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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의 눈물과 돈귀신의 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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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로 조귀덕의 사저에서 뿜어져 나왔던 불길한 영기 폭풍이 간신히 가라앉은 이튿날 아침.


새롭게 간판을 올린 ‘청운문 감사전(靑雲門 監査殿)’의 문을 거칠게 열고 들이닥친 것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한 사내였다. 남루한 도포 자락에 흙먼지를 잔뜩 묻힌 사내의 품에는 깨진 목조 간판 조각이 안겨 있었다. 청운산 자락에서 평생 영초를 재배해 온 상인 조합의 대표, 이필두였다.


“임 감사관님! 제발…… 제발 저희 상인들을 살려주십시오!”


이필두는 감사전의 삐걱거리는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오열했다. 그의 등 뒤로는 저잣거리 상인 조합의 대표이자 마을의 최고 연장자인 고만식 촌장 역시 깊은 시름이 가득한 얼굴로 지팡이를 짚은 채 서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이필두 씨? 아침부터 영수증 대조 업무에 방해가 되는 소음이군요.”


임재희는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청운문 외문의 식자재 영수증들을 꼼꼼히 분류하던 손길을 멈추지 않은 채 차갑게 대꾸했다. 그의 눈밑에는 밤샘 야근으로 인한 짙은 다크서클이 퀭하게 내려앉아 있었고, 눈동자는 충혈되어 있었다.


옆에서 붓을 쥔 채 복식부기의 기초 장부를 정리하던 수석 서기 소지성이 깜짝 놀라 이필두를 부축했다.


“필두 형님! 이 깨진 간판은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형님의 영초 가게 간판이 아닙니까?”


“돈귀신…… 그 악독한 사채업자 놈들이 결국 사달을 냈습니다! 지난달에 빌린 하급 영석 100개를 갚기 위해 평생 모은 영초 납품 대금을 전부 바쳤건만, 그놈들은 장부를 멋대로 조작해 이자가 밀렸다며 가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간판마저 부수어 버렸습니다!”


이필두의 목소리가 억울함으로 잘게 떨렸다.


“분명 약조한 이자를 모두 치렀는데도, 오늘 아침에 들이닥친 사채업자 놈들은 저의 단전 지장이 찍힌 이중 계약서를 들이밀며 아직도 갚아야 할 영석이 500개나 남았다고 우겨댔습니다! 평생 일해도 그 빚을 갚지 못하면 제 영혼을 구속해 광산의 노예로 팔아넘기겠다고 협박하더군요!”


‘사채…… 그리고 이중 장부 조작.’


임재희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전생의 대한민국 서울에서 수많은 악덕 사채업자들과 탈세 기업들의 이중 장부를 털어냈던 일류 세무사로서의 직업적 강박증이 뇌리를 강타했다.


재희는 들고 있던 대나무 돋보기를 책상 위에 탁 내려놓았다. 그의 퀭한 눈동자 속에서 기이한 황금빛 안광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 계약서, 당장 이리 내놓으십시오.”


이필두가 품속에서 구겨진 가죽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재희에게 바쳤다. 재희는 대나무 돋보기를 눈가에 대고 계약서를 샅샅이 훑어내렸다. 동시에 그의 고유 신통인 ‘인과안(因果眼)’이 기동했다.


계약서 표면 위로 음산한 검은색 마기와 함께 붉은색 숫자들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계약 원금: 하급 영석 100개]

[실제 누적 이자율: 연 500%]

[숨겨진 조항: 채무 불이행 시 영혼 구속 및 사적 광산 강제 노역권 양도]


그리고 그 계약서의 뒷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인과율의 붉은 실선이 길게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 실선이 향하는 종착지는 다름 아닌 청운문의 공식 행정 기구인 ‘외문 집사당(外門 執事堂)’, 그리고 대장로 조귀덕의 사저 방향이었다.


재희는 차가운 실소를 터뜨렸다.


“연이율 500%라. 이건 사채 수준이 아니라 그냥 강도질이군요. 게다가 이 부당 채무로 상인들의 고혈을 짜내어 만든 검은 돈이 결국 외문 집사당과 대장로 일파의 비밀 비자금 파이프라인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던 겁니다.”


“비, 비자금이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수석 감사관님?”


소지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돈귀신이라는 사채업자는 단순한 저잣거리의 불법 대금업자가 아닙니다. 대장로 조귀덕의 조카인 조태식이 뒤를 봐주고, 상인들을 빚더미에 앉혀 평생의 노예로 부려먹으며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불법 비자금을 세탁해 주던 거대 금융 빨대의 실무 책임자였던 거지요.”


재희의 냉철한 분석에 고만식 촌장이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지팡이로 바닥을 짚었다.


“임 감사관님, 내 그럴 줄 알았소! 하지만 돈귀신 그자는 축기기 초기의 강력한 주술을 부리는 악독한 자요. 그 배후에 대장로님까지 버티고 있으니, 우리 같은 힘없는 범인들과 하급 제자들은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오. 제발 참으시오. 감사전이 아무리 문주님의 지지를 받는다 한들, 그들의 무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될까 두렵소.”


“촌장님.”


재희가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낡은 서생포 자락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세상에는 칼보다 무서운 규칙이 있고, 주술보다 정교한 숫자의 논리가 있습니다. 영수증이 없는 지출과 가짜 이중 장부로 시장의 자본 질서를 어지럽히는 탈세범들을 방치하는 것은, 세무사로서의 제 영혼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재희는 붓을 들어 한지 위에 먹물을 가득 묻혔다. 그리고 광기 어린 타건 속도로 글자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청운문 임시 조례 제5호: 불법 고금리 제한 세법(不法 利子率 制限 稅法)]

- 청운문 영지 내의 모든 채무 계약의 연이율은 20%를 초과할 수 없다.

- 이를 초과하는 부당 수입은 전액 불법 자산으로 규정하여 감사전이 강제 압류하며, 기존 채무 계약은 원천 무효로 한다.


순간, 재희의 가슴속에 품고 있던 고대 세법의 파편인 ‘조세율법 초장’이 강렬하게 공명하며 백색의 신성한 인과율 기운이 붓 끝을 타고 흘러나와 조례안 위에 박혔다. 천도가 보증하는 공식 공무 집행권의 기운이 조례안에 깃든 것이다.


“스, 스승님! 이것이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감사전의 비전 공법, ‘입법권 전개’입니까?!”


소지성이 가슴을 쥐어짜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무슨 헛소리입니까. 그냥 정당한 행정 조례 초안을 작성한 것뿐입니다. 소지성 서기, 당장 장부 가방을 챙기십시오. 청운 저잣거리로 현장 실사를 나갑니다.”


“예! 스승님! 양익평형신공의 위력으로 사채업자들의 대가리를 깨부수러 가겠습니다!”


“깨부수는 건 주판과 법으로 합니다. 칼은 넣어두십시오.”


* * *


청운산 자락에 형성된 하급 상업 지구, ‘청운 저잣거리’.


평소라면 영초와 단약의 거래로 활기가 넘쳐야 할 시장은, 곳곳이 파손된 가판대와 상인들의 침울한 한숨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저잣거리의 중심가에는 붉은색 기괴한 부적들이 어지럽게 붙은 거대한 목조 건물이 솟아 있었다. 독점 사채업자 돈귀신의 사채 사무소인 ‘귀신 대금각’이었다.


재희와 소지성이 이필두를 대동하고 저잣거리에 들어서자, 주변에서 기웃거리던 험악한 인상의 사채업자 수하들이 일제히 눈을 번뜩이며 다가왔다. 그들의 허리춤에는 붉은색 영기가 흐르는 가죽 채찍과 둔기들이 매여 있었다.


“어이, 저기 걸어오는 퀭한 놈은 누구냐? 어제 조 집사님을 골로 보냈다는 그 미친 서생 놈이냐?”


“감사전인지 뭔지 하는 잔챙이들이 감히 우리 구역에 발을 들이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군.”


사채업자의 수하 중 연기기 상품의 경지에 달한 험악한 거구가 앞으로 걸어 나와 재희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친 영압이 저잣거리 상인들의 숨통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상인들은 사채업자들의 보복이 두려워 일제히 문을 닫고 숨죽였고, 고만식 촌장마저 지팡이를 쥔 손을 덜덜 떨었다. 저잣거리 전체가 사채 세력의 무력 앞에 굴복해 있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때, 혈기 왕성한 소지성이 참지 못하고 허리춤의 보검을 반쯤 뽑아 들며 외쳤다.


“이 무도한 도둑놈들아! 감사전의 수석 감사관님 앞이다! 당장 무릎을 꿇고 불법 장부를 바치지 못할까!”


그러나 거구의 수하는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품속에서 이필두의 단전 지장이 찍힌 원본 채무 계약서를 치켜들었다.


“하하하! 감사전이고 뭐고, 우리는 문파 법률에 따라 정당하게 지장이 찍힌 계약서를 집행하는 것이다! 어디서 하급 제자 놈이 칼을 뽑아 드느냐? 문파 규율상 정당한 채권 추심을 무력으로 방해하는 자는 즉시 구금 대상이다! 어디 쳐볼 테면 쳐봐라!”


“이, 이놈들이 장부를 조작해 놓고 정당한 채권이라 우기다니!”


소지성은 법적 명분이 부족해 역으로 협박당하자 얼굴이 붉어진 채 검을 더 뽑지도, 넣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사채업자들은 계약서라는 ‘법적 껍데기’를 교묘히 방패막이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상인들의 절망 섞인 한숨이 저잣거리에 무겁게 깔렸다.


바로 그 순간, 임재희가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갔.


“소 서기, 칼을 거두십시오. 세무조사 시 무단 무력 행사는 불필요한 행정 소송과 절차적 결함을 유발할 뿐입니다.”


재희는 소지성의 칼을 손가락으로 툭 쳐서 검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방금 작성한 ‘불법 고금리 제한 세법’ 조례안 서책을 꺼내 들었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정당한 계약서, 오늘부로 전부 쓰레기통으로 들어갑니다.”


재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광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청운문주 유일심 님의 결재를 받아 발효된 임시 조례 제5호에 의거, 연이율 20%를 초과하는 모든 대금 계약은 원천 무효입니다. 또한 그동안 당신들이 상인 조합원들에게 불법으로 갈취해 간 초과 이자 전액을 ‘탈세 및 불법 자산 형성 혐의’로 강제 몰수할 것을 선포합니다.”


재희가 조례안 서책을 펼치자, 황금빛 천도의 문양이 허공에 거대하게 펼쳐지며 사채업자 수하들이 내뿜던 음산한 영압을 단숨에 지워버렸다.


상인들의 눈에 경악과 희망의 빛이 동시에 서렸다. 평생 자신들을 쥠가두던 빚의 족쇄가 서류 한 장에 의해 법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기세가 완전히 반전되었다.


“이, 이 미친 서생 놈이 정말 눈에 뵈는 게 없구나! 당장 저놈의 주둥이를 찢어버려라!”


거구의 수하가 비명을 지르며 거대한 철퇴를 치켜들고 재희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재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귀신 대금각의 거대한 목조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품에 있던 조세율법 초장이 강렬하게 진동하며, 재희의 몸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신성한 ‘공무원 신변 면책 결계’를 형성했다.


철퇴가 재희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직전!


쿠과과광!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듯, 푸른빛의 천뢰가 거구의 정수리에 정확히 내리꽂혔다.


“끄아아악!”


거구의 수하는 비명과 함께 새까맣게 탄 채로 뒤로 자빠져 바닥을 뒹굴었다. 천도가 규정한 ‘공무원 상해 및 공무집행방해죄’에 따른 즉각적인 천벌 징벌이었다.


그 압도적이고 부조리한 광경에 다른 수하들은 무기를 든 채 사시나무 떨듯 떨며 뒤로 물러섰다.


재희는 가볍게 도포 자락을 털며 귀신 대금각의 육중한 정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쾅!


문이 거칠게 열리며 대금각 내부의 음산한 전경이 드러났다.


사무실 내부에는 시커먼 저주와 영혼 구속 주술의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가운데, 기괴한 해골 장식들로 가득 찬 책상 뒤로 창백하고 마른 얼굴의 사채업자 돈귀신이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좌우로 붉은색 영기가 흐르는 도검을 든 수십 명의 무장한 부하들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재희 일행을 겨누며 앞을 막아섰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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