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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고리의 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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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보! 후방 장갑판에 각인된 타키온 신호가 증폭되고 있습니다! 제국군 추격 편대, 본 함의 도약 궤적을 완전히 동기화했습니다!”


헤르메스 호의 콘솔에 붉은색 경고등이 쉴 새 없이 명멸했다. 서브 AI 네로의 건조한 기계음이 조종실의 무거운 침묵을 찢었다. 선내의 기온은 아이언 케이지 봉쇄선을 돌파할 때의 과부하로 인해 이미 영하로 떨어져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서리처럼 흩어졌다.


서진혁은 갈비뼈를 죄어오는 격통에 신음하며 조종석 콘솔을 붙잡았다. 왼쪽 눈에 이식된 황금빛 양자 분석 렌즈 주변에서 타고 흐른 피가 뺨에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시야가 붉게 번졌지만, 그는 테라 아틀라스(Terra Atlas)의 황동 콘솔을 응시했다.


“추격선이 너무 가깝다. 한솔, 소행성대로 들어가야 해.”


“알고 있어! 하지만 저놈들 속도가 심상치 않아!”


한솔이 조종간을 움켜쥔 채 소리쳤다. 그의 짧은 흑발 사이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실버 기계 의체로 개조된 그의 목덜미와 우측 어깨 관절이 푸른빛 스파크를 튀기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이언 케이지를 뚫기 위해 감행했던 극한의 기동이 그의 신경망에 심각한 무리를 준 탓이었다.


치이익—.


노이즈 섞인 인터콤 너머로 렌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엔진룸에서 보조 제어판을 지키고 있는 그녀의 상태 역시 최악이었다.


“진혁 씨…… 엔진룸 우측 동력 배선이 완전히 타버렸어요. 제 손상된 왼팔로는 바이패스를 완전히 고정할 수가 없어요. 루카가 땜질을 돕고는 있지만, 추진기를 더 쓰면 엔진 코어가 통째로 폭발할 거예요!”


“렌, 무리하지 마. 루카, 렌 누나를 도와서 남은 초전도 구리선을 보조 전원부에 고정해 줘. 한솔, 들었지? 메인 부스터는 쓸 수 없어.”


“부스터 없이 제국군 전투기를 따돌리라고? 고고학자 양반, 내 비행 실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냐?”


한솔이 투덜거리면서도 헤르메스 호의 기수를 급격히 꺾었다.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얼음과 암석 파편들이 은빛 고리를 이루며 소용돌이치는 ‘별무리 소행성대’의 장엄한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론-4의 위성이 붕괴하며 형성된 천혜의 무법지대. 초속 수십 킬로미터로 날아오는 소행성 파편들이 서로 충돌하며 강력한 자기장 노이즈를 뿜어내는 죽음의 장막이었다.


슈우우웅—!


헤르메스 호가 소행성대의 거친 얼음 먼지 속으로 미끄러지듯 진입한 순간, 후방에서 수십 발의 플라스마 탄환이 어둠을 가르며 날아와 선체 측면을 스쳤다.


쿠구구궁!


“디미트리 중위의 편대다! 끈질긴 놈들, 타키온 추적 신호 때문에 궤도를 완벽하게 읽혔어!”


한솔이 조종간을 좌우로 비틀며 소행성 파편들 사이를 지그재그로 통과했다. 조종석 전면 유리창 너머로 집채만 한 얼음 덩어리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조금만 스쳐도 함선이 산산조각 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속도감이 조종실을 지배했다.


그때, 콘솔의 홀로그램 테이블 위로 카론-4 상공의 광역 전술 지도가 강제로 투사되었다. 단순한 추격대의 배치가 아니었다. 소행성대의 모든 탈출로와 미세 중력선들이 정교한 그물망처럼 붉은 선으로 얽혀 있었다.


진혁은 양자 분석 렌즈의 초점을 조절해 그 붉은 그물망의 암호화된 군사 코드를 스캔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한 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한은우.”


“뭐? 그 이름을 네가 어떻게 알아?”


한솔이 급격한 회전 기동을 하며 소리쳤다.


“제국 해군의 천재 전술가, 한은우 참모 중위의 고유 코딩 스타일이야. 이 그물망식 포위 진형…… 네 비행 습관을 완벽하게 분석해서 짠 동선이다. 한솔, 네가 소행성대를 빠져나갈 탈출로의 길목을 미리 차단하고 있어.”


한솔의 눈매가 날카롭게 좁혀졌다. 사관학교 시절, 자신과 수석을 다투던 숙명의 라이벌. 한은우는 한솔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떤 각도로 선회하는지, 어떤 중력 가속도를 선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제국의 군사 컴퓨터는 한솔의 과거 비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헤르메스 호의 예상 궤적을 0.1초 단위로 예측하고 있었다.


“과거의 나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겠다 이거지? 아주 고맙군, 은우 녀석.”


한솔이 이가 깨질 듯이 악물었다. 그의 은빛 기계 의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자기 노이즈가 조종실의 공기를 미세하게 진동시켰다.


“진혁, 아틀라스로 소행성들의 중력 분포를 띄워 줘. 저놈들이 계산할 수 없는 비행을 보여줄 테니까.”


진혁은 황동빛 테라 아틀라스의 중앙 기어 시스템에 손을 얹었다. 그의 맥박이 기기의 미세 진동과 동조하기 시작했다.


웅—.


머릿속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이명이 고막을 때렸고,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각혈의 전조가 느껴졌다. 진혁은 이를 악물고 통증을 억누르며 아틀라스의 미세 중력 레이어를 활성화했다.


황금빛 렌즈의 시야 너머로, 소행성대 내부의 수만 개의 암석들이 가진 개별 중력장들이 푸른색 실선으로 시각화되어 공중에 펼쳐졌다. 그것은 제국의 레이더에는 잡히지 않는, 자연이 그려낸 보이지 않는 중력의 항로였다.


“한솔, 3시 방향의 거대 얼음 소행성. 저놈의 중력장이 가장 왜곡되어 있어. 저 흐름을 타야 해.”


“좋아, 추진기 차단(Engine Cut)!”


“미쳤어? 추진기를 끄면 저 소행성에 그대로 처박힌다고!”


루카가 인터콤 너머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한솔은 주저 없이 메인 엔진의 전원 레버를 내렸다. 헤르메스 호의 꽁무니를 수놓던 푸른 불꽃이 일순간에 꺼졌다. 함선은 추진력을 완전히 잃은 채, 거대한 얼음 소행성의 인력권으로 자유 낙하하기 시작했다.


슈우우우—!


“디미트리 중위, 적 함선이 동력을 상실하고 추락합니다! 격침할까요?”


뒤를 쫓던 제국군 편대의 무전음이 헤르메스 호의 감청망에 잡혔다. 디미트리의 구축함 부함장 제어 시스템은 헤르메스 호가 엔진 고장으로 추락하는 것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제국의 자동 조준 컴퓨터는 낙하하는 기체의 궤적을 따라 포신을 정렬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솔의 덫이었다.


한솔은 추진기 없이, 오직 소행성의 미세한 인력만을 활용해 기체를 급선회시키는 ‘소행성대 중력 관성 비행 전술’을 발동했다.


기체가 얼음 소행성의 표면에 닿기 직전, 소행성의 강력한 조석력이 헤르메스 호의 선체를 휘감았다. 한솔은 기체의 보조 날개 플랩만을 수동으로 조절하며 중력의 흐름을 탔다. 함선은 소행성의 둥근 표면을 따라 유령처럼 급선회하며, 물리적 법칙을 비웃듯 역방향으로 솟구쳐 올랐다.


“뭐, 뭐라고? 적 기체가 중력장을 타고 궤도를 바꿨다! 조준선 이탈!”


디미트리의 다급한 비명이 무전기를 흔들었다. 제국 전투기들의 자동 조종 컴퓨터는 추진기 없는 기체가 소행성의 인력만으로 이 정도의 각도로 급선회할 수 있다는 가정을 연산하지 못했다.


그들의 기체가 조준선 보정을 위해 무리하게 속도를 높여 추격하려던 찰나, 아라 AI의 보조 인터페이스가 작동했다. 비록 자아는 깨어나지 않았지만, 아라의 초광속 연산 코어는 소행성들의 충돌 확률을 실시간으로 계산해 최적의 회피 각도를 조종석 스크린에 황금빛 선으로 제시했다.


“아라 AI 보조 회피 기동, 연산 동기화 완료!”


진혁이 외쳤다.


“지금이야, 한솔! 우측 플랩 15도!”


“비켜라, 제국의 사냥개들아!”


헤르메스 호가 거대 얼음 소행성의 좁은 틈새를 스치듯 빠져나갔다.


그 직후, 무리하게 속도를 내며 헤르메스 호의 뒤를 바짝 쫓던 제국군 전투기 2대가 중력 급선회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전방의 거대한 암석 소행성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아앙—!


우주의 진공 속에서 소리 없는 붉은 불꽃이 폭발하며 암석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뒤따르던 디미트리의 추격대 역시 폭발 잔해와 불규칙한 중력 왜곡에 휘말려 대형이 완전히 무너졌다.


“해냈다……! 적 추격 편대 완파!”


루카의 환호성이 인터콤을 타고 울려 퍼졌다.


그러나 한솔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은 멈추지 않았다. 급격한 관성 이동으로 가해진 중력 가속도(G-Force)를 실버 기계 의체로 버텨내던 한솔이 갑자기 짧은 신음을 뱉으며 조종간 위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코끝에서 붉은 피가 한 방울 뚝 떨어졌다. 미세한 뇌출혈 증세였다.


“한솔! 괜찮아?”


진혁이 급히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한솔은 떨리는 손으로 조종간을 다시 잡으며 간신히 대답했다.


“아직…… 아직 끝난 게 아냐. 한은우의 그물망은 이보다 훨씬 깊어……”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헤르메스 호의 전면 계기판 전체가 기괴한 주파수의 노이즈와 함께 붉은빛으로 격렬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이잉—!


소행성대 한가운데, 칠흑 같은 우주의 심연이 기묘하게 일그러지며 주변의 얼음 파편들과 우주 먼지들을 무자비하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중력 특이점(Gravity Anomaly)이다.”


진혁의 왼쪽 눈 황금빛 렌즈가 사방으로 찢어지는 푸른색 중력선들을 감지하며 거세게 경보를 울렸다. 소행성대의 중심부에서 발생한 자연적인 차원 균열. 함선은 제어력을 잃고 거대한 중력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른 속도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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