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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케이지의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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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 제국 해군 제3함대가 자랑하는 철저한 대기권 이탈 차단망, ‘아이언 케이지 봉쇄선’이 그들의 눈앞을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대기권 최상층의 희박한 가스층 너머, 우주의 칠흑 같은 암흑을 배경으로 펼쳐진 것은 핏빛으로 일렁이는 거대한 전자기 레이저 장막이었다. 카론-4 행성 전체를 거미줄처럼 에워싼 위성들이 서로 양자 얽힘 레이저를 주고받으며 형성한 하늘의 감옥. 그 붉은 광선들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스치기만 해도 선체의 분자 구조를 분해해 버리는 고출력 에너지의 집합체였다.


“빌어먹을…… 하늘 전체가 완전히 막혔잖아.”


한솔이 조종간을 움켜쥔 채 이를 갈았다. 그의 실버 기계 의체로 개조된 목덜미의 은빛 라인이 과부하로 인해 차갑게 명멸하고 있었다. 급격한 중력 가속도 비행의 여파로 전신에 피로가 납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파일럿으로서의 본능은 그에게 멈추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우우우웅—!


헤르메스 호의 조종석 전면 콘솔에서 서브 AI 네로(Nero)의 건조한 경보음이 다시 울렸다.


[경고. 전방 전자기 장막의 에너지 밀도 임계치 초과. 현재 출력으로는 돌파 불가능. 진입 시 장갑판 용해율 99.8%.]


“렌! 엔진룸 상태는 어때?”


진혁이 인터콤을 향해 외쳤다. 갈비뼈의 미세한 균열 부위가 숨을 쉴 때마다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흐려지지 않았다.


“변환 장치가 너무 뜨거워요! 한스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맞물려 놓은 어댑터가 제국식 전력원과 고대 코어를 간신히 잇고 있지만, 전압 불일치 때문에 제어판 코일이 녹아내리기 일보 직전이에요!”


인터콤 너머로 들려오는 렌의 목소리는 고통으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왼쪽 팔 전체에 입은 고압 전류 감전 화상이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옆에서 보조하던 소년 루카 역시 한스의 장렬한 죽음을 목격한 충격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진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한스의 마지막 유언이 귓가를 때렸다.


‘인간의 눈으로 우주를 봐라…….’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이 붉은 철창을 뚫어야 했다. 진혁은 품속에서 가문의 마스터키인 ‘양자 암호 해독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만년필의 금속 촉 끝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전 기지 탈출 과정에서 전자기 펄스를 방출하느라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탓이었다.


“루카! 엔진룸에 용접하고 남은 초전도 정밀 구리 도선(Superconducting Wire)의 잔여분이 아직 남아 있나?”


“네, 네! 여기 한 타래가 남아 있어요!”


“당장 조종실로 가져와!”


잠시 후, 얼굴에 그을음이 가득한 루카가 좁은 통로를 기어 나와 황동빛 구리 도선 타래를 진혁에게 건넸다. 진혁은 주저 없이 콘솔 하부의 마감재를 뜯어냈다. 그 안에는 이륙 시의 과부하로 인해 미세한 스파크가 튀는 함선의 비상 예비 전력 포트가 드러났다.


진혁은 초전도 구리 도선의 한쪽 끝을 예비 전력 포트의 고전압 터미널에 감았고, 반대쪽 끝을 양자 만년필의 충전 단자에 정밀하게 밀착시켰다.


파지직! 파지직!


“윽!”


강렬한 청색 전류가 구리 도선을 타고 만년필로 흘러 들어갔다. 진혁은 순수 유기체 육체로 그 전류의 반동을 고스란히 버텨내며 만년필을 콘솔 입력 포트에 꽂아 넣었다. 황동빛 만년필 촉 끝이 미세하게 진동하더니, 이내 찬란한 청색 빛을 내뿜으며 재충전의 신호를 보냈다. 배터리가 강제로 충전되며 만년필 내부의 고대 마이크로칩이 깨어난 것이었다.


동시에, 카론-4 상공을 선회하던 제국 구축함 ‘인퀴지터 호’의 브릿지.


제국 해군 기술 장교 데이비스는 홀로그램 스크린에 표시되는 이상 양자 신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차가운 안경 렌즈 위로 헤르메스 호의 비행 궤적이 붉은 선으로 그려졌다.


“대기권 최상층에 미확인 고대 함선 감지. 속도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아이언 케이지의 위용에 겁을 먹은 모양이군요.”


데이비스의 입꼬리가 오만하게 올라갔다. 제국의 기술력은 완벽했다. 그 어떤 이단자도 이 붉은 그물망을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아이언 케이지 봉쇄선의 레이저 장막 출력을 최대로 가동하라. 직격하지 않더라도 전자기 간섭만으로 저 낡은 고철선의 내부 회로를 완전히 태워버리겠다.”


데이비스의 명령에 따라, 궤도 위성들의 양자 얽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눈앞의 붉은 그물망이 더욱 조밀하고 붉게 타오르며 헤르메스 호의 전면 장갑을 압박했다.


“경보! 외부 전자기 밀도 150% 상승! 보호막이 침식되고 있습니다!”


네로의 경고와 함께 선체 외벽이 찌르르하는 기분 나쁜 진동과 함께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진혁! 더는 못 버텨! 그냥 엔진 출력을 최대로 높여서 정면 돌파한다!”


한솔이 조종간을 앞으로 밀려 하자, 진혁이 그의 손을 강하게 가로막았다.


“안 돼, 한솔! 정면으로 들어가면 보호막이 녹아내리기 전에 우리 뇌 세포가 먼저 전자기 폭풍에 타버릴 거야. 제국의 봉쇄망은 무적이 아니야. 분명히 주파수가 교차하는 틈새가 있어.”


진혁은 자신의 왼쪽 눈에 이식된 ‘양자 분석 황금빛 렌즈’를 가동했다.


위이잉—.


그의 왼쪽 동공이 찬란한 황금빛 광채를 내뿜으며 고속 회전하기 시작했다. 안구 뒤편의 신경망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안구 신경통이 몰려왔다. 갈비뼈의 통증과 겹쳐지며 진혁의 목구멍에서 비릿한 핏방울이 울컥 솟구쳤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핏물을 삼키며 붉은 장막의 세부 스펙트럼을 노려보았다.


황금빛 시야 너머로, 수십 대의 위성들이 주고받는 양자 신호의 흐름이 복잡한 수학적 격자 구조로 시각화되었다. 제국의 최신 차단막은 완벽해 보였지만, 실상은 고대 지구의 양자 전송 기술을 조잡하게 복제한 하위 기술에 불과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주파수가 중첩되어 교차하는 지점마다 미세한 물리적 간섭 노이즈가 발생하고 있었다.


“한솔, 제국 구축함들의 궤도 포위망 사각지대를 역탐지해 줘. 저놈들이 주포를 우리에게 정렬하는 순간, 위성 간의 신호 전송 주기에 미세한 지연이 생길 거야.”


“알았어! 궤도 포위망 사각지대 역탐지 가동!”


한솔의 손가락이 조종판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전면 스크린에 제국 함대의 레이더 감시 범위가 그물망으로 표시되었고, 구축함들의 이동 궤적에 따라 미세하게 흔들리는 사각지대의 틈새가 녹색 점선으로 시각화되었다.


“데이비스가 우리를 조준하고 있어. 구축함의 플라스마 주포가 충전되는 순간이야!”


진혁은 재충전된 양자 만년필을 매개로 하여, 테라 아틀라스 기기의 중력선 데이터와 제국의 방어막 주파수를 결합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초공간 차원 도약 역행 연산’ 공식이 초고속으로 전개되었다.


[연산 개시. 궤도 위성 신호 간섭 분석 중…….]


“진혁! 주포가 발사된다!”


한솔이 소리쳤다. 저 멀리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제국 구축함 ‘인퀴지터 호’의 전면 포탑에서 눈이 멀 것 같은 백색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행성의 대기를 찢어발기며 다가오는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으아아악!”


루카가 눈을 질끈 감았다.


진혁의 머릿속에서 연산의 마지막 변수가 맞아떨어졌다. 위성들의 양자 신호가 주포 사격의 전자기 반동으로 인해 아주 미세하게 일그러지는 찰나. 두 주파수가 교차하며 서로를 상쇄시키는 단 0.01초의 균열 지점.


“0.01초의 균열이야! 한솔, 1시 방향으로 엔진 출력을 순간 과부하 구동해!”


“간다아아아!”


한솔이 조종간을 움켜쥐고 엔진 레버를 임계치 너머로 밀어붙였다.


쿠구구구궁—!


헤르메스 호의 양자 엔진이 비명을 지르며 푸른색 불꽃을 폭발적으로 내뿜었다. 함선은 제국 구축함의 주포 광선이 스치기 직전, 기체를 급격히 회전시키며 붉은 레이저 장막의 가장 약한 고리, 0.01초 동안 주파수가 상쇄된 그 보이지 않는 균열 틈새로 미끄러지듯 돌입했다.


파지직! 콰아아앙!


장막을 통과하는 순간, 엄청난 열적 과부하가 함선을 덮쳤다. 선실 내부의 조명들이 일제히 깨어지며 스파크가 튀었고, 서브 AI 네로가 비명을 지르듯 경고음을 울렸다.


[경고! 대기권 이탈 차단망 접촉. 선내 생명 유지 시스템 반파. 선내 기온 급격히 하강.]


진혁은 머릿속의 양자 노이즈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의 왼쪽 눈 주변의 미세한 모세혈관들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나가며, 뺨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입안 가득 고인 비릿한 푸른 피를 참지 못하고 그는 콘솔 위로 거칠게 각혈했다. 유기체 순수형 육체가 고대 연산의 질량을 감당해 내며 치른 뼈아픈 대가였다.


하지만 그들은 해냈다.


눈앞을 가로막던 붉은 장막이 순식간에 뒤편으로 멀어지며, 헤르메스 호는 카론-4의 중력권을 완전히 벗어나 차가운 진공의 우주 공간으로 날아올랐다. 무적이라 불리던 제국의 ‘아이언 케이지’를 지략과 비행술의 결합으로 찢어발긴 것이었다.


“우리가…… 우리가 뚫었어!”


루카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그러나 기쁨은 찰나에 불과했다.


탁—.


기체 외벽 전체를 관통하는 기분 나쁜 진동과 함께, 조종석 스크린 우측 하단에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기묘한 주파수의 파형이 각인되기 시작했다.


[경보. 미확인 고주파 타키온 신호가 선체 외벽 장갑에 강제 각인됨. 발신지 추적 불가. 외부 전송망 동기화 진행 중.]


진혁은 황금빛 빛이 서서히 꺼져가는 왼쪽 눈으로 그 화면을 응시했다. 제국 구축함 ‘인퀴지터 호’가 방금 전 돌파 순간에 그들의 선체에 강제로 낙인을 찍어놓은 특수 타키온 스캔 신호였다.


저 멀리 우주 공간에서, 인퀴지터 호를 비롯한 제국 순찰 위성들의 붉은 안광이 일제히 헤르메스 호가 도망치는 방향을 향해 서서히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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