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이는 협곡으로
“삐이이이—!
[경고: 양자 엔진 동력 임계 온도 돌파. 코어 붕괴 위험 감지.]”
헤르메스 호의 조종실 내부를 가득 채운 적색 경고등이 피처럼 붉은 빛을 사방으로 뿌려대고 있었다. 서브 AI 네로의 건조한 기계음이 고막을 찢을 듯 울릴 때마다, 조종석 콘솔의 계기판들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산소 잔여량 9.8%…… 지속적으로 하강 중.”
한솔의 코끝에서 선명한 선혈이 다시 한 방울 뚝 떨어져 콘솔의 유압 레버 위를 적셨다. 실버 기계 의체로 개조된 그의 오른쪽 어깨 관절에서는 과부하로 인한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기계 신경망이 비명을 지를 때마다 푸른빛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소행성대에서 제국군의 촘촘한 포위망을 뚫기 위해 감행했던 극한의 중력 관성 비행이 그의 유기체 뇌와 기계 의체 모두에 치명적인 대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한솔, 조종간을 넘겨! 더 이상 기동하면 네 신경망이 먼저 타버려!”
서진혁은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격통을 참아내며 한솔의 어깨를 붙잡았다. 왼쪽 눈에 이식된 황금빛 양자 분석 렌즈가 과부하로 인해 욱신거렸고,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비릿한 각혈의 전조를 억지로 삼켜내야 했다. 신체 개조를 전혀 하지 않은 순수 유기체 육체로 우주선이 요동치는 물리적 충격을 견뎌내는 것은 지옥 그 자체였다.
“시끄러워……! 내가 조종간을 놓는 순간, 우리는 저 중력 소용돌이에 휘말려 우주 먼지가 된다!”
한솔이 이를 악물며 조종간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시야는 이미 미세한 뇌출혈로 인해 흐려지고 있었다.
같은 시각, 카론-4의 위성 궤도 상공에 정박한 제국 구축함 ‘인퀴지터 호’의 통제실.
위성 통제관 마커스는 차가운 눈빛으로 전면의 대형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크린 위에는 카론-4의 궤도를 감싸고 있는 12대의 감시 위성이 송신하는 실시간 열화상 그리드가 촘촘하게 펼쳐져 있었다.
“목표물의 열화상 신호가 아직 소행성대 경계선에 남아 있습니다. 외벽에 각인된 타키온 추적 신호가 정상적으로 수신되고 있습니다.”
기술 관료의 보고에 마커스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이단 도망자 녀석들, 쥐구멍에 숨어든 줄 알았나 보군. 12대의 감시 위성을 격자 대형으로 정렬해라. 놈들의 엔진 열반응이 완전히 식기 전에 정확한 하강 궤적을 산출하고, 대공 폭격을 준비해라.”
“존명.”
마커스의 명령 한마디에 우주 공간에 배치된 제국의 감시 위성들이 일제히 붉은색 안광을 번뜩이며 헤르메스 호의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안 되겠어, 스텔스 노드를 기동해야 해!”
엔진룸 해치 너머로 얼굴을 내민 루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의 품에는 전사한 소년 해커 카이의 홀로그램 단말기가 소중하게 안겨 있었다.
“안 돼, 루카! 스텔스 노드를 켜지 마!”
진혁이 다급하게 만류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엔진룸에서 대기하던 렌이 손상된 왼팔의 통증을 참아가며 스텔스 노드 가동 스위치를 올린 순간—.
파지직! 콰아아앙!
강렬한 전자기 역류 스파크가 엔진룸 내부의 배선을 타고 조종실까지 들이쳤다. 헤르메스 호의 외벽에 덧대어진 고강도 티타늄 장갑판의 손상 부위로 과전류가 흐르며, 스텔스 노드 장치가 불꽃을 뿜어내고 이내 시커먼 연기와 함께 정지해 버렸다.
“엔진 과부하 전력 쇼트 발생! 스텔스 차폐 장치 파손!”
서브 AI 네로의 경고음이 쐐기를 박았다. 제국의 타키온 스캔 신호가 여전히 외벽 장갑에서 붉게 일렁이며 그들의 정확한 좌표를 위성 궤도로 송신하고 있었다. 궤도 위성들의 열화상 록온 마크가 헤르메스 호의 꽁무니를 바짝 뒤쫓는 모습이 전면 스크린에 시각화되었다.
“포위당했다…… 위성들의 조준선이 겹치는 중심부로 들어가고 있어.”
진혁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 이성이라는 차가운 메스가 그의 공포를 도려냈다. 무력이 없는 고고학자로서, 이 삼엄한 제국의 감시망을 뚫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이 우주 공간의 지리적 환경과 고대의 지식뿐이었다.
진혁은 콘솔 거치대에 장착된 황동빛 테라 아틀라스(Terra Atlas)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을 통해 기기의 차가운 금속 질감과 미세한 중력선 진동이 그의 뇌 신경망으로 밀려들었다.
웅—.
머리가 깨질 듯한 이명이 밀려왔고, 왼쪽 눈의 양자 렌즈가 황금빛으로 격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진혁은 렌즈의 스캔 영역을 아틀라스의 홀로그램 지도 위에 융합시켰다. 카론-4 행성의 지표면 데이터가 수만 개의 청색 격자로 쪼개지며 그의 뇌리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때, 붉은 황무지 한가운데를 깊게 찢어발긴 기형적인 지형이 그의 황금빛 시야에 포착되었다.
“속삭이는 협곡(Whispering Canyons)…….”
철광석 성분의 붉은 절벽들이 끝없이 이어져 강렬한 자연 자기장 폭풍을 뿜어내는 금지 구역. 그곳은 기계 장치를 무력화시키는 죽음의 계곡이지만, 동시에 제국의 전자기 감시 위성이 단 1밀리미터의 열화상 신호도 감지할 수 없는 완벽한 천연 차폐 구역이었다.
“한솔, 6시 방향으로 기수를 돌려라! 행성 대기권으로 수직 강하한다!”
“미쳤어? 저 아래는 전자기 폭풍 지대야! 계기판이 전부 먹통이 될 텐데!”
“위성의 열화상 추적에 격침당하는 것보다, 자연의 폭풍 속으로 뛰어드는 게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 아틀라스의 중력선 레이어가 가리키고 있어. 저 협곡 내부에 위성의 감시망이 닿지 않는 유일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한솔은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코끝의 피를 훔쳐내며, 진혁의 황금빛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광기가 아닌, 철저한 수학적 계산과 고고학적 확신이 담겨 있었다.
“……좋아, 네 그 잘난 고고학적 나침반을 믿어보지. 전원 꽉 잡아라!”
한솔이 조종간을 몸쪽으로 끝까지 잡아당겼다. 헤르메스 호의 기수가 급격히 하강하며, 카론-4의 붉은 대기권으로 사정없이 처박히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대기권 진입의 엄청난 마찰열이 함선을 뒤흔들었다. 선체 외벽의 찢겨 나간 장갑판 사이로 붉은 화염이 스며들었고, 조종실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궤도 상공의 마커스는 화면을 보며 소리쳤다.
“놈들이 스스로 자살 항로를 택했군! 속삭이는 협곡으로 추락하고 있다! 위성 1호부터 6호까지, 협곡 입구에 대공 포격을 집중해라!”
위성들이 발사한 푸른색 반물질 포탄들이 대기권을 뚫고 내려와 헤르메스 호의 주변을 폭격했다. 우주 공간의 진공과 달리, 대기권 내부에서의 폭발 충격파는 함선의 선체를 무자비하게 짓눌렀다.
“한솔, 엔진을 꺼!”
진혁이 외쳤다.
“뭐라고? 이 속도에서 엔진을 끄면 그대로 지면에 충돌해!”
“엔진의 열반응이 살아있는 한 위성의 추적을 피할 수 없어! 엔진 동력을 완전히 차단하고, 오직 협곡의 자기장 기류만을 이용해 자유 낙하(Free-Fall) 기동으로 진입해야 해! 내가 중력선을 읽어줄 테니 활공해!”
한솔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그것은 파일럿으로서의 본능을 거스르는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그는 주저 없이 메인 엔진의 동력 레버를 밀어 내렸다.
철컥—.
헤르메스 호의 꽁무니를 수놓던 푸른 불꽃이 완전히 꺼졌다. 함선은 순식간에 차가운 고철 덩어리가 되어, 붉은 모래바람과 번개가 내리치는 속삭이는 협곡의 심연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방이 암흑으로 변했다. 조종실의 메인 콘솔이 완전히 꺼졌고, 오직 아틀라스 기기가 뿜어내는 희미한 푸른색 중력선만이 허공을 밝히고 있었다.
진혁은 자신의 오른손을 뜨겁게 과열된 엔진 제어판 위에 얹었다. 그의 특수 능력인 ‘기계 진동 공감 감각’이 가동되었다.
기계의 미세한 비명 소리, 내부 파이프를 흐르는 냉각수의 끓는 진동, 그리고 타버린 회로의 전자기 잔향이 그의 신경망을 타고 실시간 설계도처럼 뇌리에 시각화되었다. 진혁은 뇌 세포의 피로가 극에 달해 입안 가득 피비린내가 고이는 것을 느끼면서도, 수동 밸브를 조작해 비상 보조 전력만을 남기고 함선의 모든 전자기 신호를 오프라인으로 전환했다.
“기류가 온다…… 우측 플랩 5도 조절해, 한솔!”
한솔은 엔진이 꺼진 상태에서 오직 수동 유압 케이블의 팽팽한 저항감만을 느끼며 조종간을 비틀었다. 붉은 철광석 절벽이 코앞까지 다가왔다가 스치듯 지나갔다. 거대한 모래바람이 함선을 때렸고, 협곡 내부에 가득한 자연 자기장 번개들이 선체 표면을 타고 흐르며 기괴한 속삭임 같은 소음을 만들어냈다.
위성 통제실의 마커스는 당황하여 소리쳤다.
“신호가…… 사라졌습니다! 열화상 신호와 타키온 추적 신호가 동시에 증발했습니다!”
“뭐라구? 협곡 내부를 샅샅이 스캔해라!”
“불가능합니다! 협곡 내부의 철광석 자기장 노이즈가 너무 강해, 위성의 센서가 완전히 차단되었습니다!”
마커스는 주먹으로 콘솔을 내리쳤다. 눈앞에서 사냥감을 완벽하게 놓친 것이었다.
그 순간, 속삭이는 협곡의 가장 깊은 사각지대 바닥.
헤르메스 호는 엔진 추진력 없이, 오직 한솔의 극한의 활공 조종술과 진혁이 읽어낸 중력선 덕분에 붉은 모래 언덕 위로 미끄러지듯 착륙했다.
콰아아앙! 쿵!
선체가 격렬하게 흔들리며 멈춰 섰다. 그 충격으로 인해 함선 상부에 장착되어 있던 노후된 통신 안테나가 둔중한 파열음과 함께 완전히 부러져 나갔다. 외부 조력자들과의 모든 연결이 물리적으로 완전히 차단되는 순간이었다.
조종실 내부는 완벽한 정적에 휩싸였다. 붉은 모래바람이 유리창을 때리는 거친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선내 산소 공급 장치가 정지해 가고 있었고, 그들의 호흡은 무겁고 차가웠다.
“……착륙 성공이다.”
한솔이 조종간에서 손을 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의 기계 의체 어깨 관절이 완전히 방전되어 아래로 툭 늘어졌다. 루카는 카이의 단말기를 품에 꼭 안은 채,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진혁은 아틀라스에서 손을 떼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입술 사이로 푸른빛이 도는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신체 세포가 무리한 공명의 대가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제국의 눈을 피했다는 안도감이 그를 지탱했다.
그때였다.
부러진 안테나의 잔해를 타고, 꺼진 전면 센서의 보조 주파수 수신기에 기괴한 전자기 간섭 노이즈가 흘러들어왔다.
사각, 사가각—.
그리고 붉은 절벽 너머, 몰아치는 모래바람 사이로 희미하지만 둔중한 기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부우우웅—! 탈탈탈탈!
그것은 자연의 소리가 아니었다. 제국군 기동수색대장 카터가 이끄는 고속 호버 바이크 부대의 거친 엔진 소리였다. 사냥개들이 이미 협곡 내부를 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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