶인 채 매달려 있는 소녀.
한채원이었다.
그녀의 상태는 처참하다는 말조차 사치스러울 정도였다. 수수한 도포는 가차 없이 찢겨 나가 어깨와 등이 훤히 드러나 있었고, 그 하얀 살결 위에는 가문 집행 채찍(家門執鞭)에 맞아 붉은 피고름이 맺힌 채찍 자국들이 기괴한 그물망처럼 새겨져 있었다. 채찍이 기맥을 강타할 때마다 단전에서 억지로 짜내어진 붉은 마력이 공중으로 흩어지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채원아…….”
태경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분노로 인해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한 극도의 살기가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1성의 미약한 기맥이 분노의 파동을 견디지 못하고 날카롭게 요동쳤다.
“오, 오라버니……? 진짜 오라버니인가요……? 아아, 안 돼요…… 여기는…… 도망쳐야…….”
채원이 희미하게 감겨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웅얼거렸다. 그녀의 핏빛 눈동자에는 자신보다 태경의 안위를 걱정하는 절박한 슬픔이 서려 있었다. 집착 호감도가 95%를 넘어선 그녀에게, 태경은 이미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유일한 우주였다.
그때, 채원의 단전에서 뿜어지는 폭주 마력이 붉은 가시의 형상으로 솟구치며 주변 감옥의 돌바닥을 녹여버리기 시작했다. 지독한 열독이 감옥 안의 산소를 태워버릴 기세로 팽창했다.
[경고: 한채원의 단전이 붕괴 직전입니다! 영혼 그릇 파열까지 남은 시간 3분!]
시스템의 붉은 경고창이 흐릿한 오른쪽 눈앞에서 미친 듯이 점멸했다. 태경은 이를 악물고 왼쪽 눈의 ‘영혼의 안’을 극대화했다. 채원의 몸을 투시하자, 단전 중심에 박힌 붉은 마성 쐐기가 거칠게 요동치며 주변 기맥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있는 궤적이 선명하게 들어왔.
‘지금 기맥을 고정하지 않으면 즉사한다.’
태경은 왼손으로 허리춤의 침통을 열었다. 오른손 검지는 부목으로 고정되어 있어 전혀 쓸 수 없었다. 왼손 손바닥 역시 가시넝쿨에 찢겨 하얀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지만, 손가락 끝에 정화의 힘을 실어 ‘마력 동조 은침’을 집어 올렸다.
왼손 투척은 오른손에 비해 정밀도가 소폭 떨어질 터였다. 게다가 부목을 댄 오른손 관절이 욱신거릴 때마다 단전의 내력이 사납게 반동을 일으켰다. 태경은 차가운 이성을 극한으로 쥐어짜냈다.
‘보지 못하는 오른쪽 사각지대는 영혼의 안으로 메운다. 오직 기맥의 중심만을 노린다.’
픽! 픽!
태경의 왼손 끝에서 두 개의 은빛 궤적이 소리 없이 날아갔다. 은침은 채원의 이마 중심인 인당혈(印堂穴)과 단전 바로 아래의 기해혈(氣海穴)에 정확히 꽂혔다.
“아아윽……!”
채원이 몸을 떨며 비명을 질렀다. 은침에 주입된 정화의 한 장의 에너지가 채원의 폭주하는 열독 기류를 강제로 가로막으며 기맥의 비정상적인 순환을 일시 정지시켰다. 붉은 가시들이 일순간 동결되듯 사그라들었다.
태경은 지체 없이 다가가 품속에서 한지민에게 받아온 정화 약재와 보혈탕의 기운이 담긴 약병을 꺼냈다. 마른침을 삼키며, 그는 왼손으로 채원의 턱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입술 사이로 약액을 조심스럽게 흘려보냈다.
“채원아, 삼켜라. 나를 믿고 제발 버텨다오.”
따뜻하고 맑은 보혈탕의 기운이 채원의 목덜미를 타고 단전으로 유입되자, 그녀의 거칠던 호흡이 기적적으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붉은 안광이 조금씩 가라앉으며, 그녀가 태경을 바라보는 눈빛에 깊은 안도와 나른한 집착의 광휘가 되살아났다.
“오라버니…… 손이…… 또 다치셨어…… 나 때문에…….”
채원이 태경의 하얀 붕대가 감긴 왼손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피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태경은 다정하게 웃으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려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를 가둔 쇠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힘을 주는 바로 그 순간.
파아아아앙—!
“주군! 위험합니다!”
정찬우의 경고와 동시에, 쇠사슬에 촘촘히 꿰매어져 있던 반투명한 ‘마력 억제 은사’의 방어 결계가 침입자의 마력을 감지하고 광폭한 반동 전류를 사방으로 내뿜었다.
쿠웅!
“커헉……!”
태경은 전신에 가해지는 거대한 영적 타격에 밀려 뒤로 서너 걸음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그의 하급 사서 제복 가슴팍이 순식간에 시커넓게 타들어 갔고, 그 아래 맨살에는 지워지지 않을 검은 그을림 화상 흉터가 새겨졌다. 숨이 턱 막히며 단전의 기혈이 뒤틀렸다.
“오라버니!!!”
채원의 비명소리가 감옥 벽면을 때렸다.
태경이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나려던 그 찰나, 감옥 사방의 돌벽에 붉은 빛의 기괴한 문자 수식들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리며 기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흑마도사 곽 학자가 설계한 사악한 ‘영혼 추출 수식’이자, 침입자를 가두기 위한 폐쇄 결계였다.
우우우웅—!
순식간에 감옥 출구 방향으로 피빛 장막이 드리워지며 통로가 완벽히 차단되었다. 방 내부의 산소가 급격히 희박해지기 시작했고, 바닥에서부터 숨이 막힐 듯한 붉은 열기가 피어오르며 결 결사대의 숨통을 조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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