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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고와 붉은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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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의 붉은 광학 렌즈가 징하는 고주파 음을 내며 진혁의 이마 바로 앞까지 다가섰습니다.


숨이 완전히 막히는 찰나였습니다. 은신 망토의 내부 나노 입자들이 전신의 체온을 급격히 빨아들이며 손끝부터 감각이 마비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극심한 저체온증의 고통 속에서, 진혁은 폭주하려는 심장 박동을 억누르며 이성을 쥐어짜 냈습니다. 사냥 드론은 생체 뇌파의 미세 전하와 산소 밀도를 감지해 대상을 조준하는 살상 병기였습니다. 물리적으로 몸을 가렸을지언정, 공포에 질려 뇌파가 흔들리는 순간 드론의 록온 시스템이 그의 심장을 관통할 터였습니다.


‘흔들리지 마라. 감정을 지워라.’


진혁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며 ‘정신적 기억 장벽’을 가동했습니다.


뇌 세포의 활동 주파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려 뇌파 신호를 영(0)에 가깝게 억제하는 극단적인 정신 차단술이었습니다. 머릿속이 일순간 얼어붙는 듯한 차가운 이명과 함께, 진혁의 심장 박동이 극도로 느려졌습니다. 그의 생체 전하가 소멸에 가까운 상태로 떨어지자, 코앞에서 앵앵거리던 사냥 드론의 붉은 광학 렌즈가 갈팡질팡하며 흔들렸습니다.


드론의 연산 장치는 눈앞의 대상을 생명체가 아닌, 차가운 대리석 벽면의 일부로 인식했습니다. 이윽고 드론은 흥미를 잃은 듯 웅웅거리는 모터 소리를 내며 아론 총독의 머리 위로 다시 둥실 떠올랐습니다.


“비서관, 오늘 연회에서 의원 놈들이 요구한 크로논 결정의 수송 배정 문서를 당장 준비해라. 신권 재판소의 카엘이 도착하기 전에 유적 발굴 흔적을 완벽히 지워야 문책을 피할 수 있어.”


아론 총독은 금고실 안쪽의 서류 가방을 신경질적으로 낚아채며 로건에게 소리쳤습니다. 총독이 등을 돌린 바로 그 찰나, 진혁은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은신 망토의 냉기 때문에 다리가 마비되어 부러질 것만 같았지만, 벽면의 뜨거운 온수 배관에 몸을 바짝 밀착시켜 미세한 열적 흔적마저 벽면의 열기로 은닉하는 철저한 계산을 유지했습니다.


가까스로 금고실을 빠져나와 대기실로 돌아온 진혁은 은신 망토를 벗어던지며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습니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고,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습니다.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소년 루카가 비명을 지르며 다가와 진혁의 어깨를 감싸 안았습니다.


“형! 몸이 완전히 얼음장이에요! 괜찮아요?”


“괜... 괜찮다. 토큰을... 확보했어.”


진혁은 떨리는 손으로 코트 안쪽에서 반투명한 금속 카드, ‘제국 보안 인증 토큰’을 꺼내 보였습니다. 루카의 눈이 경외감으로 커졌습니다. 대기실 문이 가볍게 열리며 로건이 들어섰습니다. 로건은 진혁의 상태를 보고 급히 품속에서 온열 패치를 꺼내 그의 목덜미에 붙여주었습니다.


“총독이 곧 집무실을 나설 겁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관저 서편의 청소용 리프트를 이용하십시오. 경비병들의 교대 시간을 조작해 두었습니다.”


“고맙네, 로건. 이 은혜는 잊지 않겠네.”


진혁은 로건의 안내를 받으며 삼엄한 관저의 지하 통로를 통해 무사히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 *


몇 시간 뒤, 진혁과 루카는 카론-4의 황량한 붉은 황무지 아래 숨겨진 ‘카론-4 지하 폐광 비밀 기지’로 돌아왔습니다.


기지 내부는 여전히 녹슨 기계 부품들과 먼지 쌓인 고대 서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어 안늑한 학자의 골방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진혁은 책상 위에 훔쳐온 보안 토큰을 올려놓고, 닥터 크로스가 처방해 준 ‘황무지 푸른 잎 약차’를 우려내어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리는 따뜻하고 쓴 약차가 은신 망토의 후유증으로 얼어붙었던 전신의 혈액을 녹여주었고, 왼쪽 눈 안구 뒤편의 타는 듯한 통증을 서서히 가라앉혔습니다.


하지만 진혁의 이성적인 감각은 기지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이상한 위화감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기지 중앙의 광대역 통신 안테나를 감시하고 있어야 할 동료, 그레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책상 위에는 그레이가 마시다 만 합성 음료 컵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메인 제어 콘솔의 홀로그램 화면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루카, 숙부님은 어디 가셨지?”


“어... 아까 기지 외곽의 수동 환기구를 점검하러 가신다고 하셨는데, 아직 안 돌아오셨어요. 그레이 형도 같이 나갔나 봐요.”


루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진혁의 눈이 가볍게 가늘어졌습니다. 그는 왼쪽 눈의 양자 분석 황금빛 렌즈를 가동했습니다. 렌즈 주변으로 황금빛 데이터 그리드가 회전하며 기지 내부의 전자기 흐름을 스캔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캔 중... 비공식 양자 통신 발신 흔적 감지. 주파수 대역: 제국 신권 재판소(Inquisition) 전용 채널.]


진혁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메인 터미널의 로그 기록 구석에, 아주 미세하지만 지워지지 않은 통신 연결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레이의 개인 단말기 ID였습니다.


“그레이가... 우리를 밀고했어.”


진혁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았습니다. 제국이 제시한 거액의 현상금과 시민권의 유혹에 눈이 먼 배신자가 기지의 정확한 좌표를 재판소에 전송한 것이었습니다.


“네? 그레이 형이요? 그럴 리가…….”


루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막는 순간, 기지 외벽 전체가 거대한 폭음과 함께 흔들렸습니다.


쾅-!


귀를 찢는 폭발음과 함께 기지의 서쪽 합금 벽면이 붉은색 플라스마 폭탄의 화염에 휩싸이며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무너져 내리는 콘크리트 잔해와 자욱한 붉은 연기 사이로, 검은색 중장갑을 두른 제국 신권 재판소의 돌격대원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의 헬멧에 박힌 붉은 안광이 연기 속에서 기괴하게 번뜩였습니다.


“이단자 서진혁을 생포하라! 저항하는 자는 즉결 처형한다!”


부심문관 바란의 냉혹한 명령이 기지 내부에 울려 퍼졌습니다. 바란이 이끄는 대원들은 진혁이 평생을 바쳐 수집한 고대 지구의 소중한 종이 서적들과 연구 자료들에 무자비하게 열화상 랜스를 들이댔습니다.


화르륵-!


수천 년의 세월을 버텨온 태고의 역사 기록들이 단 한 순간에 검은 재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습니다. 인류가 기계로 변하지 않고 온전한 인간성을 보존할 수 있음을 증명할 실증적 증거들이 불타오르는 모습을 보며, 진혁의 가슴 찢어지는 분노가 극에 달했습니다.


“안 돼! 책들이……!”


루카가 울부짖으며 불길로 뛰어들려 하자, 진혁이 소년의 덜덜 떨리는 어깨를 꽉 움켜잡아 뒤로 끌어당겼습니다.


“루카, 삼칠이를 데리고 하수구 비상 탈출구로 가라! 당장!”


“하지만 형은요!”


“난 장비를 챙겨서 바로 뒤따라가마. 어서 가!”


진혁은 품속에서 배터리가 방전된 양자 만년필과 보안 토큰을 챙겨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지 구석에 대기 중이던 소형 가드 드로이드를 가동해 방어선을 구축하려 했습니다. 드로이드의 총신이 회전하며 돌격대원들을 향해 사격을 개시하려는 찰나였습니다.


쿠우우웅-


연기 속에서 대지를 울리는 둔중한 구동음과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걸어 나왔습니다. 신체의 70%가 무광택의 검은색 기계 의체로 개조된 공포의 괴물, 이단 심문관 카엘이었습니다. 그의 철가면 너머로 새어 나오는 광신적인 안광이 진혁을 록온했습니다.


“나약한 유기체의 육신을 고집하는 이단아여. 드디어 찾았구나.”


카엘이 허리춤에서 ‘붉은 플라스마 광선 검’을 뽑아 들었습니다. 웅웅거리는 고열의 붉은 칼날이 대기를 찢는 소리를 냈습니다. 카엘이 검을 가볍게 휘두르자, 진혁이 가동했던 소형 가드 드로이드가 단 한 방에 사정없이 두 동강 나며 폭발했습니다.


콰아앙!


압도적인 ‘개조율 4단계: 골드 승화자’의 무력 앞에서, 진혁의 물리적인 방어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카엘이 붉은 광선 검을 치켜들고 진혁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격해 왔습니다. 그의 기계 의체가 뿜어내는 크로논 에너지의 위압감이 진혁의 전신을 짓눌렀습니다.


그때, 기지 구석의 정비대 그늘 속에서 땀과 기름때로 얼룩진 갈색 작업복을 입은 사내가 함성을 지르며 튀어나왔습니다. 진혁의 숙부, 서진우였습니다.


“진혁아, 도망쳐라! 인류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숙부 서진우는 정비용 거대 고압 스패너를 양손으로 꽉 쥔 채, 돌격해 오던 부심문관 바란의 측면을 향해 몸을 던졌습니다. 타격용 스패너가 바란의 실버 도금된 오른쪽 기계 다리 무릎 관절을 정면으로 강타했습니다.


깡-!


쿠르릉하는 기계 오작동 소리와 함께 바란의 기계 다리에서 파란 스파크가 튀었고, 그의 거구가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습니다. 숙부의 목숨을 건 육탄 저지가 제국군의 완벽했던 포위망에 아주 미세한 틈새를 만들어 냈습니다.


“숙부님-!”


진혁이 절규하듯 소리쳤지만, 서진우는 무너지지 않고 스패너를 다시 치켜세우며 카엘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비겁한 배신자 놈들! 제국의 기계 노예가 된 광신도들아, 내 조카에게 손대지 마라!”


카엘의 철가면 너머로 차가운 비웃음이 흘러나왔습니다.


“나약한 유기체 덩어리가 종말을 자초하는구나.”


카엘이 광선 검을 비스듬히 세우며 서진우를 향해 검격을 가하려 했습니다. 진혁은 이대로 가다간 숙부의 목숨이 그 자리에서 끊어질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무시하고, 벨트에 장착된 소형 장막 생성기의 출력을 오버로드 상태로 강제 전환했습니다.


‘전자기 펄스 순간 교란!’


진혁의 손끝에서 보이지 않는 미세한 청색 전자기 스파크가 폭발하듯 방출되었습니다. 기지 내부의 가스 밸브를 일부러 개방해 두었던 진혁의 지략이 빛을 발했습니다. 누출된 가스 입자들과 전자기 펄스가 충돌하며 기지 전체에 강력한 화이트아웃 섬광과 함께 순간적인 전자기 노이즈 폭풍이 휘몰아쳤습니다.


파지직! 지이이잉-


골드 승화자인 카엘의 최첨단 기계 의체 시스템이 이 급작스러운 전자기 교란 주파수를 수용하느라 순간적으로 3초 동안 하드웨어 오작동을 일으키며 정지했습니다. 붉은 플라스마 칼날이 깜빡거리며 꺼졌고, 카엘의 거구가 일시적으로 동결되었습니다.


“지금이다! 루카, 삼칠이! 뛰어내려!”


진혁은 눈물을 삼키며 기지 구석의 배수 하수구 해치를 열고 루카와 삼칠이를 먼저 밀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하수구의 어두운 심연 속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하수구 관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기 직전, 무너지는 기지 갱도 입구 너머의 자욱한 먼지 속에서 진혁은 잊지 못할 비극적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전자기 교란에서 가장 먼저 회복한 이단 심문관 카엘이 잔인하게 타오르는 붉은 플라스마 광선 검을 다시 뽑아 들고, 바닥에 쓰러진 숙부 서진우의 목덜미를 거대한 기계 손으로 꽉 움켜쥐며 들어 올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무너지는 바위 잔해와 불길 사이로 숙부의 마지막 외침이 하수구 입구로 스며들었습니다.


“진혁아! 지구를 찾아라! 인간의 눈으로 우주를……!”


그 비장하고 비극적인 모습이 진혁의 왼쪽 황금빛 눈동자에 낙인처럼 박혀 들어왔습니다. 하수구의 철제 해치가 둔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고, 진혁은 쏟아지는 눈물과 분노를 삼킨 채 깊고 어두운 지하의 세계로 추락했습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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