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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눈을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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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구의 좁고 축축한 어둠 속을 기어 나오는 서진혁의 온몸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대학 지부 연구실에서 아서의 터미널을 강제 잠금하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입은 타박상으로 갈비뼈 부근이 욱신거렸지만, 그보다 더한 극통은 왼쪽 안구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제국의 보안 장벽을 억지로 우회하며 가동했던 정신 장벽의 후유증과 전자기 화상이 왼쪽 눈 신경을 실시간으로 태워 버릴 듯 들끓었다. 시야의 절반이 붉고 검은 얼룩으로 번져 나갔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비린 피 냄새가 올라왔다.


진혁은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겨 카론-4 최악의 슬럼가인 ‘녹슨 안개 정착지 (Rust Mist)’의 깊은 음지로 스며들었다.


사방에서 산성 비에 절어 붉게 부식된 철판 가옥들이 기괴한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기계 오일 탄 냄새와 저급 기계 의체들이 내뿜는 불완전 연소 가스가 자욱했다. 제국의 눈을 피해 하루하루를 고철 수집으로 연명하는 하층민들의 절망이 무겁게 가라앉은 거리. 진혁은 가죽 코트 자락을 움켜쥐고 어두운 뒷골목의 하수구 틈새로 쓰러지듯 몸을 밀어 넣었다.


“으윽……!”


그가 무릎을 꿇으며 바닥을 짚었을 때, 어둠 속에서 작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기름때 묻은 커다란 오버사이즈 정비공 멜빵바지를 입은 왜소한 체구의 소년이 고철 바구니를 든 채 진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 서진혁 형 맞죠? 대학가에서 엄청난 폭음이 나더니, 진짜 이쪽으로 왔네!”


소년의 이름은 루카였다. 카론-4의 빈민가에서 유적의 고철을 주워 살아가며 늘 진혁의 유물 해독 작업을 동경하던 영민한 열네 살짜리 아이였다. 루카는 진혁의 왼쪽 눈에서 흘러내리는 붉은 피와 짓무른 피부를 보더니 황급히 바구니를 내려놓고 그의 어깨를 부축했다.


“눈이…… 눈이 완전히 망가졌잖아요! 이대로 가다간 제국군 정찰대한테 잡히기 전에 신경이 먼저 녹아내릴 거예요. 당장 크로스 아저씨한테 가야 해요!”


루카는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함으로 진혁을 이끌고 슬럼가 뒷골목의 낡은 드로이드 잔해 뒤편으로 향했다. 고장 난 의료용 드로이드의 가슴팍에 루카가 고대 암호 패널을 두드리자, 둔중한 유압음과 함께 지하로 내려가는 비밀 리프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리프트가 도달한 곳은 어두컴컴한 화학 약품 냄새와 오래된 기계 오일 향이 뒤섞인 ‘닥터 크로스의 지하 클리닉’이었다. 사방에는 폐기된 의료용 드로이드의 부품들이 기괴한 무덤처럼 쌓여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투박한 수술대와 홀로그램 제어판이 빛나고 있었다.


“이런, 멍청한 녀석. 제국의 양자 보안망을 유기체 뇌로 정면에서 받아내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수술대 너머에서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왼쪽 뺨부터 목덜미까지 투박한 금속 사이보그 피부로 뒤덮인 거친 인상의 사내, 닥터 크로스였다. 전직 제국군 수석 군의관이었던 그는 한쪽 눈의 붉은 광학 렌즈를 번뜩이며 진혁의 상태를 정밀하게 진단했다.


“안구 신경의 80%가 전자기 과부하로 타버렸다. 이대로 두면 뇌 세포까지 괴사가 진행될 거다. 살고 싶다면 당장 이식해야 해.”


크로스가 수술대 옆의 고전압 보존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서 차가운 청색 광채를 내뿜는 정교한 황동빛 기계 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대 지구의 기술로 제작된 유물, ‘양자 분석 황금빛 렌즈 (Quantum Lens)’였다.


“마취는 없다, 서진혁. 제국식 신경 마취제는 네 순수 유기체 뇌 세포를 강제로 오염시키고 기계화를 유도하는 성분이 들어있으니까. 진짜 인간으로 남고 싶다면 생살을 찢고 신경을 접합하는 고통을 맨정신으로 버텨내라.”


진혁은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 이를 악물었다.


“시작…… 하십시오.”


크로스의 투박한 기계 손가락이 고정 핀을 가동해 진혁의 머리를 고정했다. 차가운 금속 메스가 왼쪽 눈꺼풀을 절개하고, 타버린 원래의 안구 조직을 정밀하게 분리해 내는 감각이 생생하게 뇌를 찔렀다. 비명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진혁은 가죽 코트 자락을 찢어질 듯 움켜쥐며 신음소리를 삼켰다.


그때였다. 클리닉 천장 너머 지상에서 고음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둔중한 기계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경고: 위생감찰대 구역 수색 개시. 모든 하층민은 제자리에 대기하라.]


“쳇, 쥐새끼들이 벌써 냄새를 맡았군.”


크로스가 쇠가 마찰하는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수술 장갑을 낀 채 벽면에 설치된 제국 통신 차단막 장치를 기동하려 스위치를 올렸다. 그러나 장치는 웅웅거리는 빈약한 소리만 내더니 이내 불꽃을 뿜으며 정지해 버렸다.


“예비 동력이 부족해! 차단막이 가동되지 않는다. 이대로면 지하의 미세 전자기 신호가 저놈들의 감지 위성에 고스란히 잡힐 거다.”


지상의 정찰 드론들이 방출하는 열화상 스캔과 전파 탐지기가 지하 클리닉을 향해 좁혀오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수술은 아직 안구 신경과 양자 렌즈의 물리적 접합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진혁이 완벽히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순간이었다.


그때 루카가 눈을 빛내며 기지를 발휘했다.


“제가 시간을 벌어볼게요!”


루카는 클리닉 구석에 쌓여 있던 무겁고 단단한 광업용 고철 더미를 향해 달려갔다. 소년은 지지대를 수동 크랭크로 돌려 고의로 붕괴시켰다. 쿵쾅거리는 굉음과 함께 거대한 고철과 철판들이 지하 환기구 입구와 클리닉 진입로 위로 무너지며 천연 차단벽을 형성했다. 납과 철 성분이 다량 함유된 고철 무덤이 물리적으로 스캔 광선을 굴절시키고 차단하는 방패가 된 것이다.


하지만 정찰 드론들의 전파 탐지음은 여전히 클리닉 바로 위 상공에서 날카롭게 윙윙거리고 있었다.


“신경 접합을 시작한다. 버텨라!”


크로스가 황동빛 렌즈를 진혁의 타버린 안구 신경 가닥들에 밀어 넣었다.


“아아아악-!”


결국 진혁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수천 개의 미세한 금속 바늘이 뇌 신경망을 직접 관통해 꿰매는 듯한 극통이었다. 머릿속에서 수십억 개의 양자 노이즈가 폭발하며 가상 공간의 데이터 더미들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뇌 세포가 1차적으로 손상되는 대가가 몸서리쳐지는 고통과 함께 찾아왔다.


그 고통의 심연 속에서, 진혁의 감각이 비정상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새로 이식된 양자 렌즈가 진혁의 맥박과 동조하며 황금빛 광채를 뿜어냈다. 진혁은 감았던 왼쪽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세상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차가운 콘크리트 벽면은 사라지고, 벽 내부를 흐르는 미세한 전자기 회로의 흐름과 구리 도선의 전류 맥박이 황금빛 실선으로 선명하게 시각화되었다.


그때, 클리닉 구석에 방치된 고장 난 의료용 드로이드가 오작동하며 불규칙한 기계 진동 노이즈를 내뿜고 있는 것이 황금빛 시야에 잡혔. 이 진동 주파수가 지상의 제국군 드론들에게 무선 신호의 꼬리를 잡히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진혁은 떨리는 손을 뻗어 그 드로이드의 외벽 장갑에 손바닥을 대었다.


‘기계 진동 공감 감각.’


그의 유기체 뇌 세포와 황금빛 렌즈의 연산력이 결합하며 드로이드 내부의 모터 구동 메커니즘이 머릿속에 3D 설계도로 투사되었다. 진혁은 드로이드의 진동 주파수를 미세하게 조율했다. 모터의 진동 회전수를 역방향으로 꺾어, 지상의 감찰대 드론들이 방출하는 스캔 주파수를 완벽히 상쇄하는 화이트 노이즈를 생성해 낸 것이다.


지상에서 들려오던 드론들의 앵앵거리는 기계음이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신호를 잃고 다른 구역으로 서서히 멀어져 갔다.


“하…… 후우…….”


진혁은 수술대 위에서 상체를 일으키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왼쪽 눈동자는 이제 신비롭고 단단한 황금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황금빛 눈을 가볍게 깜빡였다. 정교하게 조정된 렌즈는 클리닉의 두꺼운 철판 내벽을 투과하여, 슬럼가 전역의 메인 도로를 조밀하게 메우기 시작한 제국군 기동수색대 장갑차들의 붉은색 스캔 레이저망을 실시간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포위망은 더욱 넓고 촘촘하게 슬럼가를 옥죄어 오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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