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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의 전야, 붉은 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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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냄새가 자욱한 천성아카데미 제3 도서관 별관. 낡은 목조 책상 위에 놓인 한 권의 서책이 스스로 페이지를 넘기며 스산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신태경은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그 서책, ‘만물 기록첩’을 내려다보았다. 가죽 표지는 해지고 종이는 누렇게 바랬지만, 그 안에 적힌 글자들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태경의 눈동자에 박혀들었다.


[경고: 첫 번째 파멸 예정자 한채원의 단전 기맥 임계점 도달. 붉은 마왕 각성도 79%.]


“결국 오늘인가.”


태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10년 전으로의 회귀. 전생의 그는 정파 가문들의 틈바구니에서 천대받는 하급 사서에 불과했다. 세상이 네 명의 마왕에 의해 불타오르고 종말을 맞이할 때, 그는 그 비극을 막으려다 무력하게 소멸했었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그 악녀들이 자신들의 영혼을 갈아 넣어 그를 과거로 돌려보냈다.


‘이번 생은 다르다.’


태경은 자신의 단전을 확인했다. 회귀의 부작용과 나약한 재능 탓에 그의 무공 경지는 여전히 일반인과 다름없는 입문경(入門境) 1성에 불과했다. 정면 대결로는 아카데미의 삼류 무사조차 이길 수 없는 처지. 하지만 그에게는 아버지가 남겨준 만물 기록첩과, 영혼의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영혼의 안’이 있었다.


쿠우웅!


갑작스러운 진동이 도서관 바닥을 흔들었다. 멀리 아카데미 서쪽 연무장 방향에서 불길한 붉은 광휘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태경은 지체하지 않고 달렸다. 아카데미 제복을 펄럭이며 연무장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지옥 그 자체였다.


“으아악! 괴물이다! 한림가문의 서녀가 미쳤다!”


귀족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연무장 한가운데에는 붉은 마력의 폭풍에 휩싸인 채 허공에 떠 있는 소녀, 한채원이 있었다.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성은 거대하고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연무장의 단단한 석판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있었다.


“이 더러운 괴물 년이 어디서 행패야!”


남궁가문의 추종자인 육지훈이 검을 뽑아 들고 그녀를 베려 했으나, 채원이 무의식적으로 휘두른 붉은 가시에 부딪혀 검이 부러진 채 뒤로 나자빠졌다.


태경의 눈앞에 시스템의 반투명한 경고창이 붉게 점멸했다.


[한채원의 붉은 마력 대폭주 시작. 영혼 붕괴율 상승 중. 대피하십시오.]


“비켜라, 육지훈!”


태경은 육지훈을 밀쳐내고 채원을 향해 걸어갔다. 주변의 열기가 살을 태울 듯이 뜨거웠다.


“태경 형님! 미쳤습니까? 저건 마도의 오물입니다! 가까이 가면 죽습니다!”


도망치던 평민 장학생 이진형이 소리쳤지만, 태경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채원의 슬픈 눈동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가문의 모진 학대와 이복형제들의 괴롭힘 속에서 철저히 버림받아 울부짖는 영혼의 비명이 들리는 듯했다.


화아악!


채원이 비명을 지르며 붉은 마력 폭풍을 사방으로 방출했다. 뜨거운 열풍이 태경을 덮쳤다. 정면으로 접근하려던 태경은 마력 여파에 쓸려 뒤로 밀려났다. 그의 하급 사서 제복 소매가 순식간에 타들어 갔고, 왼팔에 뜨거운 화상이 새겨지며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윽…….”


태경은 이를 악물었다. 정면 돌파는 자살행위였다. 그는 즉각 ‘영혼의 안’을 개방했다.


우웅—.


태경의 눈동자가 신비로운 심연의 빛을 띠며 세계의 색이 변했다. 채원의 전신을 휘감고 있는 붉은 마력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아름다운 불꽃이 아니라, 그녀의 기맥을 갉아먹고 영혼을 옥죄는 잔혹한 붉은 실타래였다.


‘단전 뒤편, 명문혈과 기해혈의 흐름이 완전히 꼬여 있어. 저곳을 뚫지 않으면 채원의 영혼이 먼저 터져 죽는다.’


태경은 숨을 고르고 보법을 밟았다. 아카데미 도서관에서 임노인에게 은밀히 배운 회피 보법, 유운환영보였다.


슈우욱!


채원이 휘두른 거대한 붉은 가시 채찍이 태경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태경은 기이한 각도로 신체를 꺾으며 붉은 폭풍의 사각지대로 파고들었다. 바람의 궤적을 읽고, 살기의 틈새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마침내 채원의 등 뒤, 완벽한 사각지대에 도달한 순간. 태경은 소매 속에서 미리 준비해 둔 ‘마력 동조 은침’을 꺼내 들었다.


“채원아, 조금만 참아라.”


태경은 동상과 화상의 통증으로 떨리는 손가락 끝에 미미한 1성의 내력을 실었다. 그리고 채원의 명문혈과 기해혈을 향해 은침을 정확하게 찔러 넣었다.


톡, 톡!


기맥의 핵심 노드가 차단되자, 사방을 찢어발기던 붉은 폭풍이 일순간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 채원의 체내에서 소용돌이치는 열독은 여전히 그녀의 장기를 태우고 있었다. 채원의 입술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태경은 품에서 미리 끓여온 보온병을 꺼냈다. 아카데미 대식당 주방장 박만세에게 밤마다 남은 고기를 얻어, 한지민 약방의 약재들과 함께 정성껏 끓여낸 ‘특제 한방 보혈탕’ 국밥 요리였다.


“이걸 마셔라. 제발.”


태경은 채원의 턱을 부드럽게 잡고 따뜻한 국물을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흘려보냈다. 보혈탕에 깃든 영험한 약력과 따뜻한 기운이 채원의 체내로 스며들자, 폭주하던 붉은 열독이 순식간에 동결되며 진정되기 시작했다.


“아…….”


채원의 붉게 충혈되었던 눈동자가 서서히 맑은 갈색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자신을 품에 안고 피를 흘리며 미소 짓고 있는 태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평생 차가운 매질과 방관만을 받아왔던 그녀의 영혼에, 처음으로 다정하고 따뜻한 온기가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한채원의 운명 정화도 상승 시작. 붉은 마왕 각성도 60%로 저하.]


태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혼절한 채원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아카데미 구석, 식당 뒷마당 평상으로 그녀를 옮겼다.


은은한 달빛이 평상 위를 비추고 있었다. 태경은 남은 보혈탕을 채원의 입가에 닦아주며 그녀를 간호했다. 잠시 후, 채원의 속눈썹이 떨리며 눈을 떴다.


“정신이 드느냐?”


태경의 다정한 목소리에 채원은 몸을 일으키려다 통증에 찡그렸다. 하지만 이내 따뜻하게 가슴을 채우는 약선의 기운과, 제 손을 꼭 잡고 있는 태경의 온기를 느끼고 눈물을 흘렸다.


“왜…… 저 같은 괴물을 구하셨나요? 그냥 두셨으면 가문도, 아카데미도 다 불타버렸을 텐데…….”


태경은 채원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네가 괴물이 아니니까. 너는 그저 상처받은 아이일 뿐이다. 이제 괜찮아. 내가 네 곁에 있을 테니까.”


그 한마디에 채원의 가슴속 깊은 곳에 묶여 있던 붉은 실타래가 완전히 녹아내렸다. 그녀의 눈동자에 태경을 향한 깊고 무거운, 절대적인 집착의 빛이 서서히 깃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화는 길지 않았다. 저 멀리 도서관 입구 쪽에서 횃불 무리가 어둠을 가르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카데미 규율부의 삼엄한 발자국 소리였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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