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시장의 사투
철제 해치가 둔중하게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진혁의 신체는 차가운 하수구의 어둠 속으로 추락했습니다.
사방을 가득 채운 것은 오수와 썩은 기계 오일이 뒤섞인 비릿한 악취뿐이었습니다. 어두운 원형 콘크리트 파이프를 타고 미끄러져 내리는 동안, 진혁은 오직 품 안의 제국 보안 인증 토큰과 방전된 양자 만년필만을 가슴에 꼭 쥐고 있었습니다. 숙부 서진우가 이단 심문관 카엘의 검은 기계 손에 붙잡히던 마지막 순간이 환영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심장이 찢어질 듯한 슬픔과 분노가 가슴을 채웠지만, 지금은 주저앉을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제국의 추격대는 하수구 아래까지 끈질기게 쫓아올 터였습니다.
“형! 괜찮아요?”
하수구 바닥의 오수 더미 위로 굴러떨어진 진혁을 향해 루카가 다급하게 기어왔습니다. 소년의 얼굴은 기지 폭발의 그을음과 하수구 오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구형 가정용 드로이드 삼칠이가 바퀴 하나로 삐걱거리며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난... 괜찮다. 너희는 다친 곳 없느냐?”
진혁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은신 망토의 과도한 사용으로 전신에 남아 있는 저체온증의 마비 증세와, 기지 탈출 당시 뇌파를 동결시켰던 ‘정신적 기억 장벽’의 여파로 관자놀이가 깨질 듯이 아파왔습니다. 게다가 왼쪽 어깨의 옛 부상이 다시 벌어져 가죽 코트 안쪽으로 뜨거운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혁은 이를 악물고 통증을 억눌렀습니다.
“제국군이 하수구 통로까지 추격해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레이의 밀고 주파수가 아직 활성화되어 있다면, 우리 위치를 금방 특정해 내겠지.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해.”
진혁은 왼쪽 눈의 황금빛 양자 분석 렌즈를 가동했습니다. 안구 신경 뒤편에서 타는 듯한 욱신거림이 밀려왔지만, 렌즈 주변으로 황금빛 데이터 그리드가 펼쳐지며 하수구 벽면 내부의 전자기 흐름을 스캔했습니다. 오수 배관 사이에 흐르는 고압 전류와 제국 감시망의 신호선들이 복잡한 격자 모양으로 투사되었습니다. 진혁은 그 신호들이 중첩되지 않는 유일한 사각지대를 찾아내어 가리켰습니다.
“이쪽이다. 하수구 깊은 곳으로 더 내려가면, 제국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무법지대가 존재한다. ‘검은 소용돌이 시장’으로 가야 해.”
그들은 허리까지 차오르는 오수를 헤치며 어두운 통로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삼칠이의 녹슨 바퀴가 굴러갈 때마다 삐걱거리는 금속음이 하수구 천장에 반사되어 불길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마침내 붉은색 별무리 표식이 새겨진 낡은 하수도 벽면에 도달했을 때, 진혁은 품속에 있던 고대 주화 한 닢을 벽면의 슬롯에 밀어 넣었습니다. 둔중한 유압음과 함께 이중 강철 수문이 열리며, 지하의 숨겨진 세계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곳이 바로 카론-4의 어두운 내장, ‘검은 소용돌이 시장’이었습니다.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녹슨 배관들 사이로 붉고 푸른 네온사인들이 음산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공기 중에는 싸구려 윤활유 타는 냄새와 매캐한 화학 약품 향이 진동했고, 기계 의체를 조잡하게 이식한 현상의 무법자들과 부랑자들이 가득했습니다. 제국의 역사 검열과 역사적 신화의 압제에서 벗어난 이곳은, 오직 부와 이익만을 쫓는 검은 소용돌이 연합의 영토였습니다.
진혁은 낡은 가죽 코트의 깃을 세워 황금빛으로 빛나는 왼쪽 눈을 가린 채, 시장 구석에 위치한 제이콥의 무기 상점으로 향했습니다. 제이콥은 금니를 번쩍이며 수십 자루의 제국 군용 소총과 전자기 부품들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오, 이게 누구신가? 제국의 1급 이단 도망자께서 내 누추한 가게를 다 찾아주시고.”
제이콥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진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눈빛에는 탐욕과 기회주의적인 계산이 번뜩이고 있었습니다. 진혁은 냉철함을 유지하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습니다.
“제이콥,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지. 제국군의 보호막을 일시 무력화할 수 있는 ‘제국군용 펄스 수류탄’이 필요하다. 신용 있는 거래를 원해.”
“펄스 수류탄이라? 그건 제국 정규군 장비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지. 게다가 지금 자네 목에 걸린 현상금이 얼마인지 아나? 제국 신권 재판소의 카엘이 눈에 불을 켜고 자네를 찾고 있어. 이런 위험한 물건을 넘겨주려면 그만한 대가가 따라야지.”
제이콥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터무니없는 가격의 크로논 결정을 요구했습니다. 진혁은 입안의 비릿한 피 맛을 느끼며 품속에서 부모님의 일기장 마이크로칩을 만지작거렸습니다. 이 귀중한 데이터를 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진혁은 이전에 탈취한 안티 게놈 세럼의 조작된 염기서열 정보 중 일부가 담긴 가짜 연구 도면 데이터를 홀로그램으로 띄웠습니다.
“이건 제국 학술원이 극비리에 진행 중인 유전자 조작 프로젝트의 기술 도면 일부다. 암시장의 거물들에게 넘기면 네가 요구한 크로논 결정의 열 배는 넘는 부를 쥘 수 있을 거다. 부품과 무기를 넘겨라.”
제이콥의 눈이 탐욕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는 홀로그램 도면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단말기를 두드렸습니다. 협상이 타결되기 직전, 진혁의 어깨 부상에서 다시 피가 배어나와 바닥으로 한 방울 뚝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가게 내부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습니다.
킁킁.
가게 문 너머의 어두운 복도에서 기괴한 흡입음이 들려왔습니다. 진혁의 척추를 타고 서늘한 공포가 치솟았습니다. 무광택의 낡은 기계 장갑판을 온몸에 덧댄 거구의 사이보그, 제국이 고용한 전문 현상금 사냥꾼 ‘크론’이었습니다. 그의 인공 치아가 덜덜 떨리는 기계음과 함께 드러났고, 그의 특수 생체 센서 코가 붉은빛을 발하며 진혁의 피 냄새를 정확히 조준했습니다.
“찾았다... 순수 인류의 냄새. 서진혁.”
크론의 거구가 먼지를 일으키며 제이콥의 상점 내부로 들이닥쳤습니다. 그의 투박한 기계 집게손이 진혁의 멱살을 잡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돌격해 왔습니다.
“제장! 내 가게에서 싸우지 마!”
제이콥이 비명을 지르며 카운터 뒤로 숨었습니다. 한솔이 준 플라스마 광선 단검을 뽑아 든 진혁은 크론의 기계 팔을 향해 휘둘렀습니다. 청색 고열 칼날이 공기를 가르며 크론의 장갑판에 닿았지만, 파지직하는 소음과 함께 단검의 칼날이 일시적으로 흩어지며 뒤로 밀려났습니다. 크론의 신체는 전자기 차폐가 완벽히 적용된 최신 고강도 장갑판으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물리적인 타격은 통하지 않는다!’
크론의 거대한 기계 손이 진혁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습니다. 벌어진 상처 부위가 짓눌리며 진혁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습니다.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 진혁은 이성을 잃지 않고 크론의 신경망 구조를 양자 분석 렌즈로 스캔했습니다. 황금빛 렌즈가 크론의 목덜미 아래 노출된 보조 동력선과 신경 접합부의 취약점을 시각화했습니다. 크론의 의체는 겉보기에는 단단해 보였지만, 내부 전자기 차폐가 덜 된 구형 사이보그 의체 모델을 기반으로 개조되어 있었습니다.
진혁은 벨트의 스위치를 더블 클릭하여 ‘전자기 펄스 순간 교란(EM Disrupt)’을 가동했습니다.
웅-!
진혁의 신체를 중심으로 푸른색 전자기 구파가 방출되며 크론의 붉은 생체 센서 노즈와 안구 카메라를 정면으로 타격했습니다. 전자기 노이즈가 크론의 제어 시스템을 교란하자, 사냥꾼의 조준 장치가 일시적으로 먹통이 되며 그의 기계 손아귀에 힘이 풀렸습니다. 3초의 딜레이. 진혁은 그 짧은 틈을 타 크론의 품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때, 상점의 옆문이 거칠게 걷어차이며 열렸습니다. 긴 적발을 흩날리며 가슴팍에 제국군 훈장을 조롱하듯 달아놓은 여장부, 밀수선 와일드 헌터의 선장 ‘벨라’였습니다.
“진혁아! 물러서!”
벨라는 들고 있던 군용 플라스마 라이플을 들어 크론의 등 뒤에 위치한 고압 가스 배관을 향해 격발했습니다.
콰아앙-!
폭발적인 고열 플라스마 탄환이 가스 배관을 관통하며 야적장 전체에 거대한 화염과 자욱한 백색 연기 장막을 형성했습니다. 불길이 순식간에 제이콥의 무기 상점을 덮쳤고, 크론은 무차별적인 불길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포효했습니다.
“제이콥! 펄스 수류탄을 넘겨!”
진혁은 무너지는 카운터 너머로 손을 뻗었습니다. 겁에 질린 제이콥이 던져준 검은색 금속 수류탄을 공중에서 낚아챈 진혁은, 즉각 안전핀을 뽑아 발밑에 얼어붙어 있던 크론의 거구 아래로 던졌습니다.
지이이이잉-!
제국군용 펄스 수류탄이 폭발하며 반경 10미터 이내의 전자기력을 완벽히 동결시키는 강력한 전자기 펄스(EMP)가 방출되었습니다. 파란색 스파크가 크론의 전신을 감싸 안았고, 크론의 황동빛 기계 다리와 보조 동력원이 완벽히 정지하며 거구가 바닥으로 둔중하게 쓰러졌습니다. 사냥꾼의 시스템이 리부트되는 동안 그들에게는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가자! 제국군이 하수구 출구에 고압 전류 철조망을 치기 시작했어!”
벨라가 진혁의 다친 어깨를 부축하며 무너지는 상점 밖으로 이끌었습니다. 루카와 삼칠이도 그들의 뒤를 바짝 쫓았습니다. 제이콥의 무기 상점이 완전히 폭발하며 무너져 내리는 굉음이 검은 소용돌이 시장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진혁은 무기 거래 자금을 추가로 잃고 어깨 상처가 다시 벌어지는 극심한 육체적 대가를 치렀지만, 마침내 제국군의 보호막을 무력화할 최후의 병기인 펄스 수류탄을 손에 쥐는 데 성공했습니다.
벨라의 안내를 받아 시장 외곽의 은밀한 수로 안쪽으로 대피한 진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하지만 벨라는 안도의 한숨을 쉴 틈도 주지 않고, 진혁의 양어깨를 붙잡았습니다. 그녀의 이목구비에는 전에 없던 깊은 비장함과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진혁아, 정신 차리고 내 말 똑바로 들어라.”
“벨라... 무슨 일인가?”
벨라의 붉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비보를 전했습니다.
“네 숙부, 서진우 박사가... 제국 신권 재판소의 임시 심문 구역으로 끌려갔다. 카엘이 직접 그를 고문하며 헤르메스 호의 위치를 캐내고 있어. 처형 시간이... 단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그 순간, 진혁의 머릿속에서 수십억 개의 양자 노이즈가 다시 폭발하는 듯한 충격이 일었습니다. 숙부의 희생이 환영처럼 뇌리를 스쳤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불꽃이 다시금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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