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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서고, 최후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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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구궁—!


그것은 행성의 내장까지 뒤흔드는 종말의 전조였다. 카론-4의 하늘을 메운 제국 제3함대의 구축함들이 발사한 푸른색 반물질 주포가 5,000미터 지하의 천장을 무자비하게 찢어발겼다. 수천 년 동안 인공 대기와 중력을 유지해 온 태고의 기록 보관소 돔이 한순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공기 중으로 유독한 타르 냄새와 타버린 양자 데이터 수정들의 오존 향이 숨 막히게 밀려왔다.


“진혁아! 지체할 시간이 없다! 어서 움직여라!”


벨라가 무너지는 낙석을 피해 진혁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하지만 진혁은 제어 콘솔 앞에서 발을 뗄 수 없었다. 그의 손에 쥔 황동빛 ‘테라 아틀라스’가 눈부신 푸른빛 홀로그램 지도를 허공에 뿌려대며 미친 듯이 진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욱……!”


진혁은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맑은 피를 토해냈다. 아틀라스의 고대 중력선 주파수를 유기체 뇌로 직접 수용한 대가는 참혹했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이명이 고막을 후벼팠고, 왼쪽 눈에 이식된 황금빛 양자 분석 렌즈가 부르르 떨리며 안구 뒤편의 신경을 타오르는 인장처럼 지져댔다. 갈비뼈의 미세한 균열이 숨을 쉴 때마다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선사했다.


“첸 박사님! 어서 이쪽으로!”


진혁이 먼지 자욱한 천장 너머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은발의 사서, 노 학자 첸은 무너지는 서고의 책장들 사이에 우뚝 서 있었다. 그의 주름진 손은 제국이 이단이라 규정해 불태우려 했던 낡은 종이 서적들을 품에 안고 있었다.


“진혁아, 고개를 돌리지 말고 가거라.”


첸 박사의 목소리는 폭격의 굉음 속에서도 기묘할 정도로 차분했다.


“지식을 지키는 자는 그 지식과 운명을 같이하는 법이다. 나는 평생을 이 어둠 속에서 진실을 수호해 왔다. 내 항해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너는…… 너는 온 인류에게 시원의 고향을 되찾아 주어야 한다. 그것이 네 부모가 원했던 길이자, 네 혈관에 흐르는 게놈의 의무다.”


“첸 박사님—!”


쾅! 거대한 대리석 기둥이 무너지며 첸 박사의 실루엣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수천 권의 고대 서적들이 반물질 화염 속에서 재가 되어 흩어졌다. 진혁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비장한 슬픔과 제국을 향한 적개심이 폭발했다.


“형! 이쪽이에요! 해킹 경로를 확보했어요!”


그때, 저항군의 천재 소년 해커 카이가 헐렁한 후드티를 휘날리며 지하 갱도로 이어지는 비상 해치 앞을 가리켰다. 카이의 손에 들린 자체 개조형 홀로그램 패드가 제국의 전자기 차단막을 우회하기 위해 격렬하게 명멸하고 있었다. 루카가 카이의 뒤에서 불안하게 소리쳤다.


“카이 형! 천장이 무너져요!”


지진이 일어난 듯 광장 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그 순간, 천장에서 낙하한 거대한 화강암 지지대가 카이의 몸 위로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쿵—!


“카이—!”


진혁과 루카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거구의 낙석 아래 하반신이 완전히 깔린 카이는 붉은 피를 토해내며 신음했다. 루카가 울부짖으며 돌덩이를 치우려 힘을 썼지만, 유기체 소년의 힘으로는 먼지 한 톨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제국의 기계화 개조를 받지 않은 인간의 육체는 이 거대한 재난 앞에서 너무나도 나약했다.


“가…… 가세요, 진혁 형.”


카이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홀로그램 패드를 루카의 품에 억지로 밀어 넣었다.


“이 패드에…… 제국 학술원의 중앙 방화벽을 우회할 수 있는 암호 공식이…… 백업되어 있어요. 제가 형의 눈이 되어 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그러니까…… 꼭 살아남아서…… 진짜 지구를 보여주세요…….”


카이의 영민했던 눈빛이 천천히 빛을 잃어갔다. 천장에서 쏟아진 2차 낙석더미가 소년의 몸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루카는 카이의 패드를 안은 채 바닥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었다. 진혁은 입술을 깨물어 피를 흘리며 루카의 덜덜 떠는 어깨를 움켜쥐었다.


“루카, 일어나라. 카이의 죽음을 헛되이 만들지 마라. 가야 한다.”


진혁은 루카를 이끌고 어두운 지하 갱도 내부로 몸을 던졌다. 등 뒤에서는 태고의 기록 보관소가 반물질 주포의 푸른 화염 속으로 완전히 침몰하고 있었다.


* * *


갱도 내부는 습하고 어두웠다. 공기 순환 장치가 정지해 산소가 희박해지는 가운데, 진혁 일행은 가파른 내리막길을 질주했다. 통신기 너머로 한솔의 다급한 목소리가 노이즈와 함께 흘러나왔다.


[진혁! 내 목소리 들려? 갱도 위쪽 격납고에서 헤르메스 호의 비상 엔진을 대기시키고 있어! 하지만 제국군의 주둔지에서 출격한 정찰대와 암살자들이 그쪽 갱도로 진입했다! 조심해!]


“한솔, 최대한 버텨라! 우리도 지금 지하 도크 쪽으로 가고 있다!”


진혁이 대답하는 순간, 그의 왼쪽 눈 황금빛 렌즈가 어둠 속에서 미세한 광학적 왜곡을 감지했다. 공기 중의 먼지 입자들이 부자연스럽게 휘어지며, 열화상 스캔 너머로 차가운 은빛 거울 마스크의 실루엣이 투사되었다.


‘제로(Zero)……!’


재판소 직속의 정예 암살자였다.


스윽—!


광학 미채를 작동시킨 제로가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공간을 찢으며 나타났다. 그의 손에 들린 고주파 단검이 푸른색 진동 전류를 뿜어내며 진혁의 목덜미를 정밀하게 조준해 들어왔. 진혁은 급히 허리춤의 ‘양자 전자기 장막 생성기’를 가동하려 수동 스위치를 눌렀다.


파지직! 화르륵!


하지만 가동 즉시 생성기 벨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방전되어 버렸다. 이전 시그마의 시험 동조 과정에서 가해진 극심한 에너지 과부하를 이기지 못하고 내부 전력 셀이 완전히 타버린 것이다. 물리적 방어막이 소멸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죽어라, 이단아.”


제로의 차가운 기계 합성음이 귓가를 스치는 찰나—


탕—!


갱도 위쪽의 좁은 바위 틈새를 뚫고 날아온 고출력 플라스마 저격 탄환이 제로의 어깨를 관통했다. 은빛 마스크 뒤로 둔중한 신음이 흘러나왔고, 제로의 광학 미채가 강한 전자기 간섭을 일으키며 일시적으로 풀렸다.


[진혁! 엎드려!]


갱도 상부의 통풍구 틈새에 매복해 있던 한솔이 돌격 소총의 총구를 겨눈 채 소리쳤다. 제로는 어깨에서 푸른 피를 흘리며 공간 왜곡 장치를 가동해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겨 후퇴했다.


하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갱도 전방의 붉은 흙더미를 밟으며, 둔중하고 위압적인 금속성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체의 70%가 무광택의 검은색 기계 의체로 개조된 괴물. 이단 심문관 카엘이 얼굴 절반을 철가면으로 가린 채, 손잡이에서 붉은색 플라스마 광선 검을 뽑아 들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광선 검이 뿜어내는 열기에 지하 갱도의 축축한 벽면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녹아내렸다.


“서진혁. 결국 쥐새끼처럼 구는구나.”


카엘의 철가면 틈새로 비치는 붉은 안광이 광신적인 살의로 번뜩였다.


“네 부모는 역사적 신화를 더럽히려다 재판소의 불꽃 속에서 정화되었다. 너 역시 그 더러운 피를 이어받았으니, 이 무덤 속에서 기계 신의 제물로 삼아주마.”


카엘이 붉은 광선 검을 비스듬히 치켜세우며 폭발적인 속도로 돌격해 왔다. 골드 승화자 등급의 기계 다리가 가하는 추진력은 인간의 반사 신경을 아득히 초월했다. 단 1초 만에 카엘의 검날이 진혁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물리적인 힘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정면 대결은 자살행위다.’


진혁은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며 머릿속의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품속의 황동빛 테라 아틀라스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아틀라스 아카이브 가상 시뮬레이션, 가동!”


웅—!


진혁의 왼쪽 눈 양자 분석 렌즈가 황금빛 광채를 폭발적으로 뿜어냈다. 뇌 신경망을 타고 수십억 개의 기하학적 데이터가 스트리밍되며 극심한 두통이 밀려왔지만, 진혁은 통증을 억누르며 천장과 벽면의 구조를 정밀 스캔했다.


아틀라스에 저장되어 있던 고대 카론-4의 지형 데이터와 현재 폭격으로 균열이 간 갱도의 물리적 응력 데이터가 머릿속에서 홀로그램으로 완벽하게 융합되었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중력선들이 허공에 실선으로 투사되며, 천장 상부에 위치한 고대 중력 지지대 배선의 위치를 정확히 지목했다.


‘저곳이다. 저 배선만 끊어내면 이 구역의 중력 균형이 무너지며 연쇄 붕괴가 일어난다!’


진혁은 한솔이 호신용으로 건네주었던 ‘플라스마 광선 단검’의 버튼을 눌렀다. 웅하는 소리와 함께 15센티미터 길이의 청색 고열 칼날이 방출되었다.


카엘의 붉은 광선 검이 진혁의 어깨를 스치며 가죽 코트를 태워버렸다. 살점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진혁은 몸을 틀어 천장의 지지대 배선을 향해 도약했다. 유기체 육체의 한계를 쥐어짜 낸 비행이었다.


서걱—!


청색 고열 칼날이 천장의 고대 중력 지지대 배선을 정확하게 절단했다. 초전도 구리선들이 잘려 나가며 강렬한 백색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쿠구구구궁—!


중력 제어력을 잃은 천장의 거대한 암석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수백 톤의 화강암 잔해들이 카엘의 머리 위로 사정없이 쏟아졌다.


“이…… 교활한 쥐새끼가!”


카엘은 붉은 광선 검으로 낙석들을 베어내려 했으나, 붕괴의 규모는 기계 초인의 무력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자연의 물리적 재난이었다. 거대한 암석더미가 비명 지르는 카엘의 검은 기계 몸체를 순식간에 덮치며 지하 깊은 곳으로 매몰시켰다.


“진혁! 루카! 지금이야! 뛰어!”


위쪽에서 한솔이 소리쳤다. 진혁은 먼지 구덩이 속에서 루카의 손을 잡고 무섭게 무너져 내리는 갱도를 질주했다. 낙석이 등 뒤를 바짝 쫓아왔고, 그들의 가죽 코트와 장비들은 흙먼지로 엉망이 되었다.


마침내 갱도의 끝, 굳게 닫혀 있던 지하 은하 도크의 이중 강철 해치가 눈앞에 나타났다. 진혁은 루카를 이끌고 해치 안쪽으로 몸을 던졌다.


콰아아앙!


그들이 통과하자마자 갱도가 완전히 무너지며 입구가 암석으로 봉쇄되었다. 카엘을 낙석 아래 일시적으로 매장시키고 탈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진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크 내부의 바닥에 주저앉았다. 입가에 고인 푸른빛의 피를 가죽 코트 소매로 닦아내며, 그는 마침내 수천 년 만에 눈앞에 드러난 전설의 탐사선 ‘헤르메스 호’의 웅장한 선체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 도크 바닥이 기이하게 요동치며 붉은색 열기가 발밑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릉—!


“이건…… 무슨 소리지?”


루카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진혁이 황금빛 양자 렌즈의 초점을 바닥 아래로 맞추었다. 렌즈 너머로 투사된 지하의 열화상 스펙트럼은 온통 지옥 같은 붉은색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제국군의 무차별적인 반물질 폭격이 행성의 지각 균열을 건드린 것이 분명했다.


치이이이익—!


갱도 벽면의 강철 보강재들이 녹아내리더니, 벽면의 균열을 뚫고 섭씨 수천 도의 뜨거운 붉은 마그마가 폭포처럼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불길한 붉은 용암 기류가 헤르메스 호가 안치된 지하 도크의 유일한 퇴로이자 활주로를 향해 빠른 속도로 밀려들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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