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절벽의 사냥개들
부우우웅—! 탈탈탈탈!
숨소리조차 죄악이 되는 침묵이 헤르메스 호의 차가운 선실을 지배했다. 붉은 모래바람이 강화 유리창을 사정없이 때리는 소리 사이로, 붉은 절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엔진 소리는 점차 뚜렷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자연의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제국군 기동수색대장 카터가 이끄는 고속 호버 바이크 부대의 거친 엔진음이었다. 사냥개들이 마침내 속삭이는 협곡의 붉은 심연 속으로 이빨을 들이밀기 시작한 것이다.
진혁은 각혈이 묻은 입술을 낡은 가죽 코트 소매로 거칠게 훔쳐냈다. 갈비뼈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균열의 통증이 호흡을 들이쉴 때마다 날카로운 송곳처럼 가슴을 찔렀다. 왼쪽 눈의 안구 신경은 타는 듯이 아파왔고, 황금빛 양자 분석 렌즈는 과부하로 인해 붉은색 노이즈를 간헐적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엔진 동력…… 완전 제로. 비상 전력마저 바닥나고 있어.”
조종석에 엎드린 한솔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급격한 G-Force 비행의 여파로 그의 코끝에서는 여전히 마른 핏자국이 묻어났고, 실버 기계 의체로 개조된 우측 어깨 관절은 푸른빛 스파크를 튀기며 완전히 방전되어 축 늘어져 있었다. 파일럿으로서의 자존심 하나로 버티던 에이스조차 지금은 움직이지 않는 고철이나 다름없었다.
엔진룸 해치 틈새로 렌의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왼팔 전체에 고압 전류 감전으로 입은 심각한 화상 부상이 전력을 잃은 선실의 혹한 속에서 더욱 욱신거리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곁에서 소년 루카가 카이의 단말기를 가슴에 꼭 안은 채 온몸을 떨고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협곡의 짙은 붉은 안개를 뚫고, 제국군 정찰대장 루크가 조종하는 수십 대의 정찰 드론 스웜이 하늘을 뒤덮으며 하강하고 있었다. 드론들의 하부에서 방출되는 빨간색 타겟팅 레이저가 협곡 바닥의 붉은 모래 위를 격자 대형으로 쓸어내렸다. 저 레이저에 단 0.1초라도 노출되는 순간, 궤도 상공에 대기 중인 제국 구축함의 무차별 반물질 주포 포격이 이 협곡 바닥을 증발시켜 버릴 것이다.
“통신 안테나가 완전히 파손됐어. 외부와의 무선 신호는 완전히 단절됐다.”
진혁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들의 눈과 귀가 되어줄 안테나는 비상 착륙 당시의 충격으로 함선 상부에서 완전히 부러져 나갔다. 완벽한 고립. 이제 그들이 가진 무기는 오직 선내에 남은 몇 안 되는 급조 장비들과 진혁의 고고학적 지략뿐이었다.
“형…… 적들이 너무 가까워요.”
루카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드론들의 앵앵거리는 고주파 모터 소리가 이제 헤르메스 호의 외벽 장갑을 타고 미세한 진동으로 전해질 정도였다. 카터의 호버 바이크 부대가 붉은 모래 언덕을 타고 내려오며 서치라이트를 사방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자기장 폭풍으로 제국의 위성 탐지는 막았지만, 지상의 사냥개들은 수동 스캔과 육안으로 놈들을 옥죄어 오고 있었다.
이대로 앉아서 나포당할 수는 없었다. 진혁은 품속에서 ‘광학 미채 은신 망토’를 꺼내 어깨에 걸쳤다. 망토의 깃을 올리고 전원을 켜자, 섬유 내부의 미세 나노 입자들이 주변의 붉은 안개와 빛을 굴절시키며 그의 신체를 완벽하게 감추었다. 동시에 망토가 진혁의 체온을 급격히 흡수하기 시작했다. 뼛속까지 시려오는 저체온증의 극심한 오한이 그의 온몸을 마비시키려 했지만, 진혁은 이를 악물고 뇌파를 동결시켰다.
“한솔, 렌을 돌봐줘. 루카, 나와 함께 나간다.”
“형, 저도요?”
“네가 만든 그것이 필요해.”
진혁은 루카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루카의 품에는 렌과의 정비 수련 과정에서 배운 기술을 응용해, 폐기된 비상 배터리와 구형 커패시터를 기워 만든 ‘급조 정정기 폭탄’이 들려 있었다. 기계의 구조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소년의 영민함이 만들어낸 투박한 무기였다.
진혁은 헤르메스 호의 비상 해치를 수동 레버로 아주 미세하게 열었다. 붉은 모래바람이 차가운 틈새로 들이쳤다. 은신 망토를 두른 진혁과, 그의 등 뒤에 바짝 붙은 루카가 소리 없이 기체 밖으로 기어 나갔다.
협곡의 대기는 철광석 분진으로 인해 비릿한 금속 맛이 났다. 머리 위 상공, 루크 대장이 이끄는 정찰 드론 스웜이 촘촘한 그물망처럼 내려앉아 있었고, 전방 50미터 지점에서는 카터 대장의 호버 바이크 3대가 엔진을 낮게 웅웅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카터의 날카로운 안광이 고글 너머로 번뜩였다. 그는 무언가 이상한 흔적을 느낀 듯, 바이크의 속도를 늦추며 헤르메스 호가 불시착한 모래 언덕 방향으로 서치라이트를 집중시켰다.
‘드론들은 서로의 양자 메쉬 네트워크 주파수를 공유하며 조밀한 스캔 대형을 유지하고 있어.’
진혁의 왼쪽 눈에서 황금빛 양자 분석 렌즈가 격렬하게 회전하며 드론들의 무선 신호 흐름을 스캔해 냈다. 렌즈가 투사하는 가상의 청색 데이터 흐름 속에서, 드론들의 통신 링크가 하나의 중앙 스웜 제어 단말기로 수렴하는 취약점이 황금색 선으로 연결되어 보였다. 개별 드론을 파괴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저 제어 단말기의 주파수를 한순간에 과부하시켜 전체 네트워크를 붕괴시켜야 했다.
“루카, 준비해라.”
진혁이 수동 통신 도선으로 루카의 귀에 속삭였다.
“카터의 호버 바이크가 저 바위 모퉁이를 도는 순간, 우측 절벽 틈새로 정전기 폭탄을 던져라. 바이크의 전자기 흡입구가 먼지를 빨아들이는 타이밍에 맞춰야 해.”
루카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의 작은 손이 차가운 정전기 폭탄의 황동 표면을 꽉 쥐었다.
카터의 선두 바이크가 바위 모퉁이를 돌며 둔중한 금속 마찰음을 냈다. 서치라이트의 붉은 광선이 헤르메스 호의 외벽 장갑을 쓸기 직전—.
“지금이다!”
진혁의 명령과 동시에 루카가 몸을 날려 정전기 폭탄을 투척했다. 투박한 금속 뭉치가 호버 바이크의 하부 흡입구 근처의 붉은 모래 위로 정확히 떨어졌다.
쿠구구궁! 파지직!
폭탄이 터지며 엄청난 광음과 함께 푸른색 전자기 아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협곡 내부에 가득 차 있던 철광석 미립자들이 전자기 반응을 일으키며 폭발적인 정전기 폭풍을 형성했다.
“으악! 전자기 간섭이다! 엔진 제어가—!”
카터의 호버 바이크 대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정전기 폭풍에 직격당한 선두 바이크 2대의 호버 스태빌라이저가 순간적으로 방전되며 기체가 중심을 잃고 붉은 절벽 벽면에 거칠게 충돌했다. 굉음과 함께 금속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카터의 바이크 역시 뒤로 미끄러지며 붉은 먼지 속에 갇혔다.
“침입자다! 우측 절벽 틈새를 조준해라!”
먼지 속에서 살아남은 카터가 포효했다. 그의 명령에 머리 위에 대기 중이던 루크의 정찰 드론 스웜이 일제히 기수를 꺾었다. 수십 개의 빨간색 타겟팅 레이저가 붉은 안개를 뚫고 진혁과 루카가 숨은 바위 틈새를 향해 무섭게 좁혀들었다. 레이저가 그들의 어깨와 머리를 정확히 록온하기 직전, 궤도 상공의 제국 주포가 충전되는 고주파음이 대기를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었다. 단 1초의 지체도 용납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진혁은 허리띠에 장착된 휴대용 장막 생성기의 제어판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기계 진동 공감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장치의 내부 회로 주파수를 역류시켰다.
‘장막의 극성을 역전시켜, 외부 충격을 막는 장벽이 아닌 광대역 전자기 펄스 방출기로 전환한다.’
그의 머릿속에 장막 생성기의 내부 도선 흐름이 3D 설계도처럼 선명하게 그려졌다. 진혁은 만년필 촉 끝을 장치의 핵심 콘덴서에 찔러 넣고 수동으로 전류의 흐름을 역방향으로 꺾어버렸다. 그의 특수 기술, ‘전자기 펄스 순간 교란 (EM Disrupt)’의 발동이었다.
“루카, 엎드려!”
진혁이 소리치며 벨트의 스위치를 더블 클릭했다.
콰아아앙—!
진혁을 중심으로 반경 5미터 이내의 우주 공간이 순간적으로 청색 전자기 구파로 가득 찼다. 눈이 멀 것 같은 강렬한 청색 전자기 충격파가 붉은 안개를 밀어내며 사방으로 팽창했다.
그 강력한 펄스 파동이 하늘을 뒤덮고 있던 정찰 드론 스웜의 중앙 제어 단말기를 직격했다.
지지직! 파직! 파지직!
드론들의 붉은 안광이 일제히 꺼졌다. 제어 신호를 잃은 수십 대의 드론들이 마치 날개가 부러진 금속 벌떼처럼 추락하기 시작했다. 드론들은 붉은 절벽 벽면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고, 바닥의 모래더미 속으로 사정없이 처박히며 불꽃을 뿜어냈다. 카터의 통신 장비와 바이크의 계기판 역시 완벽하게 먹통이 되며 암흑 속에 잠겼다.
“성공했어…….”
루카가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소년의 눈에는 스승을 향한 깊은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승리의 대가는 가혹했다. 진혁의 허리띠에 장착되어 있던 휴대용 장막 생성기가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완전히 방전되어 정지해 버렸다. 내부 코일이 타버린 장치는 향후 12시간 동안 그 어떤 방어막도 생성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최후의 보루가 사라진 것이다.
“형, 기동수색대 본대의 무전 소리가 들려요. 더 많은 바이크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루카가 파괴된 드론의 잔해에서 흘러나오는 비상 무전 신호를 들으며 소리쳤다. 카터의 선발대를 일시적으로 무력화시켰지만, 협곡 입구에 대기 중이던 제국 정규군 본대의 압도적인 추가 증원 병력이 그들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위성 통제관 마커스가 협곡 전체를 포위하고 무차별 위성 폭격을 감행하려 한다는 교신음이 붉은 먼지 너머로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사방은 깎아지른 듯한 붉은 절벽이었고, 헤르메스 호는 여전히 전력이 차단된 상태였다.
그때였다.
진혁의 왼쪽 안구에 이식된 양자 분석 황금빛 렌즈가 갑자기 격렬하게 진동하며 황금빛 광채를 내뿜기 시작했다. 안구 신경을 찌르는 극심한 통증과 함께, 렌즈의 전자기 스펙트럼 화면 위에 믿을 수 없는 데이터 수치가 시각화되었다.
[감지: 고대 지구 규격 인공 중력 에너지 반응. 주파수 동조율 94.2%.]
진혁은 통증으로 흐려지는 시야를 다잡으며 붉은 절벽 안쪽 깊숙한 곳을 응시했다.
그곳, 붉은 모래바람과 자기장 안개에 가려져 육안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던 거대한 절벽 벽면의 미세한 균열부 너머에서—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고대 지구의 인공 중력 에너지가 푸른색 맥박처럼 희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제국의 역사 검열관들이 미처 메우지 못한, 태고의 흔적이 잠든 비밀 동굴의 입구였다.
진혁의 황금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저기다…… 저 절벽 안쪽에 길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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