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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의 비밀과 썩은 고기 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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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식의 거친 손가락이 타들어 가는 한지 조각을 향해 덮쳐왔다.


연기기 상품의 영력이 실린 손끝은 가히 바람을 가를 정도로 매서웠다. 평범한 범인 서생이라면 그 기세에 눌려 뒤로 자빠지거나 손목이 부러졌을 터였다. 하지만 임재희는 평범한 범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서울의 가장 혹독한 세무 대리 현장에서 살아남은 일류 세무사였다.


‘어디서 감히 증빙 서류를 훼손하려고!’


재희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몸은 무공을 전혀 모르는 빈껍데기였지만, 탈세범이 증거를 인멸하려 할 때 반응하는 세무사의 반사 신경은 가히 광속에 가까웠다. 재희는 허리를 기묘하게 비틀며 조태식의 손길을 피함과 동시에, 탁자 위에 놓인 대나무 돋보기로 조태식의 손등을 툭 내리쳤다.


“앗!”


조태식이 비명을 지르며 손을 뒤로 뺐다. 범인의 가벼운 매질이었으나, 조태식의 손등에는 기묘하게도 붉은 기운이 서려 불타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품속에 숨겨진 고대 세법의 파편, ‘조세율법 초장’이 재희의 정당한 공무 집행을 감지하고 미세한 인과율의 가호를 내린 덕분이었다.


재희는 반쯤 타들어 간 가짜 영수증 조각을 재빨리 낚아채 가죽 서류 가방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싸늘한 눈빛으로 조태식을 내려다보았다.


“증거 인멸 시도는 세법상 가산세 부과 및 형사 처벌의 가중 사유입니다, 조 집사님. 그리고 이미 이 영수증의 배후가 어디인지 제 눈에는 똑똑히 보입니다.”


재희의 인과안(因果眼)이 조태식의 머리 위에 뜬 붉은 숫자를 사정없이 꿰뚫고 있었다. [5,000 영석 탈루 예정 - 외문 식자재 대금 부풀리기].


“식자재 대금 부풀리기라…….”


재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조태식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네, 네놈이 대체 그걸 어떻게……!”


“백무현 선생님.”


재희는 조태식의 경악을 가볍게 무시하고 옆에서 떨고 있던 늙은 회계사를 불렀다.


“예, 예? 재희야, 아니 임 계사…….”


“청운문의 공식 주방으로 가야겠습니다. 실물 자산 실사를 단행하겠습니다.”


“실물 자산 실사라니? 그게 무슨……?”


“쉽게 말해서, 저 도둑놈이 장부에 적어둔 고기와 쌀이 진짜 주방 창고에 그만큼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품질이 제값을 하는지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뜻입니다.”


재희의 단호한 선언에 조태식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가, 이내 이빨을 부득 갈며 살기를 뿜어냈다.


“이 미친 서생 놈이 감히 내 주방을 털겠다고? 거긴 외문 집사당의 성역이다! 네놈이 발을 들이는 순간 살아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공무 집행을 방해하시는 겁니까? 그것도 가중 처벌 대상입니다. 가시죠, 백 선생님.”


재희는 조태식의 위협을 마치 지나가는 바람 소리처럼 흘려버리며 서기실을 나섰다. 전생에서 수천억 대 자산가들의 협박과 깡패들의 으름장도 겪어본 그였다. 고작 하급 문파의 외문 집사가 뿜어내는 영압 따위는 여름날의 미지근한 에어컨 바람보다 못했다.


* * *


청운문의 외곽에 위치한 대형 공동 주방, ‘청운문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구수한 밥 냄새나 고기 굽는 향기는커녕, 시큼하게 썩은 내와 곰팡이 냄새가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넓은 주방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요리 칼을 들고 흰 앞치마를 두른 거구의 사내가 서 있었다. 청운문의 주방을 책임지는 대식가 제자, 팽가놈이었다.


팽가놈은 산더미처럼 쌓인 검은색 쌀가마니와 푸르스름하게 부패한 고기 덩어리들을 보며 나라 잃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제자들에게 먹이란 말인가…… 아무리 외문이라지만 이건 사람이 먹을 음식이 아니다.”


“팽가놈 씨.”


갑작스러운 부름에 팽가놈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낡은 서생포를 입고 한 손에는 돋보기, 다른 한 손에는 낡은 나무 주판을 든 퀭한 눈빛의 사내가 주방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안절부절못하는 백무현이 따랐다.


“누구냐? 여기는 주방 외인의 출입을 금한다.”


“청운문 서기실의 임재희 계사입니다. 주방의 식자재 장부와 실물 재고 대조를 위해 나왔습니다.”


재희는 주방 구석에 쌓인 쌀가마니로 성큼성큼 걸어가 대나무 돋보기를 들이댔다. 돋보기 너머로 쌀가마니의 상태가 정밀하게 확대되어 보였다. 쌀알들은 대부분 검게 변색되어 있었고, 바구미가 들끓고 있었다. 고기 역시 누렇게 변색되어 파리가 꼬이고 있었다.


재희의 인과안이 다시 한번 번뜩였다. 주방 창고 뒤편에 숨겨진 밀실의 위치와, 그 안에 숨겨진 진짜 최고급 식자재들의 붉은 가치 수치가 재희의 시야에 실시간 그래프로 그려졌다.


“팽가놈 씨, 이 장부를 보십시오.”


재희가 서류 가방에서 꺼낸 외문 집사당의 공식 지출 장부를 펼쳤다.


“여기에는 ‘동역 연맹 공인 상급 영초 돼지고기 100근 - 하급 영석 500개 매입’, ‘최고급 백옥 영미 50가마니 - 하급 영석 1,000개 매입’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제 눈앞에 있는 것은 시장 바닥에서도 버려지는 썩은 잡곡과 병들어 죽은 일반 돼지고기뿐이군요. 차액은 어디로 갔습니까?”


팽가놈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거대한 요리 칼을 쥔 손을 부르르 떨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그것은…… 나는 모르는 일이다! 나는 그저 위에서 주는 대로 받아서 요리할 뿐…….”


“요리사로서의 양심도 장부 조작과 함께 팔아넘기신 겁니까?”


재희의 날카로운 일침에 팽가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는 결국 요리 칼을 바닥에 툭 떨어뜨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제자들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먹이고 싶었단 말이다! 하지만…… 조태식 집사가 시키는 대로 장부를 조작하지 않으면, 내 주방 권한을 박탈하고 나를 문파에서 쫓아내겠다고 협박했다. 진짜 최고급 식자재들은 조태식이 따로 빼돌려 저잣거리 기방에 비싼 값으로 밀수출하고, 여기에는 썩은 고기와 쓰레기 같은 쌀만 밀어 넣은 것이다!”


“과연, 전형적인 원자재 단가 부풀리기 및 실물 자산 유용 횡령 수법이군요.”


재희는 차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의 오차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 그의 뼛속 깊은 회계 강박증이 일시적으로 해소되며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쾌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개운함도 잠시였다.


“이 빌어먹을 쥐새끼 같은 서생 놈이 결국 일을 저지르는구나!”


주방 정문이 거칠게 열리며, 조태식이 수십 명의 외문 Thugs들을 이끌고 난입했다. 그들의 손에는 번쩍이는 주방 칼과 단단한 목봉이 들려 있었다. 조태식의 눈은 광기와 살기로 뒤덮여 있었다.


“팽가놈, 이 배신자 놈이 감히 주둥이를 놀려? 그리고 임재희, 네놈이 감히 장부를 들고 주방을 뒤져? 오늘 여기서 네놈들을 모두 죽여 썩은 고기와 함께 가마솥에 넣어 삶아버릴 것이다! 장부만 불타 없어지면 문주도 나를 어찌하지 못한다!”


조태식이 연기기 상품의 영력을 폭발시키며 수탈권법(收奪拳法)의 기세를 취했다. 주방 내부의 낡은 가마솥들이 덜컹거리며 시커먼 썩은 육수가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재, 재희야! 피해야 한다! 저 자는 진짜로 우리를 죽일 것이다!”


백무현이 비명을 지르며 재희의 도포 자락을 붙잡았다. 팽가놈 역시 거구를 웅크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임재희는 도포 품속에서 무언가를 천천히 꺼내 들었다.


그것은 평범한 나무 주판이 아니었다. 어젯밤 서기실 구석에서 발견한 고대 도면을 바탕으로, 숫자의 완벽함을 기하기 위해 철저한 비율로 설계된 ‘특제 철제 주판(特製 鐵製 珠板)’이었다. 묵직한 흑철로 주조된 주판은 차가운 빛을 발하며 재희의 손가락 끝에서 미세하게 공명했다.


“조태식 집사님.”


재희가 철제 주판을 가슴 앞에 세우며 싸늘하게 웃었다.


“장부를 불태우면 죄가 사라질 거라 생각하십니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한 번 기록된 인과는 결코 지워지지 않습니다.”


“시끄럽다! 죽어라!”


조태식이 대지를 박차며 돌진했다. 그의 주먹에 붉은색 영기가 서리며 재희의 심장을 향해 쏘아져 왔다.


그 순간, 재희의 손가락이 광속으로 움직였다.


탁탁탁탁!


경쾌하고도 묵직한 철제 주판알 튕기는 소리가 주방 전체에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주판알이 부딪칠 때마다 미세한 영적 파동이 일어 조태식이 뿜어내던 영압의 흐름을 정확하게 교란하기 시작했다.


“스킬 발동. 시장 단가 비교 폭격(市場 單價 比較 爆擊).”


재희가 나지막이 외치며 주판을 허공을 향해 내밀었다.


그러자 품속의 조세율법 초장이 강렬한 황금빛을 뿜어내며, 주방의 허공에 거대한 빛의 장막이 펼쳐졌다. 그 장막 위로 청운 저잣거리의 실제 식자재 단가와 조태식이 청구한 가짜 단가가 실시간 3D 그래프와 수치로 선명하게 투영되었다.


[청운 저잣거리 실제 시세: 썩은 돼지고기 1근 = 하급 영석 0.1개]

[조태식 청구 단가: 상급 영초 돼지고기 1근 = 하급 영석 5개]

[오차율: 5,000%]


[실제 백옥 영미 시세: 1가마니 = 하급 영석 2개]

[조태식 청구 단가: 최고급 영미 1가마니 = 하급 영석 20개]

[오차율: 1,000%]


“이것이 당신이 작성한 장부의 실체입니다.”


재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대심문(大審問)의 음파가 되어 대전을 울렸다.


“단가 비교 수치 입력 완료. 차변과 대변의 불일치율 99.8%! 장부 대조 대심문(帳簿 對照 大審問)!”


황금빛 그래프가 조태식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천도가 보증하는 ‘숫자의 모순’이 지닌 정신적 압박감이었다.


“으, 윽?! 머리가……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조태식이 돌진하던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다. 그가 주장해 온 가짜 숫자들이 지닌 인과율적 모순이 그의 도심(道心)을 직접 타격한 것이었다. 수학적 모순이 입증될 때마다 조태식의 체내 영기가 역류하며 가슴을 짓눌렀다.


“왜 썩은 쌀 한 가마니를 20 영석에 샀습니까? 대답하십시오! 그 차액은 어디로 흘러갔습니까? 거래처의 수령인은 누구입니까!”


재희가 주판알을 튕길 때마다 금빛 수식들이 채찍이 되어 조태식의 온몸을 휘감았다.


“닥쳐라! 닥쳐! 이 장부만 없애면……!”


조태식이 이성을 잃고 품속에서 화공 부적을 꺼내 장부를 향해 던지려 했다.


“위험합니다!”


백무현이 소리쳤지만, 재희의 눈빛은 이미 얼음처럼 차가웠다.


“지출 증빙 훼손죄 및 공무집행방해죄 적용. 물리적 제재를 집행합니다.”


재희가 철제 주판을 쥔 손목을 가볍게 튕겼다.


“철제 주판 난타술(鐵製 珠板 亂打術)!”


탁탁탁탁!


광속으로 회전하는 주판알들이 허공을 가르며 조태식의 무기 궤적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조태식이 쥐고 있던 화공 부적이 공중에서 갈갈이 찢겨 나갔고, 재희는 뚜벅뚜벅 걸어가 흑철 주판의 모서리로 조태식의 이마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딱!


경쾌하고도 웅장한 타격음이 주방을 울렸다.


“아아악!”


조태식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의 이마 한가운데에는 흑철 주판의 격자무늬 바둑판 모양 자국이 선명하고 붉게 새겨져 있었다. 조태식은 눈을 뒤집으며 머리를 움켜쥐고 피를 토했다.


“내, 내 단전이…… 내 영력이 역류한다……!”


횡령 사실이 완벽하게 숫자로 입증당하고 물리적 타격까지 받자, 조태식의 도심이 붕괴하며 수십 년간 쌓아온 연기기의 공력이 급격히 와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조태식은 부르르 떨다가 이내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수하 Thugs들은 자신들의 대장이 단 한 방에 기절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하여 무기를 버리고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후우…….”


재희는 주판을 가볍게 털어 도포 소매에 넣었다. 이마의 땀을 닦아내는 그의 얼굴에는 세무 조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직장인의 피로 섞인 미소가 감돌았다.


쿵!


그 순간, 쓰러진 조태식의 거구와 그가 떨어뜨린 거대한 가마솥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방 구석의 낡은 바닥 판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어, 어라?”


팽가놈이 놀라 그곳을 바라보았다.


무너진 주방 바닥 아래, 거대한 밥솥 뒤편에 숨겨져 있던 지하 밀실의 입구가 정체를 드러냈다. 그 어두운 지하 통로 내부에서 은은하고 푸르스름한 영기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단순한 식자재 창고가 아니었다.


재희의 인과안이 그 어둠 속을 관통했다. 통로 깊은 곳에 거대한 영석 궤짝들과 함께 대장로 조귀덕의 개인 문양이 찍힌 비밀 비자금 세탁 경로가 붉은 실선이 되어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청운문의 파산 위기를 초래한 대장로 일파의 거대한 불법 비자금 통로가 마침내 세상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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