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추격자, 혈영대의 덫
발바닥을 타고 흐르는 불길한 진동은 채원의 영혼이 찢겨나가고 있다는 명백한 비명이었다.
“주군, 이 진동은…….”
정찬우가 무거운 현철 장검의 자루를 꽉 쥐며 나지막이 물었다. 그의 짙은 푸른빛 영혼이 긴장으로 미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지하 감옥이다. 채원이의 마력이 강제로 쥐어짜이고 있어. 서둘러야 하네.”
태경은 흐릿하게 죽어버린 오른쪽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왼쪽 눈에 힘을 주었다. 지민의 약방에서 감아준 양손의 하얀 붕대는 이미 진흙과 서진의 피로 얼룩져 있었다. 무엇보다 오른손 검지에 덧댄 대나무 부목이 욱신거릴 때마다 기맥이 끊어지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고통을 돌볼 때가 아니었다.
태경은 한무진의 도포 안감에 심어둔 마력 추적 은침의 공명 신호를 단전으로 수신했다. 머릿속에 한림가문 저택의 지하 지도가 입체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찬우, 서쪽 별채 밑으로 통하는 지하 비밀 통로가 있네. 그곳으로 진입한다.”
두 사람은 숨소리조차 지운 채 어두운 정원의 나무 그늘을 타고 달렸다. 마침내 별채 구석, 이끼 낀 거대한 석판 아래 숨겨진 지하 입구를 발견했다. 석판을 들어 올리자 퀴퀴한 먼지 냄새와 함께 뼛속까지 시려오는 음산한 피비린내가 훅 끼쳐왔다.
계단을 따라 좁고 어두운 돌벽 통로로 내려가는 순간, 태경의 가슴팍이 찌르르하게 울렸다. 영혼 분할 동조식의 대가로 새겨진 심장 주변의 파란색 서리 흉터가 어둠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살기에 반응한 것이다.
‘살기(殺氣)다. 그것도 보통 무인의 것이 아니야.’
태경은 즉각 왼쪽 눈의 ‘영혼의 안’을 개방했다.
순간,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했던 지하 통로의 색대비가 반전되며 기이한 궤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통로 저편, 허공을 가르는 수십 개의 검붉은 마력 실타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멈추게, 찬우.”
태경이 찬우의 어깨를 잡아 세운 찰나.
스스스—!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는 어둠의 그림자가 돌벽에서 뿜어져 나왔다. 한림가주 한태오가 비밀리에 고용한 일류 살수 집단, ‘혈영대’의 정예 자객들이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선 사내는 검은 가죽 무복에 복면을 쓴 채,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는 불길한 ‘흑풍단검’을 쥔 자—혈영대의 엘리트 자객, 흑풍(黑風)이었다.
“침입자다. 쥐새끼 두 마리가 기어들어 왔군.”
흑풍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차가웠다.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암영잠행결의 검은 마기가 좁은 통로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일류 초입의 압도적인 영압에 태경의 숨이 턱 막혔다.
쉬이익!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흑풍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녹아들듯 사라졌다. 암영보(暗影步)였다.
[경고: 적의 기습 공격이 우측 사각지대에서 접근 중입니다!]
시스템의 붉은 경고창이 흐릿한 오른쪽 눈앞에서 점멸했다. 오른쪽 시야가 하얗게 죽어버린 태경으로서는 흑풍의 물리적인 움직임을 눈으로 쫓을 수 없었다.
‘보지 못한다면, 영혼의 흐름을 읽는다!’
태경은 본능적으로 머릿속에 임노인에게 전수받은 ‘임노인의 회피 보법’의 구결을 그렸다. 발끝을 지맥의 흐름에 밀착시키고, 몸의 무게중심을 기이한 각도로 비틀어 뒤로 미끄러졌다.
서걱—!
찰나의 순간, 흑풍의 단검이 태경의 사서 제복 깃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단검에 발린 독기의 서늘함이 뺨을 스쳤다.
“이 보법은……? 평민 사서 놈이 어째서 검선의 신법을……!”
흑풍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흔들렸다. 자신의 필살의 기습을 한낱 1성의 평민이 피해낼 줄은 상상도 못 한 것이다.
“주군을 다치게 두지 않는다!”
정찬우가 포효하며 전방으로 솟구쳤다. 그의 현철 장검이 무겁게 휘둘러지며 좁은 통로 전체를 메우는 ‘현무강기공’의 장벽을 형성했다.
콰아앙!
찬우의 장검과 흑풍의 단검이 충돌하며 사나운 불꽃이 어둠을 밝혔다. 일류 초입 무인의 묵직한 힘에 밀려 흑풍이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좁은 통로 좌우의 벽면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혈영대 살수 세 명이 일제히 벽을 딛고 도약했다.
그들의 단검이 사방에서 찬우의 방패망을 우회해 태경의 심장을 향해 쏟아졌다.
좁은 통로라는 지형적 한계는 살수들의 수적 우위를 제한했지만, 동시에 태경과 찬우의 퇴로 역시 완벽히 가로막고 있었다.
‘찬우 혼자서는 사방에서 꺾여 들어오는 변칙적인 암영살법을 모두 막아낼 수 없어.’
태경은 부러진 오른손 검지의 통증을 억누르며 왼손으로 은침 통을 열었다. 오른손을 쓸 수 없다면 왼손으로 던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왼쪽 눈의 ‘영혼의 안’으로 날아드는 살수들의 기맥 흐름을 정밀하게 투시했다. 살수들이 벽을 차고 도약하는 찰나, 그들의 단전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기혈의 흐름이 일순간 팽창하는 지점이 보였다.
‘지금이다.’
태경은 왼손 끝에 정화의 한 장에서 비롯된 미미한 마력을 실어, 도약한 살수의 무릎 뒤편 위중혈(委中穴)을 향해 ‘마력 동조 은침’을 던졌다.
오른손이 아닌 왼손 투척이기에 속도와 정밀도가 소폭 떨어졌지만, 좁은 통로의 벽면을 타고 비행하는 은침의 궤적은 정확했다.
픽!
“끄악!”
공중에서 태경의 목을 베려던 살수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은침이 기맥의 중심을 정확히 관통하자, 다리의 내력이 역류하여 스스로 무릎뼈가 꺾여버린 것이다.
“이 비열한 쥐새끼가……!”
동료의 추락에 분노한 흑풍이 벽면을 타고 기이한 궤적으로 꺾여 들어오며 단검을 태경의 목덜미로 내던졌다. 피할 곳이 없는 외통수였다.
태경은 이를 악물고 무형보를 전개해 몸을 벽에 밀착시켰다. 단검이 그의 목덜미를 스치며 가벼운 자상을 남겼고, 뜨거운 피가 사서 제복 깃을 적셨다. 그 충격으로 심장 주변의 서리 흉터가 타는 듯한 한기 통증을 뿜어내며 태경의 전신을 얼려버리려 했다.
“윽……!”
태경이 무릎을 꿇으려던 찰나, 찬우가 거대한 신형으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물러서라, 살수 놈들아!”
찬우의 현철 장검이 반월의 궤적을 그리며 흑풍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류 무인의 전력을 담은 일격에 흑풍의 가죽 갑옷이 찢겨 나가며 붉은 선혈이 뿜어졌다.
“커흑……!”
흑풍은 바닥을 구르며 멀리 밀려났다. 가슴의 깊은 자상에서 피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그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품속에서 붉게 빛나는 가문의 신표 문양 주술 패를 꺼내 들었다.
“지략은 훌륭했다만…… 여기까지다, 침입자들아.”
흑풍이 자신의 피를 주술 패에 바르며 마지막 내력을 쏟아부었다.
“가주님께…… 보고를……!”
파아아앙—!
주술 패가 흑풍의 손안에서 폭발하듯 깨지며, 붉은색 마력 신호가 지하 통로 벽면의 고대 석조 틈새를 타고 번개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
그와 동시에, 지하 감옥 전체를 뒤흔드는 날카롭고 기괴한 경보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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