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 관저의 유령
녹슨 안개 정착지의 하늘은 언제나 부식된 철가루와 매캐한 가스로 가득 찬 붉은빛이었지만, 이곳 카론-4의 행성 총독 관저는 전혀 다른 우주였다.
백색 대리석으로 높게 솟은 관저 외벽은 인공 중력 장치로 제어되는 홀로그램 정원을 품고 있었다. 공중을 유영하는 청색 홀로그램 공작새들이 가상의 빛방울을 흩뿌렸고, 귀족들의 웃음소리가 감미로운 클래식 선율에 묻혀 흘러나왔다. 하층민들이 유전자 퇴화의 공포에 질려 기계 의체 개조 수술대 위로 내몰리는 동안, 지배 계급은 이 인공적인 낙원에서 은하 제국의 위대한 번영을 찬양하고 있었다. 이 극단적인 대비는 관저 내부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독재의 서늘한 칼날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서진혁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제국 학술원 감찰관의 백색 정복 깃을 매만졌다. 깃에 달린 은색 단추들이 인공 햇빛을 받아 차갑게 반짝였다.
“긴장 풀게, 루카. 우리는 정당한 권한을 가진 제국 수도의 감찰관 일행이다.”
진혁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의 뒤에서 보조 가방을 든 채 붉은 대리석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던 소년 루카가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의 몸에 맞게 급조한 조수복 안쪽에는 닥터 크로스가 챙겨준 비상용 전자기 장비들이 묵직하게 들어차 있었다.
진혁의 왼쪽 안구에 이식된 ‘양자 분석 황금빛 렌즈’는 얇은 분석용 고글 아래 숨겨져 있었다. 이식 수술을 받은 지 겨우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아, 눈을 깜빡일 때마다 안구 뒤편의 신경망이 불로 지지는 듯 욱신거렸다. 뇌 세포가 렌즈의 초고속 연산 주파수와 동조하느라 관자놀이가 터질 것처럼 박동했지만, 진혁은 이성적인 미소로 통증을 완벽히 감추었다. 지금 이 순간 미세한 표정 변화 하나라도 노출된다면, 기다리는 것은 제국 신권 재판소의 즉결 처형뿐이었다.
관저의 1차 보안 게이트 앞에 다다르자, 청동빛 기계 의체 장갑을 두른 제국 경비병들이 일제히 소총을 치켜세웠다.
“정지하십시오. 신원 인증 및 생체 스캔을 실시합니다.”
차가운 기계음과 함께 경비병의 헬멧 전면에 붉은색 스캔 광선이 감돌았다. 진혁은 침착하게 비서관 로건이 양심적인 내통을 통해 미리 준비해 준 위조 신분 칩을 단말기에 접촉했다.
[위잉- 제국 학술원 수도 직속 감찰관 ‘서태현’ 마스터 아키비스트. 승인되었습니다.]
경비병의 붉은 광학 센서가 진혁의 얼굴을 훑었다. 위조된 생체 정보가 제국의 양자 검열망에 무사히 통과하자, 굳게 닫혀 있던 티타늄 게이트가 둔중한 유압음과 함께 열렸다. 진혁은 고개를 가볍게 까딱하며 게이트를 통과했다.
관저의 중앙 로비는 거대한 원형 돔 형태였다. 사방에 배치된 자동 감시 카메라들과 양자 보안 센서들이 보이지 않는 전자기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진혁의 황금빛 렌즈에는 그 센서들이 방출하는 주황색 레이저 격자들이 사방으로 얽혀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때, 로비 서편의 기둥 뒤에서 단정한 제국 행정관 예복을 입은 청년이 걸어 나왔다. 아론 총독의 최측근 비서관이자, 제국의 비인간적인 기계화 정책에 깊은 환멸을 느끼고 진혁과 손을 잡은 내부 조력자, 로건이었다.
로건은 진혁과 시선이 마주치자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가죽 패드를 품에 안은 채 공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학술원 감찰관님, 총독님께서는 현재 원로원 의원들과의 비공식 연회에 참석 중이십니다. 영접이 늦어진 점 양해 부탁드리며, 대기실로 안내하겠습니다.”
로건은 앞장서 걸으며 진혁 일행을 관저 깊숙한 사적인 구역으로 인도했다. 주변에 감시 카메라의 사각지대가 나타나는 찰나, 로건이 목소리를 낮춰 빠르게 속삭였다.
“총독의 개인 금고는 3층 집무실 안쪽의 비밀 밀실에 있습니다. 금고 입구의 보안 장벽은 제국의 최신형 동적 레이저 그리드로 보호받고 있어, 제 힘으로는 시스템을 끌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총독의 개인 사냥 드론이 상시 순찰 중입니다.”
“괜찮네. 여기까지 길을 열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진혁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로건은 품속에서 작은 나노 복제 열쇠 카드를 꺼내 진혁의 손바닥에 쥐여 주었다.
“금고실 문을 열 수 있는 임시 패스코드 카드입니다. 하지만 내부의 ‘제국 보안 인증 토큰’을 꺼내는 순간 중앙 통제실에 즉각 경보가 울릴 겁니다. 부디 무사히 탈출하십시오.”
로건은 대기실 문을 열어준 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순찰 대원들이 오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진혁은 루카에게 문을 잠그도록 지시했다. 그의 왼쪽 눈 황금빛 렌즈가 벽면의 전자기 흐름을 역추적하기 시작했다.
삑-.
그때, 진혁이 귀 안쪽에 이식한 마이크로 수신기에 날카로운 노이즈와 함께 암호화된 녹색 양자 텍스트 신호가 수신되었다.
[코드네임 X: 관저 상공의 감시 위성 궤도 수정 완료. 앞으로 7분 동안 3층 동쪽 회랑의 열화상 스캔 센서가 오프라인 상태로 유지됨. 지금 기동하십시오.]
정체불명의 조력자, 코드네임 X의 무선 신호였다. 그의 정밀한 타이밍 안배 덕분에 관저 내부의 가장 삼엄한 감시망에 미세한 틈새가 발생했다.
“루카, 여기서 대기하며 통신망을 감시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방을 나가면 안 된다.”
“형, 조심해야 해요. 제발 무사히 돌아오세요.”
루카가 진혁의 가죽 코트 자락을 꼭 쥐며 말했다. 진혁은 루카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인 뒤, 정복 위에 실비아가 저항군 창고에서 전해준 ‘광학 미채 은신 망토’를 걸쳤다. 망토의 깃을 올리고 가슴팍의 소형 제어 스위치를 누르자, 특수 섬유 내부의 미세 나노 렌즈들이 주변의 빛을 급격히 굴절시키며 진혁의 신체를 완벽히 투명하게 만들었다.
스으으으-
망토 내부의 나노 입자들이 진혁의 체온을 급격히 흡수해 외부 방출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뼈가 시릴 정도의 저체온증 통증이 전신을 덮쳐왔고,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진혁은 이를 악물고 차가운 호흡을 삼키며 대기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위성 감시망 열화상 역추적 우회 규칙에 따라, 진혁은 붉은 벽면의 뜨거운 열 온수 배관이 흐르는 경로에 몸을 바짝 붙여 이동했다. 은신 망토가 체온을 흡수하더라도 미세한 열적 흔적이 남을 수 있었기에, 벽면의 열기를 이용해 자신의 열화상 실루엣을 완벽히 은닉하는 치밀한 계산이었다.
3층 집무실로 향하는 동쪽 회랑에 도달했을 때, 코드네임 X가 경고한 대로 천장의 열화상 스캐너가 녹색 회전등을 깜빡이며 오프라인 상태로 멈춰 서 있었다. 하지만 복도 중앙 바닥에는 보이지 않는 붉은색 레이저 그리드 센서들이 촘촘하게 교차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관저 전체에 비상 경보가 울리고 자동 포탑이 가동되는 동적 트랩이었다.
진혁은 걸음을 멈추고 왼쪽 눈의 양자 렌즈를 한계치까지 개방했다.
우웅-
황금빛 렌즈 주변으로 미세한 기하학적 데이터 그리드가 회전하며, 붉은 레이저 광선들의 주파수와 이동 주기가 숫자로 변환되어 시야에 투사되었다.
‘0.4초 주기로 좌우 교차. 바닥에서 15센티미터 높이의 사각지대 발생.’
진혁은 수학적이고 계산적인 움직임으로 몸을 굽혔다. 그는 레이저 광선이 교차하는 미세한 시간의 틈새를 밀리초 단위로 계산하여 발을 내디뎠다. 은신 망토의 차가운 냉기가 다리를 얼려버릴 것 같았지만, 그의 움직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했다. 레이저 광선이 그의 코끝을 불과 몇 밀리미터 차이로 비껴갈 때마다 식은땀이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망토 자락으로 훔쳐냈다.
마침내 레이저 그리드를 완벽히 통과한 진혁은 아론 총독의 집무실 문 앞에 도달했다.
로건이 준 임시 카드를 단말기에 접촉하자, 부드러운 유압음과 함께 무거운 집무실 문이 열렸다. 방안은 고대 지구의 화려한 목재 가구들과 제국의 최첨단 홀로그램 장치들이 기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방 안쪽, 거대한 서태오 박사의 성간 지도 홀로그램 뒤편의 벽면에 특수 합금으로 제작된 비밀 금고실의 육중한 해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금고실 제어판의 카메라가 진혁이 서 있는 허공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비록 은신 망토로 몸을 숨겼지만, 카메라의 양자 방화벽은 실시간 데이터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진혁은 품속에서 방전된 ‘양자 암호 해독 만년필’을 꺼내들었다. 비록 배터리가 완전히 나가 기계적인 강제 오버라이드 기능은 사용할 수 없었지만, 만년필 내부의 양자 마이크로칩 자체는 제국의 1급 보안 장벽을 우회할 수 있는 물리적인 키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진혁은 자신의 순수 유기체 뇌에서 가동되는 미세한 생체 전하를 신경망을 통해 만년필의 금속 촉 끝으로 유도했다. 그의 혈액 속에 흐르는 시원 게놈 주파수가 만년필의 칩을 자극하자, 만년필 끝에서 미세한 황금빛 전자기 스파크가 일어났다.
그는 만년필 촉을 금고 제어판의 데이터 슬롯에 정밀하게 삽입했다.
치이이익-
만년필에서 흘러나온 고대 지구의 삼진법 알고리즘이 제국의 보안 시스템 내부로 침투했다. 중앙 AI 하데스의 방화벽이 반응하기도 전에, 만년필의 마이크로칩은 금고실 카메라의 실시간 감시 피드를 직전 5초 동안의 정지 화면으로 고정하는 데이터 가림막 루프를 성공적으로 가동했다.
철컥. 웅웅웅-
비밀 금고실의 무거운 게이트가 마침내 서서히 열렸다.
진혁은 금고 내부로 신속히 발을 들였다. 그곳에는 아론 총독이 행성 전체에서 수탈한 희귀한 크로논 에너지 결정들과 금지된 고대 유물들이 어지럽게 진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진혁의 황금빛 눈은 오직 중앙의 유리 보존 장치 속에 안치된 물건만을 향했다.
투명한 양자 역장막 속에 떠 있는, 푸른빛 에너지 주파수를 내뿜는 반투명한 금속 카드. 카론-4 지하 깊은 곳에 봉인된 태고의 기록 보관소 콘크리트 돔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 ‘제국 보안 인증 토큰’이었다.
진혁은 만년필의 잔여 전하를 보존 장치 측면에 접촉시켜 역장막을 일시적으로 상쇄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차가운 금속 토큰을 움켜쥐었다. 토큰이 그의 손바닥에 닿는 순간, 뇌 신경망을 타고 부모님이 연구했던 고대 지구의 기하학적 주파수가 흘러들어와 가벼운 소름이 돋았다.
성공이었다. 마침내 유적의 봉인을 풀 열쇠를 손에 넣은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금고실 외부 집무실 너머에서 둔중한 금속성 구두 소리와 함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서관, 오늘 연회에서 의원 놈들이 요구한 크로논 결정의 수송 배정 문서를 당장 준비해라. 신권 재판소의 카엘이 도착하기 전에 유적 발굴 흔적을 완벽히 지워야 문책을 피할 수 있어.”
아론 총독의 목소리였다. 예정보다 훨씬 빠른 불시 방문이었다.
진혁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박동했다.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퇴로인 집무실 문방향에서 아론 총독이 물리적인 마스터키 카드를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띠리릭-
진혁은 퇴로가 차단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는 급히 탈취한 보안 토큰을 코트 안쪽 깊숙이 찔러 넣고, 광학 미채 은신 망토의 제어 단추를 다시 한번 강하게 눌렀다. 망토가 그의 체온을 극한으로 빨아들이며 전신에 마비가 올 듯한 추위가 덮쳐왔다. 진혁은 금고실 구석의 대리석 벽면에 몸을 바짝 밀착한 채 숨을 완전히 죽였다.
쉬이이이익-
금고실의 거대한 해치가 완전히 열리며 기름진 체구에 화려한 비단 로브를 걸친 아론 총독이 걸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식은땀과 초조함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총독의 오른쪽 어깨 위에는, 제국 신권 재판소에서 파견한 소형 자율 사냥 드론이 차가운 기계음을 내며 둥실 떠 있었다.
윙윙윙윙-
사냥 드론의 둥근 동체 중앙에 박힌 붉은색 광학 렌즈가 기괴한 모터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드론은 공기 중의 미세한 산소 밀도 변화와 생명체의 뇌파 신호를 역추적하는 살상 병기였다.
진혁은 뇌파 스캔 공격에 대비해 ‘정신적 기억 장벽’을 필사적으로 가동하며 자신의 모든 기억 세포를 어둠 속으로 은닉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지만,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황금빛 눈동자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냥 드론의 붉은 눈이 천천히 돌아가더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오직 투명한 공기만이 가득한 서진혁의 바로 코앞을 향해 멈춰 섰다. 드론의 붉은 광선이 진혁의 얼굴이 있을 허공을 정면으로 비추며 윙윙거리는 모터 소리를 높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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